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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화 신입 모험가 베른(Bern) (33) - 블랑카의 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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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 토벌전에 관한 소식은, 어마어마한 파급력을 가진 채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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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산 제물을 바쳐 힘을 얻으려 했던 사악한 리치의 음모와 거기에 맞선 길드의 총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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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 중 정예만을 차출했는데도 적지 않은 사상자들이 발생했고, 심지어 개중에는 길드의 터줏대감이자 오랜 상징이었던 길드 마스터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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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리치 토벌에 성공했기에 망정이지, 만약 실패했더라면 작전에 참여했던 모험가들이 전멸할 수도 있었던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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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살아남은 모험가들과 구출된 피해자들의 증언은, 사람들에게 더욱 큰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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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머리. 베른. 그 녀석이 자진해서 미끼 역할을 해주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배신자들을 미리 색출하지 못했더라면, 틀림없이 우리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을 겁니다. 리치에게 영혼을 팔아넘긴 악질들이 등 뒤에서 칼을 찔렀을 거라고 생각하면, 지금도 소름이 돋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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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색 머리가 인상적인 모험가님이, 저희를 묶고 있던 사슬을 풀어내고, 저희를 우리 밖으로 탈출 시켜주셨어요. 그분이 아니었으면 저희도 전부 제물이 되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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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안개 탓에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전투의 흔적만 봐도 놈이 다수의 사령 기사를 상대로 혈투를 벌인 걸 알 수 있겠더군. 심지어 개중에는 길드 마스터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말이야. 내 어휘가 짧은 탓에 굉장하다는 말 외에는 형용할 방법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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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 모험가 베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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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가가 된 지 1년은커녕 반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어마어마한 활약을 벌이고, 그 활약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목숨을 잃어버린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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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을 전해 들은 사람들은 그의 활약에 감탄하면서도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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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베른이 살아남기만 했다면 길드 마스터의 빈자리를 채울 수도, 아니, 오히려 길드 마스터를 뛰어넘는 전설이 될 수 있었으리라고 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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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다 개소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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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세상사가 다 그렇듯이 이런 여론에 불만을 드러내는 이들도 없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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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가 길드 본부. 그 인근의 어느 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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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콰하게 취한 얼굴로 잔을 탁자에 내리치며, 한 모험가가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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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적의 함정에 뛰어 들어가 역으로 분쇄? 사령 기사 여럿을 상대로 오히려 압도? 염병하네. 아주 그냥 드래곤도 썰었다고 하지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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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가의 말에, 술집에 있던 몇몇 이들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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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테이블에 있던 동료가 떨떠름한 얼굴로 그를 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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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목소리 좀 줄이게. 남들 듣잖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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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발, 내가 뭐 하면 안 될 소리라도 했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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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들이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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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까짓 증언이야 만들면 그만인 거고. 내가 하늘을 나는 스파게티를 봤다고 하면 그게 정말 생기냐?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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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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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무슨 말을 해봐야 통하지 않으리라는 걸 직감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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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테이블의 모험가 몇몇이 흘끗 시선을 향했지만, 남자는 오히려 더 들으라는 듯이 언성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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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드에서 소문을 퍼트린 게 틀림없어. 비극의 영웅 하나 만들어서, 자기들에게 불편한 이야기를 덮어버리려는 게 틀림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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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말에는 허점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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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드가 비극의 영웅을 만드려고 했으면 차라리 죽은 길드 마스터의 이름을 팔았지, 왜 굳이 베른의 이름을 들먹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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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본디 혐오란 논리가 아닌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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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그저 남들에게 칭송받는 ‘젊은 영웅’을 향한 자신의 질투와 시기를 정당화할 이유가 필요했고, 그 이유는 ‘그럴듯하기만 하면’ 충분했다. 진실 따윈 알게 뭐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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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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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술집 정문이 열리고 새로운 손님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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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미 자기가 생각해 낸 진실에 도취 되어 있던 남자는 그쪽에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계속해서 음모론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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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아니면, 애초에 그 베른이란 놈이 리치의 끄나풀이었을지도 모르지. 신입 하나가 리치의 음모를 완벽하게 간파하고 대처했다는 것보다, 본래 리치와 협력 관계였는데 뭐가 꼬여서 둘 다 뒈져버린 걸 수도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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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오, 그럴듯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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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능력 좋은 신입이 없지야 않겠지만, 들려오는 소문은 좀 과장된 것 같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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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테이블에 있던 모험가 중 몇몇이 동조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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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중에는 처음 이야기를 꺼낸 남자처럼 베른의 명성이 마음에 들지 않는 이들도 있었고, 그냥 단순히 씹을 거리가 필요했기에 호응하는 이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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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 영웅의 정체가 사실은 리치의 끄나풀이라니, 욕하면서 비난하기에는 딱 좋은 소재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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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술집에 있는 모험가 중 남자의 주장에 동조하는 목소리는 1/10도 되지 않았지만, 남자는 마치 이 술집의 모든 이들이 자신을 긍정하기라도 한 것처럼 어깨를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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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다시금 입을 열려한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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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에 새로 들어온 두 명 중 한 명이, 그에게 다가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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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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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 베른이란 새끼가 사실 리치의 끄나풀, 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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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사적으로 입을 열어 대답한 남자였지만, 이내 질문을 던진 목소리가 같은 테이블의 동료가 아닌, 낯선 여자의 것이라는 걸 깨닫고는 