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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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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화 마검 포르테(Forte) (16) - 인형극

“마, 마검님. 뭔가 이상한 퀘스트가 떠올랐어요!”

불안과 초조가 어린 목소리로, 피나는 자기가 확인한 퀘스트의 내용을 쭉 설명했다.

용사의 길. 임시 저장소. 토벌. 이번에야말로.

노골적으로 불길함과 불온함을 풍기는 그 내용을 듣고 포르테는 잠시 침묵에 잠겼다.

퀘스트 자체도 여러모로 문제가 많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충격적인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본체와의 연결이 끊어졌군.

황태자 알론드.

언제나 포르테와 연결된 상태로 존재하던 또 하나의 자신이 느껴지지 않았다.

TRPG의 캐릭터가 플레이어와 분리되고, 영화 속 배우와 배역이 서로 떨어져 나간 것 같은 사태.

정체성 그 자체를 어지럽히는 듯한 상태에 잠시 혼란을 느낀 포르테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냉정함을 되찾았다.

모험가 베른 때의 배역 파괴를 교훈 삼은 황태자가, 분신 쪽의 기억을 일부 제한 하는 등 본체와 분신의 자아를 어느 정도 구분 지어 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마검 포르테로서 자아를 확실히 한 뒤, 그는 조용히 현 상황을 고찰했다.

‘천공 학원의 법칙이 더 강해졌다. 본래 천공 학원의 영역이 개방형이었다면, 지금은 폐쇄형으로 바뀌었어.

열린 엘리베이터와 닫힌 엘리베이터. 온라인과 오프라인. 비유는 뭐라도 좋다.

중요한 건 현 상황에선 황태자와의 연결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

그렇다면 그에 따른 패널티는?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여기에 있는 내가 무너지겠군.

따로 마력 따위를 공급받는 건 아니지만, 본체와의 연결은 그 자체만으로 분신인 포르테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게 없어진 이상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포르테는 점점 약화 되고 이윽고 소멸에 이를 터.

《우선은 아래층의 카일런과 합류하는 게 좋겠군. 어떤 상황이든 헤쳐 나갈 방법은 있다. 그러니 냉정함을 유지해라.》

그 사실을 피나에게 알리지 않은 채, 포르테는 담담히 지시를 이어 나갔다.

지금 상태에서 피나에게 자신의 위기를 알려봐야 혼란만 부추길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네!”

포르테의 확고한 목소리에 안심감을 느낀 것일까.

불안해하던 피나의 얼굴에 차분함이 돌아오고, 그녀가 두다다다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다행히 카일런은 그럭저럭 무사했다.

“피, 피나 양. 어찌 되었습니까? 그 악마는요?”

“쓰러트렸어요! 그나저나, 이상한 퀘스트는 못 받으셨나요?”

“퀘스트라면, ‘시종의 길’이라는 이거 말입니까?”

【퀘스트: 시종의 길】

【클리어 조건: 용사의 퀘스트 완수】

【제한 시간: 무제한】

【보상: 생존】

【특이 사항 1: 당신은 용사의 시종으로서 ‘임시 저장소’의 역할을 면제받았습니다.】

【특이 사항 2: 용사를 극진히 모시고 퀘스트 완수에 조력하십시오.】

【특이 사항 3: 용사의 명령을 거부했을 시, 시종 자격이 박탈됩니다.】

만약 포르테가 인간이었더라면 미간을 찌푸렸을 것이다.

카일런이 알려준 퀘스트에 따르면, 이 상황이 한층 더 노골적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용사의 시종으로서 임시 저장소를 면제받았다.

그 말은 즉, 시종이 아니었다면 임시 저장소의 역할을 맡았으리란 뜻이다.

피나 역시 그 의미를 깨달았는지, 그녀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마검님. 혹시, 이 ‘임시 저장소’라는 거….”

《다른 학생들을 뜻하는 거겠지. 어쩌면 졸업생까지도 전부.》

“말도 안 돼요!”

피나의 비명은 타당했다.

임시 저장소를 토벌하고 자원을 회수하라니.

보통 퀘스트가 지정하는 ‘토벌’이라는 게 살해의 다른 말이라는 걸 고려하면, 사실상 학생 절반 이상을 죽이고 자원을 회수하라는 뜻이었다.

포르테는 잠시 생각에 잠긴 뒤, 모두가 들을 수 있는 소리로 입을 열었다.

《디바나. 나와라. 어차피 너도 이미 시스템에 들켰다.》

“…쯧.”

혀를 차는 소리와 함께, 카일런의 장신구로부터 여악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불만 어린 표정이었지만, 아직 포르테에게 두들겨 맞은 기억이 선명한 것인지 묘하게 공손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뭔가 당부하실 거라도 있으십니까?”

《탑 바깥쪽 상태를 확인해 주면 좋겠군. 우리가 직접 1층까지 내려가는 건 시간 낭비가 심하다.》

“알겠습니다.”

