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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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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화 하인 세드릭(Cedric) (13) - 레드벨의 초대장

부친에게 멍청한 것들이라고 까이긴 했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차남 에르빈과 삼녀 미라는 거기까지 무능한 이들은 아니었다.

비르카 왕국에 널리고 널린 귀족들 대부분이 말 그대로 핏줄 이외에는 자랑할 게 아무것도 없는 폐기물들이었던 것에 반해, 이들은 적어도 자기 영지 정도는 제대로 운영할 수 있었고, 각각 검술이나 사교계에서 제법 이름을 떨치기도 했다.

방심과 조급함으로 인해 여러 실책을 저지른 것은 사실이었으나, 적어도 지금 이 순간 클라우디아를 끝장내지 못하면 반대로 본인들이 당한다는 걸 인지 못 할 정도의 바보는 아니었다는 뜻이다.

고로, 이들은 만전을 기했다.

4급. 다른 영지에서는 한 영지를 대표하는 기사조차 될 수 있는 실력자를 넷. 그리고 그들을 보좌하기 위한 3급에 준하는 실력자들을 서른 가까이 준비했다.

암시(暗視), 목표 탐지, 소음 억제 등 하나하나가 유용하기 짝이 없는 스크롤을 다수 지원했다.

에체드령과 깊은 거래 관계에 있는 상단 하나를 거의 금화 다발을 퍼붓다시피 하며 억지로 아군으로 끌어들였다.

레드벨 전체로 봤을 때는 조족지혈에 불과하지만, 아직 그 힘을 온전히 물려받지 못한 남매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팔 하나쯤은 잘라내는 수준의 어마어마한 투자였다.

그렇다.

그들은 적어도 자기들이 할 수 있는 선에서는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세상은 때때로 인력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불합리한 재앙을 내리고는 하는 법이다.

“어서 오십시오! 여러분. 지하 감옥에 자리를 마련해 두었으니 그대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암살자들은 맑은 눈의 광인을 만났다!

암살자들의 눈앞이 깜깜해졌다!


아이제른 제국 수도. 칼라스티아. 금운궁.

“오호라, 제법 나쁘지 않은 품질의 스크롤을 많이 들고 있군. 놈들과 내통한 상회를 쥐어 짜낸 분량까지 합치면, 한동안 영지 재정에는 문제가 없겠어.”

싱글벙글 웃으면서 전리품을 검토하는 황태자의 모습을, 루시드라는 뭐라 형용하기 어려운 미묘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뭐 하나 물어봐도 돼?”

“흠, 뭔가?”

“너 분명, 이번 연기에는 철두철미하게 몰두한다고 하지 않았어?”

황태자가 의아한 기색을 드러냈다.

“실제로 몰두하고 있지 않은가? 이번에는 본래 말투가 튀어나온 적도 없고, 역할에 걸맞지 않은 능력을 보인 적도 없고.”

“아니, 아니, 아니.”

루시드라는 손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말투야 네가 말한 대로지만, 능력은 아무리 봐도 문제가 가득하잖아.”

세상에 어떤 하인이 검기를 뽑는 암살자들을 혼자서 다발로 때려눕히고, 영지의 개발 정책을 내놓으며, 행정 효율화에 개입한단 말인가?

이건 하인이라는 정체성을 심각하게 위반하는 것 아닌가?

루시드라의 정당하기 짝이 없는 항의에, 황태자는 너무나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것이 하인이기 때문이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루시드라는 눈을 두어 번 깜빡인 뒤 다시 물었다.

“뭐라고?”

“하하, 아무래도 자네가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모양이로군. 이해는 하네. 봉인된 시간이 길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황태자는 무지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처럼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만능’이라는 단어에 가까운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집사’와 ‘메이드’일세. 가사 업무를 완벽하게 해내는 것은 기본, 요리와 다도에 능해야 하고, 운전에도 능하고, 검과 마법도 쓰고, 와이어로 건물도 썰어버리고, 가끔은 시간도 멈추지. 비록 세드릭은 집사라는 영예의 칭호를 얻지는 못했으나, 집사도 넓은 의미에서는 하인의 한 종류이지. 그러니 세드릭이 다양한 능력을 선보이는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아. 컨셉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말일세.”

“……?”

루시드라는 옆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그녀는 지금 들은 소리에 무언가 심오하고도 철학적인 의미가 있는 건 아닐까 고민했고, 이내 결론을 내렸다.

“그냥 개소리잖아.”

“허허, 본인의 이해력 부족을 강한 말로 덮어쓰려 하는 건 그리 좋은 행동이 아니라네.”

“아니, 개소리 맞잖아!! 그럴듯한 얼굴이랑 목소리로 지껄이면 다 참말이 되는 줄 알아!?”

