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87 lines
15 KiB
Markdown
287 lines
15 KiB
Markdown
|
||
#125화 거지 그리츠(Gritz) - 괴짜
|
||
|
||
“오늘, 저는 자유에요.”
|
||
|
||
회색 머리가 인상적인 소녀 그레이스(Grace)는, 매우 엄격하고 근엄하고 진지한 태도로 단언했다.
|
||
|
||
그런 그레이스의 말에, 카닐리안(Carnelian) 가문의 집사는 정중한 태도로 고개를 조아렸다.
|
||
|
||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무녀님.”
|
||
|
||
차분한 말투와 표정, 우아하면서도 절제된 몸놀림.
|
||
|
||
대영주이자 대지주. 이 땅의 실질적인 군주나 다름없는 카닐리안의 품격과 위세를 보여주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그레이스는 그에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
||
|
||
“시중 들 사람이 필요하다면서 다른 사람들을 잔뜩 붙이는 것도, 호위를 위해서라면서 뒤에서 몰래몰래 따라와도 안 돼요.”
|
||
|
||
“여부가 있겠습니까.”
|
||
|
||
“이건 가주께서 저에게 약속하신 보상이에요. 그러니까, 절대, 절대로 제 휴일을 침해하지 말아 주세요. 알겠죠?”
|
||
|
||
“알고 있습니다. 걱정하시는 것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겁니다.”
|
||
|
||
집요한 확인에 짜증이 날 법도 하건만, 당황하거나 성가셔하는 기색조차 없이 단언하는 집사.
|
||
|
||
그를 지긋이 노려보던 그레이스는, 이내 싱긋 웃고는 몸을 돌렸다.
|
||
|
||
“그러면, 다녀오겠습니다! 와! 자유다!”
|
||
|
||
그녀의 얼굴에는 무척이나 산뜻한 미소가 걸려 있었는데, 여기서 조금만 더 하면 그대로 콧노래라도 부를 것 같은 모습이었다.
|
||
|
||
카르디안 저택은 도시와는 상당히 떨어진 곳에 세워져 있다.
|
||
|
||
통치자의 거처가 백성들이 북적거리며 사는 곳과 가까운 곳에 있으면 그 위엄에 흠이 간다는 이유였다.
|
||
|
||
말이나 마차 없이 이동하기에는 살짝 부담스러운 거리였지만, 그레이스는 개의치 않았다.
|
||
|
||
불과 1년 전만 해도 험한 산길도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다니며 약초나 과일 따위를 채집하던 그녀였다.
|
||
|
||
본의 아닌 저택 생활로 예전보다 살짝 몸이 무뎌지긴 했으나, 이 정도 도보 이동쯤이야 딱히 난관이라고 하기도 어려웠다.
|
||
|
||
모양새 그 자체는 지극히 우아하고 차분한, 허나 그 속도만큼은 어지간한 뜀박질만큼이나 빠르게 이동하기를 수십 분.
|
||
|
||
활기와 소란으로 가득 찬 도시에 그녀가 발을 들이자, 지나가던 행인 중 일부의 시선이 그레이스를 향했다.
|
||
|
||
그들의 반응은 세세한 차이는 있을지언정 큰 틀에서는 동일했다.
|
||
|
||
우선은 그레이스의 얼굴을 보며 호의, 호기심, 호색 등의 시선을 향한다.
|
||
|
||
그 후 그레이스의 복식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갸웃하거나 묘하게 안색이 나빠져 재빨리 시선을 돌린다.
|
||
|
||
보아선 안 되는 것을 보았다는 듯이, 혹은 함부로 엮이는 걸 피하고 싶다는 듯이.
|
||
|
||
“…음, 일단 빵집부터 갈까!”
|
||
|
||
마치 연극 무대의 배우처럼 묘하게 경쾌하고 또박또박 혼잣말을 한 뒤, 그레이스는 익숙한 듯이 도시를 나아갔다.
|
||
|
||
“어서 오세요! 지금 막 구운 빵입니다! 식기 전에 먹는 게 가장 맛있어요!”
|
||
|
||
후덕한 인상의 아주머니가 연신 호객 행위를 한다.
|
||
|
||
그녀의 가게 앞 매대에는 수십 개가 넘는 빵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서서히 퍼져 나오는 향이 무척이나 고소했다.
|
||
|
||
만약 다른 도시의 여행객이 이 모습을 보았더라면 놀라움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
||
|
||
귀족들의 식탁에나 오를 법한 고급스러운 빵들이 길거리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팔리고 있었으니까.
|
||
|
||
허나 거리의 시민들은 그 모습이 익숙한 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빵을 구매했고, 마침내 그레이스의 차례가 왔다.
|
||
|
||
“자자, 무슨 빵을 찾으… 아.”
