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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화 괴도 도팽(Dauphin) (22) - 달리아의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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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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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안 유지를 담당하는 경비대의 일원으로서, 8소대의 부관은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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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일도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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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레브루크는 정치적으로 무주공산이나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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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뇌부라고 할만한 이들이 모조리 재기불능이 되거나 도시를 떠나 도망친 탓에, 도시를 통치하고 이끌만한 이들이 없는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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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어차피 이 도시의 수뇌부는 시민들을 위한 일은 아무것도 안 하고 착취만 하던 놈들이니 없어도 상관없는 거 아니냐고 주장했고, 실제로 시민들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지만, 그것도 잠시뿐일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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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십만이 넘어가는 이 도시에는 그 머릿수만큼이나 수많은 목소리가 존재했고, 이를 중재하고 이끄는 이가 없다면 머지않아 도시 그 자체가 파탄에 이를 건 너무나도 자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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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그렇게 먼 미래를 보는 게 아니라 치더라도, 당장 세금이나 주변 영지와의 외교 문제는 어찌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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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내에는 슬금슬금 땅에 방치된 권력을 손에 넣기 위해 움직이는 무리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그들은 하나같이 달리아를 아군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애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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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팽이 홀연히 모습을 감춰버린 지금, 달리아만큼 시민들의 지지를 한 몸에 받는 후보는 달리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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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우리 대장이 정치 같은 걸 잘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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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하다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그만큼 고지식한 것이 그들의 소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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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는 경비병으로서의 본분을 다할 뿐이라며 이전처럼 규칙에 얽매이는 모습만을 보여준다면, 필시 그 빈틈을 찌른 이들에게 이용당하고 말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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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비롯한 소대원들이 이를 최대한 막아내 보긴 하겠지만, 그 일이 그리 쉬울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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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던 부관은, 어느 날 달리아가 내민 책을 보고 눈을 끔뻑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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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음. 대장님. 제가 제대로 못 들어서 그런데,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이게 뭐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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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배울 마력 연공법. 마력 연공법이 뭔지 모르는 건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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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야 알긴 압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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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이란 선천적인 재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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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이나 검술 실력이야 열심히 뛰고 구르고 검을 휘두르다 보면 늦건 빠르건 나아지는 법이지만, 마력이란 오직 눈을 뜨냐 뜨지 않냐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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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마력 연공법이 있으면, 설령 재능을 타고나지 못한 이들이라도 후천적으로 마력을 손에 넣는 것이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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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렇게 마력을 손에 넣은 뒤에는 다시 한번 재능이라는 가혹한 잣대가 들이밀어지지만, 적어도 출발선에는 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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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마력 연공법이란 귀중하고, 귀족들은 철저하리만큼 그 지식을 독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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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에선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비르카 왕국에서는 구하려고 해서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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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달리아는 대체 이걸 어디에서 구해왔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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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어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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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당한 거 아니니까 다들 그 의심스러운 눈초리는 그만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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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심술에 눈을 뜨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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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니들 얼굴을 보면 어지간히 둔한 녀석도 다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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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대원들은 멋쩍은 기색으로 시선을 회피했고, 달리아는 다시 한번 부하들에게 책을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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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읽어봐. 글 못 읽는 대원은 읽을 줄 아는 대원이 옆에서 도와주고. 책 자체가 최대한 쉽게 풀어 써놓은 거라 그리 어렵진 않을 거야. 그래도 이해가 안 가는 건 나한테 물어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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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미심쩍은 건 사실이지만, 다른 이도 아니고 달리아가 이렇게 권하는데 이를 끝까지 거부할 소대원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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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서로의 도움을 받아 가며 책을 읽었고, 그 내용을 어찌어찌 실천해 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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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약 일주일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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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어? 돼, 됐어요! 