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195 lines
13 KiB
Markdown
195 lines
13 KiB
Markdown
|
||
#51화 하인 세드릭(Cedric) (17) - 작은할아버지
|
||
|
||
‘클라우디아가 혼자 날뛰는 건 무섭지 않지만, 협력 관계인 주변 영주들과 똘똘 뭉쳐서 목소리를 내면 다소 피곤해질 수도 있겠지. 그들에게 은근히 2 왕자의 이름으로 견제를 넣어둘까.’
|
||
|
||
‘암살 대책도 해야겠군. 둘째와 셋째의 암살을 막아냈다는 건 그만큼 실력 좋은 검을 호위로 두고 있다는 뜻일 테니. 이판사판으로 내 목을 노려올 가능성도 없진 않으니, 철저하게 몸을 지켜야겠어.’
|
||
|
||
‘클라우디아의 혼인으로 인해 레드벨이 얻게 될 이익에 대해 확실히 알릴 필요도 있겠지. 주변에서 일제히 혼인을 기대하는 흐름만 만들어지면, 클라우디아가 어설프게 여론전 같은 걸 시도해 봐야 파도에 휩쓸려 나갈 뿐이야.’
|
||
|
||
아르민 레드벨의 정치 공작은 실로 치밀했다.
|
||
|
||
클라우디아의 세력이 상대적으로 열세임에도 방심하지 않고, 그녀가 사용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차근차근 봉쇄했다.
|
||
|
||
동생들처럼 어설프게 전력을 축차 투입하는 대신 초반에 완봉을 노리는 그 모습은, 그가 왜 일찌감치 레드벨의 후계자로서 지위를 확고히 했는지 보여주는 듯했다.
|
||
|
||
다만 한 가지 아르민이 불행했던 점은, 그가 상식의 범주에서 상대를 판단하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
||
|
||
“아르민 레드벨!! 네놈이 감히 내 뒤통수를 쳐!?”
|
||
|
||
고로, 얼굴이 시뻘게진 2 왕자가 그의 영지로 쳐들어왔을 때, 아르민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
||
|
||
“진정하십시오, 고귀하신 왕자 전하. 뒤통수라니, 제가 어찌 전하께 그런 무도한 일을 하겠습니까? 우선은 차분히 이야기를─”
|
||
|
||
“진정? 차분? 지금 내가 진정할 수 있을 것 같나! 내가 지금 바솔로뮤 그 작자에게 대체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알기나 해!?”
|
||
|
||
바솔로뮤 대공.
|
||
|
||
비르카 왕국의 왕제이자 차기 국왕 자리를 노리는 거물의 이름을 듣고, 아르민의 얼굴이 미미하게 굳었다.
|
||
|
||
2 왕자의 격노가 단순한 오해나 해프닝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는 걸 직감한 것이다.
|
||
|
||
그리고 그 직감은 2 왕자의 입에서 이어진 말로 현실이 되었다.
|
||
|
||
“그 작자가 나에게 ‘전하, 여러모로 조급하신 것은 알겠으나 아무리 그래도 일족의 어린아이를 팔아서 장사를 하려고 하시다니요. 왕족으로서 품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지껄이더군! 지금 왕실 전체에 내가 조카를 팔아서 세력을 키우려 했단 소문이 파다하단 말일세!! 그 클라우디아라는 계집은 바솔로뮤랑 같이 다니면서 이번 일이 내 음모라고 증언하고 있고!! 이래도 모른다고 발뺌할 생각인가!?”
|
||
|
||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
||
|
||
아르민은 무심코 몸을 휘청거렸다.
|
||
|
||
망치로 힘껏 두들겨 맞은 것처럼 뒤통수가 얼얼했다.
|
||
|
||
‘레드벨 가문이 2 왕자에게 베팅한 걸 알면서, 왕제에게 붙었다고? 제정신인가?’
|
||
|
||
레드벨 후작가와 사르노스 백작가는 각각 2 왕자와 왕제를 지지 중이고, 승리를 위해 적지 않은 노력을 퍼붓고 있다.
