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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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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화 괴도 도팽(Dauphin) (18) - 질서를 위해, 질서를 무시하다

도팽에게 다소 굴욕을 당하긴 했지만, 사르노스 기사단은 기본적으로 강자 중의 강자, 권력자 중의 권력자다.

가문의 권력이든, 개인의 무력이든, 집단으로서의 명성이든 비르카 왕국 내에서는 따라올 자가 드물었기에, ‘주군의 아들’이라는 특이케이스가 아니고서야 그들은 어지간해선 콧대 높은 태도를 그만두지 않았다.

경비대의 중대장조차 자기들 분풀이로 두들겨 패고 갈아치우는 이들이, 일개 평민들을 상대로 어떤 태도를 보일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레브루크 전체에 감도는 극도로 흉흉한 분위기는 그런 그들조차도 본능적으로 주변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래, 사람이 허세 좀 부릴 수 있다 치자. 실수도 할 수 있다 치자고. 근데… 본인들이 실패해 놓고 그거 책임지긴 싫으니까 엉뚱한 상대한테 누명을 씌우고 책임을 떠넘겨? 심지어 자기들 오기 전엔 일 잘하던 상대를? 이게 진짜 사람 새끼가 할 발상인가?”

“니들 기사단이라며, 사르노스의 자랑이라며, 대체 언제부터 가문 명예에 똥칠하고 다니는 놈들을 자랑이라고 불렀냐!!”

“야 이 양아치 새끼들아!! 니들은 염치라는 게 없냐!!”

본래도 썩 좋다고는 하기 어려웠던 기사단의 평판이었지만, 이번 것은 예전과 비교할 정도가 아니었다.

과거엔 뒤에서 이러쿵저러쿵 은근히 수군거리는 정도였다면, 이제는 대놓고 앞에서 욕을 퍼붓는 정도.

심지어 이번엔 같은 귀족들조차도 기사단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다.

“이… 이런, 멍청한 놈들! 이왕 할 거면 안 들켰어야지!”

“아! 멍청한 칼잡이 놈들이 답지도 않게 머리 쓴다고 나대다가 우리 체면까지 깎아 먹는구나!”

“형님! 형님!! 어쩌다 이런 꼴로! 기사단 놈들은 호위한다고 사람 데려가 놓고 대체 뭘 한 거야!!”

부도덕한 모략을 꾸민 거?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아니, 오히려 본인들 딴엔 할 수 있는 걸 다 하려고 했던 거니 인정까지도 해줄 수 있다.

하지만 고작 하룻밤 만에 본진이 털리고, 귀족들 사이의 ‘은밀한 대화’까지 바깥으로 유출되게 만든 무능함은 도저히 참아줄 수가 없었다.

덕분에 지금 레브루크의 귀족 전체가 죽일 놈들로 낙인찍히지 않았는가!!

기사단은 처음에는 ‘전부 마법으로 위조한 가짜’라는 식으로 어떻게든 변명을 이어가려 했지만, 시민들 중 그 말을 믿는 이는 없었다.

카드만 덜렁 널려 있었으면 그야 의심도 했겠지만, 옆에 대놓고 표적들이 함께 전시되어 있는 데 음성만 가짜라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뭐라고 변명조차 하지 못할 실패다.

대저택 내부.

늘 자신만만한 태도로 차갑게 주변을 내려다보던 기사단장의 눈빛은, 지금 격하게 떨리는 중이었다.

호위 대상들 전원이 납치당하고도 깨닫지 못했다.

상황을 반전 시키려던 모략을 역이용당했다.

어느 한쪽이 벌어진 것만으로도 백작께 보고하기가 부끄러운 상황인데, 그게 양쪽 동시에 터졌다.

그것도 수습조차 어려운 상태로.

그는 여전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대체 어떻게?”

도팽은 범행에 땅굴을 이용했다.

그리고 땅굴이라는 건 본디 준비하는데 어마어마한 시간과 노력을 요구하는 물건이다.

마법을 사용한다면 시간을 다소 줄일 수야 있겠지만, 설령 그렇다고 해도 지저에서 그런 식으로 땅굴을 파고 있었다면, 기사단장 자신이 그 마력과 진동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리가 없다.

결론은 하나뿐.

“일찌감치 사전 준비를 해놨던 거야. 상황이 불리해지면 우리가 그 대저택에 호위 대상들을 모으리라 예측하고서!!”

일개 도적놈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났다는 사실에, 기사단장은 피가 거꾸로 솟을 것 같은 분노와 등골이 싸늘해지는 오한을 동시에 느꼈다.

여태 본적 없을 만큼 혼란스러워하는 기사단장의 모습을 보고, 부단장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도팽 놈의 수작이야 어찌 됐든, 중요한 건 이제부터 어떻게 할지 아니겠습니까.”

“이제부터라니. 이미 다 끝난 마당에 대체 뭘 하라는 거지?”

“잊으셨습니까? 백작님의 명령은 ‘도팽을 잡아 그 목을 가지고 와라’였습니다. 저희는 놈을 유인할 수단으로 귀빈들을 호위했을 뿐, 명령의 본질은 그게 아니지요.”

