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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화 하인 세드릭(Cedric) (16) - 가족의 우애

세드릭이 떠나간 후.

정원에는 지옥 같은 정적이 흘렀다.

오랜 시간 생각에 잠긴 채 움직이지 않는 레드벨 후작.

그런 후작의 눈치를 살피며 슬금슬금 서로 시선을 교환하던 가신 중 한 명이, 마침내 총대를 메고 입을 열었다.

“주군. 저자의 무도함을 벌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레드벨 후작은 왕국 내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권력자다.

이 나라의 왕자들조차 함부로 하대하지 못하고 눈치를 살펴야 하는 거물을 상대로, 일개 하인에 불과한 세드릭은 대체 무슨 말을 내뱉었던가.

때때로 무지한 이들의 실수를 관대하게 용서하고 보듬는 것이 귀족의 아량이라고 한들, 세드릭은 그걸로 용서받을 수 있는 선을 한참 넘었다.

부하들이 ‘주군을 위해서’라는 핑계로 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극히 혐오하는 후작의 성향이 아니었더라면, 이미 후작 휘하의 가신들이 나서서 그를 벌했겠지.

“무도함이라…. 하긴, 심각하게 시건방진 놈이기는 했군.”

“그렇다면.”

“됐네. 내버려 두게.”

“예?”

눈을 휘둥그레 뜨는 가신을 향해, 후작은 짓궂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손대봐야 딱히 좋은 꼴은 못 볼 것 같으니, 그냥 내버려 두라고 말했네.”

“…….”

이야기를 꺼낸 가신들은 물론이고, 주변의 다른 가신들 역시 하나같이 복잡한 얼굴을 했다.

반문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후작이 결정한 일이니 뭐라고 따지지도 못한 채 속을 썩이고 있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기본적으로 얼굴에 쉽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편인 본가의 가신들치고는 실로 드문 일.

‘하기야, 평소 내 행동하고는 거리가 멀긴 하지.

그리 생각하면서도, 후작은 이 판단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만나기 전에도 어렴풋이 짐작은 했지만, 절대로 평범한 평민 따위가 아니로군.

사용하는 어휘, 발음의 악센트, 자연스러운 시선 처리나 당당한 태도까지.

일부러 익살스러운 행동과 발언으로 덮어 가리고 있지만, 세드릭에게서는 배운 자 특유의 여러 가지 분위기가 물씬 느껴졌다.

‘애초에 마법이란 고급 지식이다. 단지 떠돌아다니는 주문을 그대로 습득해서 사용하는 정도라면 일개 모험가라도 가능한 일이지만, 주문을, 그것도 가문의 비전 술식을 입맛대로 개조하는 건 어지간히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않으면 시도조차 불가능한 일이야.

만약 세드릭이 말한 혈마수의 개조안이 정말로 사실이라면, 아니, 그 절반의 성능만 된다 하더라도 후작은 그 기술에 천금이라도 아낌없이 내놓을 용의가 있었다.

기사에 준하는 강력한 호위병은 틀림없이 매력적이지만, 그래 봐야 국가 단위의 보안 체계에 비하겠는가.

이를 정말로 개인이 구현했다면 그건 역사에 이름을 남길 희대의 초인이라는 뜻이고, 집단의 성과라고 한다면 그건 레드벨 후작가 이상 가는 권세를 지닌 거대 세력일 것이 분명했다.

후작은 이 중 후자가 정답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이성적이고 명석한 인물이었기에, ‘끝없는 근무에 지친 아이제른 제국의 황태자가 취미 생활로 자기 막내딸 밑에서 하인 노릇을 하고 있다. 비전은 좀 특별한 선물 감각으로 혼자서 뚝딱뚝딱 개조했다’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저 판단이 바로 가능하다면 그건 추론이 아닌 접신의 영역이었을 테니, 이걸 가지고 후작이 무능하다고 평가하는 건 지나치게 가혹한 일이리라.

본인이 미묘한 착각에 빠져 있다는 걸 알지 못한 채, 후작은 이후의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처음으로 내민 수는…


“─가주님께서 몸이 안 좋아지셨으니, 얼굴을 맞대는 건 다음으로 미루자고 말씀하셨습니다. 날이 밝는 대로 귀환하셔도 좋습니다.”

본가의 집사장이 꺼낸 말에, 네 자식들의 표정이 기괴하게 변모했다.