|
||
|
||
승자는 왕위 쟁탈의 일등 공신으로서 더 많은 것을 손에 쥐겠지만, 패자는 그만큼 많은 걸 뺏기게 될 테니까.
|
||
|
||
만약 왕제가 승리한다면, 2 왕자를 지지하며 자기를 방해한 레드벨 가문을 가만히 내버려 두려고는 하지 않을 터.
|
||
|
||
레드벨 가문의 위세가 워낙 드높은 만큼 단숨에 멸문으로 몰고 간다든가 하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왕국 3강 중 2강인 왕가와 백작가가 협력하며 후작가를 밀어붙인다면 그 피해는 상상조차 하기 싫은 수준일 것이다.
|
||
|
||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적에게 달라붙어서 레드벨의 뒤통수를 쳐? 결혼하기 싫다고?
|
||
|
||
‘이, 이런 머저리 같은 계집이…!! 철이 없는 것도 정도라는 게 있지!!’
|
||
|
||
아무리 철저하고 신중한 아르민이라도, 아니, 오히려 그런 성격이었기에 더더욱 클라우디아가 이런 수를 쓰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
||
|
||
그래, 당장은 위기를 모면할 수 있겠지.
|
||
|
||
하지만 그 다음은 어찌할 텐가?
|
||
|
||
2 왕자가 승리하면 당연히 클라우디아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을 테고, 왕제가 승리하면 승리하는 대로 클라우디아의 이용 가치는 바닥난다.
|
||
|
||
클라우디아를 꼭두각시 삼아 레드벨을 통치한다? 가문의 배신자를 가신들이 순순히 받아들이겠는가?
|
||
|
||
아르민의 상식과 지식으로 판단할 때, 클라우디아의 이번 한 수는 집안에 벌레가 꼬인 게 싫다고 집 그 자체를 불태워 버린 거나 마찬가지인 행동이었다.
|
||
|
||
여름에는 어찌어찌 괜찮을지 몰라도, 겨울이 되면 곧바로 추위 속에서 얼어 죽을 자멸 행위.
|
||
|
||
문제는, 그 자멸 행위에 아르민까지 같이 휩쓸릴 판이라는 점이었다.
|
||
|
||
“오해하지 말아 주십시오, 전하! 이는 클라우디아의 독단행동입니다! 절대 저희 가문이 꾸민 음모 따위가 아니란 말입니다!”
|
||
|
||
“천하의 레드벨 가문에서 일개 영애 하나가 영지를 뛰쳐나가 왕제에게 접촉하는 걸 전혀 몰랐다고? 지금 그걸 믿으라는 소리인가? 설마 정략혼에 이용할 대상을, 제대로 감시도 안 하고 그냥 방치했다는 소리를 지껄이진 않기를 바라네!”
|
||
|
||
“그것은….”
|
||
|
||
아르민은 이를 악물었다.
|
||
|
||
그는 분명히 부하들에게 클라우디아의 감시를 명했지만, 그의 부하 중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고, 아니 클라우디아가 무언가 움직임을 보였다고 보고를 올린 이는 단 하나도 없었으니까.
|
||
|
||
위에서 아무리 철저하게 계획을 꾸며도, 막상 현장에서 그 계획대로 움직여주지 않으면 헛수고라는 걸 그대로 보여주는 증거였다.
|
||
|
||
물론 부하들 역시 변명 거리는 있었다.
|
||
|
||
클라우디아가 고용한 하인이 사실 환영 마법까지 쓸 수 있는 능력자인 것이 그들의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
||
|
||
“그리고 설령 이 모든 게 그 계집의 독단이었다고 해도 문제일세!! 결국 레드벨이 내 뒤통수를 쳤다는 건 똑같지 않은가!!”
|
||
|
||
연좌제가 당연한 취급을 받는 세상.
|
||
|
||
클라우디아의 행동이 독단이었든 아니었든, 그녀가 레드벨의 혈통을 타고난 게 사실인 이상 아르민 레드벨은 그 책임을 회피할 수 없었다.
|
||
|
||
혈통이란 이름으로 묶인 실로 악질적인 조별 과제의 조장이 되고 만 것이다.
