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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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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가 없군. 어찌 소국(小國)의 사람이 대국(大國)의 일에 끼어든단 말이냐…!!”
“………??”
저게 우리나라에 야구 배우러 유학 왔다는 놈이 내뱉은 말이라니. 참으로 어이가 없다.
‘중뽕 심한 놈들은 사고방식 자체가 다르다더니.
이 세계관의 조선 역시 현실과 마찬가지로 명(明)과 청(淸)을 상국으로 모신 역사가 있다고 들었다.
물론 차이가 조금 있다면, 현실의 조선보다 야구를 빌미로 이득을 쪽쪽 뽑아먹은 점 정도일까. 실력 좋은 야구 교관을 사신으로 파견하며 막대한 금은보화를 받아냈다고.
야구의 발상지인 한국에게서 엑기스 교육을 받은 중국은 야구의 수준이 상당히 높아졌고, 소림사 등을 비롯한 구파일방의 문파들이 야구를 훈련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물론 독재국가가 그렇듯이 다 말아먹었지만.
훗날 중국의 지도자가 된 마오쩌둥은 각 무림 문파들이 높은 야구 실력으로 인기를 얻는 것을 못마땅해했다.
그는 문화대혁명을 촉발하며 야구에 대해서도 ‘저 공은 해로운 공이다. 라는 한마디를 남겼고, 홍위병들은 온갖 깽판을 치며 야구를 하지 못하게 깽판을 치며 중국 야구를 수백 년 뒤로 후퇴시켰다.
현재 주석이 ‘야구 굴기’를 선언하며 수조 원의 돈을 때려 박고는 있지만, 그다지 결과가 좋지 않아 같은 중화권 나라들인 홍콩, 대만의 선수들까지 자국 대표팀으로 꼬시고 있는 상황이라고.
그 와중에 지들 나라 야구 교육이 개판인 건 아는지 돈 있는 녀석들은 다 한국 유학을 온다고 그랬나. 아마 공산당 간부의 아들인 이 녀석도 마찬가지겠지.
“흠, 소국이라….”
나는 잠시 턱을 매만지고는, 나지막하게 한마디 던졌다.
“근데, 너네 국제전에서 우리 이긴 적 있나? 중국 야구 개 못하잖아.”
“…………!!”
눈을 부릅뜨는 녀석.
아마 정곡을 찔린 모양이다.
나름 아시아의 야구 강호라는 자부심이 있는 중국이지만, 국제대회가 열린 이후 그 어떤 연령대에서도 한국 야구를 이긴 적이 없었다.
“흥, 시 주석님이 계획한 ‘야구 굴기’가 무사히 끝난다면, 한국 따윈 앞으로 수백 년간 중국을 이길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야구의 근원지는 중국이니까 말이다…!!”
“이건 또 뭔….”
어디서 개가 짖나.
이 세계관에서 세종이 야구 만든 건 아프리카 원주민도 알 정도로 공인된 사실인데, 대체 뭔 헛소리를 하는 걸까.
솔직히 궁금하긴 해서, 뭐라고 개소리를 하나 한번 들어보기로 했다.
“과거에 중국을 상국으로 모신 한국의 왕이 야구를 만들었다면, 그건 중국이 만든 것이나 다름없지. 암, 그렇고말고.”
“……….”
얘는 진짜 답이 없네.
나는 확인할 게 있어 두리번대며 주변을 살폈다.
‘음, 돌아다니는 사람 없고, CCTV도 없고.
녀석이 사람 안 다니는 한적한 곳으로 장소를 정한 덕에, 아주 고맙게 됐다. 어디 설계 한 번 해볼까.
“야, 짱깨.”
“뭐, 짜, 짱깨…!?”
부르는 데는 1초가 필요하지만, 상대를 하루종일 기분 나쁘게 할 수 있다는 마법의 단어. 실제로 듣자마자 녀석은 개발작을 하기 시작했다.
“이 건방진 빵즈 놈이…!!”
나는 녀석이 발끈하건 말건,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녀석이 한 행동들을 하나씩 세어 보았다.
“어디 보자. 운강이한테 헛소리, 소국이 어쩌고 또 헛소리, 역사까지 왜곡한 데다 이제는 중국어로 쌍욕까지…. 평소라면 그냥 안 넘어가는데, 많이 봐줬다. 무릎 꿇고 사과 딱 한 번 하자. 그럼 봐줄게.”
“웃기는 소리, 사과받아야 할 건 내 쪽이다…!!”
“흠, 안 한다 이거지?”
“그래, 어서 내게 사과를…!”
뻐억!!
“커헉!!”
내 발차기에 복부를 걷어차인 녀석은 그대로 나동그라졌다. 경기를 앞두고 상대팀에게 얻어맞을 줄은 몰랐는지, 믿을 수 없는 눈으로 바라보는 녀석.
“쿨럭, 이 빵즈 녀석이 감히, 중화민국 당 간부의 삼대독자인 이 천즈펑 님을…!!”
“아 씨팔, 거 말 많네. 아빠한테 일러 그럼.”