그야 오랜만에 얼굴 좀 보자며 본가까지 호출해 놓고, 정작 본인은 모습조차 드러내지 않고 축객령을 내렸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몸이 안 좋으니 어쩌니 하는 건 그저 구실일 뿐이라는 걸 누가 모르겠는가.

개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은 장남 아르민이었다.

그는 본래 이 가족회의를 구실로 클라우디아를 본가에 계속 붙잡아 둘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외부의 아군이라고 할만한 것이 마땅히 없는 클라우디아와 달리, 아르민 쪽은 그저 여기서 그녀를 붙잡아 두기만 해도 2 왕자 쪽에서 멋대로 혼약에 관한 일들을 추진해 줄 터.

클라우디아가 부랴부랴 저항하기 위해 움직여 본다고 한들, 그때는 모든 게 끝난 상황이라는 게 아르민의 계산이었다.

그리고, 이런 그의 계산을 후작이 간파하지 못했을 리가 없을 터.

여태까지는 알면서도 묵인했던 것을, 이런 식으로 파탄 낸다?

‘…마음이 바뀌셨군.

아르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후작이 명확하게 클라우디아를 돕거나, 아르민을 방해하려는 듯한 행동을 취한 것은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어느 쪽으로 흘러가든 간섭하지 않겠다는 방관에 가깝겠지.

물론, 설령 후작이 동조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아르민이 유리하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그의 확정 승리나 다름없었던 승부에서, 클라우디아 쪽에도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의 희미한 승산이 생겨났을 뿐.

허나, 돌다리도 몇 번이나 두들겨 보고 건너는 성향이 강한 아르민으로서는 자신이 질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영 껄끄러웠다.

‘지금이라도 계획을 물려야 하나?

취소 또한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가 혼자서 주도한 일이라면 몰라도, 이번 일에는 왕가가 엮여 있다.

양측의 이해관계에 따라 진행하던 계획을 일방적으로 취소하려면, 2 왕자에게 적지 않은 빚을 지게 되겠지.

오랜 고민 끝, 아르민은 결심을 굳혔다.

‘아니, 이대로 밀고 나간다.

단순히 정치적으로 손해를 보는 게 두려워서 내린 결정은 아니었다.

최종적인 승리를 손에 넣을 수만 있다면, 아르민은 얼마든지 참고 인내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후작이 클라우디아에게 조금이라도 우호적인 태도를 취했다는 건 절대 간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번에는 기울어진 천칭을 수평으로 맞추는 정도에 그쳤지만, 다음에는 아예 대놓고 클라우디아의 편을 들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아르민은 자기를 낳은 부친이 어떤 인간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아르민이 얼마나 많은 실적을 쌓고, 얼마나 많은 성과를 후작에게 바쳤든 간에, 클라우디아 쪽이 아르민보다 더 도움이 된다고 여기면 그는 가차 없이 아르민을 저버릴 터였다.

아르민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에게 있어 클라우디아는 더 이상 자기보다 못나고 부족한 동생이 아닌, 명백한 경쟁자였다.


“정통성의 왕가, 재력의 레드벨 후작가, 무력의 사르노스 백작가. 이 셋이 비르카 왕국을 주도하는 3강입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에체드령의 집무실에서는 세드릭의 클라우디아 전용 강의가 이루어지는 중이었다.

“헌데 현재 왕가에는 여러모로 문제가 많습니다. 국왕이 연로한 탓에 곧 다음 국왕을 선별해야 하는데, 본래 정통 후계자였던 첫째 왕자가 열병을 크게 앓고는 백치로 변해버렸기 때문입니다. 사르노스 백작가는 많은 실적을 지닌 왕제(王弟)를 지지하고 있고, 레드벨 후작가에서는 2 왕자를 지지 중입니다.”

일개 하인이 왕국의 통치자를 ‘전하’나 ‘임금님’도 아니고 ‘국왕’이라 찍찍 부르며 왕국의 정치 구도에 관해 설명하는 기괴한 풍경이었지만, 클라우디아는 이를 지적하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이미 너무 먼 길을 온 뒤였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서, 순순한 권력 다툼의 관점에서 보자면 우세를 점한 것은 레드벨 쪽입니다. 사르노스 백작은 정치력 쪽으로는 후작님의 상대가 되질 않으니까요. 허나, 레드벨은 레드벨대로 불안 요소를 안고 있는데, 그건 바로 보유 무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사르노스 측은 영지 운영이라는 측면에서 대부분 레드벨보다 뒤떨어지지만, 군사력만큼은 막대합니다. 레드벨 또한 보유한 자금이 풍족하니 사람을 모으는 건 그리 큰 문제가 아니지만, 지휘관이나 기사의 질에서는 상대가 되질 않죠. 이는 레드벨에게도, 레드벨의 지지를 받는 2 왕자에게도 심각한 문제입니다.”

