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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묵과 이야기를 해보겠다는 도연의 말에, 도진은 그녀에게 신신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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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하나만 약속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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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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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최대한 성묵 형을 지금 있는 그대로 봐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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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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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가 왜 주저하는지 알아. 그치만 내가 본 성묵 형은 소문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어. 누나도 알잖아? 소문이라는 게 꼭 진실된 것만 돌지는 않는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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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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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도연의 과거만 돌아봐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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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휴, 저 불여시년. 잘하는 거라고는 남자한테 꼬리치는 거밖에 없지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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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 남자가 먼저 그녀의 관심을 끌려고 다가오는 것은 그녀가 헤프게 꼬시고 다닌 게 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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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 봐, 누가 천박한 년 아니랄까 봐 맨날 야한 옷만 입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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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티셔츠나 청바지를 입어도 특유의 발육 탓에 야한 옷만 입는단 소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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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어릴 때의 이야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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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재학 중인 서울대에서도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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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인들만 모인 그곳에서는 다를 거라 생각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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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은 남자 손 한 번 잡아본 적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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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굉장히 높은 그녀는 남성과 교제는커녕 썸 조차 타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그동안 당해온 모진 억까에 한숨을 푹 쉰 도연. 그녀는 도진의 말에 수긍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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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알겠어. 선입견 없이 있는 그대로 판단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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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분명히 다짐했던 그녀였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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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도진이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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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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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데이터를 쌓는 동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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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은 싸이언스’라는 명언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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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압도하는 근육질의 장신, 샛노랗게 염색한 듯한 금발 머리, 양아치 끼가 좔좔 흘러넘치는 눈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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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서 보니 더욱 잘 느껴졌다. 그녀가 살아오며 쌓은 관상학 데이터가 그녀에게 말했다. 이 남자가 양아치가 아니라면 한국에 양아치는 다 죽은 거나 마찬가지일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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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아, 노력은 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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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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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청백전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아있다. 적당히 그늘진 벤치를 발견한 둘은 그곳에 마주 보고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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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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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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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간 흐르는 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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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깬 쪽은 성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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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보다 연상이실 텐데, 말 편하게 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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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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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당연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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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주억인 성묵, 도연은 본론을 꺼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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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고맙다고 해주고 싶어. 도진이를 구해준 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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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별거 아닙니다. 누구라도 했을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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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별거 맞아.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동생을 잃을 뻔했어. 그랬으면 나는 살 의미를 잃어버렸을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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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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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놀란 표정을 짓는 성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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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역시도 게임 속의 도진을 왜 찾을 수 없는지, 도연이 왜 그렇게 피폐해졌는지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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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분은 고맙다는 말을 백번 해도 모자라.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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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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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를 도와주고 팀에 들어오도록 권하는 데에 다른 꿍꿍이가 있다면 당장 관뒀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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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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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이, 정말 힘들게 자란 아이야. 걔가 더 이상 힘들어하는 모습은 볼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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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연한 눈빛으로 금성묵을 마주 보는 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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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생각에 잠긴 듯 보이던 성묵은 손에 든 이온 음료를 쭉 들이켜고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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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됐네요. 그건 저도 마찬가지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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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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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외적인 문제로 야구를 제대로 못 하게 되는 건 더 이상 보고 싶지 않거든요. 그게 노력하는 녀석이라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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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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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통에 다 마신 음료수병을 던진 성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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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천천히 도연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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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에서 하체를 거쳐 코어, 상체, 팔, 배트로 완벽하게 전달되는 인상적인 배팅 키네틱 체인 시퀀스(Batting Kinetic Chain sequ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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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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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러운 힙 힌지(Hip Hinge)를 통한 뛰어난 하체 활용, 백스핀 타구 양산에 효과적인 손목 활용, 이것 말고도 많긴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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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다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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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도진의 폼을 살짝 고쳐준 건 완성된 케이크에 딸기를 하나 얹은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대단한 건 이런 최신 이론들을 충돌 없이 이식하는 데 성공한 도연 씨와, 그걸 믿고 따른 도진이 쪽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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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연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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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인물의 폼을 하나하나 뜯어보고 그 의도를 파악한다는 것은, 웬만한 타격 지식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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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현역 고등학생이라면 더더욱 그렇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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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저에 대해 들으신 안 좋은 소문들이 있는 걸로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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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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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은 다 털고 가는 게 좋겠네요, 어떤 걸 들으셨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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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연은 잠시 머뭇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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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그녀의 마음 한구석에 이런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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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도 나처럼 잘못된 소문에 시달렸을 뿐, 사실은 착한 사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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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에게 건너 들었을 때도 느꼈지만, 성묵이 가진 야구 지식은 진짜다. 소문대로 펑펑 놀러 다니며 쌓을 수 있는 그런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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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순간 말하기 꺼려졌으나, 솔직하게 말해달라는 듯한 성묵의 눈빛에 도연은 이내 자신이 커뮤니티에서 봤던 그에 관한 악소문을 전부 말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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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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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코 듣고 있던 성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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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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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썅. 