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861 lines
19 KiB
Markdown
861 lines
19 KiB
Markdown
|
||
내 상태가 투음절맥(投陰絕脈)임을 깨닫고 갑자기 실소를 터트리자, 도도진은 날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
||
|
||
|
||
|
||
“형, 괜찮아요?”
|
||
|
||
|
||
|
||
“아아, 괜찮아. 부상이 생각보다 훨씬 괜찮아져서 말이야. 원래는 아예 못 던질 정도였거든.”
|
||
|
||
|
||
|
||
“아, 그런 거에요…?”
|
||
|
||
|
||
|
||
녀석에게 대충 내 히스토리를 설명해줬다. 1학년 말에 부상을 당해 장기간 재활을 하다 야구부가 없는 현재의 학교로 전학 왔다는 대략적인 이야기를.
|
||
|
||
|
||
|
||
내 이야기에 그러면 그럴 수 있겠다며 납득하는 듯한 도도진. 녀석은 내가 명문고 출신 투수였다는 것에 조금은 놀란듯했다.
|
||
|
||
|
||
|
||
아무튼 상태는 체크했으니, 이제는 치료받으러 갈 차례.
|
||
|
||
|
||
|
||
‘그 전에, 호감작 좀 해두고 갈까.’
|
||
|
||
|
||
|
||
“야, 도진아. 나만 연습 도움받기가 좀 그런데 온 김에 토스 배팅 정도는 하고 가.”
|
||
|
||
|
||
|
||
“저야 좋긴 한데. 그래도 돼요?”
|
||
|
||
|
||
|
||
“한 번 봐줄게. 쳐봐.”
|
||
|
||
|
||
|
||
피칭 센터마다 차이가 있는 듯했지만 여기는 가벼운 타격 연습 정도는 허락하는 듯했다.
|
||
|
||
|
||
|
||
따악!
|
||
|
||
|
||
|
||
내가 옆에서 토스를 올려주면 도도진의 배트가 돌아간다. 약 10개 정도를 올려준 뒤 나는 꽤 놀랐다.
|
||
|
||
|
||
|
||
‘뭐야, 따로 흠잡을 데가 없는데..?’
|
||
|
||
|
||
|
||
타격폼 하나만큼은 웬만한 프로 선수 뺨치게 완성도가 높았다. 나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물었다.
|
||
|
||
|
||
|
||
“폼 좋은데? 너희 팀 코치가 봐줬어?”
|
||
|
||
|
||
|
||
“아뇨, 다른 사람이 봐줬어요. 저희 팀 타격 코치는 워낙 무능하거든요.”
|
||
|
||
|
||
|
||
“무능이라, 어떻게 무능한데?”
|
||
|
||
|
||
|
||
“무조건 어퍼스윙! 발사각 올려서 쳐! 이런 구닥다리 이론 신봉자예요.”
|
||
|
||
|
||
|
||
“거 최악이구만. 그럼 봐줬다는 사람은….”
|
||
|
||
|
||
|
||
“…아, 저희 누나가 봐줬어요.”
|
||
|
||
|
||
|
||
다소 쑥스러워하는 눈치다. 하긴, 고등학생쯤 되어서 코치 말 무시하고 배웠단 사람이 친누나면 좀 말하기 그럴 수도 있겠다.
|
||
|
||
|
||
|
||
“누나 분 능력이 대단하신데.”
|
||
|
||
|
||
|
||
이것만큼은 점수 따려고 하는 아부 따위가 아니다. 앞과 뒤의 무게 배분, 힙 힌지, 스윙 궤적 등 다양한 부분들이 흠잡을 데 없이 깔끔한 동작이었다.
|
||
|
||
분석의 천재인 만큼 최신 야구 이론도 꿰고 있는 그녀이기에 도도진을 이렇게 교정해준 것도 이상한 사실은 아니긴 하다.
|
||
|
||
|
||
|
||
“하하, 그렇죠…?”
|
||
|
||
|
||
|
||
“그래서 도진이 너, 작년 고교 리그 성적 어떻게 돼?”
