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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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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화 마검 포르테(Forte) (17) - 조우극

“인형이라고요?”

피나의 반문에, 그의 눈앞에 있던 괴팍한 마법사의 행동이 순간적으로 정지했다.

허나 그것도 잠시뿐.

“무슨 헛소리야? 어느 나라에서 온 놈팡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썩 꺼져!”

그리 말하며 마법사는 문을 쾅 닫아버리려 했지만, 그보다 포르테가 입을 여는 게 빨랐다.

《닫게 놔두면 또 돌아갈 거다. 막아라.》

피나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번개 같은 몸놀림으로 다리를 뻗어 신발을 문 사이에 욱여넣으니, 닫히던 문이 덜컥하고 멈추었다.

“이게 뭐 하는 짓거리지? 이 발 안 치워?!”

포르테는 순간 자기 입으로 대답을 돌려줄까 했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지금 이 상황을 일종의 연극이라고 가정하면, 그가 너무 존재감을 드러내 봐야 좋을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아직은.

《가능한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처럼, 그러니까 너 스스로 판단하고 생각하는 것처럼 행동해라. 어차피 실패하면 하는 대로 다시 돌아가는 것뿐이니, 부담 없이 질러도 괜찮다.》

피나는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막막하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재도전이 가능하다는 말에 용기를 얻었는지 이내 입을 열었다.

“이, 인형 맞잖아요! 이미 알아차렸으니까 자백하세요!”

“무슨 헛소리냐니까! 증거라도 있어?”

“증거고 뭐고, 그냥 딱 보면 인형인걸요!”

물론 피나는 눈앞의 마법사가 인형인 이유 같은 건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포르테를 향한 신뢰가 있었다.

포르테가 인형이라고 단언했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피나의 너무나 단호한 태도에, 마법사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멀쩡한 사람보고 인형이라고? 대체 무슨 근거로?”

“이, 인형이 인형 같아서 인형 같다고 한 건데, 그 이유를 물어도 곤란해요!”

“이런 막무가내가 다 있나…!”

마법사는 고개를 위로 쳐들고 한탄하더니, 이내 투덜거리며 말했다.

“하, 됐다. 그래. 이야기 정도는 들어줄 테니 들어와라. 대신 그 인형 소리는 작작하고.”

마법사가 내민 제안에, 피나는 데구르르 눈을 굴렸다.

포르테가 조언했다.

《받아들여도 될 거다. 아마 천공의 현자는 자기 정체를 숨기고 싶은 모양이니.》

‘그렇군요. …어? 네? 천공의 현자요?

《얼굴을 봐라. 그 석상과 똑같지 않나.》

경악하는 피나를 향해, 포르테는 담담히 설명을 이어갔다.

《물론 내 생각대로 저 몸체가 인형이라면 그게 진짜 모습은 아닐 거다. 허나 적어도 세간에 알려진 ‘천공의 현자’는 눈앞의 존재일 터.》

《그리고 아까의 나레이션을 생각해 보면 피나 너의 배역은 용사 페르난도 발레스티아일 거다. 그러니까 지금 상황은 용사가 천공의 현자를 처음으로 만난 장면이라는 뜻이다.》

《천공 학원의 시스템은 계약자 너에게 무언가 원하는 것이 있다. 헌데 네가 자기 뜻대로 퀘스트를 수행할 것 같지 않으니 너를 설득하기 위해 이런 무대를 만들어낸 것이다. 여기까지 이해했나?》

‘음, 네. 아마도.

썩 자신감 없는 대답이었지만 포르테는 개의치 않았다.

대인 관계에 요령이 없고 자신감이 부족할 뿐, 피나의 머리 자체는 그리 나쁘지 않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 덕이었다.

《네가 이제부터 겪게 될 체험은, 아마도 용사 페르난도와 그 동료들의 여정이다. 시스템은 네가 이걸 겪고 나면 자기 뜻대로 움직여 주리라 생각하는 거고.》

‘그러면, 어떻게 하죠?

