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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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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우와.”

길가의 남자들에게는 시선을.

“저게 뭐가 이쁘다고.”

“그러니까, 딱 봐도 다 고쳤구만.”

같은 여성들에게는 시기를 한 몸에 받는 여자,

도도연이 약속 장소로 향하고 있다.

그것도 한껏 꾸민 모습으로 말이다.

흰색 니트 상의에 검은색 치마를 입고 나온 그녀.

물론 평소에 수수하게 다니느라 꾸미는 법을 잘 모르는 도연이었지만, 오늘은 나름대로 노력한 그녀였다.

‘도진이의 동료한테 추레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으니까….

나름 꾸민데 다 이유가 있었던 그녀. 평소에 간단한 차림으로 나와도 남자가 꼬이는데, 오늘 같은 날에 안 꼬이는 것이 이상한 상황이다.

“와, 진짜 내 스타일인데. 나 번호 물어보고 온다?”

“저건 너무 급이 높은데 괜찮겠어?”

“용기 있는 자가 미녀를 얻는다는 말 모르냐? 지켜보기나 해, 임마.”

그렇게 한 남자가 도연의 뒤쪽으로 슬금슬금 다가가던 상황.

곧 그녀가 반가운 얼굴을 보고는 쭐레쭐레 달려갔다.

“성묵아!”

“아, 도연 씨.”

그렇게 등장한 금성묵의 모습.

엄청난 거구에 티셔츠가 터질 것 같은 근육, 금발 머리에 태닝한 피부까지. 도도연에게 다가오는 그 어떤 남자든 찢어발겨 버릴 것 같은 박력을 뽐내는 금성묵이다.

“헙…!”

그녀의 뒤를 쫓던 남자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을 느끼며 발을 떼지 못했다.

“이 카페 맞지? 들어가자.”

그렇게 사이좋게 카페를 들어가는 둘.

오늘도 본인도 모르는 사이, 많은 남자에게 힘의 차이를 느끼게 만든 성묵이었다.

“의외네….”

상상도 못 했다는 눈으로 날 바라보는 도도연.

머쓱해진 나는 빨대를 입에서 떼고는 물었다.

“제가 딸기 스무디 먹는 게 그렇게 의욉니까.”

“후훗, 아냐. 오히려 답지 않아서 좋네.”

싱긋 웃고는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그녀.

내가 그녀를 찾은 이유는 간단했다. 현재 야구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야기를 나누고, 필요한 부분은 도움을 받기 위해서다.

몇 모금을 들이킨 뒤 우리들은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레포트는 잘 전달해드렸어?”

“네, 읽어보시고는 입이 귀에 걸리시던데요. 지금 개인 훈련 자체가 누나 레포트가 기준이에요.”

“아, 정말…?”

자기가 만든 레포트가 큰 도움이 됐다 하니 기뻐하는 그녀. 성취욕이 상당한 그녀이기에 이런 말에 크게 기뻐하곤 했다.

“연습 경기를 추진 중이라 들었는데, 잘 되어가?”

“아뇨, 좀처럼 잘 안되네요. 후보군에 있던 학교들에는 전부 거절당했어요.”

“저런….”

문혁고와의 경기 뒤에 지수용을 빼앗기고, 에이스가 맛이 가버린 청현고 다. 김대엽 감독은 머리끝까지 화가 나선 문혁고에 대해 온갖 안 좋은 소문을 퍼트렸다.

‘금성묵은 스테로이드를 맞은 약쟁이이며, 문혁고는 선수를 빼가기 위해 돈이나 뿌려대며 더러운 술수를 쓰는 학교다!

그 소문 탓에 팔자에도 없는 도핑 테스트까지 받고 나왔다. 물론 결과는 당연히 ‘이상 없음’.

‘…솔직히 의심 받을 만 하긴 했지.

경기 중에 갑자기 하반신이 불룩해진 놈이 구속이 10km나 뻥튀기되면, 나 같아도 ‘저 새끼 약 한 거 아니야?’하고 의심할 거다.

그리고 이 부분이 경기를 잡는 데 가장 치명적이었다.

선수를 빼가기 위해 더러운 술수를 쓴다?

‘쩝, 구구절절 팩트잖아.

