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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화 하인 세드릭(Cedric) (18) - 어느 귀족 영애의 운수 좋은 날
세드릭은 생각했다.
‘몸 상태가 말이 아니로군.
전신이 납덩이라도 매단 것처럼 묵직하고, 팔다리는 시도 때도 없이 저려온다.
항상 날카로움을 유지하던 오감은 둔해질 정도로 둔해져서, 마력을 통해 보조해야 간신히 보통 사람 수준을 유지할 정도.
의심할 여지도 없이, 그의 몸은 파멸로 달려가고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클라우디아를 향한 암살 시도 당시, 그가 발휘한 무력은 대략 4등급 중반 정도.
모험가 베른처럼 무력에 특화된 분신에게는 어렵지 않게 사용할 수 있는 힘이지만, 만능을 추구한 대신 하나하나의 고점이 낮은 세드릭에게는 막대한 반동을 각오해야 하는 무력이었다.
이미 그 시점에서 몸에 적잖은 무리가 쌓였는데, 그 후에 또 마법 쪽으로 허용된 것 이상의 힘을 사용했다.
아르민 레드벨의 감시는 그 성격만큼이나 집요했던 터라, 하수인들의 눈을 완전히 피하면서 뒤통수를 치려면 제법 다양한 마법을 조합해서 사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마력으로 구성된 신체. 그 구성 요소 하나하나가 삐걱거리며 비명을 지르는 소리를 분명히 인식하면서도, 세드릭은 미소 짓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래도 계약 종료가 얼마 안 남아서 다행이로군.
어차피 지금 이 신체는 그의 본체가 아니다.
자괴한다고 해도 그건 죽음과는 거리가 멀고, 베른 때처럼 외력에 의해 갑자기 파괴되는 게 아닌 이상 본체로 넘어가는 반동도 최소화할 수 있다.
굳이 불안 요소를 꼽는다면 ‘하인 세드릭’으로서 맡은 역할을 다해내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정도지만, 다행히 지금 상태로 보아 남은 기간 정도는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쿨럭! 쿨럭! 스읍. 하마터면 옷에 묻을 뻔했군.”
갑작스럽게 솟구친 각혈에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이내 말끔하게 몸가짐을 정리한 후 다시 떠나가는 세드릭.
부작용으로 감각이 크게 둔해진 그는 알지 못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고 경악하는, 어느 메이드가 있다는 사실을.
***
가끔, 특별한 이유 없이 기분이 좋게 눈이 떠지는 날이 있다.
클라우디아에게는 오늘이 딱 그런 날이었다.
그녀의 아침 준비를 돕던 메이드들 역시 그것을 느꼈는지, 클라우디아의 머리를 빗던 메이드가 입을 열어 질문했다.
“오늘은 기분이 좋아 보이시네요, 아가씨.”
“보면 알 정도야?”
“네. 뭔가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던 건가요?”
“딱히 그런 건 아니야. 그냥, 왠지 컨디션이 좋네.”
긴장감이라고는 없는 시시껄렁한 잡담 속, 화기애애하게 피어나는 웃음소리.
거울을 통해 비치는 메이드들의 웃는 얼굴을 보며, 클라우디아는 내심 생각했다.
‘예전 같았으면, 바짝 얼어붙어서 인형처럼 일 만했을 텐데.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메이드들이 자진해서 클라우디아에게 일상적인 대화를 시도하는 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클라우디아의 심기가 수틀리는 순간 바로 손찌검이 날아갈 텐데, 어떤 간 큰 메이드가 함부로 입을 열겠는가.
‘바보 같은 짓이었지.
본인이 힘들고 괴롭다고 해서, 그게 다른 사람들에게 화풀이해도 좋은 이유는 되지 않는다.
하인들은 그녀가 마음대로 다루고 처리해도 되는 물건 따위가 아닌, 그녀와 똑같이 피가 흐르고 아픔을 느끼는 인간이다.
