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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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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화 하인 세드릭(Cedric) (17) - 작은할아버지

‘클라우디아가 혼자 날뛰는 건 무섭지 않지만, 협력 관계인 주변 영주들과 똘똘 뭉쳐서 목소리를 내면 다소 피곤해질 수도 있겠지. 그들에게 은근히 2 왕자의 이름으로 견제를 넣어둘까.

‘암살 대책도 해야겠군. 둘째와 셋째의 암살을 막아냈다는 건 그만큼 실력 좋은 검을 호위로 두고 있다는 뜻일 테니. 이판사판으로 내 목을 노려올 가능성도 없진 않으니, 철저하게 몸을 지켜야겠어.

‘클라우디아의 혼인으로 인해 레드벨이 얻게 될 이익에 대해 확실히 알릴 필요도 있겠지. 주변에서 일제히 혼인을 기대하는 흐름만 만들어지면, 클라우디아가 어설프게 여론전 같은 걸 시도해 봐야 파도에 휩쓸려 나갈 뿐이야.

아르민 레드벨의 정치 공작은 실로 치밀했다.

클라우디아의 세력이 상대적으로 열세임에도 방심하지 않고, 그녀가 사용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차근차근 봉쇄했다.

동생들처럼 어설프게 전력을 축차 투입하는 대신 초반에 완봉을 노리는 그 모습은, 그가 왜 일찌감치 레드벨의 후계자로서 지위를 확고히 했는지 보여주는 듯했다.

다만 한 가지 아르민이 불행했던 점은, 그가 상식의 범주에서 상대를 판단하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아르민 레드벨!! 네놈이 감히 내 뒤통수를 쳐!?”

고로, 얼굴이 시뻘게진 2 왕자가 그의 영지로 쳐들어왔을 때, 아르민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진정하십시오, 고귀하신 왕자 전하. 뒤통수라니, 제가 어찌 전하께 그런 무도한 일을 하겠습니까? 우선은 차분히 이야기를─”

“진정? 차분? 지금 내가 진정할 수 있을 것 같나! 내가 지금 바솔로뮤 그 작자에게 대체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알기나 해!?”

바솔로뮤 대공.

비르카 왕국의 왕제이자 차기 국왕 자리를 노리는 거물의 이름을 듣고, 아르민의 얼굴이 미미하게 굳었다.

2 왕자의 격노가 단순한 오해나 해프닝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는 걸 직감한 것이다.

그리고 그 직감은 2 왕자의 입에서 이어진 말로 현실이 되었다.

“그 작자가 나에게 ‘전하, 여러모로 조급하신 것은 알겠으나 아무리 그래도 일족의 어린아이를 팔아서 장사를 하려고 하시다니요. 왕족으로서 품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지껄이더군! 지금 왕실 전체에 내가 조카를 팔아서 세력을 키우려 했단 소문이 파다하단 말일세!! 그 클라우디아라는 계집은 바솔로뮤랑 같이 다니면서 이번 일이 내 음모라고 증언하고 있고!! 이래도 모른다고 발뺌할 생각인가!?”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아르민은 무심코 몸을 휘청거렸다.

망치로 힘껏 두들겨 맞은 것처럼 뒤통수가 얼얼했다.

‘레드벨 가문이 2 왕자에게 베팅한 걸 알면서, 왕제에게 붙었다고? 제정신인가?

레드벨 후작가와 사르노스 백작가는 각각 2 왕자와 왕제를 지지 중이고, 승리를 위해 적지 않은 노력을 퍼붓고 있다.

승자는 왕위 쟁탈의 일등 공신으로서 더 많은 것을 손에 쥐겠지만, 패자는 그만큼 많은 걸 뺏기게 될 테니까.

만약 왕제가 승리한다면, 2 왕자를 지지하며 자기를 방해한 레드벨 가문을 가만히 내버려 두려고는 하지 않을 터.

레드벨 가문의 위세가 워낙 드높은 만큼 단숨에 멸문으로 몰고 간다든가 하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왕국 3강 중 2강인 왕가와 백작가가 협력하며 후작가를 밀어붙인다면 그 피해는 상상조차 하기 싫은 수준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적에게 달라붙어서 레드벨의 뒤통수를 쳐? 결혼하기 싫다고?

‘이, 이런 머저리 같은 계집이…!! 철이 없는 것도 정도라는 게 있지!!

아무리 철저하고 신중한 아르민이라도, 아니, 오히려 그런 성격이었기에 더더욱 클라우디아가 이런 수를 쓰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래, 당장은 위기를 모면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 다음은 어찌할 텐가?

2 왕자가 승리하면 당연히 클라우디아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을 테고, 왕제가 승리하면 승리하는 대로 클라우디아의 이용 가치는 바닥난다.

