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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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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화 괴도 도팽(Dauphin) (22) - 달리아의 이상
도시의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치안 유지를 담당하는 경비대의 일원으로서, 8소대의 부관은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이상한 일도 아니지.”
현재 레브루크는 정치적으로 무주공산이나 마찬가지였다.
수뇌부라고 할만한 이들이 모조리 재기불능이 되거나 도시를 떠나 도망친 탓에, 도시를 통치하고 이끌만한 이들이 없는 상황.
혹자는 어차피 이 도시의 수뇌부는 시민들을 위한 일은 아무것도 안 하고 착취만 하던 놈들이니 없어도 상관없는 거 아니냐고 주장했고, 실제로 시민들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지만, 그것도 잠시뿐일 터.
인구 십만이 넘어가는 이 도시에는 그 머릿수만큼이나 수많은 목소리가 존재했고, 이를 중재하고 이끄는 이가 없다면 머지않아 도시 그 자체가 파탄에 이를 건 너무나도 자명했다.
꼭 그렇게 먼 미래를 보는 게 아니라 치더라도, 당장 세금이나 주변 영지와의 외교 문제는 어찌할 것인가.
도시 내에는 슬금슬금 땅에 방치된 권력을 손에 넣기 위해 움직이는 무리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그들은 하나같이 달리아를 아군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애를 썼다.
도팽이 홀연히 모습을 감춰버린 지금, 달리아만큼 시민들의 지지를 한 몸에 받는 후보는 달리 없었으니까.
‘근데 우리 대장이 정치 같은 걸 잘할 수 있을까?
선량하다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그만큼 고지식한 것이 그들의 소대장이다.
자기는 경비병으로서의 본분을 다할 뿐이라며 이전처럼 규칙에 얽매이는 모습만을 보여준다면, 필시 그 빈틈을 찌른 이들에게 이용당하고 말겠지.
자신을 비롯한 소대원들이 이를 최대한 막아내 보긴 하겠지만, 그 일이 그리 쉬울 것 같지는 않다.
그리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던 부관은, 어느 날 달리아가 내민 책을 보고 눈을 끔뻑거렸다.
“어, 음. 대장님. 제가 제대로 못 들어서 그런데,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이게 뭐라고요?”
“너희가 배울 마력 연공법. 마력 연공법이 뭔지 모르는 건 아니지?”
“그거야 알긴 압니다만….”
마력이란 선천적인 재능이다.
체력이나 검술 실력이야 열심히 뛰고 구르고 검을 휘두르다 보면 늦건 빠르건 나아지는 법이지만, 마력이란 오직 눈을 뜨냐 뜨지 않냐 그뿐이다.
하지만 마력 연공법이 있으면, 설령 재능을 타고나지 못한 이들이라도 후천적으로 마력을 손에 넣는 것이 가능해진다.
물론 그렇게 마력을 손에 넣은 뒤에는 다시 한번 재능이라는 가혹한 잣대가 들이밀어지지만, 적어도 출발선에는 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마력 연공법이란 귀중하고, 귀족들은 철저하리만큼 그 지식을 독점한다.
다른 나라에선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비르카 왕국에서는 구하려고 해서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데 달리아는 대체 이걸 어디에서 구해왔단 말인가.
혹시, 어쩌면.
“사기당한 거 아니니까 다들 그 의심스러운 눈초리는 그만둬.”
“…독심술에 눈을 뜨셨습니까?”
“지금 니들 얼굴을 보면 어지간히 둔한 녀석도 다 알겠다.”
소대원들은 멋쩍은 기색으로 시선을 회피했고, 달리아는 다시 한번 부하들에게 책을 권했다.
“일단 읽어봐. 글 못 읽는 대원은 읽을 줄 아는 대원이 옆에서 도와주고. 책 자체가 최대한 쉽게 풀어 써놓은 거라 그리 어렵진 않을 거야. 그래도 이해가 안 가는 건 나한테 물어보고.”
여러모로 미심쩍은 건 사실이지만, 다른 이도 아니고 달리아가 이렇게 권하는데 이를 끝까지 거부할 소대원은 없었다.
그들은 서로의 도움을 받아 가며 책을 읽었고, 그 내용을 어찌어찌 실천해 보기도 했다.
그리고 약 일주일 뒤.
“어? 어어? 돼, 됐어요! 진짜 됐어요!!”
8소대의 여러 경비병 중, 어느 여자 소대원이 마력에 눈을 뜨고는 방방 뛰며 기쁨을 드러냈다.
공교롭게도 수수께끼의 남자에게서 받은 책을 감옥에 있던 달리아에게 전달했던 바로 그 소대원이었다.