“언성을 높이지 말게. 방음 처리 정도야 기본적으로 해놨다지만, 만에 하나라도 들키는 순간 그대의 목이 날아가 버린다는 걸 잊은 건가?”

“아아아아악!”

루시드라는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리며 절규했다.

이 갑갑한 심정을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도 괴로웠다.

이 인간한테 꼬이는 여자들이 이 꼴을 알아야 할 텐데!

한참을 씩씩거린 뒤, 루시드라는 가늘게 뜬 눈으로 황태자를 지긋이 노려보며 말했다.

“백 보, 아니, 한 만 보 양보해서 그게 맞다 쳐도, 그 만능이 공짜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지?”

황태자는 초인이다.

본인이 주장하는 저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현실로 구현할 수 있을 정도로.

허나, 분신인 세드릭은 다르다.

이전 분신인 모험가 베른처럼 아예 능력을 한정해서 특화했다면 몰라도, 능력을 여기저기에 분산한 세드릭은 그 하나하나의 고점이 낮을 수밖에 없다.

헌데 지금 세드릭은 명백하게 그 고점을 넘어선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그 분신, 오래 못 갈 거야. 뭐, 저번처럼 갑자기 파괴되는 게 아니라 서서히 붕괴 중인 거니까 반동도 그만큼 적긴 하겠지만… 어쨌든 ‘세드릭’은 사라지는 거지.”

“상관없네.”

황태자는 주저 없이 단언했다.

“이미 세드릭은 처음 결정했던 역할 상당 부분을 이루어 냈네. ‘영주’ 클라우디아가 가진 최고의 무기는 치안 향상과 그에 따른 영민들의 지지. 그녀가 세력을 키우면 키울수록, 그녀의 영향력이 뻗치는 곳이 넓어질수록 비르카 왕국의 막장 같은 상황은 조금씩 개선되어 갈 걸세. 그걸 위한 선물도 거의 완성 상태고.”

물론 ‘선물’의 힘이 있다고 해도 클라우디아 혼자서 비르카 왕국 전체를 바꾸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설령 그녀가 레드벨의 정점에 올라 그 세력권을 모조리 손에 넣는다고 해도, 왕국 내에는 레드벨의 영향력이 거의 닿지 않는 영역도 있으니까.

그것도 얼핏 조사했는데도 레드벨이 양호해 보일 정도로 극악한 장소가.

황태자는 그건 그것대로 갈아엎어 버릴 계획이었지만, 그건 적어도 ‘하인 세드릭’의 역할은 아니었다.

“게다가 세드릭은 어차피 사라져야 했어. 유능한 인재는 조직을 성장시키지만, 반대로 조직의 한계를 규정하기도 하니까. 에체드를, 그리고 클라우디아를 나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이들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세드릭은 떠나야 해.”

얼핏 영지의 모든 대소사에 관여하는 것처럼 보이는 세드릭이지만, 사실 그가 정면에 나서서 활약하는 시간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영지 개혁에 대해서도 그는 사람들이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과 제도를 만들어 냈을 뿐, 본인이 직접 다른 사람들의 일을 빼앗는 건 최소한으로 억제했다. 그래야 나중에 그가 떠난 뒤에도 영지가 문제 없이 돌아갈 테니까.

“흐응.”

루시드라는 심드렁하게 콧소리를 냈다.

황태자의 큰 그림은 알겠지만, 과연 그 망나니 영애가 집착하던 하인이 떠난 후에도 그의 뜻대로 움직여 줄까?

“그러면 우리 내기 하나 해볼래?”

“내기?”

“‘하인 세드릭’이 계약을 종료하고 떠났을 때, 그 망나니 아가씨가 순순히 영주 노릇을 계속할 수 있을지 없을지. 난 못 한다 쪽에 걸래.”

“그렇다면 나는 한다 쪽이로군. 좋네, 받아들이지.”

“진 쪽은 이긴 쪽 소원 들어주기?”

“승패의 판별법과 소원의 허용 범위를 명확히 하기 위해 계약서가 필요하겠군. 우선 30장 정도 준비해 둘까.”

“악마보다 더 악마 같은 새끼…. 아니, 그냥 황태자 같은 새끼….”


클라우디아 레드벨은 최근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다.

“날 처리하기 위해서 준비한 회심의 한 수가 실패했으니, 지금쯤 손발이 덜덜 떨리는 중이겠네. 꼴 좋다.”

그녀의 어머니가 살아 있었을 때는 먼 곳에서 노려보고, 죽은 후에는 노골적인 견제와 괴롭힘을 이어가던 이들이다.

암살자들의 입에서 두 사람의 이름이 튀어나왔을 때도 충격을 받기는커녕 ‘역시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을 정도로, 가족의 정 같은 건 0에 가까웠다.