클라우디아를 꼭두각시 삼아 레드벨을 통치한다? 가문의 배신자를 가신들이 순순히 받아들이겠는가?

아르민의 상식과 지식으로 판단할 때, 클라우디아의 이번 한 수는 집안에 벌레가 꼬인 게 싫다고 집 그 자체를 불태워 버린 거나 마찬가지인 행동이었다.

여름에는 어찌어찌 괜찮을지 몰라도, 겨울이 되면 곧바로 추위 속에서 얼어 죽을 자멸 행위.

문제는, 그 자멸 행위에 아르민까지 같이 휩쓸릴 판이라는 점이었다.

“오해하지 말아 주십시오, 전하! 이는 클라우디아의 독단행동입니다! 절대 저희 가문이 꾸민 음모 따위가 아니란 말입니다!”

“천하의 레드벨 가문에서 일개 영애 하나가 영지를 뛰쳐나가 왕제에게 접촉하는 걸 전혀 몰랐다고? 지금 그걸 믿으라는 소리인가? 설마 정략혼에 이용할 대상을, 제대로 감시도 안 하고 그냥 방치했다는 소리를 지껄이진 않기를 바라네!”

“그것은….”

아르민은 이를 악물었다.

그는 분명히 부하들에게 클라우디아의 감시를 명했지만, 그의 부하 중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고, 아니 클라우디아가 무언가 움직임을 보였다고 보고를 올린 이는 단 하나도 없었으니까.

위에서 아무리 철저하게 계획을 꾸며도, 막상 현장에서 그 계획대로 움직여주지 않으면 헛수고라는 걸 그대로 보여주는 증거였다.

물론 부하들 역시 변명 거리는 있었다.

클라우디아가 고용한 하인이 사실 환영 마법까지 쓸 수 있는 능력자인 것이 그들의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설령 이 모든 게 그 계집의 독단이었다고 해도 문제일세!! 결국 레드벨이 내 뒤통수를 쳤다는 건 똑같지 않은가!!”

연좌제가 당연한 취급을 받는 세상.

클라우디아의 행동이 독단이었든 아니었든, 그녀가 레드벨의 혈통을 타고난 게 사실인 이상 아르민 레드벨은 그 책임을 회피할 수 없었다.

혈통이란 이름으로 묶인 실로 악질적인 조별 과제의 조장이 되고 만 것이다.

아니, 진짜 조장은 너무 거물이라서 아무도 못 건드리고, 비교적 만만한 아르민만 부조장으로서 대신 쪼인다는 점에서 어떤 의미로는 그보다 비참했다.

길길이 날뛰는 2 왕자를 열심히 달래면서, 아르민은 속으로 분통을 터트렸다.

‘클라우디아, 이 수모는 반드시 갚아주마…!!


“하하하! 그 꼬맹이의 안색이 어찌나 붉으락푸르락해지는지, 최근 본 것 중 최고의 볼거리였다! ”

군데군데가 희끗희끗한 백금발이 인상적인 초로의 남자가 폭소를 터트렸다.

비르카 왕국의 왕제(王弟)이자, 클라우디아에게는 작은할아버지가 되는 인물.

바솔로뮤 대공을 향해 클라우디아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왕제 전하께 도움이 되었다면 실로 다행이네요.”

“전하니 뭐니 딱딱한 표현은 필요 없으니, 그냥 작은할아버지라고 부르거라.”

“그러면 작은할아버지라고 하죠, 뭐.”

“허, 보통은 그럴 수 있겠냐며 겸양을 떠는데, 냉큼 받아먹는구나?”

“제가 좀 솔직한 편이긴 해요.”

“하하하! 좋군, 좋아! 레드벨 후작 그, 그 음흉한 인간과는 안 닮은 것 같아서 정말 다행이구나!”

클라우디아의 언행은 무척이나 거침이 없었다.

아무리 막 나가는 그녀라고 해도 왕족이자 작은할아버지인 인물에게 반말을 찍찍 해대지는 않았기에 최소한의 경어 정도는 갖춰서 말했지만, 딱 그 정도.

허나 왕제는 오히려 그게 마음에 드는지 연신 유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형님이 조카, 그러니까 네 어머니를 후작 그놈에게 내어주기로 결정했을 때는 내심 불만이 많았지. 나랑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는 놈에게 이 어린아이를 둘째 부인이라며 안겨주는 게 정말 맞는 일이냐고 말이야. 심지어 걔는 몸도 약했으니까 더더욱 그랬다.”

“정략혼이 어쩌고 하는 건, 당하는 입장에선 상당히 민폐이긴 해요.”

“안심해라. 너까지 네 어미와 똑같은 일을 겪진 않게 할 테니. 나는 제 조카를 멋대로 팔아먹으려 하는 그 파렴치한 자식과는 달라.”

