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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운드에 올라선 금성묵과 타석에 들어선 도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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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에 대해 높은 평가를 하는 둘이지만, 지금은 그저 투수 대 타자로 맞서 싸워야 할 상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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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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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은 얕게 심호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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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머릿속에 드는 잡생각을 지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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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형과의 승부가 먼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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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은 입부 테스트를 보기 전 있었던 누나와의 트러블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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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원인은 금성묵에게서 걸려 온 전화 한 통에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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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타격폼을 녹화해 둔 영상을 보던 도진은 핸드폰의 진동이 울리자 헐레벌떡 달려가 발신자를 확인했다. 그리고는 기쁜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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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묵이 형! 오랜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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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오랜만이다. 도진아, 다음 주 토요일에 입부 테스트 잡혔거든? 부담 가지지 말고 자리만 채워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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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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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고 기다리던 성묵의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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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안 오면 어쩔까 싶었지만 이젠 고민할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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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은 집에서 요리하고 있던 도연에게 대뜸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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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나 전학 가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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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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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의 갑작스러운 선포에 깜짝 놀라 국자를 떨군 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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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려 깊던 동생의 급발진에 그녀는 아연실색하여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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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갑자기? 요즘 잘하고 있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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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도도진은 물오른 타격 컨디션 덕분에 팀에서 고정 2번 타자로 출전하고 있었다. 한창 그 폼을 유지해 나가야 할 중요한 시기에 전학이라니. 좀 더 좋은 야구부로 전학 가는 건 잘 모르고 보면 좋아 보일지 몰라도, 1년 출장 금지 제한에 걸려 시간을 버릴 확률이 농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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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묵이 형한테 전화가 왔거든. 나 역시 문혁고로 가야 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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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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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들려온 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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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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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연은 전부터 그 이름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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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의 이름이 돌았던 것은 야구 전문가들만 입장할 수 있는 커뮤니티 내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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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수준의 실력을 자랑하는 한국 야구인 만큼, 거기서 조금이라도 이름을 알리는 건 너무나도 어렵다. 특히 서울권에서 거리가 멀어질수록 전국구 실력 정도가 아니면 더더욱 어려워졌다. 금성묵의 이름이 그녀에게 들리게 된 계기는 절대 좋은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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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교 야구 최악의 워크에식의 보유자.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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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권 1학년 금성묵이라는 투수인데, 진짜 워크에식 최악입니다. 맨날 술 마시고, 담배 피고, 여자 좋아하고, 폭주족들이랑 어울리며 오토바이 타고다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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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전고 운동장 구경 가보면 금성묵이 운동 제대로 하는 꼴 본 적이 없습니다. 이렇게 해도 150km는 나오니까 뽑히겠지 싶은 거려나요. 참 한숨만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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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의 입에서 그 이름이 나온 순간 저 일화가 기억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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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그런 양아치랑 어울리지 마!'라고 하고 싶었지만, 동생을 구해주기도 하고 타격 폼을 제대로 고쳐준 점 때문에 섣불리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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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렇게 같은 학교, 같은 야구부로 가는 건 이야기가 달랐다. 부모라는 인간들이 제 노릇을 못 하는 지금, 유일한 가족이자 누나인 도연이라도 도진이 엇나가지 않게 케어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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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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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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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된다고 했어. 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넌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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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호한 누나의 태도에 눈이 동그래진 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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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단호하기로는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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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좀 실망인데.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에 대해 그렇게 말하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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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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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누나의 말이라면 신뢰하고 따라오던 동생이 처음으로 자신에게 날을 세우며 대립각을 세웠다. 그것도 양아치로 악명이 자자한 녀석의 편을 들면서. 도연은 이 상황이 너무나 낯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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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아, 진짜 왜 그래. 너 오늘따라 이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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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묵이 형 소문은 알아. 형이 전학 오게 된 계기가 궁금해서 이것저것 찾아봤거든. 생긴 것도 솔직히 말하면, 내가 아는 그 어떤 사람보다도 불량하게 생기긴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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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는 그런 성묵 형 덕분에 구원받았어. 누나, 나 최근에 너무 힘들었던 거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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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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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버티면 된다고 생각했거든. 누나 소개해달라고 불러내서 폭행하는 양아치들, 그걸 또 알고도 방관하는 야구부 선배 놈들, 하나도 도움 안 되는 무능한 코치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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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2년을 더 버텨야 한다 생각하니 지옥이었어. 모든 걸 놓아버릴까 싶은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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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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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인 선택까지 생각했다는 동생의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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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연은 가슴에 돌덩이가 쿵 하고 내려앉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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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의 도연이 방구석 히키코모리가 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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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을 선수로서 게임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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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포기하려고 했을 때 성묵형이 나타나고 모든 게 해결됐어. 형이 물리친 양아치들이 소문을 냈는지 날 건드리는 사람도 없어졌고, 형이 고쳐준 폼 덕분에 야구도 잘 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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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도 누나, 내가 성묵 형한테 은혜를 갚고 싶어 하는 게 이상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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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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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연은 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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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하는 말에 틀린 게 하나도 없기도 했고, 부끄러웠다. 그 누구보다 도진을 위한다 생각했지만, 동생이 극단적 생각까지 하는 걸 눈치도 채지 못했고 그걸 생판 모르는 사람이 해결한 것도 전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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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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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을 내쉰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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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곧 동생을 꽉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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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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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도진아. 