|
||
|
||
그레이스의 얼굴을 본 빵집 주인의 얼굴이 순간 당혹으로 굳는다.
|
||
|
||
그리고 이내 본인이 그런 반응을 나타냈다는 것에 놀란 듯이, 다급히 표정을 정돈하고는 고개를 숙였다.
|
||
|
||
“어, 어서 오십시오, 무녀님.”
|
||
|
||
“에이, 무녀님은 무슨. 그냥 예전처럼 그레이스라고 해주세요.”
|
||
|
||
그레이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빵집 주인의 반응 같은 건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듯이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
||
|
||
빵집 주인은 잠시 망설이는 기색이었지만, 그레이스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빵을 고르는 모습을 보고는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
|
||
|
||
“그래, 그레이스. 고르기 어려우면 추천해 줄까?”
|
||
|
||
“대충 열 개쯤 부탁드려요! 나머지 열 개는 제가 고를 테니까.”
|
||
|
||
“네가 예전부터 먹성 좋은 거야 알고 있다만, 그렇게 식탐을 부렸다간 언덕에서 데굴데굴 구르게 될걸?”
|
||
|
||
“혼자 먹는 거 아니거든요! 동생들 가져다줄 거예요. 그러니까 좋은 걸로 골라주셔야 해요?”
|
||
|
||
“걔들이 맛을 알기나 해? 어차피 허겁지겁 입에 욱여넣을 게 뻔하구먼.”
|
||
|
||
“아! 진실로 때리기 금지!”
|
||
|
||
그레이스와 빵집 주인 사이에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흐른다.
|
||
|
||
그 왁자지껄한 모습에, 그레이스를 보며 묘하게 긴장하고 있던 사람들도 시선을 누그러트렸다.
|
||
|
||
커다란 바구니와 거기에 담긴 빵을 품에 한가득 안은 채, 그레이스는 도시의 서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
||
|
||
이윽고 그녀가 도착한 곳은 도시와 숲 사이에 있는 경계 지역이었는데, 그곳에는 서로 다른 외관의 두 건물이 나란히 서 있었다.
|
||
|
||
한쪽은 매우 낡고 허름하여 머지않아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고, 다른 한쪽은 아직 건설 도중인 것으로 보였으나 사용된 자재나 짜임새가 도시 중심부의 어지간한 저택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았다.
|
||
|
||
새로 건축 중인 건물을 보는 그레이스의 입가에는 미소가 담겨 있었지만, 그 눈빛에는 희미하게 아련한 기운이 깃들어 있었다.
|
||
|
||
“어? 레이 언니!”
|
||
|
||
“와아! 누나다!”
|
||
|
||
어린아이 특유의 높은 목소리와 두다다하고 경쾌한 뜀박질 소리.
|
||
|
||
자기를 향해 빠르게 접근하는 아이들의 기척을 느낀 그레이스는 익살스러운 빛으로 표정을 덧씌우며 고아원의 동생들을 맞이했다.
|
||
|
||
“다들 잘 있었어? 원장님 말은 잘 들었고?”
|
||
|
||
“누나, 근데 그거 뭐야? 빵이야?”
|
||
|
||
“우리 줄 거지? 그렇지?”
|
||
|
||
질문은 사뿐히 무시한 채 제 용건들만 말하는 동생들에게 쓴웃음을 지으며, 그레이스는 말했다.
|
||
|
||
“빵이지. 근데 말 잘 듣는 애들만 먹을 수 있는 빵이야.”
|
||
|
||
“잘 들었어!”
|
||
|
||
“우리 착해!”
|
||
|
||
“그래, 그래, 장하다. 하지만 마음대로 먹으면 혼날 테니까 일단 들어가자.”
|
||
|
||
“응!”
|
||
|
||
아이들은 혹여 늦게 움직이면 빵이 사라지기라도 할 것처럼 쏜살같이 움직였다.
|
||
|
||
두 건물 중 낡고 헤진 쪽으로 그레이스가 발을 들이자, 그 짧은 새에 소식이 전해졌는지 건물 안 여기저기에 퍼져 있던 아이들이 단숨에 모여들었다.
|
||
|
||
대략 십여 명 정도 되는 아이들은 그 연령대에 따라 그레이스를 향한 반응이 달랐는데, 비교적 어린 나이일수록 그레이스를 보며 순수하게 즐거워하고 있었고, 반대로 나이가 많은 이들은 무척이나 복잡한 기색이었다.
|
||
|
||
개중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소녀를 향해, 그레이스는 익살스레 말했다.
|
||
|
||
“지젤, 언니 팔 빠질 것 같은데 안 도와주고 보고만 있을 거야?”
|
||
|
||
“…이리로 주세요.”
|
||
|
||
그레이스에게서 빵 바구니를 받아 든 지젤은, 이내 아이들의 손이 닿지 않는 높은 선반 위에 그것을 올려두었다.
