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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화 마검 포르테(Forte) (7) - 효율과 비효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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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은퇴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제국 금운궁에서 일하며 황태자에게 행정 업무를 가르쳤던 노관료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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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일을 잘한다고 해도, 세세한 부분은 여러 가지로 나뉘는 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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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이 빨라서 서류 처리를 잘한다, 체력이 좋아서 오랜 업무를 견딜 수 있다, 뛰어난 관찰력으로 사소한 문제라도 놓치지 않는다. 집중력이 높아 시간 낭비를 하지 않는다. 어느 것이든 관료로서는 훌륭한 자질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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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 전하께서는 그런 면에서 우수한 관료의 자질을 타고나셨다네. 그분의 혈통과 위치만 아니면 재상으로서 행정 업무를 총괄해도 이상하지 않았겠지. 아, 내가 이런 말을 했다는 건 비밀일세. 검술 교관이건 마법 교관이건 아무튼 스승을 자칭하는 놈들은 죄다 자기네 쪽이라고 투덜거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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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이야기가 새버렸군. 황태자 전하는 관료로서 능력이 빼어나셨다고 했지? 그런데 그분이 정말로 특기로 삼은 건 계산 속도도, 체력도, 관찰력도 집중력도 아니었네. 그런 것들도 하나같이 뛰어나긴 했지만, 가장 뛰어난 건 일머리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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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가죽 신발, 산딸기, 피리를 하나씩 구해야 한다고 가정해 보지. 어떤 남자는 시장에서 가죽 신발을 사고, 숲에 가서 딸기를 따고, 악기 가게에서 일을 해준 뒤 피리를 받아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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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남자는 그냥 짐승 한 마리를 사냥한 뒤에 뼈는 악기공에게, 가죽은 신발 장인에게 넘기고 근처의 마을 처자 한 명에게 산딸기를 따와달라고 부탁했네. 거기에 필요한 대금은 고기를 팔아서 충당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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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남자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돈도 많이 들고 일도 많이 해야 했네. 두 번째 남자는 돈도 별로 안 들이고 시간도 적게 들였지. 그런 게 바로 일머리의 차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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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 전하께선 일을 하실 때 무작정 닥친 일부터 하는 게 아니라, 일단 전체 업무를 파악하는 걸 가장 우선시하셨네. 어떤 일이 다른 일에 도움이 되는지, 어떤 것과 어떤 것은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지, 그런 걸 전부 파악한 뒤에, 가장 효율적인 순서로 일을 끝마치셨어. 심지어 같은 업무라도 해낼 때마다 조금이라도 더 효율적인 방식을 찾아 개선하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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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것도 어느 정도까지 효율화를 끝마친 뒤에는 그 이상 나아지는 일은 없었고, 사람들은 이미 한계까지 효율화를 끝내서 그런 거라고 평했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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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께서는 그냥 깨달으신 거야. 이런 식으로 계속 효율화를 거듭해 봐야, 그만큼 해야 할 게 더 많아질 뿐이라는 걸. 스승을 자칭하는 다른 인간들도 그걸 알아야 할 터인데, 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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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제법 궁금하기는 하군. 과연 그분이 주변의 눈치나 뒷감당을 신경 안 쓰고 작정하고 나설 경우, 과연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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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확보해야 할 보상은 체력, 지구력, 활력같이 행동 시간을 늘려주는 계열의 보상이겠지. 똑같은 일수라면 더 많이 행동할 수 있는 쪽이 더 많은 기회를 얻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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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의 일과에 매일 아침 유산소 운동이 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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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벌 계열의 퀘스트와 채집 계열의 퀘스트는 가능한 한 번에 처리하는 게 좋아. 예를 들어 뿔 달린 토끼를 사냥할 때는 가죽을 얻는 퀘스트를 하고, 슬라임을 토벌할 때는 점액을 수집하는 퀘스트를 동반하는 식이다. 모든 종류의 퀘스트를 동시에 받는다면 더 좋겠지만, 중첩 상한이 있으니 그 부분을 주의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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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내부에 존재하는 던전에 나날이 드나들었고, 가방에는 늘 짐이 한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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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라면 실전 경험 없이 능력만 강해지는 건 그리 좋은 일이 아니지만, 다행히 계약자 너는 검술이나 체술이라면 기초 이상으로 해내고 있다. 그러니 차근차근 아래부터 밟고 가는 것보단 그냥 바로 윗놈들을 노려라. 그러면 능력치가 더 가파르게 오르고, 포인트도 더 빠르게 모을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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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고학년은 되어야 발을 들여놓는다는 고위험 구역에 곧장 쳐들어갔고, 비명을 꺅꺅 지르면서도 정신없이 마검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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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현자의 서고 외곽 돌기 100회’에 성공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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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이 소소하게 상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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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p를 획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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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슬라임 1000마리 토벌하기’에 성공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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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량이 소소하게 상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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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p를 획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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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변이 메탈 슬라임 점액 3개 채취하기’에 성공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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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p를 획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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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목각 기사 토벌’에 성공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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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p를 획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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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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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으로 돌아온 피나는 그대로 침대 위에 엎드리듯이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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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테의 조언은 확실히 효과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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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 아니 본검은 퀘스트를 직접 보지 못하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피나가 얼추 읽어준 퀘스트 내용만으로 최적의 해결 루트를 만들어냈고, 가끔은 퀘스트가 끝나기도 전에 다음에는 어떤 퀘스트가 해방될지 미리 알아맞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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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입학한 