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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화 괴도 도팽(Dauphin) (17) - 극비. 대외유출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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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브루크의 권력자들은 쓰레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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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대저택에 모인 이들로 말하자면, 그런 쓰레기 중에서도 손꼽히는 쓰레기 중의 쓰레기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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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도팽이 맛있는 건 나중에 먹는 취향이라 그런 게 아니라, 그 죄질이 어설프거나 개선의 여지가 있는 자들의 경우 일찌감치 자진 납세, 그러니까 도팽의 ‘권고’를 따른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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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 체면 따위가 또 하나의 재산이나 마찬가지인 귀족 사회에서 고작 ‘도적’의 협박을 이기지 못하고 ‘평민’에게 사죄하며 보상금까지 가져다 바치는 건 사회적으로 어마어마한 손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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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무리 사죄가 굴욕적인 일이라고 한들 도적놈한테 복날 개 맞듯이 두들겨 맞은 뒤에 도롱이 벌레처럼 묶여서 거리 한복판에 전시되는 것과 비교할 정도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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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 굴복하면 협박에 굴한 머저리나 배신자 취급을 받겠지만, 함께 사죄에 동참할 다른 인원이 있다면 더더욱 망설일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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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 말하자면, 표적이 겨우 열 명만 남은 이 순간까지도 끝까지 버티고 있다는 건 헛된 자존심이나 고집이 골수까지 파먹은 놈들 아니면, 죗값이 너무 큰 나머지 사죄 정도로는 감당이 안 되는 악질 중의 악질이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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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쓰레기들은 현재, 본인들의 악질적인 인성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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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개 도적놈 하나 때문에 서로 이게 무슨 고생인지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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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대가 제 역할만 다했으면 이리 고생할 것도 없었을 것을. 하기야 내통자 따위를 키우고 있던 조직에 무얼 바라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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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계집이 뻔뻔한 얼굴로 곁을 지키고 있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몸서리가 쳐지는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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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나 말이오.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반드시 엄격한 처형식을 벌여야만 할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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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중 대다수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달리아에게 서로 자기 곁을 지켜달라며 손을 내뻗고, 실제로 도움을 받은 적도 있는 이들이었지만 그런 사소한 문제를 입에 담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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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한 경비병 따위가 고귀한 자신들을 지키는 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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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연한 일조차 완벽하게 해내지 못하고 몇 번이나 도팽을 놓쳐버린 달리아를 곧바로 처형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그들은 차고 넘칠 정도로 자비와 은혜를 베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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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데 그 모든 게 거짓이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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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어찌 천인공노할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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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진심으로 그리 여기며 열심히 달리아를 까댔고, 그 의견을 다른 이들 역시 기꺼이 공유한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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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열한 계집 같으니. 내가 직접 첩으로 삼아주겠다고 했는데도 천한 평민 주제에 콧대를 뻣뻣하게 세우더니, 사실은 뒤에서 그런 작당을 꾸미고 있었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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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는 경비대 업무에 전념하고 싶으니 어쩌니 하며 스카웃 제의를 거절하더니, 이런 본성을 숨기고 있을 줄이야. 그래 짜고 치기로 꾸며낸 실력이니 진실이 밝혀질까 봐 두려웠을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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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절대로 사적인 원한이 섞인 것은 아니다. 아무튼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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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그들은 이미 기사단이 은근슬쩍 알려준 ‘달리아를 마음껏 씹어도 좋을 정보’를 확보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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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그 계집의 아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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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치미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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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은근한 어조로 이야기를 꺼내려고 한 그 순간, 귀빈들을 위해 준비된 연회석에 요란한 노성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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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빈들은 흠칫 놀랐고, 이내 불쾌한 얼굴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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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레브루크의 권력자들이 모인 이곳에서 어떤 자가 이리도 무례하고 무엄한 망동을 벌인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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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 핀잔이라도 내뱉기 위해 시선을 돌린 귀빈들은, 이내 소란의 주인을 확인하고는 헛기침과 함께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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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있는 이들 중 권력자가 아닌 이가 없긴 했으나, 지금 고래고래 목청을 높이고 있는 남자는 개중에도 한층 더 그 지위가 각별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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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브루크의 세무관. 사르노스 백작의 자식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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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전자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지만, 후자는 좀 많이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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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긴 거는 몰라도 목소리만큼은 진짜 아버지랑 쏙 빼닮았군. 큰 소리를 낼 때마다 심장이 벌렁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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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도팽한테 시달리는 스트레스로 폭식을 반복한 탓에 살이 엄청 쪘다고 듣긴 했는데… 거참. 도팽이 1년만 더 있으면 아예 공처럼 변하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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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향한 주변의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세무관은 연신 불평불만을 이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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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 경비병을 얼마나 믿었는데! 