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py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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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혁고 측 클린업 타자 세 명이 전부 커브를 노려 홈런을 만들어 냈다. 이게 의미하는 바는 한가지다.
“젠장, 쿠세가 노출됐잖아…! 태산이 내리고 진호 올려!!”
“옙!!”
진작에 바꿀 걸 후회해봐도 이미 3점이나 준 뒤다. 뒤이어 타석에 올라선 지수용이 담장을 맞추는 2루타를 뿜어내며 기세를 이어간 문혁고지만, 또 한 번 투수 교체를 감행한 금강고의 결단에 추가점을 뽑지는 못했다.
이제 경기는 8회, 금성묵이 노히트 노런을 달성하는 데까지 아웃카운트는 단 6개만을 남겨두고 있다.
츄릅!
아랫도리를 불룩 세운 채로, 상대 타자를 먹잇감을 보는 것 마냥 혀로 입술을 쓱 핥는 금성묵.
엄청난 투수! 라는 느낌보다는 정체불명의 괴생명체와 맞붙는 느낌에 가깝다고 할까.
6번 타자 박철훈의 머릿속에 스멀스멀 한가지 생각이 올라온다.
‘저 정신 나간 놈한테 안타 칠 수 있을까…?’
금태양이란 남의 약점을 지독하리만치 파고드는 족속. 그의 앞에서 그런 약해빠진 생각을 품는다면 결과는 뻔하다.
파앙!!
“스트라이크 아우웃!”
“우효………!!”
바깥쪽으로 빠져나가는 스위퍼에 박철훈의 배트가 헛돌았다. 11번째 삼진을 잡아내며 포효하는 성묵.
“응…?”
그런데 뭔가가 이상했다.
들려야 할 무언가가 들리지 않는 게 아닌가!
‘아니, 삼진 테마곡 왜 안 틀어?’
기껏 부끄러움을 감수하고 삐끼삐끼를 가르쳐줬는데 틀지 않다니. 성묵은 이를 가만히 넘기지 않았다.
[금성묵 투수, 응원단석 쪽을 향해 뭔가 신호를 보냅니다!! 저건 무슨 뜻일까요…?]
해설자들의 의문은 곧 해소됐다.
응원단 멤버들이 화들짝 놀라더니, 곧바로 응원단상에 올라가 삼진송을 틀고 춤을 추었기 때문이다.
해설진 일동이 입을 떡 벌리며 경악했다.
[서, 설마 했는데…, 금성묵 선수, 응원단에 직접 음악을 다시 틀라고 지시한 모양입니다…!]
[금성묵 선수의 피칭에 방해가 될까봐 틀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요! 대기록에 도전하는 와중에도 음악을 신경 쓰다니. 살면서 이런 강심장은 처음 봅니다…!!]
-
미친놈 ㄷㄷ 이 상황에 음악 신경 쓸 겨를이 있다고?
-
ㅋㅋㅋ 기록은 기록이고 음악 다시 틀라고~
-
wwwwwwwwwwwwwwww 우효~~~
-
이런 또라이 캐릭터는 첨 본다 ㄹㅇ
“와, 너는 진짜….”
“엥……??”
성묵을 질린 눈으로 바라보는 동료들. 물론 상황을 전혀 모르는 입장에선 어리둥절할 따름.
‘아니, 꺼진 거 같아서 알려줬는데 왜 이래.’
곰곰이 다시 생각해보니, 수많은 관중이 보는 앞에서 실수를 지적하는 건 조금 야박했던 건가까지 생각이 든 성묵.
이 경기가 끝난 뒤 조용히 사과하기로 마음먹은 그는 이내 다시 피칭을 시작했다. 그것도 여전히 압도적인 모습 그대로.
파앙!!
“스트라이크 아우웃!!”
뻐엉!!
“스트라잌 아우우웃!!”
심판의 역동적인 제스쳐와 함께 덕아웃으로 돌아가게 된 7, 8번 타자. 성묵은 8회 역시도 완벽하게 막아냈다.
