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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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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부를 만들 때가 왔음을 직감한 나는 이사장을 찾아 나섰다. 사립 학교인데다 돈 관련된 모든 일은 학교의 소유주인 그를 통해야 하기 때문이다. 방학 중이라도 학교에 출근하는 일이 많다는 그를 찾아 문혁고에 방문했지만.

"예약이 꽉 찼다고요?"

"네, 당분간은 기약이 없습니다"

이사장을 만나는 건 아무래도 쉽지 않았다.

심지어 그냥 비서 선에서 자르려는 뉘앙스가 팍팍 풍겼다. 한 학교의 일인자인 만큼 학생의 신분으로 대뜸 만나기는 어려운 일인 듯 했다.

‘정문이 막히면 개구멍으로 들어가면 그만이지.

그래서 나는 다른 방법을 택했다.

"안녕하십니까. 이사장님...!"

이사장과의 만남을 문의할 때 슬쩍 훔쳐본 비서의 문서에서 다른 고위급 인사들과 골프 모임을 가는 시간대를 노려 나타난 것이다.

푸짐한 뱃살과 중앙만 벗겨진 그의 머리를 가진 이사장 얼굴은 갑자기 튀어나온 학생에 당황한 낌새였다.

“이사장님, 어떻게 이런 우연이!”

“오…, 학생이 여긴 어떻게 알고…. 크흠, 아무튼 반갑구먼."

“마침 간절하게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었는데, 잠깐 이야기 가능하실까요?"

"하하, 내가 지금은 좀 바빠서...."

"그럼 제가 편하신 시간에 꼭 찾아뵙고 싶습니다. 괜찮겠습니까!"

"크흠….“

“괜!찮!겠습니까…!”

“그래, 그렇게 하도록 하게..."

그냥 이 상황을 모면하려는 듯 내 눈을 피하며 둘러대는 이사장. 하지만 나는 저 말만 듣고 넘어갈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

"아이고, 유지웅 재단장님. 선한 영향력에 항상 감화되고 있습니다."

"박규태 회장님 아니십니까? 상장 축하드립니다. 거기에 회장님 역할이 컸다고 많이 들었습니다."

슬쩍 훔쳐봤던 일정표에는 동행하는 유력자들의 이름 또한 쓰여있었는데, 철저한 구글링을 통한 사전 조사로 옆에 있던 사람들을 죄다 구워삶아 버렸다.

각자 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다들 인정 욕구가 있다. 공부에 손도 안 댈 거 같은 양아치 같은 놈조차 자길 알아보고 똥꼬를 핥아준다는 것은 엄청난 쾌감. 죄다 광대가 승천하는 눈치다.

"허허, 자네 학교에 이렇게 훌륭한 학생이 있을 줄이야."

“생긴 걸 보고 오해할 뻔했지만, 앞으로 크게 될 친구야.”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사장 이 친구가 그리 꽉 막힌 친구는 아니니 잘 들어줄걸세."

이사장 빼고 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그는 더 이상 뺄 수 없는 분위기로 몰렸다.

“끙…….”

그 덕분일까.

대략 이틀 뒤, 일사천리로 그와의 개인 면담 일정을 잡을 수 있었다. 나는 이번에야말로 그의 개인 사무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후, 그래. 금성묵 군. 골프 모임에까지 끼어들어서 내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가?”

"그건 어디까지나 우연..."

"나를 바보로 아는 건가? 본론이나 이야기하게."

"…하하."

아무래도 호락호락한 사람은 아닌 모양이다.

나는 표정을 굳히고는 바로 본론을 말했다.

“문혁고에 야구부를 만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이사장의 넓은 이마가 찌푸려졌다.

“이미 야구 동아리가 있지 않은가?”

“제가 말한 건 정식 야구부입니다. 학교의 재정적인 지원을 받고, 전국 대회 출전을 노리는 정식 야구부.”

“………….”

소파를 짚고 일어나 사무실을 천천히 걷기 시작하는 이사장.

“야구, 야구…. 좋지, 부정할 수 없는 세계 최고의 인기 스포츠 아닌가?”

“근데 말이지, 그게 그렇게 쉬운 문제는 아니야. 자네도 전학 오기 전 야구부 소속이었으니 대충 이쪽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잘 알지 않나?”

“…예.”

이사장이 하는 말의 뜻은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이 세계관에서 원탑 스포츠인 야구지만, 동아리 수준이 아닌 프로 지망 야구부는 엄청난 돈이 들어간다.

내가 그를 찾아온 건 전폭적인 지원을 바라기 때문. 좋은 성적을 낸다면야 투자금액 이상을 뽑아먹지만, 그렇지 않다면 상당한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그런 투자를 난 바라고 온 것이다.

“반드시 좋은 성적을 내겠습니다.”