못난 누나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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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누나 잘못이라는 건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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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의 진심 어린 사과에 누그러진 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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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연은 나름 결심한 듯이 도진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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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학은 무조건 가자. 문혁고 입부 테스트도 봐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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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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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이 말한 게 정말이라면 그런 팀에 있는 것은 더는 실력으로나 멘탈적으로나 동생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량이 오른 지금이라면 명문고 전학도 충분히 가능한 상황. 어느 학교에 가던, 옮기는 게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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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야기는 한 번 해봐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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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묵이 형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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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네 말대로 직접 보고 판단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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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누나 눈에 안 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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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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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이 너랑 떨어뜨려 놓을 거야. 무슨 수를 써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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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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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듯한 누나의 서늘한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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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은 그게 결코 허언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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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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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타자와의 승부를 지켜본 도연. 일찍부터 구장에 와있었던 그녀는 꽤 많은 것을 알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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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부상 회복은 완전치 않아. 방금 연출했던 모습도 그걸 숨기기 위한 책략의 일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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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여러 타자를 상대하며 몸이 풀리고도 남을 정도의 공을 던졌다. 그런데도 구속이 140Km 초반을 벗어나지 않는다. 거기서 그녀는 그의 어깨가 폼이 다 올라오지 않았음을 포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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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테스트를 보는 타자들은 딱 한 타석만 그를 상대하기에 깨닫기 쉽지 않았던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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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건 불완전한 몸 상태로 보여주는 저 퍼포먼스. 1학년 때는 피지컬만 믿고 던지는 투수였을텐데, 대체 1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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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이 이전에 했던 말로 미루어 보면, 야구 자체에 대한 이해도가 고등학생 수준이 아닌 것도 알 수 있다. 도연으로서는 처음 접하는 인물상이다. 이 정도로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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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좀 더 봐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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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금성묵의 투구에 대해 분석한 걸 메모하던 그녀는 곧 펜을 놓고는 그물망 가까이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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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그녀의 동생, 도진이 타석에 들어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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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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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진을 손에 탁탁 털고 땅에 던진 금성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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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운강과 사인을 교환한 그는 대망의 첫 구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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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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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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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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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브가 존 한복판에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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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를 내려다 움찔한 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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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묵은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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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이 녀석, 직구 던졌으면 초구부터 후릴 생각이었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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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테스트에서 대다수의 타자에게 직구를 존에 꽂아 넣으며 초구를 잡고 가는 일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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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투수를 만난 상황에서는 일단 공을 좀 지켜보려는 타자들의 성향을 이용한 것이다. 도진은 자신에게도 그렇게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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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도도연 동생인데, BQ가 나쁠 리가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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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대가리 타자들한테 던지는 것처럼 도진에게 던졌다가는 크게 낭패를 볼 게 뻔했다. 성묵은 평소보다 한 단계 꼬아서 볼 배합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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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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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존에 꽂히는 하이 패스트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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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은 부르르 떨며 배트를 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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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참은 건가 생각한 성묵은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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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묵의 직구를 가까이서 본 도진의 몸이 찌르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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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공에 묘한 감동마저 느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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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묵형, 대단한데. 그 짧은 기간에 이 정도까지 회복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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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아치를 두드려 패고 도진을 구했던 그날, 120km를 겨우 찍던 그가 여기까지 구속을 복구하는 데 얼마나 노력했을까. 그런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지는 도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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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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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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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구는 존을 크게 벗어난 슬라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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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와는 많이 달랐던 모양인지 성묵이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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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 날 잡고 제구 훈련도 빡세게 해야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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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제구 스탯이 C+정도밖에 안 되어서 그런지, 힘을 빼지 않으면 노린 코스에 제대로 넣기가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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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트는 1-2, 스트라이크를 하나 넣어줘야 할 타이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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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거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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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 운강의 사인에 고개를 저은 성묵이 투구 동작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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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내던져진 4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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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에서 존 외곽을 파고드는 슬라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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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묘한 낮은 코스로 타자가 손대기 쉽지 않은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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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는 그걸 치지 못 하리라 봤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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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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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코 그걸 따라가 건드린 도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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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밍이 약간 어긋났는지 공은 뒷그물을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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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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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이더를 기다린 뒤 잡아놓고 후렸지만, 금성묵의 폼에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 터라 살짝 타이밍이 엇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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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트는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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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겠다는 듯 금성묵의 5구가 던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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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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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타자 