진짜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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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소대의 여러 경비병 중, 어느 여자 소대원이 마력에 눈을 뜨고는 방방 뛰며 기쁨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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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수수께끼의 남자에게서 받은 책을 감옥에 있던 달리아에게 전달했던 바로 그 소대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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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신반의였던 소대원들 역시, 막상 정말로 마력에 눈을 뜨는 동료가 나오자 눈을 부릅뜨고 훈련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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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 개시로부터 약 보름 뒤에는 소대원 중 절반이 각성에 성공했고, 한 달 뒤에는 가장 진전이 느렸던 부관마저 마력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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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마력 연공법이라는 게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려면 적어도 연 단위의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는 걸 고려하면, 거의 정신 나간 수준의 습득 속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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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대장님. 대체 이런 걸 어떻게, 아니, 어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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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대원들은 기뻐하면서도 동시에 두려움을 느끼는 듯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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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손에 넣을 수 없으리라 여겼던 힘을 이렇게 간단하게 손에 넣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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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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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아는 그런 부하들의 우려를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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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력 연공법은 기본적으로 신체 강화에 특화되어 있어. 정확히는 마력 연공법을 연마하면 할수록 몸 자체를 강하게 만들어주고, 몸이 강해지면 그만큼 강화 효율이 높아지는 구조지. 너희가 습득이 빠른 건 그만큼 평소에 몸을 단련해 놔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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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소대의 부대원들은 하나하나가 2위계 상위권에 속해 있던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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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을 제외한 모든 기초 조건이 이미 갖춰져 있기에 습득이 빨랐을 뿐, 다른 이들이 같은 연공법을 배운다고 해도 이 정도로 빨리 효과를 보긴 어려울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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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연공법이란 엄연히 ‘훈련’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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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하고 반복적인 운동이 몸에 좋다는 걸 알아도 이를 실제로 실천하는 이는 드문 것처럼, 달리아의 마력 연공법 역시 훈련을 게을리하는 순간 곧바로 그 수준이 퇴화해 버릴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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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배워둬. 머지않아 너희가 직접 다른 사람들에게도 가르쳐 줘야 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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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저희들 말고 다른 이들에게도 이걸 베푸실 생각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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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경비대 체계로는 내부 정리야 어찌 됐든, 외부의 침공에는 대항할 수 없을 테니까. 뭐, 아무래도 몸 쓰는 일이다 보니까 이러니저러니 해도 경비대 쪽에서 많이 자원하긴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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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마력 연공법만 빼먹고 도망치는 이들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악용하는 이들이 생길 수도 있고요. 그럴 바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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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철저하게 달리아를 신봉하는 추종자들에게만 베푸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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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관이 미처 내뱉지 못한 말을 짐작이라도 한 듯, 달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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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사람은 선별할 거야. 단, 그 기준은 얼마나 나에게 충실한지가 아니라, 얼마나 규율을 잘 지키고, 맡은 바 역할을 다 해내느냐가 되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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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에게 충성을 바치는 기사가 아닌, 질서와 규율 그 자체에 충성을 바치며 무고한 이들의 평화와 안전을 수호하는 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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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이상적이고, 현실성이 부족한 몽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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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들 또한 타락하여 자기 이익을 위해 무고한 이들을 핍박하는 존재로 변질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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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달리아는 도전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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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이것이 100점짜리 정답이 아니라고 해도, 본인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길을 걷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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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 끝에 독선에 빠지게 될 수도 있지만, 그래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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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초심을 잃고 추한 권력자로 변해버린다면, 그땐 반드시 유쾌한 괴도가 그녀를 벌하러 올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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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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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또다시 몇 달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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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아라고 했던가? 너, 내 밑으로 들어올 생각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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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벨 후작가에서 찾아온 어느 영애가 내뱉은 말에, 응접실 내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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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브루크 측 사람들은 당혹과 분노 중 어느 쪽을 드러내야 할지 모른다는 반응이었고, 후작가 측 사람들은 ‘아가씨가 또 저질렀다’라며 탄식을 금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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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연한 것은 달리아 본인과 레드벨 가문의 영애, 그리고 그 영애의 호위라는 하늘색 머리의 마법사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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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아는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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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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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아깝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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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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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벨의 영애는 감히 평민 주제에 내 제안을 거부했다며 날뛰지도 않았고, 달리아의 무덤덤한 답변에 불쾌함을 드러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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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말한 대로 약간의 아쉬움을 표한 것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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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담백하기 짝이 없는 반응에, 달리아는 순간 묘한 감정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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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아 레드벨. 