말을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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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또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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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색 머리와 눈동자를 지닌 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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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는 중간 정도였고, 베이지색의 망토 아래로 드러나는 체격은 가는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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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춤의 벨트에는 검이 달려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여리여리한 인상 탓인지 딱히 위협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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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한 말, 취소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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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고 간결한 요구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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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여자의 지인이 들었더라면 그녀가 들끓는 분노를 애써 이성으로 억누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겠지만, 술에 취한 남자에게 그런 통찰력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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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봐도 자기보다 훨씬 약해 보이는, 기껏해야 모험가 흉내나 내는 듯한 여자가 자기에게 이래라저래라 명령하는 것이 불쾌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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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발 네년이 뭔데? 뭔데 나보고 명령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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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은 리치와의 싸움에서 최선을 다했고, 그 결과 많은 이들이 구해졌어요. 사정도 잘 모르면서 이상한 억측을 하는 건 그만두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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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최선은 개뿔, 병신 새끼가 주제도 모르고 설치다가 뒈진 거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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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말을 내뱉을 수 있던 건 거기까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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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남자의 뒤통수를 움켜쥐고, 테이블에다가 내리꽂아 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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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어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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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 전체에 울려 퍼질 만큼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테이블 위의 음식들이 공중에 떠올랐다가 다시 안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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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련하듯이 꿈틀거리던 남자의 몸이, 그대로 힘을 잃고 축 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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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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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한 테이블에 있던 동료가 당황하면서도 반사적으로 무기를 꺼내 들었지만, 정작 그는 그 무기를 휘두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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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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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하늘색 눈동자는 시원하고 청명한 이미지를 지닌 법인데, 여자의 눈은 그렇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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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타오르는 불꽃처럼 이글거리는 여자의 눈을 보고, 그는 맹수 앞의 먹잇감처럼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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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찮은 분위기에 압도당한 건 술집의 다른 모험가들 역시 마찬가지라, 그들은 숨을 죽인 채 여자만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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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모험가들을 향해, 그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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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랑카가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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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의 활약을, 그의 실력을 의심하는 인간들이 있다면… 전부 나한테 찾아와요. 소문이 진짜인지, 부풀려진 건지, 지금처럼 확인하게 해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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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음절 한 음절을 씹어뱉는 듯한 말에, 모험가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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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남자의 말에 동조하며 베른을 씹어댔던 모험가들의 경우, 흠칫하며 눈을 피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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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모험가들조차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지금 블랑카가 내뿜는 기세는 살벌하기 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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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흠, 누님. 그쯤 하시지요. 이 정도면 다들 충분히 알아들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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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직된 공기를 깨트리듯이, 블랑카와 함께 술집에 들어왔던 렌야가 그런 블랑카에게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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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랑카는 렌야를 흘끗 보고는 남자의 뒤통수에서 손을 떼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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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야는 술집 주인장에게 약간의 팁을 건네며 뒷정리를 부탁했고, 불안한 눈으로 분위기를 살피고 있던 주인장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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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은 그대로 술집 3층, 예약 손님만 받는 공간으로 걸음을 옮겼고, 동부지부의 사무장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로 그들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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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얘들아? 내가 분명 너희보고 사고 치지 말라고 하지 않았었나? 안 그래도 요즘 길드 분위기가 험악한데, 본부랑 동부지부랑 대립 구도 같은 거라도 생기면 그땐 진짜 감당이 안 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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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장의 말에, 블랑카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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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애초에 증언이니 뭐니 하면서 우릴 여기로 부르질 말았어야죠. 아니면 저딴 헛소리가 안 나오게 하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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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애초에 내가 동부 쪽 모험가들 인솔자로 뽑힌 게 너 때문인데, 진짜 이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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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럴 건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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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가 놈들 평균 인성 잘 알면서 새삼스레 왜 그리 예민하게 굴어? 아니면 뭐, 앞으로도 베른 욕하는 소리 들리면 그때마다 쥐어패기라도 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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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하다면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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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단언에, 사무장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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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끈지끈 골이 아파 오는 듯했지만, 사실 블랑카의 태도가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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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경에 처해 있던 순간 손을 내밀어 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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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의 목표였던 복수를 이루게 해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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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구하기 위해서 목숨까지 바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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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요소만 있어도 은의, 혹은 사랑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을 텐데, 무려 삼관왕을 달성한 게 베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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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랑카가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다가 지쳐 쓰러지기를 반복했던 모습을 기억하는 사무장이었기에, 그때 그거에 비하면 차라리 이게 낫다며 애써 스스로를 설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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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본부 상황은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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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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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랑카의 질문에, 사무장은 간단히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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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사람은 많이 구했고, 리치를 토벌한 걸로 길드의 이름값도 높아지기는 했는데… 그만큼 잃은 것도 많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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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한 머릿수의 정예 모험가들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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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가 길드를 대표하던 상징이자, 모험가 중 유일한 5급이었던 길드 마스터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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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의뢰 비용 및 각종 뒤처리로 인해 상당한 비용을 소모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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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드 마스터가 너무 성급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어. 