|
||
|
||
“일 나간 사람들 다 돌아오면 그때 다 같이 먹을 거니까 기다려.”
|
||
|
||
일방적인 선언에 아이들 몇몇이 볼멘소리를 냈지만, 지젤이 눈초리를 험하게 하자 하나같이 입을 다물었다.
|
||
|
||
나이 차 나는 어른보다 몇 살 차이 안 나는 형이나 언니가 더 무서운 시기였다.
|
||
|
||
지젤은 그대로 또래 아이들에게 눈으로 신호를 보냈고, 그들이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사라지자, 자리에는 지젤과 그레이스만이 남겨졌다.
|
||
|
||
그 일사불란한 통제력을 보고, 그레이스가 휘파람을 불며 감탄했다.
|
||
|
||
“지젤, 내가 니 언니라서 정말 다행이야. 동생이었으면 숨도 못 쉬고 살았을 거 같네.”
|
||
|
||
“저도 다행이네요. 언니가 동생이었으면 사고 치는 거 뒷바라지하느라고 머리가 아팠을 거 같으니까요.”
|
||
|
||
“말이 너무 심하네! 흑흑.”
|
||
|
||
상처받았어, 라며 우는 시늉을 하는 그레이스를, 지젤은 씁쓸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말했다.
|
||
|
||
“뭐 하러 저런 걸 사 오신 거예요. 그럴 돈이 있으면 본인한테나 쓰시지.”
|
||
|
||
“저런 거 없어도 충분히 잘 먹고 다니니까 걱정 마. 자 봐, 몸매랑 피붓결 좋아진 거 안 보여? 가끔 나도 거울 보고 놀란다니까? 아니, 이 미소녀는 누구지?! 하고.”
|
||
|
||
“저희도 이제 잘 먹어요. 옷도 좋은 거 입고. 집은 아직 낡았지만, 그것도 공사 끝나고 나면 옮길 테고.”
|
||
|
||
“미소녀 발언은 깔끔하게 무시하는 거야? 지적해 주지 않으면 무안하잖니.”
|
||
|
||
“…….”
|
||
|
||
그레이스는 계속해서 분위기를 띄우려는 듯 농담을 반복했지만, 지젤의 얼굴은 쉽게 펴지지 않았다.
|
||
|
||
그런 동생을 향해, 그레이스는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며 쯧쯧, 하고 혀를 찼다.
|
||
|
||
“얘는 귀가 얇아서 문제라니까. 도시에 도는 소문은 다 헛소문이야. 산제물이 어쩌고 하는 얘기가 사실이었으면, 지금 내가 여기 이렇게 혼자 털레털레 올 수 있었겠어? 감시가 다닥다닥 붙었겠지.”
|
||
|
||
“반년 전에 왔을 때는 그랬던 것 같은데.”
|
||
|
||
“옛날 일은 옛날 일일 뿐이란다.”
|
||
|
||
“…정말요?”
|
||
|
||
“그래, 다 질투하는 거라니까? 자기들은 이 자리에 못 앉으니까 괜히 나쁜 소문 퍼트리고 그러는 거야. 그러니까 휘둘리지 마. 다른 애들한테도 그렇게 전해주고.”
|
||
|
||
그레이스의 거듭된 설득에, 처음에는 미심쩍어하는 기색이었던 지젤 역시 서서히 ‘그런가?’하는 생각이 그 얼굴에 드러났다.
|
||
|
||
이거라면 어떻게든 속여 넘길 수 있을 것 같다며, 그레이스는 내심으로 안도했다.
|
||
|
||
그러니까, 대략 3초 정도는 그럴 수 있었다.
|
||
|
||
벌컥!
|
||
|
||
요란하게 문을 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성큼성큼 두 명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
그리하여 모습을 드러낸 것은, 희끗희끗 바랜 머리색이 인상적인 초로의 여인.
|
||
|
||
이 고아원의 원장이자, 그레이스에게는 어머니나 마찬가지인 그녀는 그레이스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이내 그레이스가 무어라 말을 하기도 전에 성큼 그녀를 끌어안았다.
|
||
|
||
그리고 곧바로 이어지는 흐느낌.
|
||
|
||
단순히 오랜만에 돌아온 딸을 대하는 거라기엔 너무나 서글프고, 죄책감으로 가득 찬 그 울음에 조금은 설득되는 듯했던 지젤의 얼굴이 다시금 ‘그러면 그렇지’라는 식으로 썩어들어갔다.
|
||
|
||
심지어 원장이 돌입하며 문이란 문은 죄다 활짝 오픈하고 돌진해 왔던 탓에, 그 너머에서 돌아가는 상황을 살피던 아이들마저 하나둘씩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
||
|
||
“흑, 흐으윽.”
|
||
|
||
“으아아아앙.”