|
||
|
||
아니, 진짜 조장은 너무 거물이라서 아무도 못 건드리고, 비교적 만만한 아르민만 부조장으로서 대신 쪼인다는 점에서 어떤 의미로는 그보다 비참했다.
|
||
|
||
길길이 날뛰는 2 왕자를 열심히 달래면서, 아르민은 속으로 분통을 터트렸다.
|
||
|
||
‘클라우디아, 이 수모는 반드시 갚아주마…!!’
|
||
|
||
***
|
||
|
||
“하하하! 그 꼬맹이의 안색이 어찌나 붉으락푸르락해지는지, 최근 본 것 중 최고의 볼거리였다! ”
|
||
|
||
군데군데가 희끗희끗한 백금발이 인상적인 초로의 남자가 폭소를 터트렸다.
|
||
|
||
비르카 왕국의 왕제(王弟)이자, 클라우디아에게는 작은할아버지가 되는 인물.
|
||
|
||
바솔로뮤 대공을 향해 클라우디아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
|
||
|
||
“왕제 전하께 도움이 되었다면 실로 다행이네요.”
|
||
|
||
“전하니 뭐니 딱딱한 표현은 필요 없으니, 그냥 작은할아버지라고 부르거라.”
|
||
|
||
“그러면 작은할아버지라고 하죠, 뭐.”
|
||
|
||
“허, 보통은 그럴 수 있겠냐며 겸양을 떠는데, 냉큼 받아먹는구나?”
|
||
|
||
“제가 좀 솔직한 편이긴 해요.”
|
||
|
||
“하하하! 좋군, 좋아! 레드벨 후작 그, 그 음흉한 인간과는 안 닮은 것 같아서 정말 다행이구나!”
|
||
|
||
클라우디아의 언행은 무척이나 거침이 없었다.
|
||
|
||
아무리 막 나가는 그녀라고 해도 왕족이자 작은할아버지인 인물에게 반말을 찍찍 해대지는 않았기에 최소한의 경어 정도는 갖춰서 말했지만, 딱 그 정도.
|
||
|
||
허나 왕제는 오히려 그게 마음에 드는지 연신 유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
||
|
||
“형님이 조카, 그러니까 네 어머니를 후작 그놈에게 내어주기로 결정했을 때는 내심 불만이 많았지. 나랑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는 놈에게 이 어린아이를 둘째 부인이라며 안겨주는 게 정말 맞는 일이냐고 말이야. 심지어 걔는 몸도 약했으니까 더더욱 그랬다.”
|
||
|
||
“정략혼이 어쩌고 하는 건, 당하는 입장에선 상당히 민폐이긴 해요.”
|
||
|
||
“안심해라. 너까지 네 어미와 똑같은 일을 겪진 않게 할 테니. 나는 제 조카를 멋대로 팔아먹으려 하는 그 파렴치한 자식과는 달라.”
|
||
|
||
왕제의 호언장담을, 클라우디아는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
||
|
||
조카딸을 그리워하고 그 아이에게 친절하게 구는 호탕한 할아버지처럼 행동하는 왕제였지만, 그는 이 나라의 왕위를 손에 넣기 위해 모략과 정쟁을 서슴지 않는 정치가다.
|
||
|
||
당장 2 왕자를 확실하게 공격하기 위해, 클라우디아를 여기저기 끌고 다니며 이번 일에 대해 증언하도록 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 아닌가.
|
||
|
||
지금이야 클라우디아가 왕제에게 도움이 되니까 친밀한 척 굴고 있지만, 이용 가치가 떨어졌다고 판단했을 때도 똑같은 태도를 유지할지는 두고 봐야 했다.
|
||
|
||
‘뭐, 상관없어. 어차피 이용하는 건 나도 마찬가지니까.’
|
||
|
||
아르민 같은 인물은 클라우디아가 멍청한 행동을 했다며 욕지거리를 내뱉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클라우디아의 생각은 달랐다.
|
||
|
||
어차피 그녀가 왕제 측으로 갈아타 그를 지원한다고 해도, 레드벨과 2 왕자 측이 쉽게 무너지지는 않는다.