《시스템에 대항하기 위해서라도, 정보는 필요하다. 우선은 장단을 맞춰주다가, 여차할 때는 뒤집어엎어 버리겠다는 마음가짐을 지녀라.》

문 앞에서 굳어 있는 피나를 향해, 마법사, 아니 천공의 현자가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안 들어오고 뭐 해!”

“아, 네!”

후다닥.

묘하게 소형동물 같은 동작으로 실내에 돌입한 피나를 못마땅하다는 듯이 바라보던 현자는, 이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지면에서 뻗어 나온 나무뿌리가 즉석에서 테이블과 의자를 만들어냈다.

즉석 의자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은 현자가 물었다.

“그래서, 용건이 뭐지?”

“음.”

피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발레스티아의 후손으로서, 그녀는 용사 페르난도의 일대기라면 꽤 세세한 부분까지 알고 있었다.

그야 어릴 때부터 매일 같이 연극이며 소설이며 관련 문화들을 꾸준히 접했으니 당연한 일.

‘용사와 현자의 첫 만남은 분명….

용사의 부름에 지혜로운 현자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현자가 물었습니다.

“무슨 용건으로 나를 찾아온 것이오?”

용사가 대답했습니다.

“마왕을 쓰러트리는 일에 당신의 도움을 얻고자 합니다.”

현자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숲속에 있는 하찮은 마법사 따위가 무슨 도움이 되겠소?”

용사가 말했습니다.

“당신의 지혜를 인근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겸손해하지 마시고 부디 도움을 주십시오.”

현자가 물었습니다.

“어찌하여 마왕을 쓰러트리려고 하는 것이오?”

용사가 대답했습니다.

“그저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입니다.”

현자가 감탄했습니다.

“아! 이토록 고결한 뜻을 보았는데 어찌 이를 마다할 수 있겠소. 부족한 몸이나마 그대의 여정에 함께하리다.”

이리하여 용사와 현자는 함께 길을 떠났습니다.

피나는 목청을 가다듬은 뒤에 말했다.

“어흠,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마왕을 쓰러트리고 싶어요. 그걸 위해 현자님의 도움이 필요해요.”

현자가 대답했다.

“내가 왜?”

“?”

“멍청한 새끼들 뒈지든 말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지?”

피나는 입을 떡하니 벌렸다.

신중하면서도 차분한. 그러면서도 세상의 환란을 우려하며 이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는 현자는 어디 가버렸는가. 이건 그냥 삐딱 괴팍한 아저씨가 아닌가.

현자의 말, 아니 불평불만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원하던 여자랑 결혼 못 했다고 전쟁 일으킨 병신. 전쟁 질 것 같으니 대뜸 마왕을 소환해 버린 병신. 두 나라가 공멸하기를 기대하며 뒤에서 은근히 수작질을 벌이던 병신들. 자기 욕심만 챙기는 병신들 때문에 세상이 이 꼬라지가 된 거다. 그딴 놈들 뒤를 내가 왜 닦아줘야 해?”

천공의 현자는 멍청한 일에 애를 쓰는 바보를 보는 듯한 눈으로 피나를 응시했다.

“어차피 지금 당하는 나라들은 죄다 자업자득. 자기가 저지른 일의 업보를 치르는 것뿐이야. 해결을 해도 그놈들이 할 일이고. 그러니 괜히 혼자 설치지 말고 그냥 적당히 다른 곳으로 몸이나 피해.”

“싫은데요.”

“뭐?”

피나는 조금 울컥한 기색으로 쏘아붙였다.

“당사자가 아니면 사건을 해결하려고 하면 안 되는 건가요? 잘못을 저지른 이들은 무슨 꼴을 당해도 괜찮은 건가요? 아니 애초에, 그걸 잘못이라고 할 수는 있나요?”

전쟁을 일으킨 이들이 있을 것이다.

승리를 위해 불러선 안 될 존재를 불러낸 이들이 있을 것이다.