|
||
|
||
|
||
|
||
“윽..”
|
||
|
||
|
||
|
||
헤실거리며 좋아하다가 정곡을 찔린 듯한 녀석.
|
||
|
||
|
||
|
||
“아… 타율은 2할 3푼 정도에, 안타 13개 삼진 7개요…”
|
||
|
||
|
||
|
||
가진 재능에 비해 상당히 아쉬운 성적이다. 저 성적에 기회를 꽤나 받은 것도 도진이 녀석이 수비나 주루 능력은 괜찮고, 팀이 강하지 않은 덕분일 거다.
|
||
|
||
|
||
|
||
그나마 삼진이 적고 볼삼비가 좋은 건 긍정적이지만, 그건 그다지 임팩트를 남기기가 쉽지 않다. 아마 이대로 가만히 두면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사라지는 선수 중 하나가 될 확률이 농후하다.
|
||
|
||
|
||
|
||
‘폼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면, 으음….’
|
||
|
||
|
||
|
||
여러 가능성을 떠올려봤을 때, 얼추 짐작이 가는 부분이 있었다.
|
||
|
||
|
||
|
||
“…테이크백.”
|
||
|
||
|
||
|
||
“네..?”
|
||
|
||
|
||
|
||
“테이크백을 좀 더 간결하게 줄여봐.”
|
||
|
||
|
||
|
||
테이크백, 투수가 공을 던지는 순간에 맞춰 타자가 팔을 뒤로 쭉 빼는 일종의 준비동작이다. 나는 얼추 이게 문제라고 확신했다.
|
||
|
||
|
||
|
||
“더 줄여.”
|
||
|
||
“이 정도요?”
|
||
|
||
“더!”
|
||
|
||
|
||
|
||
“형, 이러면 힘이 안 실리지 않을까요…?”
|
||
|
||
|
||
|
||
“너 지금도 아웃되는 타구 대부분이 힘 안 실린 비실비실한 타구가 대부분 아니야?”
|
||
|
||
|
||
|
||
“엇, 그걸 어떻게…!”
|
||
|
||
|
||
|
||
“넌 배트 스피드가 빠른 편이 아니라 좀 더 간결하게 갈 필요가 있어. 명심해. 맞추는 게 최우선이야. 불필요한 동작을 줄여서 스윗스팟에만 맞추면 공은 충분히 내외야를 빠져나가게 되어있어.”
|
||
|
||
|
||
|
||
“그건 생각을 못 해봤어요.”
|
||
|
||
|
||
|
||
“타격폼이든 스윙이든 사람마다 다른데, 테이크 백만 일괄적으로 뒤로 쭉 빼는 것만 정답이라는 것도 웃기잖아. 이쪽이 네 재능을 더 살리는 길이야. 한 번만 믿고 해봐.”
|
||
|
||
|
||
|
||
“형….”
|
||
|
||
|
||
|
||
이렇게까지 콕 짚어서 칭찬해주고 알려준 사람이 없었는지 감동받은 표정을 짓는 녀석. 나는 머쓱하여 시선을 돌렸다.
|
||
|
||
|
||
|
||
“킁, 이거만 신경 써서 다시 한번 쳐보자.”
|
||
|
||
|
||
|
||
“네, 형…!”
|
||
|
||
|
||
|
||
그렇게 다시 토스배팅이 시작됐다.
|
||
|
||
|
||
|
||
따악!
|
||
|
||
딱!
|
||
|
||
|
||
|
||
그리고 한 구 한 구, 도도진의 표정이 희열로 물들어갔다.
|
||
|
||
내 조언으로 아주 약간의 포인트를 바꿨을 뿐인데, 큰 변화를 느낀 모양이다.
|
||
|
||
|
||
|
||
“형, 이거 미쳤어요! 어떻게 그걸 잠깐 보고 단번에 알아채요?”
|
||
|
||
|
||
|
||
“내가 좀 야잘알이긴 하지.”
|
||
|
||
|
||
|
||
“진짜 고마워요. 이 은혜는 꼭 갚을게요…!”