귀족으로서 권위를 세우는 것과 무분별한 해악을 끼치는 것은 다르며, 그 증거로 이렇게 잡담을 나누면서도 일의 능률이 떨어지기는커녕 전보다 오르기까지 했다.
전에는 알지 못했던, 혹은 알면서도 외면했던 사실들이었다.
‘새삼스레 다시 미안해지네….
물론 과거의 잘못에 대해서는 이미 사과도 했고, 금전적인 보상도 했지만, 클라우디아의 마음속에 있는 죄책감까지 단숨에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하인 중에는 진심으로 사과를 받아준 이들도 있겠지만, 클라우디아의 지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과를 받아준 이들도 있다는 걸 알기에 더더욱.
이 찝찝함은 오랜 시간 천천히 갚아나갈 수밖에 없겠지.
아침 식사 시간.
최근 절치부심하며 실력을 키운 주방장이 내 온 것은 클라우디아에게 제법 익숙한 메뉴였다.
“오므라이스랑 함박스테이크네?”
“세드릭에게 배운 것을 제 요리로 체득하는 데 제법 시간이 걸렸습니다. 부디 음미해 주십시오.”
평소 세드릭이 내오던 것처럼 빨간 소스가 아닌, 짙은 갈색의 소스가 묻은 오므라이스를 한 입 먹은 클라우디아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이것대로 제법 괜찮네.
그녀가 예전에 먹어왔던 것들과 달리, 좀 더 깊은 풍미가 강하고 어른스러운 느낌의 소스였다.
클라우디아의 개인 취향으로 따지면 세드릭의 작품 쪽이 더 취향이었지만, 다른 귀족들은 아마 이쪽을 더 좋아하지 않을까.
함박스테이크의 경우 세드릭 쪽은 본래 커다란 덩어리였던 것에 반해, 주방장이 가져온 건 한입 크기의 동글동글한 구슬 같은 형태를 하고 있었다.
포크로 찍어 먹기가 더 편하고, 맛 역시 나쁘지 않았다.
“좋아, 맛있네.”
클라우디아의 한 마디에,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던 주방장의 긴장이 풀리고, 그 얼굴에 기쁨의 미소가 드러났다.
특별히 대단한 말을 한 것도 아닌데 지나치게 기뻐하는 거 아닌가 싶다가도, 평소에 얼마나 자기한테 인정을 못 받았으면 저럴까 싶어 안쓰럽기도 했다.
이 넓은 저택에서, 오직 그녀만을 위해 만든 음식을 맛있다고 말해주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을 텐데.
정원으로 나가면, 하인 중 몇몇이 혈마수들을 보살피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정확히는 보살핀다기보다도 같이 놀고 있는 모습에 가깝긴 했지만.
“자! 가서 물어와! 옳지! 잘했어!”
“손! 손! 쓰읍, 왜 내 말은 안 듣는 거지?”
“그게 다 실력 아니겠어?”
“뭐? 야! 바꿔! 담당하는 애들 바꿔서 해보자고!”
“어허, 진실을 말했을 뿐인데 왜 이리 발끈하실까?”
본인들이 개도 아닐진대 서로 으르렁대기 시작한 하인들을 방치한 채, 소형견 크기의 혈마수 두 마리가 늘어져라 하품을 했다.
예전에는 먼발치에서 혈마수의 그림자만 보여도 덜덜 떠는 하인들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참으로 놀랍기 짝이 없는 변화였다.
물론 어지간한 사자 뺨치는 거대 마수와 무릎보다 낮은 개를 똑같이 취급할 순 없겠지만….
‘쟤들은 지금 저러고 노는 혈마수들 몸속에 내 핏방울이 들어가 있다는 걸 까먹었나?
혈마수들이 보고 느끼는 걸 클라우디아가 항상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해당 혈마수들과 클라우디아가 마주했을 때, 혈마수들에게서 경험담을 의지로서 전달받는 것 정도는 가능했다.
