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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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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멋지구나, 나 자신!”

문혁고의 조리과학부 소속 학생인 김준우는 꽤 인기가 많다.

곱상한 외모에 하얀 피부, 옷을 입었을 때 태가 나는 모델핏 체형에 요리 실력, 집안까지 전부 빵빵한 육각형의 남자였다.

그런 그인 만큼 누굴 사귀어도 금방 싫증이 났으나, 작년에 한 학생이 유학을 오며 상황이 급변했다.

"반가워요. 올리비아 램지에요."

월클급 요리사 고딘 램지의 딸이 학교에 유학을 온 것이다. 그녀는 대단한 요리 실력도 실력이지만, 지금껏 그가 봐온 그 어떤 여자보다 아름다웠다. 그래서 괜한 명분을 대서라도 접점을 만들려 했고, 한국어도 가르쳐 준답시고 최대한 붙어있으려 했다.

그리고 그런 노력이 빛을 발했을까.

그녀도 점점 김준우를 꽤 편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대로면 그녀와 특별한 사이까지 나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아 보였다.

“훗, 하긴. 그녀에 어울릴 만한 건 나밖에 없지.”

막 개학한 지금은 3월, 그는 거창한 계획을 세웠다.

지금부터 빌드업을 착착 잘 쌓아서 첫 주는 카페, 다음 주는 번화가, 그 다음 주는 벚꽃 아래서 고백을 하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계획. 이대로 해서 실패한 여자가 없었던 김준우는 자신만만했다.

마침 점심시간이 한창일 즈음에 복도를 지나가는 올리비아가 보였다.

"아! 올리비…."

"금성묵 씨."

남한테 천생 무관심하던 그녀가 먼저 남의 반을 찾아가 누군가를 찾는다.

그것도 남자를?

김준우는 이 상황 자체가 너무나도 혼란스러웠다.

상대는 심지어 썩 귀찮다는 반응이다.

나의 그녀를 저런 식으로 대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

"할 말이 있어요. 따라와요."

"뭐, 좋아. 가보자고."

그 말과 함께 의자에서 일어난 금성묵을 본 김준우는 까무러치게 놀랐다.

'더, 덩치가 무슨...'

적당히 큰 키인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거 아닐까 싶은 정도로 커다란 키, 반이 꽉 차는듯한 엄청난 떡대. 걸어가며 쓱 접어 올린 팔뚝 부분의 엄청난 근육의 갈라짐까지. 김준우는 진심으로 의문이 들었다.

‘내가 평생 밥만 먹고 운동해도 따라갈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말이다.

그렇게 금성묵과 함께 걸어가던 올리비아와 김준우의 눈이 마주쳤다.

지금이라도 밝게 인사를 해준다면 지금의 상황은 사소한 해프닝으로 넘길 수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충분히 친해진 지금이라면 분명 아는 체를 해줄 거라고 생각했지만.

".........."

아무말 없이 다시 뒤돌아서서 금성묵과 함께 사라지는 그녀.

김준우는 인생 처음으로 어떤 남자에게 진한 패배감을 느꼈다.

"돌려달라고?"

"예."

이것 봐라.

처음부터 이렇게 나올 줄이야.

물론 그 서류를 언젠가 만나면 돌려주려고 하기야 했지만, 대뜸 사람을 끌고 와서 다짜고짜 달라니. 니가 이러면 내 안의 반골 기질이 스멀스멀 올라온단 말이다.

"뭐를 말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근처 CCTV를 조회해봤어요. 당신이 주워갔더군요."

"이야, 거기까지 했다고?"

"저한테는 중요한 서류니까요."

공권력의 힘까지 빌렸다는 모양.

이러면 더 발뺌하기도 어렵다.

"보상은 할 거예요. 돌려주세요."

돌려주는 거야 돌려줄 거지만, 나는 그 전에 그녀를 쿡 찔러봤다.

“보상까지 준다라. 그래 뭐, 나 같은 양아치 놈 손에 자기 약점이 넘어가 있으면 아무래도 곤란하겠지.”

“……!!”

급격히 동공이 흔들리는 올리비아. 아마 단순 유학 관련 서류로 알고 있을 줄 안 모양이다.

"당신, 어디까지 아는 거예요?"