반신반의였던 소대원들 역시, 막상 정말로 마력에 눈을 뜨는 동료가 나오자 눈을 부릅뜨고 훈련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훈련 개시로부터 약 보름 뒤에는 소대원 중 절반이 각성에 성공했고, 한 달 뒤에는 가장 진전이 느렸던 부관마저 마력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본래 마력 연공법이라는 게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려면 적어도 연 단위의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는 걸 고려하면, 거의 정신 나간 수준의 습득 속도였다.
“대, 대장님. 대체 이런 걸 어떻게, 아니, 어디서….”
소대원들은 기뻐하면서도 동시에 두려움을 느끼는 듯한 모습이었다.
평생 손에 넣을 수 없으리라 여겼던 힘을 이렇게 간단하게 손에 넣다니?
“‘간단하게’가 아니야.”
달리아는 그런 부하들의 우려를 일축했다.
“이 마력 연공법은 기본적으로 신체 강화에 특화되어 있어. 정확히는 마력 연공법을 연마하면 할수록 몸 자체를 강하게 만들어주고, 몸이 강해지면 그만큼 강화 효율이 높아지는 구조지. 너희가 습득이 빠른 건 그만큼 평소에 몸을 단련해 놔서 그래.”
8소대의 부대원들은 하나하나가 2위계 상위권에 속해 있던 이들이다.
마력을 제외한 모든 기초 조건이 이미 갖춰져 있기에 습득이 빨랐을 뿐, 다른 이들이 같은 연공법을 배운다고 해도 이 정도로 빨리 효과를 보긴 어려울 터.
애초에 연공법이란 엄연히 ‘훈련’ 중 하나다.
꾸준하고 반복적인 운동이 몸에 좋다는 걸 알아도 이를 실제로 실천하는 이는 드문 것처럼, 달리아의 마력 연공법 역시 훈련을 게을리하는 순간 곧바로 그 수준이 퇴화해 버릴 터.
“열심히 배워둬. 머지않아 너희가 직접 다른 사람들에게도 가르쳐 줘야 할 테니까.”
“…혹시, 저희들 말고 다른 이들에게도 이걸 베푸실 생각이십니까?”
“기존의 경비대 체계로는 내부 정리야 어찌 됐든, 외부의 침공에는 대항할 수 없을 테니까. 뭐, 아무래도 몸 쓰는 일이다 보니까 이러니저러니 해도 경비대 쪽에서 많이 자원하긴 하겠지.”
“너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마력 연공법만 빼먹고 도망치는 이들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악용하는 이들이 생길 수도 있고요. 그럴 바에야─”
─차라리 철저하게 달리아를 신봉하는 추종자들에게만 베푸는 것이 좋다.
부관이 미처 내뱉지 못한 말을 짐작이라도 한 듯, 달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물론, 사람은 선별할 거야. 단, 그 기준은 얼마나 나에게 충실한지가 아니라, 얼마나 규율을 잘 지키고, 맡은 바 역할을 다 해내느냐가 되어야 해.”
영주에게 충성을 바치는 기사가 아닌, 질서와 규율 그 자체에 충성을 바치며 무고한 이들의 평화와 안전을 수호하는 집단.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현실성이 부족한 몽상이다.
어쩌면 이들 또한 타락하여 자기 이익을 위해 무고한 이들을 핍박하는 존재로 변질될지 모른다.
그래도, 달리아는 도전할 생각이었다.
설령 이것이 100점짜리 정답이 아니라고 해도, 본인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길을 걷기 위해서.
어쩌면 그 끝에 독선에 빠지게 될 수도 있지만, 그래도 괜찮다.
그녀가 초심을 잃고 추한 권력자로 변해버린다면, 그땐 반드시 유쾌한 괴도가 그녀를 벌하러 올 테니.
***
그로부터 또다시 몇 달 후.
“─달리아라고 했던가? 너, 내 밑으로 들어올 생각 없어?”
레드벨 후작가에서 찾아온 어느 영애가 내뱉은 말에, 응접실 내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레브루크 측 사람들은 당혹과 분노 중 어느 쪽을 드러내야 할지 모른다는 반응이었고, 후작가 측 사람들은 ‘아가씨가 또 저질렀다’라며 탄식을 금치 못했다.
태연한 것은 달리아 본인과 레드벨 가문의 영애, 그리고 그 영애의 호위라는 하늘색 머리의 마법사뿐.
달리아는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없습니다.”
“그래? 아깝네.”
그게 전부였다.
레드벨의 영애는 감히 평민 주제에 내 제안을 거부했다며 날뛰지도 않았고, 달리아의 무덤덤한 답변에 불쾌함을 드러내지 않았다.
본인이 말한 대로 약간의 아쉬움을 표한 것뿐.
그 담백하기 짝이 없는 반응에, 달리아는 순간 묘한 감정을 느꼈다.
