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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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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화 사서 에른스트(Ernst) (15) - 도서관의 금기를 어길 경우 생기는 일
사서에게 필요한 능력이란 무엇일까.
손님에게 원하는 책을 추천하고 안내하는 능력?
수많은 책을 보기 쉽게 정돈하고 진열하는 능력?
습기나 먼지 등으로 책이 상하지 않게 관리하는 능력?
어느 것도 정답이다.
허나 한 가지 더, 사서에게 매우 중요한 능력이 있다.
그것은─
“─도서관을 지키는 것이지요.”
저벅, 하고.
에른스트가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 머리는 평소 이상으로 헝클어져 있었고, 의복은 더럽혀져 있었으며, 신체 곳곳에선 타박상의 흔적이 엿보였다.
하지만 그 얼굴만큼은 평소와 똑같이 차분했다.
이글거리는 불꽃의 검 수십 개가 자기를 조준하고 있는데도, 두려움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태도.
덜컹! 덜컹덜컹!
도서관 한쪽 구석.
2층으로 이어지는 문이 크게 들썩였다.
무언가가 두들기는 것처럼 요란한 소리를 내던 문은 이내 활짝 열렸고, 그 안쪽에서 책 한 권이 날아와 에른스트의 손 위에 안착했다.
“오, 친구. 공주님을 지키는 기사 흉내라도 내고 싶은가 보지?”
악마 발자레스가 에른스트를 조롱하듯이 혀를 날름거렸다.
그의 눈에 비웃음이 담겼다.
‘별거 없군.
에른스트가 손에 든 책에서 마력이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어지간한 마법사가 상대라면 그럭저럭 싸워볼 만할지도 모르지.
허나, 인간으로 따지면 6위계 초입에 달하는 힘을 지닌 발자레스에겐 그저 가소로울 수준이었다.
뭣보다, 강력한 마도서가 있다고 한들 정작 그걸 다룰 에른스트에게서는 그 어떤 마력도 느껴지지 않지 않는가.
“그렇다면 내가 도와주지, 우선 기사치고는 옷차림이 너무 허술해! 붉게 타오르는 망토라도 장식해 보는 건 어떨까?”
-화르르륵!
불의 검 중 하나가 에른스트의 어깨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안 돼!”
에리스의 비명이 울려 퍼지고, 검이 에른스트의 몸에 닿으려 한 그 순간.
에른스트의 손에 있는 책이 빛을 뿜었다.
『성냥의 마지막 숨결이 스러지자, 모든 것은 사라졌다.
벽은 다시 차가운 벽으로 돌아왔고, 거리의 바람은 더욱 매섭게 그녀의 뺨을 때렸다.』
불이 꺼졌다.
에른스트를 위협하던 불꽃의 검은 물론이고, 발자레스가 생성해 두었던 수십 개의 검 역시 모조리 다.
조롱하는 듯하던 악마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지고, 뒤에 있던 에리스 역시 숨을 삼켰다.
‘…마법? 마도서의 힘?
불을 제어하는 주문, 마력을 제어하는 주문, 공기를 다루는 주문.
몇 가지 후보가 에리스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발자레스 역시 비슷한 생각을 품었는지, 그 입매를 비뚤어지게 했다.
“불꽃은 싫은가 보지? 멋진 기사가 되기 위해서는 아픈 걸 참을 필요가 있는데 인내심이 부족하군!”
발자레스가 손가락을 튕기자, 그의 주변으로 수많은 돌 조각이 떠올라 회전하기 시작했다.
닿는 것들을 모조리 분쇄해 가루로 만들어버릴 암석의 폭풍이 에른스트를 위협하듯이 으르렁거렸다.
『그날 아침, 햇살이 가득히 내리쬐고, 하늘은 깨끗한 푸른색이었다. 바람은 상쾌하고, 모든 것이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듯했다.』
허나 에른스트의 손 위에 또 다른 책이 펼쳐진 그 순간, 흉포한 폭풍은 기분 좋은 산들바람으로 변했다.
코끝을 맴돌던 흙냄새가 향긋한 풀 내음으로 변하는 걸 느끼며, 에리스는 전율했다.
에른스트가 책을 펼친 그 순간 귓가에 울린, 마치 이 도서관 그 자체가 속삭이는 듯한 그 문구.