이권과 탐욕을 위해 전쟁이 심화하도록 부추긴 이들이 있을 것이다.

허나 마왕의 손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전부 그런 이들인가?

“그냥 하루하루 쟁기질하던 농부, 열심히 빵을 굽던 여관 주인, 골목에서 뛰놀던 아이들. 그런 아이들이 이 상황에 책임이 있나요? 그런 사람들이 마왕 손에 당하는 것도 자업자득인가요?”

“그래, 아닐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게 그들을 도울 이유가 되나?”

“그러면 돕지 마세요. 전 도울 거니까.”

“…?”

피나는 현자를 노려보았다.

“내 일이 아니다. 내 책임이 아니다. 내 잘못이 아니다. 나한테 아무런 이득도 없는데 왜 해야 하냐. 근데 아마도, 현자님이 말하는 ‘욕심만 챙긴 사람들’도 똑같이 행동했을 거예요.”

“감히 나를 그딴 놈들과 비교해!?”

현자가 의자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주변 풍경이 불안정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금 이 전개가 시스템 쪽에서 준비한 것과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는 증명이었다.

아마 용사 페르난도가 현자를 설득한 방식은 이런 식이 아니었을 터.

다시금 ‘리셋’을 준비하려는 시스템을 감지하고, 포르테는 힘을 내뿜으며 거기에 저항했다.

인형극에 살아 있는 배우를 불렀다면, 전개가 다소 어긋나는 것쯤은 당연히 각오해야 할 일이라면서.

무대 뒤편에서 벌어지는 힘 싸움을 알지 못한 채, 피나와 무대 위의 현자는 서로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피나가 몸을 휙 돌렸다.

등을 돌려 떠나가는 피나의 뒷모습을 복잡한 눈으로 바라보던 현자는, 이내 혀를 차고는 말했다.

“너, 아까 나를 보고 왜 인형이라고 말한 거지?”

“그거는 그냥 그렇게 보이니까….”

“흥, 제대로 설명은 안 해주겠다 이건가. 그러면 내가 마왕 토벌에 협력하면 알려줄 테냐?”

피나는 잠시 말을 머뭇거렸다.

애초에 그녀는 포르테의 말을 믿었을 뿐, 여전히 현자가 ‘인형’이라는 포르테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했다.

“직감 같은 거라서 말로는 하기 어려워요.”

“됐다. 그러면 옆에서 관찰하면 될 일이니.”

순간 시야가 일그러졌다.

시스템은 바뀐 세부 전개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삐걱거림을 자아냈지만, 아직은 오차 범위라고 생각했는지 결국 다음 페이지의 막을 열었다.

현자를 동료로 맞이한 용사는 대륙 곳곳을 돌아다니며 마왕군의 침공에 맞섰습니다.

마주 본 사람들을 돌로 만드는 힘을 지닌 마물을 베어 넘겼고, 영주에게 버려진 영민들을 지켜냈으며, 마왕군의 거점에 쳐들어가 간부의 숨통을 끊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의 귀에 신기한 이야기가 들려왔습니다.

그것은 전쟁의 참화로 쑥대밭이 된 대륙 곳곳을 떠돌며 사람들을 치유하는 성녀의 소문이었습니다.

마왕을 쓰러트리는 여정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판단한 용사는, 성녀를 찾아갔습니다.

아름다운 은발과 푸른 눈동자를 지닌 여인은 신의 축복을 사용해 사람들을 치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를 본 용사 일행은 그 헌신적인 모습에 감격하며 동료가 되어 달라고 권유했습니다.

“허, 거참. 어이. 용사. 저년은 글렀다. 안 돼.”

“네? 왜요?”

“너 발트 왕국 출신이랬지? 마왕한테 첫 번째로 멸망한 국가.”

“그…랬죠? 일단은.”

“그 마왕을 소환한 게 저년 아버지다.”

현자의 비아냥 섞인 한마디에, 아름다웠던 여인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그렇다.

성녀의 정체는 마왕을 소환한 나라의 공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