디바나는 반문이나 불평 하나 없이, 그림자에 스르르 녹아들듯이 모습을 감추었다.

그리고 얼마 후.

“전멸입니다.”

단 한마디로, 디바나는 외부 상황을 정리했다.

“길거리든, 건물 내부든 상관없이 학원 내의 모든 인원들이 의식을 잃은 채 쓰러져 있습니다. 심지어 교수진도 똑같더군요.”

“아니, 어떻게… 교수님 중에는 6위계의 강자도 여럿 있으시잖습니까? 선배님들 중에도 엄청난 강자가 많을 텐데요?”

카일런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의 말대로, 천공 학원의 교수진은 그 수준이 기이할 정도로 높은 편에 속했다.

중소국가에서는 한 명이라도 있을까 말까 한 6위계를 다수 보유했고, 학생 중에도 일부러 졸업을 늦추며 성장에 몰두한 자는 바깥이라면 한 세력의 대표를 맡을만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렇기에 천공 학원이 일개 교육 기관인데도 중부의 여러 국가와 대등한 위치에서 협상을 할 수 있었고, 애초에 그만한 무력이 없었다면 악마들이 이렇게 몰래몰래 숨어서 일을 꾸미지도 않았을 것이다.

헌데 그 수많은 강자들이 단숨에 제압되었다고 하니 믿기지 않을 수밖에.

허나 포르테가 보기에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이 순수하게 자력으로 그 강함을 손에 넣은 거라면 쉽게 무력화되진 않았겠지. 하지만 이곳에 있는 이들이 얻은 힘은 애초에 시스템 쪽에서 건네준 것이다. 심지어 교수들마저 예외가 아니야. 오직 이곳의 졸업생만이 교수가 될 수 있으니까. 근본적으로 따지면 그들도 전부 학생이다.》

말하자면 천공 학원의 학생들은 막대한 성장 보조를 받은 대신, 학원 그 자체에 목줄이 잡힌 거나 마찬가지였다.

본래라면 그 목줄을 당길 이가 아무도 없었으니 그냥 이득만 가득했겠지만, 지금은 왜일까 시스템이 미쳐 날뛰는 상황.

“잠깐만요. 그러면 던전에 있는 사람들은요? 혹시 전투 도중에 의식을 잃기라도 했으면!”

피나의 말에 디바나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괜찮아. 활동을 정지한 건 몬스터들도 똑같거든.”

《퀘스트의 내용을 봤을 때, 이 학원이 원하는 건 네가 다른 학생들을 죽이고 그들로부터 자원을 회수하는 거다. 몬스터 따위에게 자원이 낭비되게 만들진 않겠지.》

피나의 얼굴이 복잡해졌다.

사람들이 당장 몬스터들에게 죽어 나가지 않는 건 좋은 일이지만, 그 의도는 절대로 좋은 일이 아니었으니까.

《계약자여. 일단 묻겠다만, 퀘스트를 수행할 생각은 있나?》

“절대로 없어요!”

피나는 평소 우물쭈물하는 말투에선 생각도 할 수 없을 만큼 단호하게 부정했다.

고민할 가치조차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렇다면 학원과 교섭을 할 수밖에 없겠군.》

“교섭이라니, 누구랑요? 다들 잠을 자고 계시는데.”

《상대라면 있다. 애초에 이런 퀘스트를 내면서, 시스템 그 자체에 자의식이 없다는 게 더 이상하지. 계약자여, 아마 상대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너일 테니, 네가 한번 요구해 봐라.》

피나는 조금 당황한 듯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힘껏 외쳤다.

“시스템 님! 전 이런 퀘스트를 수행할 수 없어요! 취소해 주세요!”

답변은 곧바로 돌아왔다.

【‘임시 저장소’의 토벌을 50%까지 진행할 시, 용사 피나 발레스티아는 6위계 최상급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는 피나 발레스티아의 본래 스펙인 4위계 하급. 현재 보유한 특수 장비의 보정으로 인한 6위계 중하급보다 아득히 높은 경지이며, 피나 발레스티아가 정상적으로 성장했을 경우, 평생을 거쳐도 도달하기 어려운 경지입니다.】

“전 그런 거 필요 없어요!”

【부정. 피나 발레스티아는 반드시 해당 위계에 도달하여 연계 퀘스트를 수행해야만 합니다.】

“싫어요!”

【부정. 피나 발레스티아는 반드시 해당 위계에 도달하여 연계 퀘스트를 수행해야만 합니다.】

“싫다니까요!?”

【부정. 피나 발레스티아는 반드시 해당 위계에 도달하여 연계 퀘스트를 수행해야만 합니다.】

마치 벽을 상대하는 것 같은 반응에, 기본적으로 소심한 경향이 있는 피나조차 혈압이 올랐는지 그 목소리가 점점 커져만 갔다.

그녀는 따지듯이 질문했다.