도팽 그 사악한 악적 놈의 마수에서 지켜주는 모습을 보고 살짝 감동하기까지 했는데! 이런 내 마음을 그렇게 무참하게 짓밟아? 대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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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장창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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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분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세무관은 손에 들고 있던 잔을 바닥으로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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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여기에 레드벨 후작가의 관련자가 있었더라면 세무관의 그 동작에서 모 성질 더러운 C영애의 그림자를 볼 수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사르노스의 본진 중 하나인 이곳에 그런 눈썰미를 가진 이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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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실로 망나니의 표본 같은 그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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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관은 도무지 분이 풀리질 않는다는 듯 그 두둑한 뱃살과 볼살을 파르르 떨더니, 이내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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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거기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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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시선을 회피하는 와중, 세무관이 한 기사를 지목하자 그 기사의 얼굴이 급격하게 썩어들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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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러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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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가 안 가서 그러는데, 뭐 좀 물어보자. 내가 그 경비병하고 몇 번 같이 움직이면서 봤거든? 근데 그 녀석이 분명 창 한 자루 들고 건물을 쪼개버렸단 말이지? 여태까지 걔가 벌인 활약이 전부 짜고 치기라면, 그 건물 쪼개기도 뭔가 속임수인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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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당연히 속임수겠지요. 본래 건물이란 미리 약한 부분을 만들어 두면, 약간의 충격만으로도 파괴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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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확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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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일개 경비병 따위가 그런 괴력을 발휘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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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돌아가서 하인들을 조져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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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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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관의 한마디에, 기사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모든 이들의 머릿속에 물음표가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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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화의 흐름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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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세무관은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한 기색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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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피해를 당한 건물은 내 건물이었거든? 그러면 그 도적놈이 쳐들어오기도 전에 이미 안쪽에서 뭔가 작당을 벌였다는 거잖아? 내통했건 아니면 제대로 관리를 못했건 어느 쪽이든 벌을 받을 일이지. 안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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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렇지요.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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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그렇지만 거기 하인들은 본가에서 보내준 놈들이라 어설프게 건드리면 좀 귀찮단 말이지…. 야, 너 방금 말한 거 확실한 거 맞지? 그 경비병의 힘이 전부 사기라는 거? 나중에 확인했는데 ‘사실 그런 거 아니었습니다’라고 나오면 재미없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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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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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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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말하는 ‘하인’이라는 게 천한 시종 놈들을 뜻하는 거라면 별다른 문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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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개인 집사나 시녀장 등, 가신을 포함해서 말하는 거라면 일이 복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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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곳도 아니고 백작가 본가에서 일하던 이들을 데려온 거라면, 그들 역시 나름대로 이름 있는 가문 출신일 가능성이 높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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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관의 눈이 찌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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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왜 말을 똑바로 못 해. 야, 시발. 너 지금 설마 그냥 되는대로 지껄이는 거 아니야? 내가 우습게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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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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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수상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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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관은 고개를 이리저리 기울이더니, 이내 다른 기사를 지목해 질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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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거기 너. 네가 답해 봐. 그 망할 도적놈이 분명 요상한 카드로 폭발도 일으키고, 전격도 일으키고, 아무튼 별의별 희한한 수법을 다 썼는데, 그 경비병이 그냥 깡으로 받아냈거든? 그것도 다 속임수인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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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물론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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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한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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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야 심문을 통해 조사해 보면 알게 될 일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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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러면 나한테도 그 결과 좀 공유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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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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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일개 경비병도 그런 튼튼함을 보여주게 만드는 ‘속임수’면 그건 그것대로 기술이잖아? 그러면 당연히 그 기술을 알아내서 써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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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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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어떻게 머리가 이렇게 안 돌아가지? 