“어떻게? 기록을 보니 자네는 꽤 심한 부상을 당해서 야구부도 없는 우리 학교로 왔다고 들었는데?”

“완치했습니다. 전혀 문제없습니다.”

“그래 뭐, 그렇다 치고. 야구는 혼자 하는 게 아니지 않나?”

“전국을 노릴만한 동료를 데려오겠습니다.”

이 학교에서도 어느 정도 모아보고- 라는 말 역시 살짝 덧붙였다.

“뭐, 전국을 노려? 크하핫...!”

그에 크게 웃기 시작하는 이사장.

아마 세상 물정 모르는 고등학생의 철없는 망상으로 들리는 모양이다.

“자네 인맥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겠지만, 야구를 잘 모르는 내가 인정할 정도의 대단한 유망주를 데려오는 것이 정말 가능한 건가?”

“인정할 정도의 기준이 뭡니까?”

“음, 어디 보자…. 저게 있었군!”

책상 위에 놓여있던 한 잡지를 집어 들더니 침을 발라가며 페이지를 넘기는 이사장. 곧 한 페이지를 펼쳐 내게 넘겨주었다.

“얼마 전 발간된 고교야구 잡지이네. 그리고 이 페이지에 담긴 건 고교 유망주 랭킹 20위까지."

"20위…."

"딱 이 정도가 내가 인정할 수 있는 선수의 마지노선이네. 어떤가? 데려올 수 있겠나?"

“………그건.”

말도 안 되는 조건이다. 20위면 사실상 1라운더급 선수라는 소리.

하지만 저 랭킹에는 1학년부터 3학년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일반적인 한 해의 1라운드보다 컷이 훨씬 높다는 소리. 하지만 그의 태도를 보아하니 여기까지가 타협 가능한 마지막 선으로 보였다.

“그래, 당연히 안 되겠지. 그러니 얼른 돌아가서….”

“좋습니다. 데려와 보죠.”

"뭣...?"

내가 받아들일지 몰랐는지 미간을 찌푸리는 이사장. 그는 이내 너털웃음을 지으며 책상 의자에 도로 앉았다.

“허허, 좋네. 젊은 시절에 달콤한 꿈을 꾸어보는 것도 하나의 경험이지. 이야기는 끝난 것 같으니 가보게."

철컥!

그렇게 이사장과의 협상은 끝났다.

그리고 난 밖으로 나와서는 상황이 영 골치 아파졌음을 새삼 깨달았다.

​​“…니미, 말이야 쉽지. 얘네들을 어떻게 빼 와?”

20위권 선수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하나같이 눈이 휘둥그레지는 툴을 가진 실력자들이 분포해있었다.

스탯에 S등급 없는 놈을 찾아볼 수가 없다.

포텐셜만 S등급이 많고 능력치 대부분이 C와 B를 왔다 갔다 하는 나보다 훨씬 더 잘하는 선수들이라 봐야 했다.

'쓰읍, 1위부터 10위까지는 다 글러 먹었고...'

다 초명문 고등학교의 핵심 선수들이다. 11위부터 20위까지는 그나마 비벼볼 구석은 있는 선수들이 보였지만, 다 그럴듯한 전력은 갖춰놓고 어필해야 영입이 가능한 선수들이었다.

내 눈에 개쩌는 유망주는 다른 학교에서도 이미 다 알고 채간 지 오래. 스카우터들 눈이 그렇게 옹이구멍이 아니다.

"후…."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보이는 인물은 딱 하나.

‘유망주 랭킹 12위, 석운강.

심지어 야수 중 제일 중요한 포지션인 포수.

그는 아무런 고등학교에도 속하지 않고 있다.

그의 신분은 승려.

소림사 한국 지부 소속이다.

나이는 아직 18세이기에 고등학교에 갈 나이지만 여전히 절에서 수행을 하고 있기에 정식 경기 기록은 따로 없다.

국가 대항전에 홍콩 국가대표로 출전했던 게 유일한 공식전 출장임에도 12위에 오를 만큼 엄청난 능력치를 지닌 선수다.

정식 경기에 뛰었다면 유망주 랭킹이 5위권 이상 갔을 거란 이야기는 거의 정설 취급 받고 있다. 아무리 약체고일지라도 얘 하나만 영입하면 전국을 노려볼 만하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로 대단한 포수다.

그래서 스님이 왜 야구를 하고 있냐고?

‘소림사 설정이 진짜 골때리니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여기는 기본적으로 야구에 미친 세계관이다.

그 마수는 무술을 수련하는 것으로 유명한 소림사의 승려들 역시 피해 가지 못했다.

[소림사는 야구를 통하여 참된 불업의 수행을 목표로 한다.]

[타격이란 공(空)과 연기(緣起)의 실천. 공을 맞히려면 집착을 비우고(空) 방망이와 자신이 하나임을(緣起) 느껴야 하니라.]