한창 마운드를 내려오는 성묵.
그는 슬그머니 명신우 감독에게 다가갔다.
“감독님, 슬슬 동혁이 준비시킬 때 되지 않았습니까.”
“뭣……!?”
명 감독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서, 성묵아. 너 부상이라도 있냐?”
“예?”
마무리 투수 준비 안 시키냐 물어봤더니, 뜬금없이 부상 당했냐는 명 감독의 말. 성묵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뭔 부상입니까. 저 멀쩡한데요.”
“그러면 왜…. 아, 설마?”
성묵의 반응으로 무언갈 깨달은 명 감독.
그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성묵의 어깨에 손을 툭 올렸다.
“성묵아, 아직 체력 좀 남지 않았냐?”
“아무래도 좀 남기야 했죠.”
“…동혁이, 한 번만 더 숨겨보자. 어때?”
“흠?”
명 감독의 제안은 일리가 있다.
이미 금강고를 삼연타석 홈런으로 혼쭐 내며 핵타선을 보유 중이라는 걸 만천하에 알린 문혁고지만, 핵 잠수함까지 숨겨둔다면 다음 경기에서도 전략적 이점을 가질 수 있으리라.
‘어차피 다음 경기 선발은 핫산일 테니 내가 던지진 않을 거고.’
기왕 이렇게 된 거 한 이닝 더 던지고 완투 한번 조져보자고 생각하는 성묵. 그가 고개를 주억이며 명 감독의 말에 수긍했다.
“뭐, 까짓거 한번 던져보죠.”
“잘 생각했다. 성묵아!”
엄지를 척 세우는 명 감독. 그는 성묵이 돌아가자 이태정 코치에게 슬그머니 물었다.
“태정아. 성묵이 쟤, 아무래도 모르는 것 같지?”
“…네, 백프로 모르는 거 같습니다.”
다시 마운드에 올라선 성묵. 그는 이번 이닝에 무언가 공기가 다름을 느꼈다.
“후우.”
경기장이 조용하다.
그것도 이상하리만치.
‘…경기 막바지라 그런가?’
이 경기를 지켜보는 모든 이의 시선은 오롯이 성묵의 기록에 쏠려있다. 그리고 거기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일반 관중뿐만이 아니다.
“최 스카우터, 빨리 와…!”
“헉헉, 한청고 경기 보던 중이었는데 대체 무슨 일이랍니까!”
야한 냄새를 풍기는 좌완 파이어볼러 소식을 듣고 달려온 스카우터들 역시 하나씩 성균관 구장에 운집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인터넷 중계를 보는 수많은 야구팬들까지.
엄청난 부담감을 받아야 정상인 상황 속에서, 성묵은 그저 씩 웃었다.
[아, 금성묵 선수. 또 웃었습니다!]
[아까 4회 초에도 금성묵 선수가 웃은 뒤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데, 또다시 무슨 일이 생기는 걸까요!]
왜 웃었냐고 묻는다면,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성묵은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미친 짓을 한 번 하기로 했다.
‘1타자 1스위치, 언제 이런 짓을 해보겠냐.’
바로 타자마다 태양신맥 설정값을 바꾸는 것!
엄청난 체력 소모가 따르는 만큼 평소 같으면 엄두도 못 내겠지만, 지금은 체력 도핑과 초반의 절약 피칭 덕분에 체력이 꽤 남았다.
그래서 성묵은 자신 있게 외쳤다.
“스위치.”
[태양신맥에 의한 스텟 변화가 초기화됩니다!]
[써클 체인지업이 A->A+로 강화됩니다!]
[써클 체인지업이 A+->S로 강화됩니다!]
[구위 스텟이 A->A+로 강화됩니다!]
타석에 들어선 9번 타자의 몸이 부르르 떨리고 있다. 대기록의 희생양이 되는 순간이 임박했음을 깨달은 것일까.
안 그래도 타격 능력이 부족한데, 투지조차 꺾인 자가 금성묵의 S급 써클 체인지업을 건드리는 건 불가능하다.