지 일주일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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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대충 300점쯤 모았으면 많이 모았다 싶은 판에 벌써 혼자 오천 점을 넘는 포인트를 수집했고, 심지어 포인트 회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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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가면 포르테가 장담한 대로 정말 반년 안에 졸업하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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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피나가 이 상황에 그리 만족하고 있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아니올시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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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걸… 반년 동안 계속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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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하고 왁자지껄 어울리는 것보다 혼자 조용히 지내는 게 좋고, 바깥을 돌아다니기보다 방에 틀어박히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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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피나에게 있어서, 이런 극한의 하드 스케쥴은 절대로 사양하고 싶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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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그녀가 천공 학원에 합격하려 했던 이유는 괜히 탈락했다가 아빠와의 24시간 땀내 나는 밀착 트레이닝을 피하고 싶어서였는데, 마검이 강요하는 일정은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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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에 엎어져 있는 그대로 고개만 살짝 들어 올린 채, 피나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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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마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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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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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역시 반년은 좀 무리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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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충분히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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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검은 단호한 태도로 피나의 말을 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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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학원에는 실로 여러 기관이 존재하지. 평범한 훈련장이나 대련장에 그치지 않고,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몬스터들이 활보하는 미궁이나 특수한 장비를 판매하는 상점까지도 있다. 전투, 전력 강화, 휴식의 루틴을 돌리기에 최적화된 구조란 뜻이다. 게다가 계약자 너 역시 완전한 초보가 아니라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춘 만큼, 목표 점수를 모으는 건 그리 오래 걸릴 일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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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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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는 뭐라 말을 내뱉지는 못하고 어기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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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힘들어서 못 해 먹겠다고 마검을 내팽개쳐 버릴 수 있다면 그녀의 인생도 조금은 달라졌겠지만, 피나는 차마 그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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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그게 가능했으면 이 지경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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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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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담한 표정으로 끙끙 앓는 피나의 모습을 포르테는 지긋이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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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테 자신의 능력이 아무리 강력하다고 한들, 그 본질은 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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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힘을 뽐내기 위해서는 사용자인 피나가 강해져야만 하고, 그래야 악마들의 개입에도 더 단호하게 대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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뭣보다 그녀가 아예 졸업해서 학원 밖으로 나가버린다면, 악마들도 더는 꿍꿍이를 부리지 못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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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지금은 다소 힘들더라도 노력하는 것이 좋다. 그것이 피나 본인을 위한 행동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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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자여, 내일 하루는 퀘스트는 신경 쓰지 말고 자유롭게 행동해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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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합리성을, 포르테는 스스로 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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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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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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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테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는 반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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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내 조언에 불평하지 않고 잘 따라와 주지 않았나. 노력이란 물론 중요한 거지만, 적절한 휴식 없이 노력만 반복해서야 그 끝이 좋지 않은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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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러면 내일은 그냥 하루 종일 뒹굴거려도 괜찮은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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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검은 허언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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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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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가 환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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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테를 끌어안고 침대 위를 마구마구 뒹굴었는데, 그 품속에서 포르테가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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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자여, 아무리 칼집 안에 들어가 있다고 해도 검을 끌어안고 그렇게 격렬하게 움직이는 건 위험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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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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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저번에 목욕탕에 데리고 들어가려고 할 때 말하지 않았나. 지금은 이런 모습이긴 하지만 나는 남성이다. 