|
||
|
||
|
||
|
||
다시 한번 허리를 푹 숙이며 감사를 표하는 도도진. 물론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하하, 괜찮아!’ 하면서 넘어가겠지만.
|
||
|
||
|
||
|
||
“오, 그래?”
|
||
|
||
|
||
|
||
“……네?”
|
||
|
||
|
||
|
||
“꼭 은혜를 갚고 싶다면야, 어쩔 수 없지.”
|
||
|
||
|
||
|
||
나는 일반적인 사람이 아니다.
|
||
|
||
원래도 그랬지만, 금태양이 된 지금은 더욱더.
|
||
|
||
|
||
|
||
|
||
|
||
###
|
||
|
||
|
||
|
||
|
||
|
||
나는 긴장한 도도진에게 아주 간단한 부탁을 하나 남기고 헤어졌다.
|
||
|
||
|
||
|
||
‘곧 문혁고에 야구부가 생길 거야. 그때 테스트 한 번만 보러와.’
|
||
|
||
|
||
|
||
‘아, 진짜 그거면 돼요?’
|
||
|
||
|
||
|
||
‘당연하지. 그냥 다른 학교 구경한다 치고 놀러 와.’
|
||
|
||
|
||
|
||
전학을 오건 그냥 원래 학교에 다니건 그건 자유라고 확실히 못 박아놨다. 그냥 나는 테스트만 보러 오라고 부채질만 해뒀을 뿐이다.
|
||
|
||
|
||
|
||
믿는 구석은 있다.
|
||
|
||
아마 정식 야구부 창설을 확정받고, 테스트를 볼 때쯤에는 녀석의 눈이 휘둥그레질만한 선수도 한명쯤은 데려왔을 것이다. 그러면 아마 녀석도 크게 흔들리겠지.
|
||
|
||
|
||
|
||
‘그때 전학 안 오고 배기겠어? 넌 그냥 우리 학교 2루수 확정이다. 도도진.’
|
||
|
||
|
||
|
||
벌써 쓸만한 녀석을 하나 손에 넣은 셈 치고 있는 난 종로3가역 쪽으로 향하고 있다.
|
||
|
||
|
||
|
||
‘12번 출구에 ‘그 사람’이 있었지.‘
|
||
|
||
|
||
|
||
내 투음절맥을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그곳에 있다. 그렇게 종로를 향해 가는 와중에, 거대 전광판에서 한창 광고가 흘러나왔다.
|
||
|
||
|
||
|
||
[청백 요리사]
|
||
|
||
‘최고의 셰프들의 요리 대격돌! 넷플렉스에서 만나보세요.’
|
||
|
||
|
||
|
||
“쩝, 괜히 배고파지네.”
|
||
|
||
|
||
|
||
한때는 최고급 식당만 다닐 정도로 미식에 정통했던 나이지만, 지금은 상거지 그 자체.
|
||
|
||
|
||
|
||
얼마 전 양아치들 주머니에서 쌈짓돈을 털어온 덕에 당분간 그럭저럭 버틸 순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론 쫄쫄 굶어서 죽는 게 아닐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정도였다.
|
||
|
||
|
||
|
||
‘씁, 일할 시간 따위 없는데.’
|
||
|
||
|
||
|
||
금성묵은 친부모가 있기는 하지만, 어릴 적 버림받아 연락이 닿지 않는 모양이라 손 벌릴 사람도 없다.
|
||
|
||
남는 시간을 모조리 수련에 때려 박아도 모자랄 판국에 알바 따위에 시간을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인지라 고민이 더욱더 깊어진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덧 목적지에 가까워졌다.
|
||
|
||
|
||
|
||
“이쪽이구먼.”
|
||
|
||
|
||
|
||
내가 알고 있는 정보대로 종로3가 12번 출구에 도착. 그리고 바로 알아챘다. 어느 한구석에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며 앉아있는 중년 남성이 내가 찾던 그 사람이 분명하다.
|
||
|
||
|
||
|
||
"실례합니다. 서혁준 선생님 되십니까?"