반대로 혈마수들에게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해라’ ‘이럴 때는 어디 건물로 가서 사람을 불러라’라고, 평범한 개에게 내리는 것치고는 다소 까다로운 명령을 내릴 수도 있었고.
지금 영지 곳곳에 퍼져 있는 혈마수들에게는 ‘본인이 배운 걸 자식에게도 가르쳐라’라고 지시한 상태이니, 클라우디아가 직접 하나하나 얼굴을 맞대고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경비 체계는 알아서 계승될 터.
클라우디아는 하인들에게 가볍게 충고를 건넬까 말까 고민하다가, 이내 침묵을 지키기로 했다.
솔직히 말해서 보고 있으면 꽤 재미있는 광경이었으니까.
-멍!
-왈!
그런 클라우디아의 의지를 느낀 것인지, 혈마수 두 마리가 ‘나중에 쟤들이 어떻게 놀았는지 알려드릴게요!’라고 의지를 전달해 왔다.
클라우디아는 웃으면서 정원을 떠났다.
그녀가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영주 관저의 집무실.
이제는 손에 서류를 붙들고 있는 게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집사장 베스티앙이, 영지의 관리 상태에 대해 보고를 올렸다.
“외부에서 에체드령으로 넘어와 정착을 시도하는 자유민들의 숫자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범죄자나 마수의 습격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영지’라는 게 그들에게 큰 매력으로 느껴진 듯합니다.”
“식량이나 영토 문제는 없어?”
“애초에 에체드령은 사용되지 않고 방치되어 있던 땅이 많은 터라, 이주민들에게 농토를 개간시키면서 점진적으로 받아들인다면 큰 문제는 없을듯합니다. 영지의 재정도 풍족한 편이라서 급하면 외부에서 식량을 사 올 여력도 있습니다.”
“오빠랑 언니한테 감사해야겠네. 그쪽에서 뜯어낸 게 어지간해야지.”
“다른 것도 아니고 아가씨의 목숨을 위협받은 대가 아닙니까. 더 팍팍 뜯어내셔도 뭐라고 할 수 없을 겁니다.”
“레드벨 소속 다른 영지의 반응들은 어때?”
“아가씨께서 2 왕자 전하가 아닌 왕제 전하를 지지하는 모습을 보고 당황하는 이들도 적잖이 있습니다만,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내는 이들은 비교적 소수입니다. 후작님께서 아가씨에게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이를 일종의 ‘달걀 나눠 담기’라고 해석하는 분위기더군요.”
2 왕자라는 바구니에 모든 달걀을 넣어두면, 2 왕자가 패배하는 순간 모든 걸 잃는다.
하지만 왕제라는 바구니에 일부 달걀을 나눠서 넣어두면, 최악의 경우에도 남는 것이 있다.
물론 어디까지나 이론상 그렇다는 것일 뿐이고, 실제로는 문제가 많은 전략이었다.
당장 2 왕자는 지금 양다리를 걸치냐며 방방 날뛰고 있다는 모양이니까.
레드벨 후작은 2 왕자가 그러든 말든 신경도 안 쓰고 상대도 잘 안 해주는 터라, 장남인 아르민만 탈모가 일어날 정도로 시달린다는 점이 포인트였다.
“여동생을 위해 이렇게나 노력하다니, 역시 장남은 다르네.”
클라우디아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다소 여유와 품위가 생기고 ‘자기 사람’에게는 물러진 그녀였지만, 근본적인 성격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남의 불행을 기뻐하는 그 모습은 영락없는 악역영애 그 자체.
한참 이런저런 서류 업무를 살피던 그녀는, 어느 정도 작업을 일단락 지은 뒤 세드릭을 찾았다.
그가 타 준 홍차를 마시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기 있습니다, 아가씨.”
호출한 뒤 잠시 후 세드릭이 서빙용 카트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고, 클라우디아는 조용히 그가 타 준 홍차를 입에 댔다.
마시기 쉬운 수준까지 온도를 조절하면서도, 본래 그 정도로 온도가 낮아지면 다소 약해지는 향을 최대한 온존하는 기술은 그야말로 세드릭이기에 가능한…
“…응?”