왕제의 호언장담을, 클라우디아는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조카딸을 그리워하고 그 아이에게 친절하게 구는 호탕한 할아버지처럼 행동하는 왕제였지만, 그는 이 나라의 왕위를 손에 넣기 위해 모략과 정쟁을 서슴지 않는 정치가다.

당장 2 왕자를 확실하게 공격하기 위해, 클라우디아를 여기저기 끌고 다니며 이번 일에 대해 증언하도록 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 아닌가.

지금이야 클라우디아가 왕제에게 도움이 되니까 친밀한 척 굴고 있지만, 이용 가치가 떨어졌다고 판단했을 때도 똑같은 태도를 유지할지는 두고 봐야 했다.

‘뭐, 상관없어. 어차피 이용하는 건 나도 마찬가지니까.

아르민 같은 인물은 클라우디아가 멍청한 행동을 했다며 욕지거리를 내뱉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클라우디아의 생각은 달랐다.

어차피 그녀가 왕제 측으로 갈아타 그를 지원한다고 해도, 레드벨과 2 왕자 측이 쉽게 무너지지는 않는다.

이미 레드벨 후작이 많은 이득을 벌어들인 상태이기 때문이다.

한동안은 지지부진한 싸움이 이어질 테고, 클라우디아의 이용 가치가 사라지는 건 분명 많은 시간이 지난 뒤의 일일 터.

그리고, ‘시간’만 있다면 그녀는 이용 가치가 있니 어쩌니 하는 수준을 넘어, 왕위 다툼 그 자체를 결판 지을 만한 거물이 될 자신이 있었다.

세드릭이 그녀에게 새롭게 선물해 준 개량 비전은 그 정도로 말도 안 되는 물건이었다.

설령 레드벨을 전부 저버리더라도, 어느 정도 유예만 있다면 새롭게 그 못지않은 세력을 일굴 정도의.

물론, 그렇다고 이미 손에 쥔 걸 굳이 내버릴 필요는 없었다.

“작은할아버지, 잊으신 건 아니죠? 이번 일의 배후는 어디까지나 장남 아르민이 2 왕자 전하와 공모하여 저지른 월권행위일 뿐, 레드벨 그 자체의 뜻은 아니라는 거요.”

“으음, 이왕 좋은 건수가 생긴 김에 함께 후려치는 편이 좋지 않겠느냐? 특히 사르노스 백작가에서 이번 기회를 살려야 한다고 난리를 치고 있거든.”

“검 끝으로 한 점만 찌르는 거랑 검면을 이용해 옆으로 후려치는 거랑 어느 쪽이 더 큰 상처가 되겠어요? 여러 곳을 때리려고 하면 그만큼 힘이 분산되는 법이에요.”

“하하, 방해되는 장남만 도려내고, 네가 먹을 다른 부분은 남겨두라는 말을 참 곱게 포장하는 재주가 있구나! 확실히 공격이 ‘레드벨’이 아니라 ‘아르민 레드벨’ 개인을 향하면, 가신들 입장에서도 상대적으로 반발이 적겠지.”

“그렇게 해서 작은할아버지에게 새로운 지지자가 생기면, 할아버지 입장에서도 좋은 것 아닌가요? 지지자가 사르노스 가문뿐이라면 왕위에 오르셔도 그들의 의견을 존중해 줘야 하지만, 지지자가 저랑 사르노스 가문 둘로 나뉘면 할아버지 입맛대로 서로 경쟁하게 할 수 있잖아요.”

“흐음.”

클라우디아의 말에, 왕제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 입에는 여전히 미소가 띠어져 있었지만, 그 미소에 담긴 감정은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아까 했던 말을 취소해야겠구나. 외모는 조카를 닮았어도, 네 내면 쪽은 확실히 후작 그 인간의 피가 흐르는 게 맞아.”

“…그 말은 좀 취소해 주시죠?”

클라우디아의 얼굴이 급격히 썩어들어갔다.

그 노골적이면서도 사뭇 인간적인 반응에, 왕제는 다시금 폭소를 터트렸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방의 구석.

다른 하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림자처럼 대기하면서도, 세드릭의 얼굴에는 흡족한 감정이 드러나 있었다.

세드릭이 대략적인 방침을 정해준 것은 사실이나, 세세한 부분을 채워 넣고 현장에서 임기응변을 선보인 건 클라우디아의 능력이었기 때문이다.

자기가 사는 저택의 하인들에게조차 망나니 취급받던 철부지 귀족 영애는, 어느새인가 차기 국왕 후보와 미래를 논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 상태였다.

세드릭의 계약 종료까지, 일주일만이 남았을 때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