“그래, 네 놈의 선수 생활은 이제 끝이다! 아버지는 물론 당장 모두에게 알려서 이 경기에서도 몰수패를….”
“근데, 증거 있냐?”
“뭣…?”
“증거 있냐고. 여기 목격자도 없고, CCTV도 없는데.”
“……!!”
주변을 홱홱 돌아보고는 놀라는 녀석. 아까 확인했다시피,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급기야는 운강이에게 삿대질 하는 녀석.
“석운강, 네 이놈. 같은 중화 인민끼리 어딜 입을 다물고 있는 거냐! 어서 이 녀석의 폭력 행위를 나와 같이 야구 위원회에 증명해라…!”
“…소승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만.”
“뭣…!?”
그렇게 지랄이란 지랄은 다 해놓고 운강이가 지 편을 들어줄 거라 생각한 건가. 참 편하게도 살아온 모양이다.
“끄으윽, 네 놈들이 감히…!”
“여기 있었군, 천즈펑.”
“……!!”
그때 천즈펑의 위로 지는 거대한 그림자. 엄청난 떡대를 지닌 금발의 러시아인 포수, 드미트리 노빅이 등장했다.
“돌아가자, 집합 시간이다.”
“오오, 노빅! 잘 왔다. 어서 저 녀석들에게 본때를 보여주도록 해라. 특히 저 빵즈 녀석은 나를 폭행했으니 더 뜨거운 맛을 보여주도록 하고…!”
CCTV가 없는 걸 이제는 역이용하겠다는 듯, 바로 노빅의 덩치 뒤에 숨는 녀석. 그러나 노빅은 한숨만 푹 내쉬었다.
“후, 급한 일이다. 그런 사사로운 일은 나중에 따지고 일단 가자.”
“너 이 자식, 내 말을 뭐로 들은 거냐. 지금 당장 저 막돼먹은 놈들에게 조치를…!”
노빅은 결국 손을 썼다.
자기 팀인 천즈펑에게 말이다.
꽈악!!
“끄으악……!!”
“적당히 해라, 천즈펑. 참는데도 정도가 있다.”
녀석의 머리를 한 손으로 꽉 붙잡고 악력으로 짓누르는 노빅. 아무래도 쌓인 게 상당히 많은 모양이다.
“그, 그만….”
그 엄청난 힘에 안색이 새하얘지며 노빅의 팔을 탁탁 치는 천즈펑. 노빅은 손에 힘을 풀며 쓴 표정을 지었다.
“…네 놈 똥 닦아주는 것도 지겹다. 제발 시비 좀 그만 걸고 다녀라.”
“허업, 허억……!”
풀려나선 가쁜 숨을 내쉬는 녀석. 그대로 뒷걸음질 치더니, 쌩하고 도망쳤다.
“큭, 빵즈 놈과 홍콩 놈. 용서치 않겠다. 경기 때 두고 보자…!!”
상상 그 이상의 중뽕을 보여준 녀석은 그렇게 사라졌다. 그렇게 자리에 남게 된 것은 나와 운강, 그리고 상대 팀인 노빅.
노빅은 머리를 긁적이더니 나와 운강에게 사과했다.
"…미안하게 됐군. 저 녀석이 저러는 것도 하루 이틀 일이 아니라서 말이다."
"우리야 뭐 적으로 한 번 만나면 그만인데, 같은 팀이라 힘드시겠어."
"말을 마라, 후…. 저 녀석 아버지가 뿌리는 후원금 때문에 어찌나 간섭이 심한지."
팀 안에서도 상당한 패악질을 부린 모양. 이거 원, 아무리 이쪽 업계가 돈의 영향이 크다지만 저건 좀 힘들겠는데.
“아무튼 뭐, 너희 둘의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금성묵과 석운강. 맞지?”
“이거 영광인데, 러시아 대표인 드미트리 노빅님이 다 알아봐 주시고.”
“글쎄, 너만 해도 금강고를 박살 낸 초신성인데다 석운강 이 녀석도 홍콩 대표잖냐? 유망주 순위도 나보다 훨씬 높고 말이지.”
아, 그런 게 있었지.
이사장이 영입 조건으로 전국 유망주 랭킹 20위 권 내의 선수를 데려오라 할 때 한 번 본 뒤로 까먹고 있었다.
‘아마 노빅이 랭킹 50위 정도였었지.
세르게이는 10위권 후반대, 천즈펑은 100위 권 간당간당 정도였을 거다. 이쯤 되면 한가지 드는 의문이 있다.
‘지금 나는 어느 정도지?
과거에 선발 맞대결로 쓰러트린 청현고의 임태율이 30위 권 후반대, 금강고 장태산이 20위 초반대다. 대충 그사이 어딘가이지 않을까 싶은데, 조만간 갱신될 때 한번 봐야겠다.
“살살 좀 던져달라고, 금성묵. 요즘 손맛을 통 못 봤거든.”
“엄살은, 니 저번 경기 홈런 친 거 다 봤다.”
“씁, 들켰나?”