몸쪽에 꽉 붙는 몸쪽 빠른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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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진이 공을 피해 한 걸음 황급히 물러나며 이제 풀카운트까지 간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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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도진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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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묵 형이 몸쪽 꽉 찬 직구를 던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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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못지않게 타자 역시 자극에 민감한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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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쪽을 파고드는 공을 던지면 자기도 모르게 물러서거나 위축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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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황에서 바깥쪽 꽉 차는 공을 던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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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짝없이 당하겠지, 보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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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은 생각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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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코스를 바깥쪽으로 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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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묵은 운강과 사인을 교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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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이, 마지막 공은 바깥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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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의 노림수와 투수의 코스가 일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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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뿌려진 마지막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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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구에 둘의 승부가 결정될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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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한 대로 바깥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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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직구가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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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슬슬 어지간한 변화구들은 구분되기 시작한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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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의 여지 없이 배트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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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도 구종도 모두 예상한 대로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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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공이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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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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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맹렬히 꺾여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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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직구 궤도에 맞춰 돌기 시작한 배트를 피해 바깥으로 피해 가는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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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테스트 내내 숨겨온, A등급 써클 체인지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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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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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이크 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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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밖으로 빠져나가는 써클 체인지업에 헛스윙 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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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진은 어안이 벙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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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이 정도 무기를 아직도 숨기고 있을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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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당했음에도 그는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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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내 차례기 되어서야 꺼내실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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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엿이 한 명의 선수로서 인정받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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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은 꾸벅 숙여 성묵에게 인사하고는 덕아웃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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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타자 응시생 전원 셧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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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에게도 1루를 내어주지 않은 채 금성묵은 마운드에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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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했다. 에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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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중 나온 명 감독이 주먹을 내밀며 그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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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익 웃으며 그의 주먹을 퉁 친 성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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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오늘 그가 할 일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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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 테스트라는 명목 하에 금성묵이란 존재가 이 팀의 에이스이자, 중심이란 걸 모두에게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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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뒤부터는 청백전이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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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시생을 A팀, B팀 두 팀으로 나눠 경기할 예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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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팀 선발 투수는 핫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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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팀 선발 투수는 리동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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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 스탯이 C에 불과한 리동혁이 선발에 적합한 인선은 아니지만, 다양한 투수를 테스트 해야 하는 현 상황이니 올리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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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중석에서 팝콘이나 뜯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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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감독에게 허락받은 뒤 어깨에 아이스팩을 둘둘 멘 나는 덕아웃을 나서 경기장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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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판기가 이쯤에 있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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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온 음료가 땡겨서 하나 뽑아먹으려고 돌아다니는데, 멀찍이 누군가가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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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묵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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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바로 도도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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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그녀가 어느새 날 따라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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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도진이 누나. 도도연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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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도진이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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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를 지으며 공손하게 인사를 해오는 그녀였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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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하게 눈빛이 싸늘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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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 나를 좋게만은 생각하지 않는 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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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심을 품고 있는 게 보이기도 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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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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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던 선입견도 절로 만들만한 외모를 가진 게 지금의 나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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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묵씨,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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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보이는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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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씩 웃으며 고개를 주억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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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습니다. 가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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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미녀와 이야기할 일이 많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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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생각하며 나는 그녀의 뒤를 따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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