“애초에 연계 퀘스트라는 게 대체 뭔데요? 제가 왜 사람들을 죽여야 하는 건가요? 그게 무슨 용사예요?”

그 질문이 핵심을 찌른 것일까.

【현 상황에 대한 피나 발레스티아의 이해도 부족을 확인.】

【올바른 이해도 향상을 위해 시뮬레이션을 개시합니다.】

─세상이 뒤집혔다.


옛날 아주 먼 옛날.

두 나라가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전쟁의 동기는 시시한 것이었습니다.

만약 처음 싸움을 시작한 당사자들의 신분이 동네 아저씨들이었다면, 서로 목청 좀 높이고 주먹질 좀 한 다음 끝날 일이었습니다.

허나 그들은 동네 아저씨가 아닌 나라를 다스리는 높으신 분들이었고, 그렇기에 그 싸움은 무수한 백성들을 괴롭게 하는 전쟁으로 번졌습니다.

이는 무척이나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그런데도 아직은 어찌어찌 감당할 만한 비극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전쟁에서 밀리기 시작한 나라 쪽에서 자국민을 제물로 바쳐 ‘마왕’을 소환한다는 멍청한 짓을 저지르기 전에는 그러했습니다.

마왕의 힘은 실로 강대했습니다.

기울어진 저울을 손가락으로 눌러 반대로 뒤집는 것처럼, 마왕은 너무나도 간단히 전쟁의 판세를 뒤엎어버렸습니다.

승리가 눈앞이라 여겼던 나라는 마왕의 강대한 힘과 잔혹함 앞에서 무너져 내렸고, 마왕을 소환한 나라는 승리를 거머쥐었습니다.

허나 그들이 승리의 미주에 취할 일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승전을 이끈 마왕이 그대로 칼날을 돌려 자신을 소환한 이들을 찔러버렸기 때문입니다.

서로 싸우던 두 나라는 나란히 멸망했고, 대륙 중앙에는 자유로운 몸이 된 마왕이 풀려났습니다.

피가 강을 이루었습니다.

눈물이 호수를 만들었습니다.

시체가 산처럼 쌓아졌습니다.

통곡이 하늘을 가득 메웠습니다.

많은 이들이 괴로워했고, 분노했으며, 두려움과 절망을 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용사가 검을 들어 올렸습니다.

마왕 손에 첫 번째로 멸망한 나라 출신인 그는, 몸을 사리지 않고 전장에 뛰어들며 마왕군에게 맞서 싸웠습니다.

용사의 용맹은 눈부신 것이었지만, 적들은 너무나 강대했습니다.

혼자서 싸우는 일에 한계를 느낀 용사는 숲속에 은거하고 있다는 현자를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현자의 집 앞에서, 용사가 외쳤습니다.

“저기요! 거기 아무도 없…어라?”

피나는 눈을 끔뻑였다.

조금 전까지 눈앞에 펼쳐진 광경과 방금 본인의 입에서 멋대로 새어 나온 말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허나 그녀가 상황을 이해하는 것보다 먼저, 그녀의 앞에 있던 오두막에서 누군가가 튀어나왔다.

벌컥!

“뭐야? 누군데 남의 집에서 이렇게 시끄럽게 굴어?!”

무척이나 신경질적인 인상의 남성이었다.

‘숲에 혼자 사는 괴팍한 마법사’라는 이미지를 그대로 구현해 놓은 것 같은 외모와 복장.

그 부리부리한 눈매를 마주한 피나가 뭐라 말도 하지 못하고 어버버 굳어 있자니, 남성은 눈매를 잔뜩 일그러트리고는 말했다.

“볼일 없으면 꺼져!!”

쾅!!

주변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의 문 닫는 소리.

사람의 소심함을 칼로 푹푹 찌르는 것 같은 그 연출에, 피나가 본능적인 공포를 느끼고 다리를 떨었다.

그리고 잠시 후, 풍경이 일그러졌다.

혼자서 싸우는 일에 한계를 느낀 용사는 숲속에 은거하고 있다는 현자를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현자의 집 앞에서, 용사가 외쳤습니다.

“저기요! 거기 아무도 없… 아니, 아니!”

반복되는 상황에, 피나가 재빨리 본인의 입을 틀어막았다.

허나 그런 건 상관없다는 듯이, 또다시 문이 덜컥 열리며 괴팍한 인상의 남자가 튀어나와 쏘아붙였다.

“뭐야? 누군데 남의 집에서 이렇게 시끄럽게 굴어?!”

“어, 아니, 그게.”

“용건이 있으면 말을 해! 우물쭈물하지 말고!!”

“그, 그러니까요….”

슬금슬금 눈가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한 피나와 달리, 포르테는 이 상황이 어떤 건지 대충 파악이 끝나가는 중이었다.

여러 가지로 할 말은 많지만, 그 전에 한 가지.

《계약자여. 눈앞의 그건 인형이다. 본체는 따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