그 문구의 내용이, 이곳에서 읽어본 적 있는 어떤 책의 내용을 떠오르게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걸로도 끝이 아니었다.
『그림자는 벽을 타고 비틀거리며 다가왔다. 그 움직임은 마치 짐승처럼 무겁고 굼뜨면서도, 점점 더 가까워졌다. 어둠 속에서 그것의 형상은 점점 더 구체화 되었고, 그 존재는 전혀 인간적이지 않았다.』
『갑자기 하늘이 갈라지며, 큰 번개가 언덕 위를 비추었다. 그것은 마치 지옥에서 솟아오른 불길처럼 강렬하게 떨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 세상이 정적에 휩싸였다.』
『그의 칼은 내리쳐졌다. 날카로운 금속이 공기를 가르며 적을 향해 돌진했다. 상대는 그 힘에 압도당했고, 칼날이 그의 몸을 스쳐 지나가며 위협을 넘어서 공포를 안겨주었다.』
인간과 인간이 느끼는 공포를 다뤘던 이야기가, 그림자의 괴물이 되어 발자레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폭풍이 치는 언덕, 사랑과 오해에 다뤘던 이야기가, 한줄기 낙뢰가 되어 발자레스에게 떨어졌다.
포기하지 않는 집념과 복수를 다뤘던 이야기가, 그 집념만큼이나 굳세고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발자레스를 베어 넘겼다.
그림자의 괴물을 짓밟고, 낙뢰를 흘려보내고, 실체화된 칼날을 막아내며, 발자레스가 외쳤다.
“뭐냐!? 대체 어떻게, 이렇게나 많은 마도서를 준비한 거지!?”
‘…아니야.
에리스는 발자레스의 착각을, 아니 여태까지 그녀 자신조차 해왔었던 오해를 깨달았다.
에른스트가 사용하는 저것들은 마도서가 아니다.
하지만 마도서이기도 하다.
모순되는 것 같지만, 모순이 아니다.
「당신이 책 읽기를 좋아하는 건 알겠어요. 그런데 그러면 구태여 저한테 책을 권유할 필요는 없지 않나요? 어차피 당신도 이미 읽은 책인데, 다른 사람의 감상 같은 게 무슨 의미가 있죠?」
「의미라면 있습니다. 설령 똑같은 책, 똑같은 문장이라고 해도 그걸 읽는 이마다 감상은 달라지는 법이니까요. 다른 누군가와 감상을 나누고, 공유한다면 책 하나로도 더욱 풍성한 즐거움이 생기는 법입니다.」
에리스의 뇌리에, 언젠가 에른스트와 나누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같은 책이라고 해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방법은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실용성 없는 이야기에 불과한 것이, 누군가에게는 그 자체로 주문의 단서이자 강렬한 영감의 원천일 수도 있다.
책의 내용.
거기에 적혀 있는 문구 하나하나.
이를 해석하고, 강조하고, 현실로 뒤바꾼다.
읽는 이에게 마법의 힘을 주는 것이 마도서라고 한다면, 에른스트에게 있어서 이 도서관에 있는 책은 그 하나하나가 모두 마도서였다.
“좋아! 그렇게나 처참한 죽음을 원한다면, 진지하게 상대해 주지!”
더 이상의 장난은 끝이라는 듯이, 발자레스의 기색이 바뀌었다.
껍데기처럼 뒤집어쓰고 있던 마리크의 육신이 불타 사라지며, 그 안쪽에서 발자레스의 진짜 모습이 드러났다.
광대 같은 분장, 솟아오른 뿔, 피막에 뒤덮인 날개와 긴 꼬리.
발자레스의 손에서 뻗어나간 마력탄은 그대로 거대한 바위로 변하며 2층과 1층을 연결하는 문을 가로막았고, 이에 발자레스는 껄껄거리며 웃었다.
“잘난 마도서도 이걸로 끝이다!”
그는 2층에 있는 책만이 마도서라고 생각한 듯했지만, 에리스의 추측대로라면 그건 틀렸다.
에리스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에 분류별로 가득 놓여 있는, 수백을 넘는 책들을 바라보았다.
오직 에른스트의 손 위에서만은, 마도서로서 기능할 그 책들을.
