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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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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화 마검 포르테(Forte) (2) - 퀘스트
황태자는 말했다.
“이번 분신은 여느 때보다도 그 조건이 까다롭네.”
첫 번째 조건.
최소 6위계 이상의 무력.
“우선 이것부터가 만만치 않지. 별다른 외부 조건 없이, 순수하게 전투 특화로만 도달할 수 있는 수준은 5위계 최상위 정도. 사서 에른스트가 6위계의 힘을 발휘했다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여러 까다로운 조건을 갖췄기에 가능한 일이니까.”
오랜 시간 개조 및 동기화가 가능한 공방의 존재. 일반인 수준의 본체 전투력. 상대가 알아서 공방까지 쳐들어옴.
위의 조건을 전부 충족한 뒤에야 에른스트는 6위계의 힘을 보여줄 수 있었다.
만약 에른스트에게 도서관을 개조할 만한 충분한 시간이 없었다면, 혹은 도서관에 도달할 때까지 에리스가 시간을 벌어주지 않았더라면, 에른스트는 그 힘을 발휘해 볼 기회조차 없이 그대로 쓰러졌으리라.
그리고 이런 불안정함은, 호위로서는 명백한 결격 사유가 된다.
두 번째 조건.
호위에 적합한 외형, 신분일 것.
“설령 6위계의 힘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분신이 있다고 한들, 그 분신이 호위 대상 옆에 계속 붙어 있을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일세. 학생으로서 그 곁을 지키려고 해도, 여러 외부 요인에 의해 서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나올지도 모르니.”
누군가의 곁을 ‘계속’ 지킨다는 건 당사자의 동의가 없으면 여러모로 힘든 일이다.
당장 어디 소설 같은 걸 보면 호위 대상이 갑갑하다는 이유로 호위 없이 행동하다가 험한 꼴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용사의 후손이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이 있겠는가.
만약 당사자가 협조적으로 나온다고 해도, 천공 학원 측의 협력 없이 24시간 밀착 경호 같은 건 너무나 어렵고, 천공 학원 몰래 숨어 들어가야 하는 판에 학원의 협력을 얻는 게 가능할 리도 없다.
즉, 새로운 분신은 호위 대상의 곁에 항상 붙어 있으면서도 외부인이 보기에 부자연스러움이 없는 모습과 신분이 아니면 안 된다.
지극히도 난해한 조건들.
이 모든 것을 충족하는 것이 가능한가 싶은 난제.
고로, 황태자는 선언했다.
“─인간이 아니면 되네.”
능동적인 행동을 포기하는 대신, 순수하게 무구로서 호위 대상을 강화하는 방식이라면 안정적으로 6위계급의 무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인간이 아니라면 천공 학원의 검문에 걸릴 일도 없고, 무기니까 호위 대상의 곁에 항상 붙어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즉, 검이 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황태자의 힘찬 연설을 옆에서 듣고 있던 루시드라는 생각했다.
‘무슨 개 같은, 아니 개한테 실례되는 소리지.
애초에 어떤 분신을 만들지 고민하는 상황 아니었나?
왜 분신 이야기를 하는 중에 갑자기 ‘어쩔 수 없지, 여기선 검으로 간다!’라는 결론이 나온단 말인가.
여러모로 납득이 가질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게 바로 황태자였으므로.
문제는.
“만약에, 정말 만약에 그 계약이라는 걸 하면, 혹시 학원을 날로 먹을 수 있나요?”
《…….》
이번 호위 대상 역시 그리 만만한 상대는 아닌 것 같다는 점이었다.
황태자가 알려준 팝콘과 음료수를 챙긴 뒤, 루시드라는 그림자 속 관람 모드에 돌입했다.
***
여기서 잠시, 상식의 이야기를 해보자.
웬 말하는 검 한 자루가 나타나서는 계약을 하자니, 힘을 주겠다느니, 나와 계약하지 않으면 위험하다 같은 소리를 지껄인다고 했을 때, 상식적인 사람의 대응이란 무엇이겠는가?