아직 선수 한명밖에 못 빼먹었는데 벌써 속셈이 들통나다니. 저 소문이 꽤 효과가 컸는지, 준척급 내야수를 가지고 있는 팀들과 연습 경기를 잡으려 했던 게 전부 빠꾸를 먹었다. 참으로 한숨이 나오는 상황이 아닐 수가 없다.

그래도 아예 못 잡은 건 아니다.

우리가 청현고를 잡은 것에 흥미를 가진 팀이 몇몇 있었다. 선수 영입은 못 할지도 모르지만, 경험치를 쌓을 스파링 파트너를 찾았다는 데에는 의미가 있었다.

“연습이 잡힌 학교들도 도연 씨한테 분석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굳이 도도연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쉽게 이길 수 있는 학교들이긴 하다. 어디까지나 팀 동료들에게 미리 인식시키고 싶었다. 현대 야구에서 데이터가 갖는 의미와 효용성을.

저번 경기에도 써먹은 바 있는 도도연의 ‘승률 예측’. 그녀의 귀신 들린 상황별 승률 예측은 필시 도움이 될 거다.

게임 속에서도 주인공이란 변수가 개입하지 않는 이상, 그녀의 예측은 99% 맞아떨어진다는 말까지 있으니까.

“응, 물론이지. 자료 다 준비해둘게.”

방긋 웃으며 도움을 약속하는 도도연.

그 외에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아직 그녀는 도도진이 걱정되는 모양이다.

“…그, 도진이가 어릴 때 상처가 조금 입었거든. 그래서 낯을 가리는 편이라 걱정이야.”

“걱정 마세요, 녀석 나름대로 잘 지내고 있으니까.”

물론 이 사람 저 사람과 다 잘 지내고 있다면 거짓말이다.

그래도 키스톤인 최아담이랑은 매일 호흡을 맞추며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는 것 같고, 핫산이랑도 자주 뭔가 이야기 하는 것 같다.

무엇보다 나 같은 양아치한테도 아무런 어색함 없이 다가와선 이런 말 저런 말 다 하는 게 그 녀석이다. 아마 후반기쯤 가면 낯가림도 없어지고 팀에 완전히 녹아있지 않을까.

“…다행이네.”

내 말에 다소 안심이 된 표정을 짓는 그녀.

불안감은 해소되었는지 곧 다른 주제로 전환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신생이라 이것저것 새로 갖춰야 할 게 많았을 텐데, 필요한 건 다 갖춰졌어?”

“예, 전용 버스도 최고급이고, 부임하신 투수 코치님도 훌륭해요. 최근에 전속 영양사도 붙었고요.”

다른 건 모르겠고 영양사 고용 덕에 배곯을 일이 없어진 게 최고였다. 이제 올리비아 등골이나 빼먹지 않아도 배를 채울 수 있다.

‘그러고 보니 내일 만나기로 했지?

연습 경기 전날에 잠깐 만나서 이야기하기로 했다.

이번에야말로 서류를 돌려주면서 밥 셔틀에서 졸업시킬 생각이다.

“훈련 장비는 괜찮아? 가격이 비싼 편이라 신생팀 입장에선 제일 부담 될 텐데.”

“그게 문제가 좀 있어요.”

“문제?”

“다른 장비들은 다 있거든요. 피칭 머신도 최신형이고.”

“문제?”

“전문 측정 장비를 살 예산이 없어요.”

“설마….”

“랩소도, 트랙맨 이 두 개요.”

“…!”

깜짝 놀라는 도도연.

랩소도, 트랙맨.

이 장비들의 효용을 자세히 설명하기에는 한화로는 모자라다.

간단히 이야기하면 과학기술을 본격적으로 도입 중인 현대 야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비다.

투수에게는 회전수, 무브먼트, 투구폼 등을 조정할 때 쓰이고, 타자에겐 타구 속도, 발사각, 스윙 메커니즘 등을 조정할 때 쓰이는 등 그 중요도가 상당히 높은 장비라 할 수 있겠다.

현실 세계에선 프로 구단에나 가지고 있을 법한 장비지만, 여기는 야구에 미친 세계. 한국의 어지간한 고등학교는 다 가지고 있었다. 전국을 노리는 학교인가 아닌가는 이 두 장비를 가지고 있는가로 판가름 난다는 말도 있다고.