|
||
|
||
|
||
|
||
"맞습니다만, 누구십니까?"
|
||
|
||
|
||
|
||
이 남성은 맹인.
|
||
|
||
눈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다. 하지만 동시에, 내 투음절맥을 치료할 유일한 사람이다.
|
||
|
||
|
||
|
||
나는 서혁준에게 다소 예의를 갖추고 물었다.
|
||
|
||
|
||
|
||
"금성묵이라고 합니다. 선생님."
|
||
|
||
|
||
|
||
"그렇군요. 저를 어떻게 찾아오셨습니까?"
|
||
|
||
|
||
|
||
"선생님, 혹시 아직도 침을 놓으십니까?"
|
||
|
||
|
||
|
||
서혁준의 침 실력은 꽤 유명하다.
|
||
|
||
그의 눈이 멀기 전까지는 말이다.
|
||
|
||
|
||
|
||
“난 침을 손에서 놓은 지 오래됐습니다. 이 두 눈을 잃는다는 것은 사람을 치료하는 일에 아주 치명적이니까요.”
|
||
|
||
|
||
|
||
“음, 확실히 그렇겠네요.”
|
||
|
||
|
||
|
||
역시 쉽지않다.
|
||
|
||
하지만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다.
|
||
|
||
|
||
|
||
“하지만 더 많이 보이게 된 것이 있으시지 않습니까.”
|
||
|
||
|
||
|
||
“.........”
|
||
|
||
|
||
|
||
잠깐 말을 잃었지만, 곧 고개를 가로젓는 서혁준.
|
||
|
||
|
||
|
||
"나 말고도 실력 좋은 사람은 많으니 그 사람들을 찾아간다면...."
|
||
|
||
|
||
|
||
"선생님이 아니면 안 됩니다."
|
||
|
||
|
||
|
||
"...........?"
|
||
|
||
|
||
|
||
"진심입니다. 제 어깨에 상태를 한 번 보시게 된다면 아실 겁니다."
|
||
|
||
|
||
|
||
"허어...."
|
||
|
||
|
||
|
||
내 간절함을 느낀 것일까.
|
||
|
||
머뭇대던 서혁준은 작게 고개를 주억였다.
|
||
|
||
|
||
|
||
“상태를 한 번은 보겠습니다만, 상체를 탈의해야 합니다.”
|
||
|
||
|
||
|
||
“…그럼 화장실로 가시죠.”
|
||
|
||
|
||
|
||
여기서 그런 짓을 하기엔 보는 눈이 너무 많아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
||
|
||
|
||
|
||
철컥-
|
||
|
||
|
||
|
||
우린 역 내의 화장실에 들어가 대변 칸 중 빈 곳에 들어가 문을 잠갔다. 그리고 난 별 고민 없이 상반신을 탈의했다. 서혁준은 곧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손에 주욱 짜기 시작했다.
|
||
|
||
|
||
|
||
“그건 뭡니까?”
|
||
|
||
|
||
|
||
“몸 안의 기운과 맥을 좀 더 잘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액체입니다. 자, 시작하겠습니다.”
|
||
|
||
|
||
|
||
찹!
|
||
|
||
|
||
|
||
그의 양손이 내 상반신에 착 달라붙었다. 그리고는 어깨를 기준으로 이곳저곳을 살펴보는 그.
|
||
|
||
|
||
|
||
“흐으음......”
|
||
|
||
|
||
|
||
시각을 잃은 대신 극도로 발달한 감각을 통해, 보이지 않는 많은 것을 들여다보는 것이리라.
|
||
|
||
뭔가가 내 안을 휘젓는 기묘한 느낌이 계속됐다.
|
||
|
||
|
||
|
||
그는 내 상태를 살펴보던 도중, 깜짝 놀란 반응을 보였다.
|
||
|
||
|
||
|
||
“천투지체...! 게다가 천타지체까지...! 이 정도 재능의 소유자는 처음 봅니다."