일반적으로는 의심할 것이다.
두려움을 느끼거나, 경악해서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청할지도 모른다.
일단 검의 존재 그 자체도, 검이 말하는 내용도 하나같이 수상하기 짝이 없지 않은가.
그런 면에서, 피나 발레스티아라는 소녀는 과연 일반인과는 달랐다.
공포와 의심을 느끼지 않은 건 아니다.
아니지만.
‘…어라, 혹시 이거 찬스?
정체불명인 마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건 ‘위험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천공 학원 입학시험에서 개판을 치는 건 ‘위험한 게 확실한’ 일이다.
특히 그녀의 아빠가 어떤 반응을 할지 너무나 명확하다는 점에서 그렇다.
「아! 하나뿐인 딸이 이렇게 될 때까지 방치하고 있었다니, 나는 아비로서 실격이로구나!」
「딸 하나 제대로 키우지 못하면서 어찌 나라의 일을 논하겠는가! 한동안 일을 쉴 수 있도록 폐하와 담판을 짓고 왔으니, 남은 시간은 피나 너를 위해 사용하마!」
「철저한 식단 조절! 달콤한 디저트는 식탁에서 아웃! 야식 없음! 늦잠 없음! 꾸준한 체력 단련! 매일 아침 정시 기상 후 구보! 안심하거라 딸아! 내 너를 발레스티아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어엿한 전사로 키워낼 테니!」
‘끼야아아아아아아악!!
피나는 내심으로 비명을 질렀다.
상상만으로도 손발이 덜덜 떨리고 구토가 나올 것 같았다.
기본적으로 내향적인 데다가 방에 틀어박혀서 뒹굴뒹굴하는 걸 좋아하는 피나에게, 극 외향성에 숨만 쉬어도 군대 냄새와 땀 냄새가 흘러넘치는 아빠와의 일대일 밀착 훈련 코스는 인세의 지옥이나 다름이 없었다.
안색이 창백해진 피나를 보고 무슨 오해를 했는지, 마검은 차분한 태도로 (물리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입을 열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안다…. 필시 수상하고 두렵기 짝이 없겠지, 허나 소녀여…. 나는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 저기, 마검님? 그런 건 아무래도 좋고요.”
《…음?》
“만약에, 정말 만약에 그 계약이라는 걸 하면, 혹시 학원을 날로 먹을 수 있나요?”
《…….》
마검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는 와중, 피나는 어느새인가 침대 위를 엉금엉금 기어와 마검에게 바싹 접근했다.
그늘이 진 눈가와 묘하게 충혈된 눈, 파르르 떨리는 입가는 약간의 과장을 보태 약을 찾는 약쟁이를 떠오르게 할 정도였다.
“마, 많이는 바라지 않아요! 그냥 딱 중간보다 약간 높은 정도! 성적표를 받아 갔을 때 칭찬은 못 받아도 혼나지도 않을 그런 성적!”
만약 마검에게 눈이라는 게 존재했다면, 필시 허공을 헤엄치며 답변을 고민하는 모습이 보였을 것이다.
약간의 공백이 있던 후, 마검이 대답했다.
《물론 가능하다…. 소녀여, 네가 나와 계약하기만 한다면 1등도 문제없겠지….》
“아, 그건 괜찮아요. 딱 중간보다 조금 위가 좋아요.”
피나는 묘하게 단호한 태도로 선을 그었다.
호오, 하고 마검은 흥미를 느꼈다.
《어째서지…? 진짜 실력으로 거머쥔 최고가 아니라면 의미가 없다는 것인가…?》
피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말하기를.
“괜히 너무 높은 성적을 받으면, 신입생 대표라면서 강당 앞에 나서야 할지도 모르잖아요!”
그런 건 절대로 싫다며, 피나는 두 검지를 X자로 교차하며 강렬하게 어필했다.
《음….》
마검은 이래저래 할 말이 많았지만, 아무튼 자발적으로 계약하겠다는데 굳이 이를 마다할 이유도 없었다.