"글쎄다. 알 만큼은 알지?"

나도 이게 정확히 뭐가 문제가 되는진 모른다. 저릿저릿 센서 덕분에 이게 그녀의 약점이란 걸 알 뿐이지. 올리비아는 내 말에 부들부들 떨며 입술을 꽉 깨물더니 물어왔다.

"어떻게 하면 돌려주실 건가요?"

"흠."

내가 순순히 돌려주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체념한 듯한 그녀.

내 입장에서 지금 요구할만한 건 하나뿐이었다.

최근에 많이 고팠거든.

나는 입술을 쓱 혀로 핥으며 말했다.

“맛 좀 보자, 올리비아.”

"...............!!"

“날 만족시켜준다면 비밀로 해주지.”

그 말에 고개를 푹 숙이고 부들부들 떠는 그녀.

그리고는 곧 경멸스럽다는 눈으로 날 올려다보며 말한다.

"최악."

"뭐?"

"당신, 제 몸에 관심 있던 거군요.”

"............."

모멸감 어린 목소리로 양팔을 끌어안는 그녀에 대한 내 대답은 간단했다.

“뭐래냐, 너?”

딱!

“아흣!”

나는 그녀의 이마에 딱밤을 날렸다.

살짝 때렸는 데도 아팠는지 푹 주저앉는 그녀.

곧 일어나서는 내게 버럭 화낸다.

“뭐 하는 짓인가요! 이런 무례한!”

“무례한 건 너지. 대뜸 요리 좀 해달랐더니 사람을 변태로 몰고 있어.”

"네? 요리...?"

"그래, 요리. 너 요리사잖아. 맛 좀 보여달라고, 니 요리."

"아."

내 말의 진의를 깨닫고는 홱 뒤돌아서는 그녀.

아무래도 상당히 쪽팔린 모양이다. 잠깐의 시간 동안 침착함을 되찾았는지 다시 나를 보고 묻는 그녀.

“좋아요. 무슨 요리를 원하시는데요?”

“…………흠.”

그동안 컵밥, 컵라면 등으로 때우던 나날들이 떠올랐다.

이 망할 놈의 사립 학교는 식비까지 비싸서 점심밥도 제대로 먹기 힘들다.

이사장한테는 명분상 '야구부를 위해' 돈을 뜯은 터라 '나 밥 먹게 돈 내놔!'라고 하기도 어려운 상황. 이런 빈곤한 나날 속에서 내 머릿속에 항상 떠오른 음식은 무엇인가.

이럴 때는 역시 남자의 소울푸드가 답이지.

“제육이나 함 볶아와 봐.”

올리바아는 황당했다.

물론 한국에 유학 와있긴 하지만, 주전공도 그렇고 배우고 있는 요리의 장르는 어디까지나 프렌치였다.

그나마 한식을 만들어 본 것도 고급 요리 몇 가지만 만들어봤었다.

그런 그녀에게 기껏 해달라는 게 분식집에서나 먹을 법한 제육볶음이라니.

"제육, 제육 레시피가…."

그녀는 황급히 요리사 커뮤니티에 제육 레시피를 서치했다.

그리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이없는 정도로 쉽고 간단한 요리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그녀 나름의 어레인지를 더한다면, 저런 저급한 양아치 따위는 황홀함에 정신을 못 차릴 것이 뻔했다.

치이익---!

불판에 기름과 돼지고기가 올라가고,

조리실에 불향이 알싸하게 울려 퍼진다.

약 10분 정도 지났을까. 요리가 끝이 났다.

“완성했어요.”

접시에 담아 들고는 자신감 있게 성묵에게 내미는 그녀.

“…오호라, 한 번 먹어볼까.”

젓가락을 들어 한 입 야무지게 퍼서 드는 성묵.

오물오물 씹는 그의 표정이 곧 오묘하게 변했다.

그녀는 저게 곧 환희로 바뀔 거라 확신했으나,

"야, 올리비아.”

“네?”

“너 제육이 좆으로 보여?”

“조, 좆…?”

현실은 달랐다. 그녀의 눈앞에 닥친 것은 뭐 이딴 걸 내왔냐는 듯한 금성묵의 험상궃은 얼굴이었다.