하다못해 왕가나 다른 귀족들과의 교섭을 통해, 그들의 협력이나 지원을 받아야 했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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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랑카가 눈을 가늘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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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 토벌은 서둘러 진행해야 하는 일이었어요. 안 그래도 4급 모험가 여럿을 본인 수하로 만들어 인간 사회 곳곳에 뿌려두고, 던전에는 온갖 몬스터를 깔아뒀던 리치인데. 의식까지 성공적으로 마쳤으면 어떤 참사가 벌어졌을지 몰라서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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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 안다고. 길드 마스터가 재빨리 결단을 내려줬으니까 그나마 신속하게 움직인 거지, 저 망할 왕국 놈들하고 실랑이를 벌였으면 서로 손해 보는 역할을 떠넘긴다고 어쩌면 교섭만 년 단위로 걸렸을지도 모른다는 거, 나라고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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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장은 짜증 난다는 듯이 파이프 담배에 불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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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드 마스터는 길드가 아직 자경단으로서의 정체성이 강하던 시절의 사람이야. 그러니까 일단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결단을 내린 거지. 실제로 많은 이들이 이번 작전으로 인해 목숨을 건졌고. 하지만 그로 인해 길드가 손해를 봤다는 것도 사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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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하고 담배 연기가 허공을 수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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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드 마스터 자리가 공석이 되었으니, 아마 한동안 모험가 길드 내의 정치 싸움도 심해질 거야. 그리고 지금 흘러가는 분위기로 봤을 때, 모험가 길드는… 보다 ‘합리적’으로 변하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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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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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단어에 숨겨진 뜻을, 블랑카는 모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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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 보는 짓은 하지 않는다. 이해타산을 따져 행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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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빨간 타인의 생명이나 웃음보다, 조직의 이익을 우선하여 행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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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바뀐 길드는, 아마 좀 더 강해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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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만큼 더 차가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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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랑카는, 문득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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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길드를, 그런 모험가들을, 과연 베른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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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소녀가 흙 묻은 손으로 건넨 꽃 한 송이를 의뢰비로 받아 강대한 몬스터와 싸우는, 그런 비합리적이고 손해만 보는 행동을 ‘모험가의 낭만’이라고 부르던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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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가가 되는 것이 자신의 꿈 중 하나였다고 당당히 말하던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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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바뀌어 버린 모험가들을, 여전히 좋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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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랑카의 생각에는, 그렇지 않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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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 그녀는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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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드 마스터라는 거, 꼭 무력이 강해야 할 수 있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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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뭐 꼭 그렇지는 않지? 전 길드 마스터의 경우, 경력이랑 실적이랑 기타 등등이 모여서 그렇게 된 거니까. 근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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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장님이 길드 마스터가 되어주셔야 할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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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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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뭘 들은 거지, 하고 멍해져 있는 사무장을 향해, 블랑카는 담담히 말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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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길드에게는 새 상징이 필요하겠죠. 4급이 몇 명이니 뭐니 해도, 5급 수준의 강자가 있냐 없냐는 조직의 위상이 걸린 문제니까. 그건 제가 되어드릴게요. 그러니까, 사무장님은 행정면에서 정점을 노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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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오오, 누님! 큰 뜻을 품으셨군요! 이 렌야, 견마지로를 다해 보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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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야 당신도 실력을 더 키워야 할 거예요. 파티도 좀 더 늘려야 할 테고요. 뭐, 카리나한테 파티를 병합하자고 제안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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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전사, 척후, 치유 마법사, 전투 마법사, 만능으로 다섯 명이군요. 밸런스가 괜찮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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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장의 눈이 끔뻑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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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멋대로 진행되기 시작하는 이야기에 굳어 있던 사무장은, 이내 얼빠진 얼굴로 그저 한마디를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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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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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야, 베른이 한 짓이 ‘바보짓’이 아니게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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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이기적이고 합리적으로만 살아간다면, 호의나 선의를 베푸는 누군가는 어리석은 자가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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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랑카는 베른이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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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말했던 모험가의 낭만을, 그가 바랐던 꿈을, 현실에 옮겨놓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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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야말로, 블랑카가 베른이라는 모험가에게 바치는 헌사이자, 그녀만의 결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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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히, 베른. 부디 그곳에서라도, 나를 지켜봐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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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엣취! 그어어… 이 몸으로 몸살감기는 생에 처음이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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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왜 몸살감기로 끝나는 건데. 악마처럼 영혼 조작과 다중 사고가 능숙한 이라면 몰라도, 분신이 잘못 파괴되면 최악의 경우 폐인이 될 수도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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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마는 위험하지. 자칫하면 사람이 훅하고 죽는다네. 근데 낙법을 잘 취하면 그냥 멍으로 끝나기도 하지. 다 그런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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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왕국에서 한 소녀가 어떤 오해와 결의를 품고 있는지, 꿈에도 알지 못하는 황태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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