어깨를 으쓱하고는 씩 웃는 녀석. 우리 둘에게 손을 내민 녀석은 사람 좋은 얼굴로 말했다.
“한 번 좋은 경기 펼쳐보자고, 너희들.”
“예, 잘 부탁드립니다.”
“오냐, 잘 해보자고.”
꽈악!!
그렇게 우리는 손을 강하게 맞잡고는 갈 길을 갔다. 이제부터는, 야구장에서 적으로 만나게 될 테니까.
#######
모두에게 합류하는 길에, 나는 석운강에게 물었다.
“야, 운강아. 아무리 그래도 때린 거는 좀 너무하다고 생각하냐?”
“……….”
내 말에 잠시 고민하는 기색인 운강. 녀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닙니다, 오히려 금성묵 시주에겐 감사하다고 생각합니다.”
“왜?”
“금 시주가 하지 않았다면, 제 쪽에서 참지 못하고 손이 나갔을 겁니다. 그리고는 심마(心魔)에 빠졌겠지요.”
“그러냐.”
역시 그랬군.
본래 세상만사에 초연한 운강이지만, 아직 수양이 부족하다 보니 참지 못하는 두 가지 주제가 있다.
그중에 하나가 불교를 까는 거고, 나머지 하나가 홍콩을 욕하는 거다. 특히 중국인이 직접 긁으면 그 효과가 몇 배로 배가되고 말이다.
‘운강이가 칠 바에는 내가 하는 게 낫지.
이 녀석 성격이면 증거가 없었어도 자수했을 게 뻔하다. 불필요한 폭력을 행사했으니 죗값을 치르겠다 어쩌구 하면서.
웬 중국인 때문에 대회 기간 동안 주전 포수를 잃을 수는 없는 노릇. 동료도 지키고 스트레스도 풀고, 일석이조구만.
아니다, 일석삼조로 정정한다.
‘오호라….
묘하게 열기가 오른 운강의 모습을 보아하니, 분노했을 때 파워와 컨택을 한 랭크씩 올려주는 S등급 스킬 마승(魔僧)이 발동된 게 분명하다.
오늘 경기, 꽤 볼만하겠군.
“자, 전원 집합…!!”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동료들을 불러 모았다. 그러자 일사불란하게 모이는 녀석들. 둥글게 모인 동료들에게 어깨동무하며, 나는 솔직한 한마디를 던졌다.
“애들아, 일단 나 말해둘 게 있는데.”
“?”
“나 오늘 컨디션 최악이다.”
“뭣…!?”
“아니, 어쩌다가…!”
대뜸 불길하기 그지없는 말을 꺼내자 깜짝 놀라는 동료들. 물론 진실을 말할 순 없다. 새벽 내내 아랫도리가 가라앉지 않아서 잠을 못 잤다고 어떻게 말하겠는가.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둘러댔다.
“그냥 뭐, 그런 날 있잖냐. 아무 이유 없이 컨디션 안 좋은 날.”
“쓰읍, 큰일인데….”
다소 우려를 표하는 동료들.
하지만 난 별거 아니라는 듯 씩 웃었다.
“근데 나 질 생각은 없거든. 너네도 마찬가지 아니냐?”
“짜식이, 뭐 당연한 소릴 하고 있냐.”
“네, 성묵 형. 여기까지 와서 질 생각 따윈 추호도 없어요.”
수긍하며 한마디씩 덧붙이는 최아담과 도도진. 나는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한마디를 동료들에게 던졌다.
“오늘 너희 수비만 믿고 팍팍 맞을 거다. 뒤는 부탁한다.”
“……!!”
내가 이런 말 할 줄은 몰랐는지 놀라는 동료들. 그러나 녀석들은 곧 씩 웃어 보였다.
“당연하죠, 성묵 형님. 외야는 제게 맡기십쇼…!!”
“오냐, 그렇게까지 말하는 데 이 형님이 힘 좀 써야지.”
내가 준 글러브를 팡팡 두들기며 자신하는 지수용과 목을 풀며 웃음 짓는 류지.
처음 빙의했을 때는 그저 막막했지만, 어느덧 뒤를 맡길 수 있는 동료가 여럿 생겼다. 솔직히 좀 든든한걸.
‘일단 리동혁한테 가기 전까지 7이닝은 먹어야 할 테고, 2실점 정도로만 어떻게든 막아볼까.
그 정도가 현실적인 목표로 보인다. 태양신맥은 강발(強勃)을 기준으로 하면 최대 유지 시간 3이닝에 스위치 1번, 그 정도가 한계다.
‘그 정도면 충분히 할만하지.
선발 로테를 돌 때 항상 좋은 컨디션에만 올라갈 수도 없는 법. 이것보다 더 안 좋을 때도 많이 올라가 봤다.
이런 상황에조차 퀄리티 있는 피칭을 보여주는 게 진정한 에이스의 역할 아니겠는가.
“자, 가자 새끼들아…!!”
“우오오………!!”
무조건 올라간다.
이 녀석들과 함께, 더 높은 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