지나친 접촉은 품행 면에서도 좋지 않은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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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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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듣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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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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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휴일은 없던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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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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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가 재빨리 정좌했고, 포르테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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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두 명, 아니 한 명과 검 하나가 만담을 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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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하는 노크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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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요, 할 이야기가 있는데 잠깐 시간 괜찮을까요? 급한 건 아니니까 천천히 나오셔도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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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밖에서 들려온 누군가의 목소리에, 피나는 포르테를 힐끗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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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테는 특별히 대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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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은 맡기겠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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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는 흐트러진 옷차림을 정돈한 뒤,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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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발벽안. 언뜻 봐도 상당히 뛰어난 외모의 청년이, 얼굴에 반가움의 기색을 드러내며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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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본래 쉬는 시간이나 점심때에 인사를 건네려 했는데, 영 타이밍이 안 나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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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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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는 납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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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그녀 본인부터가 사람들하고 대화 나누기를 어색해하는 터라 피해 다니기도 했고, 포르테의 일정을 따라가려고 하다 보니 다른 학생과 어울릴 틈이 없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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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해요, 제가 좀 경황이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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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가 살짝 고개를 숙여 사과하자, 청년은 조금 당황한 듯이 손을 내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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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괜찮습니다. 사실 다른 학생 중에도 남들과 교류하기보다는 자기 할 일만 계속하는 이들이 적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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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학원이라면 같은 수업을 받으며 서로 안면을 트고 친해지는 게 보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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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곳 천공 학원에서는 다른 이들과 교류는 최소화하면서, 오직 퀘스트 해결에만 몰두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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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하나를 클리어할 때마다 자기 능력치가 오르고 조금씩 조금씩 성장하는 걸 실감할 수 있다 보니, 거기에 쾌감을 느끼고 눈에 부릅뜨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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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야 아직 인연이 없는 이야기지만, 고학년 선배분들 중에는 일부러 식당이나 상점 같은 곳에서 포인트를 낭비하며 졸업을 늦추는 이들도 있다더군요. 퀘스트로 능력을 올릴 수 있을 만큼 최대한 올린 뒤에 졸업하기 위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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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그런데 무슨 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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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혹시 파티가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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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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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갸웃하는 피나에게, 청년이 살짝 몸을 옆으로 피하며 등 뒤에 있던 다른 이들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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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관과 역할이 실제로 일치한다는 가정하에, 마법사, 사제, 전사로 보이는 학생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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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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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학원에서 가장 중요한 건 포인트입니다. 졸업을 위해서도 그렇지만, 하다못해 먹고 자고 입는 것도 전부 포인트가 들어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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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서 파는 음식이나 상점에서 파는 옷 같은 것은 지불하는 포인트에 따라 그 퀼리티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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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숙소 같은 경우 단순히 자는 것만 생각하면 포인트가 들지 않았지만, 이것도 침구를 좋은 거로 바꾸거나 방을 넓은 곳으로 바꾸거나 하려면 이래저래 포인트가 소모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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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아비 때리기나 주문으로 원반 맞추기처럼 기초적인 것만 반복해도 생활 자체는 가능하다지만, 그래서야 언제까지고 현상 유지일 뿐입니다. 졸업을 노리려면 결국 학원 곳곳에 있는 던전을 파고 들어가야 하는데, 이건 혼자서는 위험한 일이지요. 보호자가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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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도중이라면 몰라도, 던전에 들어간 뒤에 그곳에서 위험한 일이 생겨도 교수들은 구해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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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항상 옆에서 지켜주는 상황이라면 제대로 된 의미로 ‘실력’을 쌓을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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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던전을 돌파할 실력이 있다고 해도, 세상일은 모르는 법이니 아군과 함께 하는 편이 더 안전합니다. 혼자서 독주하는 학생들도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런 이들도 하나둘씩 서서히 파티를 만들고 있지요. 저희와 함께 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물론 영구적인 건 아니고, 우선 함께 어울려 본 뒤에 괜찮다 싶으면 계속 가는 걸로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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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는 데굴데굴 눈을 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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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대답해야 할지 곤란해하던 그녀에게, 포르테가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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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받아 들여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다. 계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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