궤변이었다.

백작이 직접적으로 요구한 것이 도팽의 목인 건 사실이나, 그게 도시 상황도 정리하고 목도 같이 가져오라는 뜻인 건 너무나 명확했으니까.

“그런다고 백작님께서 용서해 주시겠는가?”

“이대로 기사단이 도팽에게 ‘패배’하는 모양새로 일이 끝났다간, 그거야말로 정말로 용서받지 못할 일이 될 겁니다. 아시잖습니까!”

사르노스 기사단은 백작가의 자존심이다.

기사단의 무력만이 백작가의 전부는 아니지만, 가장 상징적인 집단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런데 그런 상징이, 일개 도둑을 상대로 일방적으로 농락당하다가 패배한다?

과연 이 이후, 사람들이 기사단을 두려워할까? 그들에게 경의를 표할까?

그리고 가문의 자랑거리를 비웃음거리로 만든 그들을, 과연 백작이 용서할까?

기사단장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방법이 있나?”

“도팽은 평민들의 안위를 극도로 신경 쓰는 자입니다. 여태껏 놈에게 당한 후 화풀이로 평민들에게 복수를 시도하려던 귀족들은 몇 명인가 있었지만, 모두 도팽의 개입으로 무산되었지요.”

반대로 말하자면, 평민들에게 물리적인 위협을 가하는 것으로, 도팽 본인을 끌어낼 수 있다는 뜻.

“빈민가를 표적으로 삼으시지요. 어차피 가진 거라곤 없는 자들이니 세금에도 별 영향이 가지 않을뿐더러, 저기 밖에서 떠드는 인간들도 눈앞에서 피를 보고 나면 입을 다물 겁니다.”

치안을 지키고 외적과 싸워야 하는 기사단이, 영지민을 상대로 검을 휘두르겠다는 제정신이 아닌 발상.

허나, 기사단장은 알고 있었다.

두려움 받는 무력 집단은 얼마든지 쓸모가 있지만, 남들에게 얕보이는 무력 집단은 가치가 없다는 것을.

“기사단, 전원을 소집하게.”

이를 바득거리며, 기사단장은 허리춤에 맨 검 손잡이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경비대 감옥.

“그래서, 지금 바깥은 다들 기사단이랑 귀족 놈들을 욕하고, 대장을 그리워하는 목소리로 가득해요! 누명이 벗겨졌으니, 이제 나오시는 것도 시간문제라고요!”

“…그래.”

들뜬 목소리로 바깥 상황을 설명하는 8소대 여자 소대원의 모습에, 창살 안의 달리아는 조금 곤란한 기색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누명이 벗겨진 건 물론 기쁜 일이고, 시민들이 그녀를 그리워해 준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기사단이 한 방 먹은 것에 통쾌해하는 기분도… 솔직히 말해서 없지는 않다.

그런데도, 달리아는 밝게 웃을 수가 없었다.

‘결국, 도팽의 승리로 끝나버렸네.

그를 막기 위해 노력해 왔고, 그를 붙잡기 위해 창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녀가 맞서 싸워왔던 괴도는, 그녀가 자리를 떠난 사이에 당당하게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 이후로도 달리아는 여전히 경비병일 테고, 도팽은 괴도일 테지만, 둘이 얼굴을 마주할 일은 없을 것이다.

여태까지 보여준 도팽의 행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는 또 다른 영지로 떠나갈 테니까.

가슴 속에 남는 씁쓸한 감정의 정체를, 달리아는 그제야 명확히 깨달았다.

자신은 괴도 도팽이 승리했다는 사실에, 경비병으로서 패배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그와의 승부를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한 것을, 인간 달리아로서 아쉬워하는 거지.

‘…이래서야 도팽을 응원하는 다른 소대원들에게 뭐라고 할 처지도 못 되겠네.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쉬는 달리아의 모습을 깨닫지 못한 채, 소대원은 “아, 맞다”하며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 내밀었다.

얼핏 책처럼 보이는 그 모습에, 달리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이게?”

“소대장님을 향한 선물이라는데요? 본래 완성되는 대로 바로 직접 전해줄 생각이었는데, 지금 소대장님을 면회할 수 있는 건 저희 소대원들뿐이니까 대신 맡긴다고 했어요. 그, 음, 연령은 소대장님보다 조금 더 위에, 생긴 건 대체로 평범한데, 눈은 조금 익살스러운? 네, 그런 분위기의 남자분이었는데, 혹시 아시는 분이신가요?”

달리아의 연두색 두 눈이 크게 떠졌다.

그녀는 창살 사이로 책을 받아, 내용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본디 달리아는 책을 그렇게까지 즐겨 읽는 편은 아니었다.

아버지로부터 다소나마 글을 배우긴 했지만 정작 아버지도 교양이 그리 뛰어난 편은 아니었기에, 달리아 역시 간단한 문장이라면 몰라도 내용이 일정 이상 복잡해지기 시작하면 읽는 데 어려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달리아는 해석에 어떤 어려움도 느끼지 못했다.