‘클라우디아 레드벨. 현재 이 나라에서 펼쳐지는 거대한 정치 공방의 주역 중 한 명이라고 들었는데.
레드벨 후작가와 비르카 왕가 사이에서 태어난, 어떤 의미로 이 왕국에서 가장 고귀한 핏줄을 타고난 영애다.
얼굴 좀 보고 싶다는 레드벨 가문의 요청을 달리아가 거부하니 어떤 의미로는 적지라고 할 수 있는 레브루크까지 몸소 찾아온 것도 그렇고, 현재 레브루크를 대표하는 입장이긴 해도 일개 평민에 지나지 않는 달리아와 대등한 눈높이로 대화를 나누는 것도 그렇고, 여러 가지 의미로 파격적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았다.
‘거기에 옆에 저 사람, 블랑카라고 했던가?
달리아의 시선이 하늘색 머리의 모험가를 향했다.
어딘지 모르게 슬픔과 그 슬픔을 이겨내고 나아가려 하는 강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눈동자.
허리춤에 찬 투박한 검과 달리 체구는 언뜻 가냘픈 인상이 들 정도로 마른 편이었지만, 달리아는 직감했다.
‘…싸우면 아마도 이길 거 같지만, 단언은 못 하겠네.
아마도, 현시점에서 객관적인 경지 그 자체는 달리아 쪽이 더 높다.
하지만 블랑카에게선 그런 강자마저도 긴장하게 만드는 무언가, 그러니까 자이언트 킬링의 기색이 적잖이 느껴졌다.
기량적으로 완성된 게 아니라 성장 도중이라는 인상도 같이.
모험가 길드의 상위권 모험가는 전부 저런 느낌인 걸까. 그렇다면 길드는 그녀가 생각해 왔던 것보다 훨씬 무서운 집단일지도 모른다.
달리아가 묘한 착각에 빠진 걸 아는지 모르는 지, 블랑카는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지금 자기는 일시적으로 고용된 호위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 같은 태도였다.
“그러면, 동맹은 어때?”
클라우디아의 새로운 제안에, 달리아가 반문했다.
“동맹이라면, 구체적으로는 어떤 동맹을 말씀하시는 거죠?”
“너희들, 지금 사르노스의 세력권 내에서 고립되어 있잖아? 현재는 우리 쪽의 견제 때문에 백작이 쉽게 움직이질 못하니 방치되어 있지만, 백작이 무너지고 나면 다른 녀석들이 슬금슬금 눈독을 들이겠지. 그걸 막아줄게.”
확실히, 다른 곳도 아니고 레드벨 후작가가 비호하는 영지에 구태여 머리를 들이박을 머저리는 드물다.
레브루크에 대놓고 군사를 보내진 않아도 교역이나 통행 등으로 자잘한 견제를 시도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데, 어쩌면 그런 견제마저 싹 사라질지도 모르는 일.
“그 말은, 레브루크를 레드벨 가문의 영토로 삼겠다는 뜻인가요?”
“그것도 방법 중 하나지. 솔직히 말해 이 땅은 잠재력만큼은 어마어마하니까. 이 인구수에, 이 입지 조건에, 이 방대한 농토를 가지고도 그따위로밖에 못 굴린 백작이 머저리가 아닐까 싶을 만큼. 근데 내 부하가 되는 건 싫다며?”
클라우디아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분홍빛의 눈동자가, 달리아의 연두색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보아하니까 주변의 정치적 공세 말고, 행정적인 문제로도 꽤 골치 아파하고 있는 모양인데, 내가 해결해 줄게. 대신, 너희는 우리에게 무력과 인력을 제공해 주면 좋겠어. 고용 조건은 대충 이 정도면 어때?”
클라우디아가 내민 서류를 보고, 달리아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이거, 진짜인가요?”
“왜, 너무 가격이 짠 거 같아? 하지만 본래 첫 계약은 그런 거야. 너희가 유능한 인재를 보내줄지 폐급을 보낼지 어떻게 알아? 일단 써보고 유능하면 차차 급여를 인상해야지.”
달리아는 입을 다물었다.
가격이 짜기는커녕, 사르노스 백작가에서 사람들을 부릴 때 쓰던 조건에 비해 너무 후해서 도리어 믿을 수가 없었다는 말은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후작가는 백작가에 비해 부유하다고 듣긴 했지만, 그래도 이건 좀 격차가 너무 심한 것 아닐까.
달리아는 하루 정도 기다려 달라고 요청했고, 레브루크의 통치를 위해 만들어진 위원회에서 이번 계약에 대해 가결을 받은 후 클라우디아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후일 비르카 왕국을 좌지우지하게 될 세 여걸의 첫 협동 작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