퍼엉!!
“스트라잌 아우웃…!!”
"우효……!!"
삼구삼진.
존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써클 체인지업에 타자는 배트를 붕붕 돌리다가 삼진을 당했다.
현란한 변화각에 스카우터들은 입을 떡 벌렸다.
“이런 미친, 저 써클 체인지업은 대체 뭐냐…!!”
“고등학생이 저 정도 완성도의 써클 체인지업을…?!”
당장 프로에 가도 상급이라고 할 수 있는 써클 체인지업. 그러나 아직 놀라기는 이르다.
“스위치.”
[태양신맥에 의한 스텟 변화가 초기화됩니다!]
[스위퍼가 B+->A로 강화됩니다!]
[스위퍼가 A-> A+로 강화됩니다!]
[구위 스텟이 A->A+로 강화됩니다!]
다음으로 보여줄 것은 스위퍼.
이전에도 훌륭한 구종이었지만, 태양신맥에 의해 강화된 스위퍼는 그 궤를 달리했다.
경기 초반 보여준 그 각도를 생각하고 배트를 돌려보지만, 타자의 배트는 헛돌 뿐이다.
퍼엉!!
“스트라잌 아웃!!”
"우효옷…!!"
이번에도 역시, 스카우터들은 난리가 났다.
“뭐, 뭐냐…! 스위퍼 저 정도 아니었잖아!?”
“아닙니다, 9회에 들어서 갑자기 강해졌어요!”
“그게 말이 되냐 임마!”
후배 스카우터는 ‘저 녀석 존재 자체가 말이 안 됩니다….’라고 말하려다 참았다.이 경기를 지켜보는 전문가들은 다들 같은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저 녀석, 공의 위력을 숨기고 있었어…!'
프로에서도 먹힐 강력한 스터프를 일부러 숨겼다가, 필요할 때만 살짝살짝 보여준다.
완급조절이란 게 완숙한 프로 선수의 덕목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저 어린 선수가 보여주는 힘 조절은 가히 경지에 도달해 있다. 스카우터들은 분주하게 여기저기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경기 종료까지 남은 아웃 카운트는 단 하나.
모두가 대기록의 달성, 그리고 금강고라는 거인을 때려잡는 문혁고의 승리를 지켜보기 위해 숨죽이고 금성묵을 바라봤다.
성묵은 조용히 읊조렸다.
“스위치.”
[태양신맥에 의한 스텟 변화가 초기화됩니다!]
[구속 스텟이 B+ -> A로 강화됩니다!]
[구속 스텟이 A-> A+로 강화됩니다!]
[구위 스텟이 A->A+로 강화됩니다!]
'마지막은 직구.'
최후의 순간 보여줄 것은 역시 투수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직구. 성묵은 장전이 끝나게 무섭게 공을 뿌리기 시작했다.
뻐엉!!
“스트라잌…!!”
존 한복판에 강속구가 꽂혔다.
그 기세에 눌려 움찔한 타자.
해설위원들은 구속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 156km!! 금성묵 선수, 108구나 던졌음에도 여전히 구속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요. 오늘 여러모로 많은 사람을 놀라게 합니다!!]
오늘 성묵은 정말 많은 걸 보여줬다.
엄청난 실력과, 그걸 보여주는 과정에서 동반되는 하체의 묵직함까지.
물론 그것이 심히 호불호가 갈릴 것임은 분명했지만, 압도적인 실력이 있다면 그것 또한 대중을 설득할 수 있는 법.
처음엔 성묵에게서 기괴, 공포 등의 단어를 떠올리던 관객들은 점점 성묵에게서 경이, 신비 같은 단어까지 연상하게 됐다.
뻐엉!!
"스트라잌……!!"
“…크윽!!”
가슴 높이로 들어가는 하이 패스트볼에 타자의 배트가 헛돌았다.
[빠른 공 2개로 금성묵 선수가 스트라이크를 잡습니다. 카운트는 0-2!]
