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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화 마검 포르테(Forte) (17) - 조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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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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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의 반문에, 그의 눈앞에 있던 괴팍한 마법사의 행동이 순간적으로 정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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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그것도 잠시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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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헛소리야? 어느 나라에서 온 놈팡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썩 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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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말하며 마법사는 문을 쾅 닫아버리려 했지만, 그보다 포르테가 입을 여는 게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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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게 놔두면 또 돌아갈 거다. 막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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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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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개 같은 몸놀림으로 다리를 뻗어 신발을 문 사이에 욱여넣으니, 닫히던 문이 덜컥하고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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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 하는 짓거리지? 이 발 안 치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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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테는 순간 자기 입으로 대답을 돌려줄까 했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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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상황을 일종의 연극이라고 가정하면, 그가 너무 존재감을 드러내 봐야 좋을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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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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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한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처럼, 그러니까 너 스스로 판단하고 생각하는 것처럼 행동해라. 어차피 실패하면 하는 대로 다시 돌아가는 것뿐이니, 부담 없이 질러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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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는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막막하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재도전이 가능하다는 말에 용기를 얻었는지 이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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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형 맞잖아요! 이미 알아차렸으니까 자백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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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헛소리냐니까! 증거라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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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고 뭐고, 그냥 딱 보면 인형인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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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피나는 눈앞의 마법사가 인형인 이유 같은 건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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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녀에게는 포르테를 향한 신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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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테가 인형이라고 단언했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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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의 너무나 단호한 태도에, 마법사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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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되는 소리! 멀쩡한 사람보고 인형이라고? 대체 무슨 근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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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형이 인형 같아서 인형 같다고 한 건데, 그 이유를 물어도 곤란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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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막무가내가 다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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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는 고개를 위로 쳐들고 한탄하더니, 이내 투덜거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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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됐다. 그래. 이야기 정도는 들어줄 테니 들어와라. 대신 그 인형 소리는 작작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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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가 내민 제안에, 피나는 데구르르 눈을 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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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테가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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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들여도 될 거다. 아마 천공의 현자는 자기 정체를 숨기고 싶은 모양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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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어? 네? 천공의 현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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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봐라. 그 석상과 똑같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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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악하는 피나를 향해, 포르테는 담담히 설명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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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내 생각대로 저 몸체가 인형이라면 그게 진짜 모습은 아닐 거다. 허나 적어도 세간에 알려진 ‘천공의 현자’는 눈앞의 존재일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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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까의 나레이션을 생각해 보면 피나 너의 배역은 용사 페르난도 발레스티아일 거다. 그러니까 지금 상황은 용사가 천공의 현자를 처음으로 만난 장면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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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 학원의 시스템은 계약자 너에게 무언가 원하는 것이 있다. 헌데 네가 자기 뜻대로 퀘스트를 수행할 것 같지 않으니 너를 설득하기 위해 이런 무대를 만들어낸 것이다. 여기까지 이해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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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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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 자신감 없는 대답이었지만 포르테는 개의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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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인 관계에 요령이 없고 자신감이 부족할 뿐, 피나의 머리 자체는 그리 나쁘지 않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 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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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이제부터 겪게 될 체험은, 아마도 용사 페르난도와 그 동료들의 여정이다. 시스템은 네가 이걸 겪고 나면 자기 뜻대로 움직여 주리라 생각하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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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어떻게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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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에 대항하기 위해서라도, 정보는 필요하다. 우선은 장단을 맞춰주다가, 여차할 때는 뒤집어엎어 버리겠다는 마음가짐을 지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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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앞에서 굳어 있는 피나를 향해, 마법사, 아니 천공의 현자가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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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들어오고 뭐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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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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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다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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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하게 소형동물 같은 동작으로 실내에 돌입한 피나를 못마땅하다는 듯이 바라보던 현자는, 이내 손가락을 튕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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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지면에서 뻗어 나온 나무뿌리가 즉석에서 테이블과 의자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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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석 의자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은 현자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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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용건이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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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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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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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스티아의 후손으로서, 그녀는 용사 페르난도의 일대기라면 꽤 세세한 부분까지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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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어릴 때부터 매일 같이 연극이며 소설이며 관련 문화들을 꾸준히 접했으니 당연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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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와 현자의 첫 만남은 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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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의 부름에 지혜로운 현자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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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가 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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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용건으로 나를 찾아온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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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가 대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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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을 쓰러트리는 일에 당신의 도움을 얻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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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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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에 있는 하찮은 마법사 따위가 무슨 도움이 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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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가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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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지혜를 인근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겸손해하지 마시고 부디 도움을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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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가 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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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여 마왕을 쓰러트리려고 하는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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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가 대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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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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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가 감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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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토록 고결한 뜻을 보았는데 어찌 이를 마다할 수 있겠소. 