아주 검만 휘두르면 다야 다. 머리에 든 게 없어요. 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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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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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쭈? 뭐냐 그 눈은? 불만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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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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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 번만 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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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큰 선심을 쓴다는 듯이 몸을 돌린 세무관은, 그 뒤에도 지나가는 기사들 하나하나를 붙잡아 달리아의 ‘속임수’에 대해서 질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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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기사들은 굉장히 떫은 표정으로 그의 질문에 하나하나 응답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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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아의 능력은 모두 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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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아에게 그런 힘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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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개 경비병 따위가 자기들에게도 불가능한 일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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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회석에 있던 거의 모든 기사를 상대로 그 짓거리를 하고 나서야 세무관은 겨우 흡족한 얼굴이 되었고, 다른 귀빈들은 그 모습을 어이없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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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바탕 난리를 친 세무관은 이내 자신을 향한 기이한 시선을 확인하더니, 이내 응? 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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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빈들은 괜히 움찔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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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입지나 위치를 생각해 보면 사실 세무관이 그들에게까지 폭언을 퍼부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지만, 사실 그렇게 따지면 정식 직위는 세무관일 뿐인 그가 백작가의 자존심인 사르노스의 기사들을 저렇게 취급하는 것도 본래는 말이 안 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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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귀빈들의 염려는 다행히 기우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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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관이 갑자기 입에 싱긋 미소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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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죄송합니다. 다른 분들도 많은데, 제가 너무 폐를 끼치고 말았군요. 워낙에 쌓인 게 많고, 이해가 안 가는 게 많다 보니 저도 모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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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뭐 그럴 수도 있는 일 아니겠소. 이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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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이라기에는 뭣하지만, 오늘, 아니 기분이다! 앞으로 사흘간 이곳에서 여러분들이 먹고 마시는 모든 비용은 제가 전부 내도록 하겠습니다! 레브루크의 진귀한 명주란 명주는 죄다 가져와서 즐겨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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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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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들이라고 해서 공짜를 싫어하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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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물며 최근 도팽이 날뛰는 탓에 제대로 즐기지 못했던 사치를, 기사단의 철통같은 호위 속에서 아무런 염려 없이 즐길 수 있다는 건 이루 말할 수 없는 각별한 즐거움이 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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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만큼 기사단과 시종들의 고역은 늘어날 테지만, 그거야 그들이 알 바는 아니지 않은가? 꼬우면 애초에 이런 상황을 만들지 말고 도팽을 잡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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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회는 점점 무르익었고, 남에게 노려지는 중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거하게 먹고 마시던 이들도 하나하나 인사불성이 되어 방으로 끌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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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방문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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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들은 하나같이 학을 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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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너무한 것 아닙니까? 저희를 이리 함부로 대하다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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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그 돼지 같은 새끼. 마지막까지 이리저리 엉겨붙어서 귀찮게 하는데, 짜증나 죽는 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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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단장님의 명이니, 조금만 참아라. 여기 있는 인간들 하나하나는 별것 아니어도, 이들이 하나같이 반발하면 골치 아파져. 복수는 나중에 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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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귀빈들이라면 엄연히 핵심 권력층 중 하나인 기사단을 상대로 언행을 함부로 하진 않았겠지만, 이번 연회에서는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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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관의 행동이 일종의 가이드라인이 되기라도 한 것처럼, 술기운에 빠진 이들이 하나둘씩 비아냥이나 시비를 걸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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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대 높기로는 귀빈들 못지않은 기사들은 마음 같아선 한주먹 거리도 되지 않는 그들을 요절내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상황이 안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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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104호실. 이상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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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호실도 마찬가지입니다. 드르렁거리는 소리가 더럽게 시끄러운 것 빼면 쥐 죽은 듯이 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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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나 술을 퍼먹었으니 그럴 수밖에. 괜히 깨우지 않게 조심해라. 아까처럼 시비라도 걸기 시작했다간 우리만 피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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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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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한 건물에 여러 인간들이 몰려 있으면 개중에는 안 자고 딴짓을 하는 놈들이 나오는 법이지만, 귀빈 중 밤에 눈을 뜨고 돌아다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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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들은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술을 그만큼 마셨으면 정신을 못 차리는 게 당연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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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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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냐! 