결국 그는 피나가 이리저리 망설일 때 사용하기 위해 준비했던 ‘지금 당장 마검과 계약해야 하는 이유 28선을 조용히 폐기한 뒤 입을 열었다.
《알겠다…. 나는 마검 포르테…. 계약자여, 그대의 힘이 되어 해악으로부터 그대를 지키리라….》
“피나 발레스티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 그런데, 그, 질문 하나만 해도 괜찮을까요?”
《묻도록 해라….》
“그, 아까부터 말꼬리를 길게 늘이는 건 왜 그러시는 건가요? 막 거슬리고 그런 건 아닌데, 그냥 좀 신경 쓰여서.”
《…앞으론 주의하지.》
마검 포르테.
용사 후손 피나.
계약 완료.
***
‘천공의 입구’라는 이름이 붙여진 장소가 있다고 했을 때, 사람들이 떠올리는 광경은 어떤 것일까.
하얀 석재로 만들어진 거대한 신전?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산의 정상? 신비로운 마력이 휘몰아치는 아득한 탑?
위와 같은 모습을 상상한 이들에게는 아쉽게도, 천공의 문은 그리 화려한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
있는 거라고는 그저 넓은 들판. 그리고 그 중심부에 꽂혀 있는 초라한 외형의 나무 지팡이 하나뿐.
사전 지식 없이 그곳에 방문한 이들은 내가 제대로 온 게 맞나? 하며 불안한 기색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자기 외에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같은 장소에서 무언가를 기다리는 모습을 확인한 뒤에야 긴가민가하면서도 자리를 지킨다.
들판에 머무는 이들의 수는 수백을 넘지만, 애초에 이곳까지 함께 도착한 일행이 아니고서야, 서로에게 말을 거는 경우는 드물다.
단순한 낯가림 같은 것이 아닌, 보다 근본적인 경계심.
그럴 수밖에 없다.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모두가 잠재적인 경쟁자이기 때문이다.
개중 일부는 앞으로 제법 오랜 시간을 함께할 동료가 되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입학시험을 통과한 뒤의 이야기.
나중에 다시 얼굴을 맞댈 상대일지도 모르니 노골적인 적대는 하지 않는다. 허나 현시점에서 친근하게 지낼 생각도 없다.
그런 미묘한 공기 속에서, 피나 발레스티아는 조용히 울상을 짓고 있었다.
‘속 쓰려….
대놓고 고성이나 욕설이 오가는 건 아니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오가는 눈짓이나 찌릿찌릿한 공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피나에게 막대한 부담이었다.
그나마 안도할 만한 요소가 있다면, 이 불편한 공간에 아예 혼자 내팽개쳐진 건 아니라는 점일까.
피나는 주변에 들리지 않도록 작게 웅얼거리듯이 말했다.
“마검님, 마검님.”
《뭐지? 할 말 있나?》
머릿속에 직접 말을 거는 듯한 목소리.
처음 만났을 당시의 어딘지 모르게 거리가 느껴지는 말투가 아니라, 좀 더 친근감이 느껴지는 말투에 피나는 헤헤, 하고 웃음을 흘렸다.
여러모로 수상쩍은 마검이지만, 자신의 말을 무시하지 않고 존중해준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검님은 입학시험에 대해 잘 아시나요?”
피나와 포르테는 아직까지 그리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한 상태였다.
애초에 처음 만난 시기가 시험이 며칠 남지 않은 상황이기도 했고, 주변의 시선을 신경 써야 하다 보니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아예 문외한은 아니다.》
“그러면 시험 내용도 아시나요? 집에서는 도통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서요.”
학원 측에서 특례 입학을 제안했는데도 거부할 정도의 가풍이다.
시험 내용을 미리 빼돌리거나 알려줘서 대비하게 하는 편법을 쓰게 할 리가 만무했고, 피나가 알고 있는 천공 학원의 정보란 대개 뜬소문의 영역이었다.