“2 왕자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아군을 영입하려 하고 있는데, 그 대상이 바로 벨리아르 백작가입니다. 왕국 3강에는 미치지 못해도 열 손가락 안에는 들어갈 세력을 보유하고 있고, 군사력이 강하며, 특히 레드벨과 사르노스의 중간에 있는 입지가 절묘하지요.”

“만약 아가씨가 벨리아르 가문과 이어질 경우, 2 왕자와 레드벨 연합은 부족한 무력을 보충하는 것과 동시에 지리적으로 강력한 방패를 얻게 됩니다. 아가씨는 레드벨의 인물이지만, 동시에 왕가의 피 또한 잇고 계시기에 동맹 사이의 균형이 무너질 염려도 적지요. 2 왕자와 레드벨 가문 양쪽 모두가 만족할 만한 인선이라는 뜻입니다.”

“심지어 벨리아르 가문은 영지의 재정이 차근차근 말라 붙어가는 상태라서, 왕실이나 레드벨의 후원이 없으면 유일한 장점이라 할 수 있는 군사력 유지마저 버거운 상황입니다. 이는 그들이 벨리아르 가문의 목줄을 쥘 수 있다는 뜻이고, 만약 아가씨가 벨리아르 가문으로 시집을 가는 순간 저 목줄이 그대로 아가씨의 목줄로 기능하리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칠판 위를 바쁘게 움직이던 세드릭의 손이 멈추었다.

여기까지 이해하셨습니까? 라고 묻는 듯한 세드릭의 시선에, 클라우디아는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요는 나를 제물로 바쳐서 2 왕자랑 레드벨이 잘 먹고 잘살려 한다는 뜻이잖아. 웃기네 진짜.”

“단적인 이해지만, 그걸로 충분합니다.”

“그래서,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난 내 의지랑 상관 없이 팔려나가는 일 따윈 질색이란 말이야. 밖에서 내 혼약에 대해 멋대로 진행 중이라는 소문이 들려올 때마다 등골에 소름이 돋는다고.”

말투는 퉁명스러웠으나, 그 목소리는 간절했다.

도움을 요청하듯이 애절한 시선을 향하는 클라우디아를 향해, 세드릭이 대답했다.

“물론, 방법은 있습니다.”

“그, 그래!? 역시 세드릭이야! 대체 무슨 방법인데?”

“2 왕자의 등을 찔러버리십시오.”

잠시 정적이 흘렀다.

클라우디아는 양손으로 자기 귀를 톡톡 두드렸다가, 다시 질문했다.

“미안, 잘 못 들었어. 다시 말해줄 수 있어?”

“물론 가능하지요, 아가씨.”

세드릭은 강아지처럼 순하디순한 인상의 얼굴로, 태연히 말을 자아냈다.

“왕제를 아군으로 끌어들여 2 왕자의 등을 찔러버리십시오.”

클라우디아는 세드릭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무척이나 맑았고, 기묘한 광채로 번뜩이고 있었다.

클라우디아는 조심스레 말을 자아냈다.

“저기이, 그으, 분명 아까 2 왕자가 아군이고, 왕제는 적이라고 하지 않았나?”

“2 왕자는 ‘레드벨’의 아군이지, 아가씨의 아군이 아닙니다. 아가씨의 아군이라면 아가씨의 의사는 확인도 하지 않고 멋대로 이런 일을 진행할 리가 없지요. 반대로, 왕제는 이번 일이 성사되면 누구보다도 곤란해지는 인물 중 하나입니다. 서로의 이해관계만 맞아떨어진다면, 정치에서 적과 아군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법이지요.”

“정적을 지원하고 자기 뒤통수를 때린 셈인데, 2 왕자가 가만히 있을까?”

“아가씨.”

세드릭은 무척이나 차분하고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장남께서 알아서 대처하실 겁니다. 서로 의지할 수 있는 가족 아닙니까?”

“……그렇네!”

클라우디아는 모든 걸 내려놓기로 했다.

그러자 마음에 큰 평화가 찾아왔다.

가족을 향한 신뢰가 이토록 위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