[투구란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의 실천. 투수가 이미 손에서 던진 공의 결과는 오롯이 타자에게 달려있는즉, 자신을 내어주는 마음으로 공을 던지고 그 결과를 온전히 받아들여야 할지어다.]

그러한 연유로, 소림사를 찾아가면 무술 훈련 대신 야구를 하는 승려를 볼 수 있다고 한다.

‘타국에 지부를 낸 건 한국이 유일하다 그랬나.

소림사는 중화권의 자부심. 같은 중화권에만 지부를 내지만 야구 선진국인 한국과의 교류를 위해 예외적으로 허용했다고.

스님이라고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 그 훈련이 상당히 고되어 상당한 실력자들을 많이 배출한다고 한다. 다만 본업이 승려인데다 돈 욕심 없는 사람이 많아 프로가 되는 사람은 거의 없는 편이라고.

석운강은 그러한 소림사 속에서도 특출날 정도로 빛나는 인재. 그의 영입 조건은 사실 간단했다.

"제가 가히 받아내지 못할 정도로 대단한 공, 그걸 보고 싶습니다."

투수 대 포수로서 30개의 공을 던져서, 그가 하나라도 받아내지 못하면 그걸로 조건 달성. 그를 자기 팀에 데려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얼핏 듣기엔 너무도 쉬워 보이는 조건에 전국 각지의 고교 에이스들이 ‘나는 다르다’라며 소림사를 찾아왔지만 전부 개같이 실패하고 돌아갔다.

'…문제는 나도 뽀록으로 한 번인가 성공한 게 끝인데.'

그냥 던지는 족족 턱턱 잡아낸다.

심지어 애매한 바운드볼이나 하이볼도 싸그리 잡아낸다.

그냥 위력으로 뚫으려면 직구 스탯이나 변화구 스탯이 엄청나야 할 텐데, 고교 파트에서 그 정도로 성장하긴 어려웠다.

'조금이라도 영입 가능성 있는 건 얘뿐이란 게 문제다 문제….'

석운강 영입이 ‘매우 매우 어려움’ 이라면 다른 선수들은 ‘불가능’이다.

다른 선택지 자체가 없었다.

“후우…….”

복잡한 마음을 조금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지금 이 착잡함을 진정시켜줄 수 있는 건 3주간 매일같이 찾았던 덕수 투구장 뿐이었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홀홀~~”

이제 커브나 슬라이더 스텟은 훈련으로 연습에서 올릴 수 있는 스텟인 B등급까지 다 올려뒀으니 안 와도 그만이지만, 투구라는 게 매일 해줘야 감각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아직 이 몸에 내 투구폼을 조정시키는 과정이 더 필요하기도 했고.

철썩-

‘직구 승부는 무리. 구속이 올라오려면 꽤 시간이 걸려.

아직 최대 구속이 140조차 나오지 않는다.

그만큼 금성묵이 투음절맥에 걸려 버린 시간이 뼈아프다.

손에서 채어진 커브가 연이어 그물망을 타고 빨려 들어갔다.

얼마 전의 처참한 변화구 각을 봤던 사람이라면 정말 장족의 발전이라고 박수를 쳐 주겠지만, 도무지 성에 차지가 않았다.

"이 정도 각으로는 안 될 거 같은데, 슬라이더도 마찬가지고. 이 정도로는 그 녀석에게-."

"암, 그럼. 안 되고말고."

"........!!"

깜짝이야!

갑자기 덕수 할배가 튀어나와서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아니, 아니지. 그것보다 중요한 사실이 있다.

"뭐야, 할아버지가 말한 거에요?“

"이놈의 썩을 자식이, 사람을 무슨 병신 취급하고 있어!"

길길이 날뛰려던 할배는-

“헛…? 끄어응….”

곧 허리 통증이 도졌는지 다시 쭈그러들었다. 그리고는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뭔 사정인진 몰겄지만, 한참~ 멀었구먼. 그런 허접한 변화구로 뭘 하겠다고."

"커흠..."

나의 부족함은 나 자신부터가 제일 잘 알고 있으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B등급 변화구 정도론 기라성 같은 리그의 S급 타자들까지 잡아낼 순 없다.

내가 현생에서 대단한 투수였고 뭐고, 지금은 다 의미가 없는 게 현실이었다.

"자, 잡아봐."

"예?"

손을 내밀자 야구공을 내 손에 쥐이는 덕수 할배. 내 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어느덧 하나의 그립을 완성했다.

“음, 딱이고먼.”

"이 그립은..."

"나한테 변화구 하나만 배워보지?"

"..............!"

처음 겪는 상황에 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원래 덕수 할배는 그냥 무기력한 치매 환자로서 게임에 등장한 게 전부였을 텐데 이렇게 코칭을 자처한다고?