|
||
|
||
|
||
|
||
진심으로 흥미를 보이는 그의 반응에 내심 어깨가 으쓱해졌지만, 그건 오래가지 않았다.
|
||
|
||
|
||
|
||
“금성묵 씨는 반성을 좀 해야겠군요. 이런 엄청난 재능을 그렇게 형편없이 관리하다니.”
|
||
|
||
|
||
|
||
“엇, 저요?”
|
||
|
||
|
||
|
||
"예,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맥이 꽉 막힌 사람도 처음 봅니다. 정말 작정하고 관리를 안 해도 이 정도는 되기 쉽지 않은데 말입니다.”
|
||
|
||
|
||
|
||
“혹시 어떤 부분들이 가장 문제였을지...?”
|
||
|
||
|
||
|
||
“일단 추정되는 것만 말해보자면 준비 동작 없이 무리한 운동의 반복, 과도한 음주와 흡연, 불규칙한 수면, 몸속의 양기가 자주 급변하는 상황 정도일까요. 이런 행동을 계속 반복했다면 투음절맥에 걸린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
||
|
||
|
||
|
||
"크흠...."
|
||
|
||
|
||
|
||
그 어려운 걸 금성묵이 해냈다는 건가.
|
||
|
||
|
||
|
||
'이 개양아치 자식. 대체 뭔 짓거릴 하고 다닌 거냐.'
|
||
|
||
|
||
|
||
“과거에 어떻게 살았든 나를 찾아온 그 간절한 마음은 알겠습니다. 이만한 재능을 그냥 땅속에 묻히게 두는 것도 한국 야구에 큰 손실이겠죠.”
|
||
|
||
|
||
|
||
“그 말씀은...?”
|
||
|
||
|
||
|
||
“제가 당신을 치료하겠습니다. 금성묵 씨.”
|
||
|
||
|
||
|
||
“오.....!!”
|
||
|
||
|
||
|
||
나는 쾌재를 내질렀다.
|
||
|
||
여기서 협력을 못 받았으면 난 그냥 어깨 병신 금태양으로 1년 살다가 요단강을 건너는 거였다. 반대로 이것만 치료하면, 내 성장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
||
|
||
|
||
|
||
그렇게 기뻐하고 있는 와중에,
|
||
|
||
|
||
|
||
똑똑-
|
||
|
||
|
||
|
||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
||
|
||
|
||
|
||
“문 좀 열어주시죠!”
|
||
|
||
|
||
|
||
역무원의 고압적인 목소리가 문 너머로 들려왔다. 나는 별생각 없이 열라니까 문을 열었는데.
|
||
|
||
|
||
|
||
‘뭐여 시벌…?’
|
||
|
||
|
||
|
||
우리가 들어간 화장실 칸 쪽에 많은 사람의 이목이 쏠려 있었다.
|
||
|
||
|
||
|
||
“공연음란 행위를 했다는 신고를 받고 왔습니다. 남성분들끼리 들어간 칸에서 이상한 신음소리가 들린다던데.”
|
||
|
||
|
||
|
||
“에헤이, 공연음란은 무슨.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닌, 어?”
|
||
|
||
|
||
|
||
그러고 보니 진료를 위해 벗었던 상의를 아직도 입지 않았다. 게다가 땀도 뻘뻘 흘리고 있었고. 아까 등에서 느껴진 요상한 느낌에 신음 비슷한 소리도 가끔 냈던 것 같다.
|
||
|
||
|
||
|
||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
||
|
||
|
||
|
||
“…오햅니다.”
|
||
|
||
|
||
|
||
나는 억울했다.
|
||
|
||
시발 진짜로.
|
||
|
||
|
||
|
||
|
||
|
||
####
|
||
|
||
|
||
|
||
|
||
|
||
나와 서혁준 선생은 역무원에게 엉망진창 혼났다. 다시는 오해받을 일을 벌이지 말라며 말이다.
|
||
|
||
|
||
|
||
“괜한 오해를 받았네요.”
|
||
|
||
|
||
|
||
“…그러게 말입니다.”