게다가 좆이라니, 요리하며 천재라는 소리만 듣던 그녀가 받아들이기엔 충격적인 단어였다.

“아주 자기 쪼대로 다 바꿨구만. 소스에는 화이트 와인도 들어가 있고, 얼씨구. 고추기름 대신에 에스플레트 페퍼(Espelette pepper)도 썼네?”

“그걸 어떻게…?”

조목조목 그녀가 어떤 의도로, 어떤 재료를 썼는지 읽어내는 성묵.

그녀는 이 정도로 자신을 철저하게 발가벗기듯이 알아채는 상대는 아버지 이후로 처음이었다.

‘선수 시절에 취미랄 게 먹는 것 뿐이었지.

성묵은 한국에 있을 때나, 메이저에 있을 때나 온갖 종류의 요리를 다 먹어봤다. 상당히 까다로운 손님이라 셰프가 쩔쩔 매는 일도 많았고 말이다.

“일단 이건 제육이 아니야. 게다가 이 접시 한 그릇으로 니가 어떤 사람인지는 대충 알았어.”

“불가능해요. 고작 그걸로 저에 대해 뭘 알았다는….”

"너, 한식을 우습게 보고 있구나?"

"그런 적 없어요!"

"그럼 밥은 어디 갔어?"

성묵의 일침에 뜨끔한 그녀.

한국 사람들이 고기반찬에 밥을 먹는다는 것은 평소에도 많이 봐왔지만, 이번에는 거기까지 생각이 닿지 못했다. 결국 내뱉을 수 있는 건 궁색한 변명뿐.

"그건, 제육만 해달라고 해서…."

“말이 앞뒤가 안 맞잖아. 그럼 옆에 감자 퓨레는 왜 했어? 너도 메인 디쉬 옆에 가니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거 아니야?”

“………….”

“내가 뭐 대단한 요구 한 것도 아니잖아. 그냥 이건 기본이 안 되어있어. 요리가 선민의식으로 범벅이 되어 있다고. 내 말이 틀려?”

조목조목 쏘아붙이는 성묵과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올리비아.

“……….”

“……엇.”

고개를 곧 치켜든 그녀의 얼굴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아차 싶었던 금성묵은 황급히 상황을 수습했다.

"크흠, 내 말 한 귀로 듣고 흘려. 한식 전공도 아닌데 이 정도면 꽤 잘한 거야. 자 여기 니 파일철."

가방을 뒤적이곤 그날 주웠던 파일철을 꺼내서는 올리비아에게 내밀었다. 눈물을 쓱쓱 닦은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뇨, 됐어요. 난 받을 자격 없어요.”

“뭐?”

"당신이 내걸었던 조건에 실패했잖아요. 당신을 만족시키는 거.“

성묵은 어이가 없어서 눈을 끔뻑였다.

줄 테니까 가져가라고 해도 거절할 줄은 몰랐다.

“맛은 있었거든? 내가 말한 건 구성이 조금 아쉽다는….”

“아뇨, 그거론 부족해요. 다시 할 거예요.”

“야, 그럴 필요 없다니까.”

“내일 점심에 다시 이곳으로 와요. 그땐 꼭 듣겠어요. 당신이 진심으로 맛있다고 하는걸.”

“야, 야! 올리비아!”

지 할 말만 하고는 쌩 나가는 그녀.

아마도 오기가 생긴 모양이다.

요리 말고는 안중에도 없는 듯 파일철은 그대로 두고 갔다.

“…쓰읍. 뭔가 귀찮게 됐는데.”

요리 감평이나 하면서 시시덕대기에는 내가 너무 바쁜 몸이었다. 그런데 막상 또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려 하니 마냥 나쁜 일은 아니었다.

‘잠깐, 이거 식비가 굳을 찬스 아니야?

지금 나는 상거지 수준으로 지갑이 얇은 상태.

당분간 올리비아가 해오는 요리에 태클을 걸어대면서 넙죽넙죽 집어먹는다면, 야구부 담당 조리관이 오시기 전까지 충분히 버틸 수 있으리라.

‘각오해라, 올리비아.

굴러 들어온 공짜 밥셔틀? 이거 못 참지.

무한 억까의 지옥이 뭔지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