부족한 몸이나마 그대의 여정에 함께하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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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용사와 현자는 함께 길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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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는 목청을 가다듬은 뒤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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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흠,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마왕을 쓰러트리고 싶어요. 그걸 위해 현자님의 도움이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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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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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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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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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한 새끼들 뒈지든 말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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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는 입을 떡하니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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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하면서도 차분한. 그러면서도 세상의 환란을 우려하며 이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는 현자는 어디 가버렸는가. 이건 그냥 삐딱 괴팍한 아저씨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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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의 말, 아니 불평불만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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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던 여자랑 결혼 못 했다고 전쟁 일으킨 병신. 전쟁 질 것 같으니 대뜸 마왕을 소환해 버린 병신. 두 나라가 공멸하기를 기대하며 뒤에서 은근히 수작질을 벌이던 병신들. 자기 욕심만 챙기는 병신들 때문에 세상이 이 꼬라지가 된 거다. 그딴 놈들 뒤를 내가 왜 닦아줘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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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의 현자는 멍청한 일에 애를 쓰는 바보를 보는 듯한 눈으로 피나를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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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지금 당하는 나라들은 죄다 자업자득. 자기가 저지른 일의 업보를 치르는 것뿐이야. 해결을 해도 그놈들이 할 일이고. 그러니 괜히 혼자 설치지 말고 그냥 적당히 다른 곳으로 몸이나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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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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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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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는 조금 울컥한 기색으로 쏘아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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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가 아니면 사건을 해결하려고 하면 안 되는 건가요? 잘못을 저지른 이들은 무슨 꼴을 당해도 괜찮은 건가요? 아니 애초에, 그걸 잘못이라고 할 수는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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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일으킨 이들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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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를 위해 불러선 안 될 존재를 불러낸 이들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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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과 탐욕을 위해 전쟁이 심화하도록 부추긴 이들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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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마왕의 손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전부 그런 이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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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하루하루 쟁기질하던 농부, 열심히 빵을 굽던 여관 주인, 골목에서 뛰놀던 아이들. 그런 아이들이 이 상황에 책임이 있나요? 그런 사람들이 마왕 손에 당하는 것도 자업자득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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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아닐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게 그들을 도울 이유가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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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돕지 마세요. 전 도울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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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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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는 현자를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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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이 아니다. 내 책임이 아니다. 내 잘못이 아니다. 나한테 아무런 이득도 없는데 왜 해야 하냐. 근데 아마도, 현자님이 말하는 ‘욕심만 챙긴 사람들’도 똑같이 행동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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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나를 그딴 놈들과 비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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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가 의자를 박차고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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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동시에 주변 풍경이 불안정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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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전개가 시스템 쪽에서 준비한 것과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는 증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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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용사 페르난도가 현자를 설득한 방식은 이런 식이 아니었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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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금 ‘리셋’을 준비하려는 시스템을 감지하고, 포르테는 힘을 내뿜으며 거기에 저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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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극에 살아 있는 배우를 불렀다면, 전개가 다소 어긋나는 것쯤은 당연히 각오해야 할 일이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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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뒤편에서 벌어지는 힘 싸움을 알지 못한 채, 피나와 무대 위의 현자는 서로를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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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피나가 몸을 휙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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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을 돌려 떠나가는 피나의 뒷모습을 복잡한 눈으로 바라보던 현자는, 이내 혀를 차고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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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아까 나를 보고 왜 인형이라고 말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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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는 그냥 그렇게 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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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제대로 설명은 안 해주겠다 이건가. 그러면 내가 마왕 토벌에 협력하면 알려줄 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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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는 잠시 말을 머뭇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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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그녀는 포르테의 말을 믿었을 뿐, 여전히 현자가 ‘인형’이라는 포르테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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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감 같은 거라서 말로는 하기 어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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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다. 그러면 옆에서 관찰하면 될 일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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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시야가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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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은 바뀐 세부 전개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삐걱거림을 자아냈지만, 아직은 오차 범위라고 생각했는지 결국 다음 페이지의 막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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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를 동료로 맞이한 용사는 대륙 곳곳을 돌아다니며 마왕군의 침공에 맞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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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 본 사람들을 돌로 만드는 힘을 지닌 마물을 베어 넘겼고, 영주에게 버려진 영민들을 지켜냈으며, 마왕군의 거점에 쳐들어가 간부의 숨통을 끊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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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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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귀에 신기한 이야기가 들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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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전쟁의 참화로 쑥대밭이 된 대륙 곳곳을 떠돌며 사람들을 치유하는 성녀의 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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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을 쓰러트리는 여정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판단한 용사는, 성녀를 찾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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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은발과 푸른 눈동자를 지닌 여인은 신의 축복을 사용해 사람들을 치유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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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본 용사 일행은 그 헌신적인 모습에 감격하며 동료가 되어 달라고 권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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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거참. 어이. 용사. 저년은 글렀다.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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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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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발트 왕국 출신이랬지? 마왕한테 첫 번째로 멸망한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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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죠? 일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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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마왕을 소환한 게 저년 아버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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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의 비아냥 섞인 한마디에, 아름다웠던 여인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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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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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의 정체는 마왕을 소환한 나라의 공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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