|
||
|
||
슬픔이란 지독한 전염병과 닮아 있었다.
|
||
|
||
사정을 아는 아이들은 묵묵히 눈시울을 붉혔고, 모르는 아이들은 그냥 주변에서 우니까 거기에 휩쓸려 울었다.
|
||
|
||
이윽고 울음바다가 되어버린 고아원에서, 그레이스는 홀로 탄식했다.
|
||
|
||
인생이란 참으로 쉽지 않은 것이었다.
|
||
|
||
***
|
||
|
||
“하아아아아.”
|
||
|
||
서서히 해가 저물기 시작할 무렵.
|
||
|
||
길거리를 거닐던 그레이스는 무심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
|
||
어지간해서는 활기차고 명랑한 태도를 잃어버리지 않는 그녀였지만, 모처럼의 귀갓길이 즐거운 추억 쌓기는커녕 집단 통곡의 장으로 변해버린 참사 앞에서는 차마 푸념을 금하기 어려웠다.
|
||
|
||
오죽했으면 고아원에 계속 머물기가 부담스러워 도망치듯이 빠져나왔겠는가.
|
||
|
||
“…어디로 가지.”
|
||
|
||
그레이스는 고민에 빠졌다.
|
||
|
||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고아원에서 한계까지 늦장을 부리려던 본래 계획은 폐기할 수밖에 없다.
|
||
|
||
그런데 도시 어딘가에서 적당히 시간을 보내기에는 허가 없이 갈아입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이 의상이 문제고, 그렇다고 아직 시간이 충분히 남았는데 어영부영 카닐리안 저택으로 돌아가는 건 그것대로 싫다.
|
||
|
||
결국 이도 저도 못한 채, 그저 사람 눈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걷고 또 걷기를 얼마쯤이었을까.
|
||
|
||
문득, 그레이스의 시야에 이상한 것이 들어왔다.
|
||
|
||
‘오크통?’
|
||
|
||
흔히 참나무(Oak)를 재료로 사용하여 만드는, 커다란 나무 술통.
|
||
|
||
사실 오크통 그 자체는 그렇게까지 드문 물건도, 이상한 물건도 아니었다.
|
||
|
||
굳이 주조장까지 가지 않더라도, 그럭저럭 생활 여건이 나쁘지 않은 가정이라면 창고에 하나둘쯤 가지고 있는 녀석이었으니까.
|
||
|
||
하지만 그 오크통이 실내가 아닌 실외에서 그것도 혼자 데굴데굴 바닥을 구르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
||
|
||
어딜 어떻게 봐도 너무나 수상하지 않은가.
|
||
|
||
대체 저게 뭔가 싶어 빤히 바라보고 있자니, 갑자기 덜컥, 하고 오크통이 그 움직임을 멈추었다.
|
||
|
||
‘언덕에 걸렸구나.’
|
||
|
||
이 도시의 골목길은 그렇게 평탄하지도, 깔끔하지도 않다.
|
||
|
||
곳곳에 경사나 계단 비슷한 단차가 있었고, 각종 쓰레기 따위가 바닥에 널려 있는 일도 흔했다.
|
||
|
||
애초에 오크통이 혼자서 어디로든 굴러갈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는 뜻.
|
||
|
||
혹시 저 오크통 안에 무슨 짐승 같은 게 들어가 있어서 통을 굴린 거라면, 이제 슬슬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을까.
|
||
|
||
그런 기대를 품고 그레이스가 오크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 정말로 그 안에서 무언가가 불쑥 튀어나왔다.
|
||
|
||
다만 그것은 고양이나 개 같은 짐승이 아니라, 웬 사람의 팔과 나무 지팡이였다.
|
||
|
||
“…어?”
|
||
|
||
그레이스의 당혹을 아는지 모르는 지, 정체불명의 괴인은 여기저기 벽이나 지면을 툭툭 두드리며 주변 환경을 확인하는 듯하더니, 이내 지팡이를 땅에 힘껏 꽂아 오크통 그 자체를 들어 올렸다.
|
||
|
||
가느다란 지팡이 하나를 다리 삼아, 커다란 오크통이 공중으로 솟구친 기이하기 짝이 없는 광경.
|
||
|
||
그레이스가 입을 벌린 채 굳어 있는 사이에 오크통은 앞을 가로막던 언덕을 재주 좋게 뛰어넘었고, 이내 다시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다.
|
||
|
||
“자, 잠깐!”
|
||
|
||
잠시 얼어붙어 있던 그레이스는, 수수께끼의 오크통이 시야 밖으로 사라지는 걸 보고는 다급히 그 뒤를 쫓았다.
|
||
|
||
저 기괴한 존재의 정체를 확인하지 않으면, 오늘 밤은 궁금해서 잠도 제대로 못 잘 것 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