“으으음….”

그녀는 다소 어두워진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그 두 장비가 없는 건 좋지 않은데. 전면적으로 지원해주시는 거 아니었어?”

“워낙에 돈 들어가는 곳이 많은가 봐요. 그것까지는 도무지 안 되겠다고 하네요.”

처음에는 이사장이 엄살을 부린다 생각했다.

그래서 오랜만에 게이 야스 비디오를 꺼내 보았지만….

‘진짜, 진짜로 무리네…!!

3~4개월 정도 뒤에 하나는 마련해줄 수 있지만, 두 개는 절대 무리라는 게 이사장의 입장.

그 절박한 표정을 보아하니 거짓말은 아닌 것 같다. 사실 지금까지 해준 것만으로도 계산기를 두들겨보면 돈깨나 쓰기도 했고.

“그 두 장비가 얼마 정도 하길래?”

“후, 둘이 합쳐서 얼추 3~4억 정도는 하는가 봐요.”

“3~4억……?!”

아직 알바하며 등록금이나 겨우 갚는 중인 그녀 입장에선 입이 떡 벌어지는 액수다. 나 역시 그 금액을 처음 보자마자 이마를 탁 짚었었다.

‘아니, 왜 현실보다 몇 배는 비싼 건데…?

게임 속이 아닌 현실이었다면 둘이 합쳐서 싸게는 5천, 비싸 봐야 1억 내외면 구할 수 있을 테지만 이곳은 야구에 미친 세계관 아닌가.

공급은 한정되어 있는데 선진 야구를 동경하는 나라는 수백개나 되다 보니, 미친 듯이 장비가 팔려나가 값이 몇 배로 뛰어버렸다. 그 불똥이 지금 여기까지 튄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때워야죠, 뭐.”

장비를 갖춘 팀과 비교했을 때 미세 조정에 있어 불리한 것은 어쩔 수 없다. 나 역시도 쏠쏠하게 써먹는 장비기도 하고.

그래도 돈이 없다는 데 뭐 어떻게 하겠나.

당분간은 이래저래 감으로 하는 수밖에.

“대여할만한 곳은 없을까?”

“알아봤는데, 국가 지원 사업도 이미 신청 끝났더라고요. 작년 말에는 지원했어야 하나 봐요.”

“으음…….”

일개 고등학생과 대학생이 당장 낼 수 있는 방안이라 해봤자 거기서 거기. 우리의 대화는 그렇게 근심을 가득 남긴 채 끝이 났다.

“………후.”

성묵과 헤어져 거리를 걷는 도연.

그녀는 지금 머릿속은 굉장히 복잡했다.

“장비인가….”

도연은 진심으로 성묵을 도와주고 싶다.

이제는 도진 역시 문혁고 소속이기에 남의 이야기가 아니기도 했고, 나름대로 진 빚을 갚고 싶은 마음도 컸다.

하지만 고가의 장비를 마련하는 건 그녀의 능력 바깥의 일.

평범한 대학생이 3, 4억을 어떻게 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때, 머릿속에 어떤 방법이 스쳐 지나갔다.

'그 인간이라면…?'

어릴 적 아픈 모친과 어린 남매를 버리고 집을 나간 뒤, 야구 재벌가에 새장가를 든 그녀의 친부.

현재 한국 야구계 정점의 위치에 앉아있는 그 남자라면, 그런 두 장비 따위 마련해주는 것 따위는 일도 아니리라. 손가락 하나 까딱만 해도 이름 모를 구단에서 중고품이라도 얻어다 줄 힘을 가지고 있는 게 그녀의 친부다.

하지만 도저히 그에게 연락할 수는 없었다.

이미 그녀의 친부는 여러 차례 두 남매를 찾아왔다.

‘도연아, 내가 잘못했다. 나를 용서해주겠니?

그럴 때마다 도연의 답은 정해져 있다.

당신이 염치가 있느냐.

무슨 낯짝으로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났냐.

어머니가 중병에 시달릴 때 당신은 어디에 있었냐고….