그리고 그런 그녀의 믿음을 증명하듯, 에른스트는 근처에 있는 책장에서 적당한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아무런 마력도 느껴지지 않는, 그저 평범한 종이 뭉치.
허나 에른스트가 그 책을 펼친 순간, 책에 강렬한 빛이 깃들었다.
『노란 형광등이 윙윙대는 소리, 얼룩진 카펫, 끝없이 복제된 공간들. 너는 탈출구 없이 그 안에 있다.』
도서관의 크기가 부풀었다.
그것은 언뜻 기분 탓이라고 느낄 만큼 작은 차이 같기도 했고, 수십 수백 배를 넘는 극적인 변화 같기도 했다.
에리스에게는 전자였으나, 발자레스에게는 후자인 것 같았다.
악마는 그 날개를 퍼덕이며 여기저기로 움직이려 했지만, 분명 쉴 새 없이 날개를 움직이고 몸에서 마력을 뿜어내는데도 그 위치는 처음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마치, 아득하게 넓디넓은 공간에서 약간의 움직임 정도는, 전체상을 지켜보는 이에게는 그저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듯이.
발자레스가 분노와 함께 절규했다.
“어째서냐! 왜 카피할 수가 없는 거지!?”
발자레스가 지닌 힘은 복사.
타인의 노력을, 그들이 쌓아온 과정을 모조리 무시한 채, 오직 알맹이만을 빼먹는 권능.
에른스트가 제아무리 수많은 주문을 다룰 수 있다고 해도, 그건 본래라면 발자레스에게 아무런 위협도 안 될뿐더러 오히려 더 많은 먹이를 줄 뿐이다.
지금 발자레스를 억누르는 공간 주문 역시, 발자레스가 카피해서 사용한다면 얼마든지 속박을 해제하고 오히려 더 큰 마력으로 에른스트를 구속할 수 있을 터.
하지만 통하지 않았다.
아무리 권능을 발동하려고 해도, 이를 사용하려고 해도, 발자레스는 도저히 에른스트의 주문을 카피할 수가 없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평소의 익살스러운 모습을 잃어버린 악마를 향해, 에른스트는 특유의 무덤덤한 말투로 말했다.
“보안 코드를 추가했으니까요.”
“…뭐?”
“책의 겉 페이지만 보고 그 내용을 전부 읽은 것처럼 굴 수 있는 게 당신의 능력 아닙니까? 그래서, 그걸 막았습니다.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하나하나 읽은 게 아니라면 머릿속에서 그 내용을 떠올릴 수도, 그 내용을 인용할 수도 없도록.”
한 권 한 권 모조리 암호화하려고 하니까 며칠 정도는 걸리더군요, 라며 에른스트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발자레스는 넋이 나간 듯한 얼굴을 했다.
그리고 그런 악마를 향해, 에른스트가 선언했다.
“살인, 스토킹, 상해, 협박, 공공장소에서 다수를 휘말리게 하는 마법 사용, 결정적으로 도서관 내에서 폭력 행위 및 기물파손. 죗값이 꽤 무거울 것 같군요. 하지만 안심하십시오. 저는 사서이므로, 설령 상대가 악마라고 해도 쉽게 죽이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잠시 한 호흡을 둔 뒤, 그가 덧붙였다.
“그저 책으로 만들 뿐이지요.”
“무, 무슨 미친 소리를, 억, 커억!?”
발자레스의 몸이 기괴하게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얇게, 얇게, 마치 종이처럼.
가늘게, 가늘게, 마치 잉크처럼.
에른스트는 카운터에서 적당한 하드커버 하나를 집어 들더니, 그것을 발자레스를 향해 집어 던졌다.
종이는 하드커버에 달라붙어 페이지가 되었고, 잉크는 그 종이를 채울 글귀와 그림이 되었다.
-아아아아아아악!
기나긴 비명이, 아득히 먼 곳으로 사라지듯이 점점 작아졌다.
남은 것은 바닥에 떨어진 책 한 권뿐.
에른스트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 책을 주워 올리더니, 이내 심각한 얼굴로 에리스를 바라보며 물었다.
“…책 제목은 뭐로 할지 고민되는데, 혹시 추천하는 거 없으십니까?”
에리스는 아주 정중하고 우아하며 지적인 어조로 대답했다.
“혹시 돌으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