시험 치르다가 사람이 죽는다든가, 입학생이 백 명이면 졸업생은 오십 명 미만이라든가, 뭐 그런 것들.
《어느 정도라면 알고 있지. 다만 아직까진 말해봐야 의미가 없다.》
“왜요?”
《시험관이 누구냐에 따라 세부 내용이 바뀌기 때문이다.》
피나가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질문하려던 그 순간이었다.
“어? 저, 저기 봐!”
“그 소문이 사실이었나!”
“정말 거대하군.”
사람들의 웅성거림. 그리고 머리 위로 드리우는 그림자.
피나가 멍하니 하늘 위를 바라보자, 저기 하늘 위에서 지상으로 내려오는 무언가가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구름을 헤치며 서서히 하강하는, 거대한 섬이.
“와아….”
너무나 거대한 물체는, 때때로 거리감이나 속도감을 헝클어트린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섬의 속도는 무척이나 빠른 편이었지만, 지상의 사람들은 이를 쉽게 인식하지 못했다.
몇몇 눈치 빠른 이들이 이러다 섬에 깔리는 건 아닌가 싶어 들판 가장자리 쪽으로 재빨리 몸을 피했지만, 이는 불필요한 행동이었다.
거대한 부유섬은 지상에 완전히 안착하는 대신, 어느 정도의 간격을 두고 그대로 정지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섬에 짓눌려 오징어포가 되는 사태를 면했다는 것에 안심했지만, 동시에 의문을 느꼈다.
“근데 여기서 어떻게 올라가?”
“점프? 사다리? 아니면 뭐 갈고리 같은 거라도 던져서 매달아야 하나?”
“헛소리하지 마. 지금 저 상태로도 어지간한 건물 수십 층 높이는 우스운 것 같은데.”
그런 의문에 호응하기라도 한 듯이, 들판 중앙에 꽂혀 있던 나무 지팡이가 꿈틀거렸다.
마치 생물의 성장 과정을 급속도로 가속한 것처럼 급격하게 몸집을 불린 나무 지팡이는, 이윽고 거대한 하나의 탑이 되어 부유섬의 아랫부분을 단단히 붙들었다.
마치, 천공과 지상을 하나로 잇는 것처럼.
즉석에서 생겨난 탑에는 문조차 달리지 않은 개방형 입구가 존재했는데, 지상에서 대기하던 이들 중 몇몇은 망설임 없이 그 입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딱히 당황하는 기색조차 없이 행동이 재빠른 것이, 미리 사전 지식을 갖춘 이들로 보였다.
한발 늦게 상황을 파악한 이들도 혹시 뒤처질까 싶어 다급히 그 뒤를 따랐고, 피나 역시 조심스레 입구로 다가갔다.
그리고 입구의 경계선을 넘어, 탑 안으로 들어선 순간이었다.
【퀘스트: 탑 오르기】
【클리어 조건: 부유섬 도달】
【제한 시간: 3일】
【보상: 천공 학원 1차 입학시험 통과 증표】
【특이 사항: 탑 내에서 선공 금지. 위반 시 1층으로 다시 돌아감】
갑작스레, 피나의 눈앞에 반투명하고 네모난 유리판 비슷한 것이 떠올랐다.
비슷한 것을 본 건 피나뿐만이 아니었는지, 다른 후보생들 역시 이 상황에 당황한 듯이 눈을 껌뻑이거나 허공에 손을 내저었다.
그때, 마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반응을 보니 퀘스트가 뜬 모양이로군. 앞으로 그 반투명한 판을 잘 살펴봐라. 학원 생활 내내 지겹도록 보게 될 터이니.》
5위계는 영지에 준한다.
6위계는 나라에 준한다.
그리고 7위계, 초월자는… 세계의 일부를 덮어쓴다.
『천공의 현자』가 남긴 법칙은, ‘노력에 반드시 상응하는 보답이 있기를.
어느 황태자의 방식으로 표현하자면, 퀘스트와 보상의 세계가 그 편린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