|
||
|
||
|
||
|
||
나는 서혁준 선생과 헤어지기 전, 치료 D-day인 3주 뒤의 그날까지 변화구 수련을 하고 싶다는 의견을 밝혔다.
|
||
|
||
그러자 서혁준은 고개를 주억이고는 가방을 뒤지더니, 한 물건을 내게 건넸다. 처음엔 기쁘게 받았던 나는 곧 그 물건의 흉물스러움에 기겁했다.
|
||
|
||
|
||
|
||
“아니, 잠깐만요. 이거 그, SM플레이 할 때 쓰는 거 아닙니까?”
|
||
|
||
|
||
|
||
내가 받아든 것은 입에 무는 재갈이었다.
|
||
|
||
그 외형이 특이 취향자들을 위한 성인용품괴 아주 닮았다는 게 문제였지만.
|
||
|
||
|
||
|
||
“겉보기엔 그렇게 생겼지만, 그거만큼 효과적인 게 없습니다. 그걸 입에 물고 투구하시면 기가 흘러나가는 걸 막을 수 있을 겁니다.”
|
||
|
||
|
||
|
||
“…미치겠네.”
|
||
|
||
|
||
|
||
이런 걸 매고 피칭 센터에서 훈련하고 있으면 얼마나 비웃음을 살까. 하지만 지금은 가오 따질 때가 아니었다.
|
||
|
||
이 꽉물고 받아든 나는 물건을 받고는 선생에게 감사를 표하며 작별했다.
|
||
|
||
|
||
|
||
어느덧 밖에 늬엇늬엇 해가 졌다.
|
||
|
||
|
||
|
||
‘가서 좀 쉴까.’
|
||
|
||
|
||
|
||
내일 하드 트레이닝을 다짐하며 걸어가던 그때. 멍 때리며 코너를 돌던 나는-,
|
||
|
||
|
||
|
||
퍼억!
|
||
|
||
|
||
|
||
“아읏…!!”
|
||
|
||
|
||
|
||
누군가와 성대하게 부딪혔다.
|
||
|
||
나는 살짝 휘청한 정도였지만, 상대측은 방아를 찍으며 넘어졌다.
|
||
|
||
|
||
|
||
“괜찮으세요?”
|
||
|
||
|
||
|
||
일단 그렇게 말하며 상대방을 확인하는데, 상당히 놀랐다.
|
||
|
||
|
||
|
||
‘오…?’
|
||
|
||
|
||
|
||
나랑 나이가 엇비슷해 보이는 백인 여성이었는데, 그 미모가 상당했다. 베이지 색의 포니테일 머리에 엄청난 볼륨감을 자랑하는 몸매까지.
|
||
|
||
다만 인상이 상당히 차가운 것이, 관심 없는 사람은 뭔가 투명인간 취급할 것 같은 느낌이랄까. 어린 나이부터 묘한 아우라를 풍기는 여자였다.
|
||
|
||
|
||
|
||
그런데, 처음 만나는 사람인데 뭔가 낯이 익었다.
|
||
|
||
|
||
|
||
‘아, 방금 본 전광판!’
|
||
|
||
|
||
|
||
넷플렉스에서 방영중이라는 청백요리사 광고판, 거기에서 주인공 까진 아니지만 중간 정도 급 크기로 붙어있는 얼굴이 딱 눈앞의 소녀와 똑같았다.
|
||
|
||
이름은 올리비아 뭐시기였던 거 같은데,기억은 잘 안 난다.
|
||
|
||
|
||
|
||
“..........!”
|
||
|
||
|
||
|
||
소녀는 손을 내민 나를 보고 흠칫 놀랐다.
|
||
|
||
감출 수 없이 흘러넘치는 이 양아치 끼 때문에 상당한 경계심을 품고 있는 것이 보였다.
|
||
|
||
|
||
|
||
나는 일단 허리 숙여 사과했다.
|
||
|
||
|
||
|
||
“죄송합니다. 잘 보고 다녔어야 했는데.”
|
||
|
||
|
||
|
||
내가 먼저 꾸벅 숙이며 사과하자 다소 안심하는 표정을 짓는 그녀.