|
||
|
||
이미 레드벨 후작이 많은 이득을 벌어들인 상태이기 때문이다.
|
||
|
||
한동안은 지지부진한 싸움이 이어질 테고, 클라우디아의 이용 가치가 사라지는 건 분명 많은 시간이 지난 뒤의 일일 터.
|
||
|
||
그리고, ‘시간’만 있다면 그녀는 이용 가치가 있니 어쩌니 하는 수준을 넘어, 왕위 다툼 그 자체를 결판 지을 만한 거물이 될 자신이 있었다.
|
||
|
||
세드릭이 그녀에게 새롭게 선물해 준 개량 비전은 그 정도로 말도 안 되는 물건이었다.
|
||
|
||
설령 레드벨을 전부 저버리더라도, 어느 정도 유예만 있다면 새롭게 그 못지않은 세력을 일굴 정도의.
|
||
|
||
물론, 그렇다고 이미 손에 쥔 걸 굳이 내버릴 필요는 없었다.
|
||
|
||
“작은할아버지, 잊으신 건 아니죠? 이번 일의 배후는 어디까지나 장남 아르민이 2 왕자 전하와 공모하여 저지른 월권행위일 뿐, 레드벨 그 자체의 뜻은 아니라는 거요.”
|
||
|
||
“으음, 이왕 좋은 건수가 생긴 김에 함께 후려치는 편이 좋지 않겠느냐? 특히 사르노스 백작가에서 이번 기회를 살려야 한다고 난리를 치고 있거든.”
|
||
|
||
“검 끝으로 한 점만 찌르는 거랑 검면을 이용해 옆으로 후려치는 거랑 어느 쪽이 더 큰 상처가 되겠어요? 여러 곳을 때리려고 하면 그만큼 힘이 분산되는 법이에요.”
|
||
|
||
“하하, 방해되는 장남만 도려내고, 네가 먹을 다른 부분은 남겨두라는 말을 참 곱게 포장하는 재주가 있구나! 확실히 공격이 ‘레드벨’이 아니라 ‘아르민 레드벨’ 개인을 향하면, 가신들 입장에서도 상대적으로 반발이 적겠지.”
|
||
|
||
“그렇게 해서 작은할아버지에게 새로운 지지자가 생기면, 할아버지 입장에서도 좋은 것 아닌가요? 지지자가 사르노스 가문뿐이라면 왕위에 오르셔도 그들의 의견을 존중해 줘야 하지만, 지지자가 저랑 사르노스 가문 둘로 나뉘면 할아버지 입맛대로 서로 경쟁하게 할 수 있잖아요.”
|
||
|
||
“흐음.”
|
||
|
||
클라우디아의 말에, 왕제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
||
|
||
그 입에는 여전히 미소가 띠어져 있었지만, 그 미소에 담긴 감정은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
||
|
||
“아까 했던 말을 취소해야겠구나. 외모는 조카를 닮았어도, 네 내면 쪽은 확실히 후작 그 인간의 피가 흐르는 게 맞아.”
|
||
|
||
“…그 말은 좀 취소해 주시죠?”
|
||
|
||
클라우디아의 얼굴이 급격히 썩어들어갔다.
|
||
|
||
그 노골적이면서도 사뭇 인간적인 반응에, 왕제는 다시금 폭소를 터트렸다.
|
||
|
||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방의 구석.
|
||
|
||
다른 하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림자처럼 대기하면서도, 세드릭의 얼굴에는 흡족한 감정이 드러나 있었다.
|
||
|
||
세드릭이 대략적인 방침을 정해준 것은 사실이나, 세세한 부분을 채워 넣고 현장에서 임기응변을 선보인 건 클라우디아의 능력이었기 때문이다.
|
||
|
||
자기가 사는 저택의 하인들에게조차 망나니 취급받던 철부지 귀족 영애는, 어느새인가 차기 국왕 후보와 미래를 논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 상태였다.
|
||
|
||
세드릭의 계약 종료까지, 일주일만이 남았을 때의 일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