묘한 위화감을 느낀 클라우디아는, 이내 고개를 갸웃하면서 맑은 주황빛의 액체를 다시 한 모금 머금었다.
그리고 확신했다.
‘평소에 비해 향이 약하네?
혀로 느끼는 맛 자체는 크게 변함이 없다.
하지만, 차의 중요한 요소인 향이 다소 약하게 느껴졌다.
세드릭에게 들은 바로는 뭔가 마력을 어떻게 써서 온도를 낮추면서도 향을 온전히 즐길 수 있게 보존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 작업이 잘 되지 않은 걸까.
평소보다 완성도가 부족한 실패작을 입에 댔으면서도, 클라우디아는 특별히 화를 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조금 기꺼워하기까지 했다.
세드릭도 실패라는 걸 하긴 하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어쩐지 친근하고 재미있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참나, 평소보다 맛이 떨어지잖아. 요즘 너무 긴장이 풀린 거 아니야?”
클라우디아는 약간의 짓궂음을 담아, 세드릭에게 말했다.
그가 또 어떤 식으로 뻔뻔한 대답을 돌려줄지 기대하면서.
하지만, 돌아온 반응은 예상 외의 것이었다.
세드릭은 진심으로 놀란 듯이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이내 침통한 얼굴이 되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아가씨. 무어라 변명할 말이 없습니다.”
“응? 어, 아, 아니 뭐 그렇게 신경 쓸 필요는 없어. 사람은 실수할 수도 있다. 네가 알려준 거잖아?”
클라우디아는 본래 세드릭을 놀리려던 예정을 바꿔, 다급히 그를 위로했다.
설마 이런 반응이 돌아오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으니까.
그녀에게 이미 세드릭의 존재는 인생에서 뗄레야 뗄 수 없는 거대한 무언가였다.
자신의 인생을 바꿔준 하인이 사소한 실수 좀 했다고 진심으로 꾸짖을 만큼, 클라우디아는 못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 뒤에 이어진 세드릭의 말을 듣기 전까지는 그러했다.
“아가씨의 넓은 아량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정말로 많이 성장하셨군요. 이제는 안심하고 떠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떠나?”
클라우디아는 멍하니 그 말을 중얼거렸다.
잠시 후, 평온하기 짝이 없던 그녀의 얼굴이 표독하게 변했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마. 네가 떠나긴 어딜 떠나?”
“계약 기간이 곧 끝납니다.”
“그거야 다시 재갱신하면 되는 거잖아!!”
쨍그랑!
클라우디아가 떨어트린 찻잔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깨져나갔다.
허나 클라우디아는 그쪽에는 시선조차 향하지 않았다.
그녀의 두 눈은 오로지 세드릭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가지 마. 넌 내 꺼야. 내 하인이라고. 내가 널 보내 줄 거 같아!?”
“그리 말씀하셔도, 계약 연장은 불가능합니다. 아가씨.”
“그러니까, 왜!!”
쾅!
클라우디아가 상을 내리치며 몸을 일으켰다.
클라우디아의 이글거리는 눈동자와 세드릭의 차분한 눈동자가 조용히 마주쳤다.
먼저 고개를 숙인 건 세드릭 쪽이었다.
“…지금은 다소 흥분하신 모양이군요. 나중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세드릭은 그리 말하며 방을 떠나갔고, 클라우디아는 그가 나간 문을 매섭게 노려보다가, 이내 신경질적인 동작으로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때, 깨진 컵 파편을 정리하기 위해서 메이드 네리아가 안으로 들어섰다.
조심스러운 빗자루질과 걸레질로 바닥을 정리한 그녀는, 어째서인지 곧바로 나가지 않고 머뭇거렸다.
하루 종일 좋았던 기분도 무의미하게, 한껏 날카로워진 클라우디아가 짜증을 내려고 한 그 순간이었다.
“저기, 아가씨. 사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