일단 페이지의 상당 부분이 그림으로 채워져 있기도 했고, 설명문 역시 귀족들이 쓸법한 어려운 어휘 같은 건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었다.

뭣보다, 달리아는 이미 이 내용을 ‘알고’ 있었다.

지식이 아니라, 본능으로서.

“왜 그러세요, 소대장님? 언뜻 살펴봤을 땐 딱히 뭐 이상한 그림 같은 건 안 그려져 있었는데…?”

멍해져 있는 달리아의 반응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소대원이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질문했다.

허나 달리아가 거기에 응답하는 것보다 먼저, 두 사람의 귀에 들려온 소리가 있었다.

《─레브루크에 사는 모든 이들에게 고한다.》

동굴 속 메아리를 뭉쳐 놓은 듯한 기묘한 목소리.

그것이 마도구에 의한 음성 증폭이라는 걸 깨달은 달리아는 반사적으로 청각을 집중했다.

아니, 사실 집중할 필요도 없었다.

소리는 도시 전체에 울려 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도팽과 그 일당이 조잡한 거짓 소문을 흘려 사람들을 현혹하고 있다.》

《본디 우리 사르노스 기사단은 기사로서의 명예와 긍지에 따라 레브루크를 수호하려 했으나, 도팽의 추잡한 모략에 의해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쓰고 있는바, 더는 기존의 방법을 유지할 수 없노라 판단했다.》

《고로, 지금부터 우리 기사단은 이 도시의 빈민가를 모조리 쓸어버릴 것이다.》

달리아는 순간 제 귀를 의심했다.

허나, 감옥 창살 너머에 있는 소대원의 표정 역시 경악으로 물든 것으로 보아, 방금 들은 말은 헛것이 아닌 것 같았다.

《빈민가의 거주민들은 영민의 의무조차 제대로 다하지 못하면서 도시의 고혈을 빨아먹는 기생충 같은 존재들이며, 도팽은 이런 이들에게 도둑질로 빼앗은 재산을 적선하듯이 던져주며 자신의 과시욕을 충족했다.》

《또한 이런 하찮은 수법에 넘어간 일부 주민들은 기꺼이 도팽의 수족이 되어 조금이라도 더 많은 꿀을 받아먹기 위해 헌신했으며, 도둑에게 협력하고 그를 통해 이익을 얻은 그 모든 행위는 당연하게도 범죄다.》

《고로, 우리 사르노스 기사단은 정의로 이를 바로 잡으려고 한다.》

정의.

그 단어가 귀에 들어온 순간, 달리아는 벌레가 피부를 기어가는 듯한 혐오감을 느꼈다.

단어 그 자체의 의미 때문이 아닌, 그것을 핑계로 사용하려는 이들의 작태 때문에.

《이는 레브루크를 위한 행동이며, 나아가 사르노스 백작가 전체를 위한 행동이기도 하다.》

《만약 우리의 앞길을 막는 자가 있다면 그자가 누가 되었든 간에 도팽이 변장한 모습이거나, 혹은 도팽의 도둑질에 협력해 이익을 얻은 공범으로 인식하여 베겠다.》

《그러니 아무런 죄도 없는 무고한 시민들이여, 부디 소란을 피우지 말고 생업에 종사하여, 괜한 오해로 피해를 보는 일이 없기를 기원하겠다.》

《이상.》

달리아는 더 이상 참지 않았다.

파각!

기사를 구속하기 위해 특별히 만들어낸 수갑을 단숨에 박살 내버린 그녀는, 그대로 감옥의 문 쪽으로 다가가 문을 강제로 열었다.

아니, 그냥 철문 자체를 뜯어냈다.

콰지직!

“무, 무슨 짓, 어, 으.”

달리아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개입하려던 간수는, 그 무지막지한 광경에 본능적으로 겁을 먹고 말을 머뭇거렸다.

소대원 역시 얼이 빠진 건 마찬가지였다.

“대, 대장?”

“내 갑옷, 아니 창만이라도 좋아. 어디에 있어?”

“어, 그게, 그.”

“빨리!”

“8, 8소대 대기실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달리아는 땅을 박찼다.

그녀는 지금 자신의 행동이 범죄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동안 화가 나고, 답답하고, 설령 억울한 일을 당해도 참아왔었던 ‘질서와 규율을 지킨다’라는 명제를, 완전히 부정해 버리는 소행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걸 알면서도, 달리아는 움직였다.

움직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누가 뭐라고 하건, 나는 내가 하는 일이 선에 가깝다고 믿네. 절대적이고 완전한 선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선과 악의 천칭 중 선 쪽에 치우친 행동이라고 말이야. 그렇다면 그대로 행할 뿐이지! 실로 간단한 일 아닌가!」

「놀이라고 해서 꼭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당장 현실로 옮기는 건 어려울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훗날 어떤 일을 겪었을 때 판단 기준으론 삼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서로 다른.

어쩌면 다르지 않을 두 남자의 목소리가 합쳐지는 듯한 감각을 무시한 채, 달리아는 부디 늦지 않도록 달리고 또 달렸다.

‘그’와 함께 논쟁하고, 토론하고, 쌓아 올렸던.

그녀 자신만의 법률과 정의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