도진이 다소 내향적인 성격이 된 것 역시 친부의 잠적과 어머니의 죽음의 탓이 컸다.

가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그 인간에게 돈이 필요해 연락한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볼 면목이 없다. 그것만큼은 피하고 싶은 마음이 큰 도연이다.

“그치만, 하아….”

문혁고의 전력을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이 뻔히 있는데, 과거에 얽매여 모른 척하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일까.

과거의 일과 미래 사이에서 머리가 복잡해진 그녀.

근심 가득한 채 걷던 그녀의 눈에 곧 어떤 간판이 눈에 띄었다.

[확률을 지배하는 자, 돈을 지배하리라.]

[스포츠 토토!]

“…!”

그녀의 눈길이 번쩍 뜨였다.

홀린 듯 설명을 읽는 그녀.

“…경기 결과를 전부 맞히면 상금 지급?”

토토의 룰을 전부 읽은 도도연.

그녀는 매우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고작 승패 맞추고, 점수 차 맞추는 걸로 이렇게 큰돈을 줘…?”

경기 결과 예측에 틀려본 경험이 거의 없는 도연,

그녀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토토 종이를 채워 넣었다.

“음, 이 정도면 되겠다.”

적중 시 2만배,

미친 배당이 적힌 종이가 완성됐다.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 환한 표정으로 가게를 나섰다.

십수 년간 '토토 여신'으로 불리며 회자되는 전설적인 인물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며칠 뒤,

나는 야구장에 갔을 때 흥분해서 방방 뛰는 명신우 감독을 만날 수 있었다.

“성묵아, 성묵아. 대박이다……!!”

“예예, 무슨 일인데요?”

시답잖은 일이라고 생각해서 심드렁하게 답했다.

그런데, 나 역시 곧 명신우 감독과 같은 상태가 되었다.

“누가 장비 기증했어! 그것도 랩소도랑 트랙맨, 둘 다…!!”

“뭐, 뭐라고요?”

나는 들고 있던 가방을 던지고는 훈련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곳에는 놓여 있었다.

새것 냄새를 풀풀 풍기는 야한 장비들이 말이다.

“이런 미친…!”

“아아, 하늘이 문혁고를 돕는구나…!”

나는 체면을 잊은 채 명 감독과 같이 방방 뛰었다.

손 놓고 포기하고 있었는데, 이게 손에 들어온다고?

기쁨을 만끽하고 잠시 진정이 되자, 나는 장비의 출처를 명 감독에게 물었다.

“이야, 이사장님이 어디서 받아왔나 보네. 역시 능력은 좋으시다니까.”

“잉? 성묵이 너가 물어온 거 아니었어? 이사장님은 금시초문이라던데.”

“예?”

나는 얼빠진 소리를 내고 말았다.

이사장이 가져온 게 아니라면 대체 어디서?

“익명의 후원자님이라는데, 정체를 밝히는 걸 꺼리신다더라.”

“으음….”

딱히 짚이는 게 없었다.

애초에 이 이야기를 한 사람이라곤 눈앞의 명 감독, 이사장, 도도연 셋뿐이다.

‘설마 도도연…?

그럴 리가 없지.

나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알바하며 겨우 둘이 먹고사는 집에서 저런 걸 어떻게 마련한단 말인가.

유일한 가능성이 있기는 하다.

내 게임 채팅창에서 항상 올라오던 '그 방법'이 실현되면 가능성이야 있을지도 모른다.

‘도도연 그냥 프런트 일 때려치우고, 그 경기 예측 실력으로 토토하면 재벌 되는 거 아님?

ㄴ ㅋㅋㅋㅋㅋㅋ 신박한데?

ㄴ 히로인 1티어에서 0티어로 급부상 ㄷㄷ

ㄴ 응애 도연 눈나, 절 키워주세요….

‘에이 설마.

도도연 같이 착실한 엘리트가 스포츠 토토?

금성묵이 노인정 가서 봉사하는 짓거리만큼이나 안 어울리는 짓이다.

‘아무튼 익명의 후원자님, 사랑합니다…!

직접 방문해 주신다면 그랜절을 박을 자신도 있었다.

한동안 훈련장 안에는 명신우 감독과 내 웃음소리가 멈추지 않고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