그러면 이 뒤에는 어떻게 할까.

예전의 그녀였다면 똑같이 암살자라도 보낼 궁리부터 했겠지만, 세드릭에게 여러 가지를 배운 지금의 그녀는 달랐다.

“공론화해 버리는 게 타격은 제일 크겠지만, 레드벨의 이름에 상처가 날 것 같으면 그 사람이 개입하겠지. 흠, 공론화를 무기로 협박해서 뜯어내면… 아, 아니다. 차라리 몸값을 받고 돌려보낸다고 할까? 받아들이면 자금과 이권을 빼먹을 수 있고, 거절하면 주인에게 버림받은 개들을 회유할 수 있을 테니까. 그래, 이게 좋겠네.”

즐거운 상상에 잠겨 있는 것도 잠시.

집무실의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에 클라우디아가 응하자, 이내 집사장 베스티앙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영주님. 후작님께서 영주님을 본가로 초대하셨습니다. 오랜만에 가족끼리 모여서 식사라도 즐기자며, 전령을 통해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이쪽은 초대장입니다.”

“뭐?”

싱글벙글 웃는 기색이었던 클라우디아의 얼굴이 당혹으로 물들었다.

가족 만찬이라니. 레드벨이 대체 언제부터 그렇게나 살가운 가문이었다고?

클라우디아는 다급히 초대장의 봉인을 뜯어낸 후 그 내용을 확인했다.

[클라우디아. 방황하던 네가 다시 옳은 길로 돌아와 명성을 떨치는 모습을 보니, 아비로서 기쁨을 금할 수가 없구나. 오랜만에 가족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려 하니, 바쁘더라도 꼭 참석해 주길 바라마.]

귀족 특유의 미사여구를 최대한 절제한, 정말로 아버지가 딸의 개심을 기뻐하며 보내는 것 같은 편지.

심지어 그 글씨체가 레드벨 후작 본인의 친필이라는 걸 깨달은 순간, 클라우디아는 등골에 소름이 돋고 피부에 닭살이 돋아나는 걸 느꼈다.

암살자한테 살해 예고를 받아도 이보다는 덜 기분 나쁠 것 같았다.

“이거… 안 갈 수는 없겠지?”

매달리는 듯한 클라우디아의 말에, 베스티앙은 떨떠름한 얼굴로 대답했다.

“이미 대답을 알고 계시잖습니까, 아가씨.”

“그래, 그렇지.”

클라우디아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녀가 요즘 제법 잘 나가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녀에게 ‘에체드령의 영주’라는 직위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에체드를 비롯하여 레드벨이 보유한 여러 땅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건 어디까지나 레드벨 후작.

만약 그가 클라우디아로부터 영주 직위를 회수하기라도 한다면, 그 시점에서 그녀가 쌓아 올린 것들은 다시 진창으로 처박힌다.

물론 봉신 관계에서 영지의 통치권이란 그렇게 쉽게 줬다가 뺏었다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지만, 본래 충분한 권력은 안 되는 것도 되게 하는 법이다.

클라우디아는 애써 상황을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 어차피 내 가치를 인정받고, 쉽게 팔려나가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 사람하고는 결판을 내야 해.

어찌 보면 이런 식으로 그녀를 불러낸다는 것 자체가, 클라우디아가 벌이고 있는 일들에 후작 역시 흥미를 보인다는 증거 아니겠는가.

그녀는 반사적으로 세드릭을 호출하려다가, 바로 곁에 있는 베스티앙의 얼굴을 보고는 멈칫했다.

세드릭에게 받았던 충고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다른 가신과 하인들의 심정도 생각하라고 했었지.

그녀가 주방장을 방치하고 자꾸 세드릭에게 요리를 만들라고 하니까 들었던 이야기였다.

그때 세드릭은 평소랑 달리 진지한 기색으로 그녀를 꾸짖었던 터라, 클라우디아는 그날 하루 잔뜩 쭈그러들어 있어야 했다.

“어 흠. 베스티앙?”

“말씀하시지요, 아가씨.”

“본가로 갈 인원 선별을 맡기고 싶은데, 할 수 있어?”

베스티앙의 눈이 놀란 듯이 잠시 크게 뜨였다.

그리고, 이내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맡겨주십시오, 아가씨. 아가씨의 안전과 남겨진 영지의 관리, 모두 양립할 수 있는 최고의 인선을 준비하겠습니다.”

“그, 그래.”

언뜻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의욕을 불태우는 그 모습에, 괜스레 찔리는 걸 느낀 클라우디아는 시선을 창밖으로 향했다.

역시 세드릭의 말은 틀리는 법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클라우디아. 왕가 쪽에서 네 중매를 서고 싶다고 하는데, 어찌 생각하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