|
||
|
||
|
||
|
||
“…아뇨. 저도 죄송합니다.”
|
||
|
||
|
||
|
||
다소 외국인 티는 나지만, 거의 완벽한 한국어로 사과해오는 그녀.
|
||
|
||
아까 충돌 과정에서 서로의 물건이 바닥에 떨어진지라 서로 주워주려고 허리를 숙이는데, 무언가 쎄한 감각이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
||
|
||
|
||
|
||
‘아 시발, 맞다 그거...!’
|
||
|
||
|
||
|
||
내 손에 있어야 할 재갈이 보이질 않았다.
|
||
|
||
|
||
|
||
“자, 잠깐……!”
|
||
|
||
|
||
|
||
“이건?”
|
||
|
||
|
||
|
||
어느 모로 봐도 SM 플레이 도구처럼 생긴 재갈을 주워든 그녀의 표정이 썩어들어갔다.
|
||
|
||
|
||
|
||
터벅터벅-
|
||
|
||
탁!
|
||
|
||
|
||
|
||
“………받아요.”
|
||
|
||
|
||
|
||
|
||
|
||
새빨개진 얼굴로 내게 척척 접근해와서는 떠넘기듯 물건을 홱 넘긴 그녀는 내가 주워든 물건을 황급히 받아서는 도망치듯 가버렸다. 나는 사무치는 쪽팔림에 머리를 탁 짚었다.
|
||
|
||
|
||
|
||
“하, 씨. 이게 웬 쪽이냐.”
|
||
|
||
|
||
|
||
그때였다.
|
||
|
||
|
||
|
||
저릿!
|
||
|
||
|
||
|
||
하반신에서 반응이 왔다.
|
||
|
||
갑자기 성욕이 올라왔다던가, 그런 느낌이 아니라…
|
||
|
||
|
||
|
||
‘이거, 저릿저릿 센서의 그…?’
|
||
|
||
|
||
|
||
저번에 양아치들을 족칠 때 느꼈던, 사람의 약점이 느껴질 때의 그 기묘한 감각. 그때보다 생생한 감각이 땅 쪽에서 느껴졌다. 나는 감각이 향하는 대로 시선을 내렸다.
|
||
|
||
|
||
|
||
“………뭐야, 이건?”
|
||
|
||
|
||
|
||
거기에는 한 파일철이 떨어져 있다.
|
||
|
||
그것도 빽빽한 종이가 여러 장 들어있는.
|
||
|
||
|
||
|
||
|
||
|
||
######
|
||
|
||
|
||
|
||
|
||
|
||
“없어, 도대체 왜…?”
|
||
|
||
|
||
|
||
올리비아 램지는 당혹스러웠다.
|
||
|
||
이 세상에서 기록 자체를 지워버리려고 했던 서류가 도무지 보이질 않았다.
|
||
|
||
|
||
|
||
머릿속에 떠오르는 가능성은 단 하나였다.
|
||
|
||
|
||
|
||
“설마…?”
|
||
|
||
|
||
|
||
아까 만난 금발의 양아치 남과 부딪혔을 때 서로의 물건을 주워줬었다. 그때 변태적인 물건을 만지게 되어 당황한 탓에, 차마 그 서류까지 신경 쓰지 못했다.
|
||
|
||
|
||
|
||
까득…
|
||
|
||
|
||
|
||
“…찾아야 해.”
|
||
|
||
|
||
|
||
그녀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
||
|
||
그 서류에 담긴 것은 그녀 자신의 치명적인 치부. 이게 잘못되면 가족의 명예에까지 먹칠할 지 모른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걸 가진 것으로 예상된 그 남자를 찾아야 했다.
|
||
|
||
|
||
|
||
그리고 찾은 뒤에는…
|
||
|
||
|
||
|
||
‘어떻게 하면 조용히 해줄까.’
|
||
|
||
|
||
|
||
입막음할 예정이다.
|
||
|
||
그것도 아주 평화적인(?) 방법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