현재 이 나라에서 펼쳐지는 거대한 정치 공방의 주역 중 한 명이라고 들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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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벨 후작가와 비르카 왕가 사이에서 태어난, 어떤 의미로 이 왕국에서 가장 고귀한 핏줄을 타고난 영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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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좀 보고 싶다는 레드벨 가문의 요청을 달리아가 거부하니 어떤 의미로는 적지라고 할 수 있는 레브루크까지 몸소 찾아온 것도 그렇고, 현재 레브루크를 대표하는 입장이긴 해도 일개 평민에 지나지 않는 달리아와 대등한 눈높이로 대화를 나누는 것도 그렇고, 여러 가지 의미로 파격적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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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옆에 저 사람, 블랑카라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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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아의 시선이 하늘색 머리의 모험가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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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지 모르게 슬픔과 그 슬픔을 이겨내고 나아가려 하는 강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눈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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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춤에 찬 투박한 검과 달리 체구는 언뜻 가냘픈 인상이 들 정도로 마른 편이었지만, 달리아는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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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면 아마도 이길 거 같지만, 단언은 못 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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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현시점에서 객관적인 경지 그 자체는 달리아 쪽이 더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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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블랑카에게선 그런 강자마저도 긴장하게 만드는 무언가, 그러니까 자이언트 킬링의 기색이 적잖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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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량적으로 완성된 게 아니라 성장 도중이라는 인상도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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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가 길드의 상위권 모험가는 전부 저런 느낌인 걸까. 그렇다면 길드는 그녀가 생각해 왔던 것보다 훨씬 무서운 집단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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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아가 묘한 착각에 빠진 걸 아는지 모르는 지, 블랑카는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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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자기는 일시적으로 고용된 호위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 같은 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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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동맹은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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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아의 새로운 제안에, 달리아가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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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이라면, 구체적으로는 어떤 동맹을 말씀하시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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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 지금 사르노스의 세력권 내에서 고립되어 있잖아? 현재는 우리 쪽의 견제 때문에 백작이 쉽게 움직이질 못하니 방치되어 있지만, 백작이 무너지고 나면 다른 녀석들이 슬금슬금 눈독을 들이겠지. 그걸 막아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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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다른 곳도 아니고 레드벨 후작가가 비호하는 영지에 구태여 머리를 들이박을 머저리는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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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브루크에 대놓고 군사를 보내진 않아도 교역이나 통행 등으로 자잘한 견제를 시도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데, 어쩌면 그런 견제마저 싹 사라질지도 모르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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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은, 레브루크를 레드벨 가문의 영토로 삼겠다는 뜻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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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방법 중 하나지. 솔직히 말해 이 땅은 잠재력만큼은 어마어마하니까. 이 인구수에, 이 입지 조건에, 이 방대한 농토를 가지고도 그따위로밖에 못 굴린 백작이 머저리가 아닐까 싶을 만큼. 근데 내 부하가 되는 건 싫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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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아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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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빛의 눈동자가, 달리아의 연두색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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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하니까 주변의 정치적 공세 말고, 행정적인 문제로도 꽤 골치 아파하고 있는 모양인데, 내가 해결해 줄게. 대신, 너희는 우리에게 무력과 인력을 제공해 주면 좋겠어. 고용 조건은 대충 이 정도면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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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아가 내민 서류를 보고, 달리아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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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진짜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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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너무 가격이 짠 거 같아? 하지만 본래 첫 계약은 그런 거야. 너희가 유능한 인재를 보내줄지 폐급을 보낼지 어떻게 알아? 일단 써보고 유능하면 차차 급여를 인상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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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아는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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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이 짜기는커녕, 사르노스 백작가에서 사람들을 부릴 때 쓰던 조건에 비해 너무 후해서 도리어 믿을 수가 없었다는 말은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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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작가는 백작가에 비해 부유하다고 듣긴 했지만, 그래도 이건 좀 격차가 너무 심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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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아는 하루 정도 기다려 달라고 요청했고, 레브루크의 통치를 위해 만들어진 위원회에서 이번 계약에 대해 가결을 받은 후 클라우디아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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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일 비르카 왕국을 좌지우지하게 될 세 여걸의 첫 협동 작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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