[남은 카운트는 단 하나! 대기록을 앞둔 성균관 구장은 도서관보다도 조용합니다!!]
관객들은 숨 쉬는 것조차 잊고 이 순간을 지켜봤다. 경기를 끝내는 데 필요한 공은 단 하나.
타자의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성묵이 9회에 보여준 공들은 다들 엄청난 위력을 자랑했기에, 뭐 하나를 콕 집어서 가기가 쉽지 않았다.
'또 직구가 올까? 아니야, 카운트에 여유가 있으니 써클 체인지업도 가능성 충분해. 아니면 스위퍼?'
타자와 달리 성묵은 명쾌했다.
오직 하나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직구.'
성묵의 오른 다리가 크게 올라갔다.
그리고는 채찍처럼 휘어지는 그의 왼팔.
"흐읍…!!"
맹렬하게 미트를 향해 날아가는 공.
파르르 떨리며 솟구치는 공은, 그 어떤 저항도 없이 포수의 미트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뻐엉-!!!
"스트라이잌 아우우웃...!!"
심판의 우렁찬 외침과 함께, 해설위원들도 날뛰기 시작했다.
[삼진…!! 삼진!! 158km! 금성묵 선수가 6타자 연속 삼진을 잡으며 금강고를 박살 냅니다!!]
[봄 대회 첫 등판에서 노히트 노런 달성! 첫 등판부터 금성묵 세글자를 팬들에게 똑똑히 각인시킵니다!]
게임 셋.
이 경기의 승자는 문혁고다.
"우효오오옷………!!!"
오늘의 마지막 우효.
주먹을 불끈 쥔 성묵이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
마운드를 향해 동료들이 우다다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것도 어째 하나같이 벅찬 표정이다.
"우아악, 금성묵……!!"
"성묵이 형…!!"
"금성묵 시주, 정말 대단합니다!!"
"뭐, 뭐야?"
성묵은 어안이 벙벙했다.
뭔가 기뻐할 이유가 바뀐 느낌이랄까.
‘아니, 강팀 이겨서 기뻐하면 기뻐하는 거지, 굳이 왜 다들 내 이름을…?’
동료들의 모습이 무언가를 축하하는 모양새라는 걸 성묵은 깨달았다.
그렇지만 오늘 그는 뭔가를 한 기억이 없다.
그래서 그냥 대놓고 물었다.
"아니, 너희들 왜 이렇게 난리냐. 고작 완봉 가지고."
"완, 완봉이요? 그게 무슨…."
"뭔 개소리…, 잠깐, 너 설마?"
단체로 뇌 정지가 온 동료들.
그러나 그들도 깨달았다.
성묵이 아무것도 모른단 사실을.
“……….”
“……….”
눈치만 보는 동료들.
누군가는 이 사실을 알려줘야 하기에, 오늘 쭉 호흡을 맞춘 석운강이 동료들의 시선을 받고 고개를 끄덕였다.
"…금성묵 시주."
"응?"
"전광판을 한 번 보시겠습니까."
"엥, 갑자기?"
일단 봐달라니까 시선을 돌리는 성묵.
그곳에는 우선 이닝별 스코어의 나열이 쓰여있다. 팽팽하게 0의 행진이 이어지다가, 7회 말에 3점을 낸 뒤 스코어가 굳어져 3:0으로 종료.
“봤는데, 뭐?”
“그 옆에도 한 번 봐주십시오.”
“옆?”
안타 개수가 적힌 칸이 눈에 띈다.
그곳에는 문혁고 4, 금강고 0이라는 숫자가 버젓이 띄어져 있다.
“오호, 뭐야. 금강고 놈들 안타 수가 왜 이렇게 적….”
“…어?”
그제야 뭔가 눈치챈 성묵.
안타 0이 의미하는 바는, 실로 명확하다.
"이런 미친, 실화냐……!?!"
금성묵.
빙의 후 공식 대회 첫 등판.
110구 16삼진 1볼넷 0피안타 0실점.
노히트 노런 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