전부 다 진짜 있었던 일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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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의할 때 금성묵의 과거에 대한 기억이 깡그리 날아간지라 진짜 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이놈이라면 그러고도 남는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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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혁준 선생이 투음절맥에 걸린 이유를 역추적할 때 했던 말들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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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묵은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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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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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식 화법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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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의 거짓말보다는 1%의 진실과 99%의 거짓을 조합하는 게 효과가 더 좋은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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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된 부분이 꽤 많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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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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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과장은커녕 그 실제 모습을 차마 다 담아내지 못했을 거라 생각하지만, 일단은 두루뭉술한 말로 성묵은 말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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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한 표정으로 바뀐 그녀의 표정이 다시 바뀌는 덴 오래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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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사실인 부분도 더러 있습니다. 부끄러운 과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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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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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묵이 순순히 그 소문을 일부 인정하자 다시 충격에 물드는 도연. 하지만 성묵은 그녀를 실망한 채로 둘 생각이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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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도연 씨, 이것 하나만 알아주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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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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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저를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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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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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저는 없습니다. 제겐 오직 야구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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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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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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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연에게 조금씩 다가온 성묵이 이내 그녀의 두손을 확 잡았다. 그것도 전에 없는 진중한 눈빛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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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이는 믿고 맡겨 주십시오. 그 녀석이 웃으며 야구 할 수 있는 팀. 제가 꼭 이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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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으, 그, 잠깐…. 너무 가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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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려면 도연 씨의 도움도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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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 무슨 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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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지금 현대 야구는 데이터가 절반 이상. 아니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신생이라 많은 부분이 걸음마 단계인 문혁고에는 도연 씨 같은 전문가가 꼭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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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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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도연 씨가 아니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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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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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서 후끈 김이 피어오르기 시작한 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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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간까지도 그녀의 두 손을 꽉 잡은 채 놔주지 않는 성묵의 눈빛은 지금까지 봐온 그 어떤 사람보다 웅대한 열망을 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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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어, 최대한 도와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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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밀어붙이는 성묵에게 도움을 약속한 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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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묵은 천군만마를 얻은 듯한 기분에 표정이 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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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도진을 팀에 넣는 것뿐만 아니라, 추후 타팀에 대한 분석이 필요한 순간에 도연의 도움 또한 받을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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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신 감사를 표하며 손을 붕붕 저은 성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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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슬슬 도연의 상태가 점점 한계에 다다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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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으, 나 잠깐만 쉬다가 갈 테니까 먼저 돌아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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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군요. 먼저 경기장에 돌아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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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청백전이 시작할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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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묵은 그녀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한 뒤 후다닥 야구장 안으로 다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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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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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묵이 사라지자 모아둔 숨을 내뱉은 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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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맞잡은 건장한 남성의 손이란, 그녀에게 너무나도 자극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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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자꾸 기억나지. 그것도 땀 냄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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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보다 더 그녀를 자극한 것이 바로 성묵의 땀 냄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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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구를 마친 뒤 씻지 못하고 도연에게 불려온 탓에 풍기게 된 것이었는데, 그녀 주변에 널려있는 공부만 하는 샌님들에게서는 맡을 수 없는 진짜 수컷의 냄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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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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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 접해본 적 없는 자극에 극심한 현기증을 느낀 도연. 그녀는 꽤 오랫동안 야구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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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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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관중석으로 복귀하자 웅성웅성한 분위기의 구장. 그런데 일반적인 상황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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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산이랑 석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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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마운드 위에서 꽤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마치 싸우는 것 같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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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리가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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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산은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노력하는 순박한 파키스탄 청년 그 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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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운강은 어떤가. 정신 수양하면 저리가라인 스님 출신 아닌가. 절대로 누군가와 싸울 위인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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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감독님! 쟤네 뭔 일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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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위쪽에서 부르자 뒤돌아본 명신우 감독. 그가 곧 머리를 탁 짚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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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성묵이냐…. 하아, 골때린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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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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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묻자 한숨을 푹 내쉰 명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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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대답이 참으로 가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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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알라신이 더 위대하다, 부처가 더 위대하다 이러면서 싸우고 있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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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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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착한 애들이니까 괜찮겠지 싶었는데, 가까운 곳에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발작 버튼이 존재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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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부 시작부터 지랄이 난 모습에 진심으로 때려치우고 싶었지만, 일단은 말려야 할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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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 시발 애들아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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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후다닥 그물망을 타고 경기장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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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이놈의 망겜. 쉽게 가는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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