'...나쁜 조건은 아니야.'

애초에 히든 피스 그 자체인 인물이다.

연습하는 피쳐에게 훈련 효과를 높일만한 최적의 볼들을 꼬박꼬박 골라내서 전해줄 정도면, 야구 내력이 상당할게 분명했다.

이 게임은 혼자 훈련할 때보다 코칭을 받을 때 그 숙련도가 더 많이 오르는 경우가 많으니 한 번 코칭을 받아봐서 나쁠 건 없다.

'실력 없는 코치에게 받으면 오히려 떨어지니까 잘 골라야 하기는 하지만.'

그걸 골라낼 정도의 능력이 내게 없지는 않으니까.

결심을 내린 나는 꾸벅 허리를 숙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할아버지."

"홀홀, 오냐."

그 와중에 갑자기 까먹고 있던 한 기능이 떠올랐다.

‘나, 상태창 볼 수 있잖아?

야구에 관련하여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대부분의 인물은 상태창 조회가 가능하다. 그렇다면 덕수 할배의 스텟을 본다면 그가 얼마나 도움이 될지 얼추 가늠되지 않을까?

나는 생각을 마치기 무섭게 할배에게 물었다.

상태창을 보려면 이름을 알아야 했으니까.

"계속 할아버지라고 부르기도 뭐한데. 혹시 할아버지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덕수, 알잖여.”

“에이, 성도 좀 알려줘요. 할아버지.”

“…………………"

고민이 깊어 보이는 할아버지.

"마씨여, 마덕수."

띠링!

[마덕수 님의 스테이터스를 열람할 수 있습니다. 열람하시겠습니까?]

'마덕수...?'

묘하게 미국의 전설적인 선수와 닮은 듯한 이름이다.

그리고 그건,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니었다.

[레전드 선수를 발견했습니다.]

[은퇴 선수입니다. 전성기 5년을 기준으로 스테이터스를 제공합니다.]

이름: 마덕수

국적: 대한민국

나이: 73

소속팀: 前 부산 컵스

개화 키워드: 제구의 마법사(EX), 프로페서(S+), 마스터(S+)

체력: S+

구속: A

컨트롤: EX

구위: S+

변화구: EX

"…우효."

그가 B등급 변화구를 ‘따위’라고 할 수 있는 이유. 그 높은 자존감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심 봤다.

이건 진짜 대박이다.

힘을 숨긴 전설급 투수였던 덕수 할배에게 1:1 밀착 특훈을 받은 나는 자신만만하게 소림사 한국지부를 찾았다.

"시펄, 절 아니랄까 봐 무슨 첩첩산중에 있네."

그렇게 한참을 올라간 나의 위에, 한 거대한 현판이 모습을 드러냈다.

[ 소림사(少林寺) ]

그곳에 빗자루질하던 한 승려가 눈에 띄었는데, 내 외관을 쓱 보더니 바로 내 목적을 알아차렸다.

“운강스님을 만나러 오신 모양이군요. 이 계단 위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아니, 잠깐."

지금까지 올라온 건 애교라고 말하는 듯한, 엄청난 숫자의 계단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심지어 최상단부는 구름에 휩싸여 그 끝이 가히 보이지도 않았다.

“여기가 소림사 아니었어요? 저 위까지 가라고요?”

“애초에 이곳은 입구에 불과합니다. 소림사 본관 건물은 전부 이 위에 있습니다. 아미타불.”

아득하리만치 먼, 구름에 뒤덮인 풍경 속에서 청명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댕-

대앵-

"이건, 종소리…?"

“이 청량하고 군더더기 없는 소리를 미루어 보아, 운강 스님이 타격 연습을 하는 소리 같습니다.”

"타격 연습…? 종소리가 나는데요?”

"천을 휘감은 방망이로 종을 쳐 울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운강 스님은 타고난 장사이기에 이 먼 거리까지 종소리를 울리실 수 있지요."

“………….”

진짜 수련 방법까지 정신이 나갔구나.

게임 속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새로운 디테일의 나사 빠짐이 내가 더욱더 다른 세계에 와있음을 실감케 했다.

‘뭐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이번이 처음이다.

게임을 통해 미리 알고 있던 인물을 만나는 것 말이다.

지금 만나러 간다, 석운강!

그렇게 다짐한 나는 다시 한번 까마득한 계단을 쳐다보았다.

“………….”

아니, 이건 진짜 선 넘는데.

“에스컬레이터는 없죠?”

“…저희도 바라고는 있습니다만, 안 된답니다.”

“거 고생이 많으시네.”

“아미타불.”

스님과 깊은 공감대를 쌓은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거 올라가서 공 던지기도 전에 하체 다 털리는 거 아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