무슨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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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 그들이 이상을 깨달은 것은 다음 날 아침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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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을 모시기 위해 방에 들어선 어느 하녀의 비명을 확인하고 방에 들어가 보니, 침대에는 정교하게 사람을 흉내 낸 인형이 누워 있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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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말도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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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중 한 명이 현실을 부정하듯이 귀빈 중 한 명의 몸에 손을 댔지만, 이는 안 하느니만 못한 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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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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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귀빈의 몸이 너풀거리는 얇고 기묘한 재질의 막 같은 것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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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형태를 이루고 있던 막. 도팽이라면 특제 풍선이라고 부를 무언가의 안쪽에는 정교한 그림이 그려진 카드가 놓여 있었는데, 그 카드에서는 코골이, 이갈이, 잠꼬대 등 기사단이 밤중에 들었던 온갖 소음이 다양한 패턴으로 재생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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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단의 얼굴이 하나같이 창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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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전부 사라졌다고? 호위 대상이 한 명도 빠지지 않고 사라졌는데, 그걸 아무도 몰랐다? 그래서 나한테 알리지도 못했다고? 그게 무슨 병신 같은 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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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죄송합니다. 현재 놈이 이용한 걸로 추측되는 지하굴을 역추적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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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기다려주십시오! 단장님! 부단장님!! 지금, 지금 거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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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브루크의 시민들은 멍한 얼굴로 도시 곳곳에 전시된 열 개의 도롱이 벌레와 그들의 목에 매달려 소리를 내는 기묘한 카드를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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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에, 8소대장의 능력은 전부 가짜입니다. 건물을 부수는 괴력이라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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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조리 속임수입니다. 사르노스 기사단의 이름을 걸고 맹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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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건 저희 기사에게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기사도 못 하는 걸 일개 경비병이 한다는 건 말이 안 되잖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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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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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소대와 친하게 지내지 않았냐고? 허허, 그럴 리가. 어차피 천한 것들 아닌가. 평민이 우리에게 봉사하는 거야 당연한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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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년 말입니까? 말도 마십시오. 내가 옆에 바싹 붙어 있으라며 몇 번이나 권유했는데도, 다른 구역에도 순찰을 돌아야 하니 어쩌니 하며 끝까지 거절하더군요. 아니, 저 천한 것들보다 우리를 더 신경 써야 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닙니까? 머저리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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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 보라지. 지금은 천것들이 기세등등해져 있지만, 도팽인지 뭔지를 잡는 순간 그놈들을 전부 요절낼 생각이니까! 반발? 하! 어차피 주모자급으로 몇 놈 붙잡아 본보기를 보이면 다른 것들은 다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어. 그게 자존심도 염치도 없는 천것들의 생리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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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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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말해봐. 아니, 기사 양반. 솔직히 좀 말해보시오. 내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어서 그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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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시면 곤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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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만 살짝, 살짝 귀띔을 해달란 말이오. 내가 그 정도는 알 자격이 있지 않소? 아니면 내가 정말 아버지에게 이 일을 고해야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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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절대, 절대 외부에 발설하셔선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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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으니까,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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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직)께서 추측하신 내용이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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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그렇군. 역시 그 경비병의 능력은 가짜가 아니었던 거로군? 도팽과 짜고 쳤다는 것도 만들어낸 이야기고? 그럼 그렇지, 내 눈이 틀릴 리가 있나! 하하, 이 나까지 속여 넘기다니, 기사단의 모략이 실로 범상치 않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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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절대로 외부에 알리셔선 안 됩니다. 아무리 (치직)님이라고 해도, 그때는 단장님께서 가만히 계시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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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겠소, 내 입도 뻥끗하지 않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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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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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이야기를 풀어낸 카드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같은 내용을 되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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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들은 내용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싫증을 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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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그 내용을 귓속에 새겨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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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에 멈춰선 그들의 모습을 본 다른 시민들도 무슨 일이 있나 싶어 접근했고, 이내 기존 시민들과 같은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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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개중 누군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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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씹쌔끼들 좀 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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