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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화 하인 세드릭(Cedric) (12) - 초조함과 악수
영주 관저는 발칵 뒤집어졌다.
그야 암살자들이 영주의 침실까지 도달하는 상황이 벌어졌으니, 뒤집어지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전 영주 대리가 쫓겨난 것에 불만을 품은 경비 일부가 암살자들에게 협력한 모양입니다. 일이 실패한 걸 알고 도주하려던 놈들을, 전원 붙잡아 감옥에 넣어두었습니다.”
집사장 베스티앙이 굳은 얼굴로 말을 올렸다.
“아가씨, 아니, 영주님. 이는 절대로 가볍게 넘겨선 안 될 일입니다. 반드시 경비대에 책임을 물어, 이러한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기강을 잡아야 합니다.”
베스티앙의 말에, 경비대장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무어라 반론을 내뱉지는 않았는데,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경비가 뚫려 영주가 신변을 위협당한 것만으로도 심각한 문제인데, 심지어 그 원인이 경비대 내부의 배반이었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판결을 기다리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인 경비대장을 바라보던 클라우디아는, 이내 선언했다.
“오늘 경계를 선 인원들은 한 달 감봉. 경비대장은 3개월 무급으로 할 테니까 그렇게 알아둬.”
경비대장은 눈을 휘둥그레 떴고, 다른 가신들 역시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
사건의 심각성에 비해 너무나 가벼운 처벌이었기 때문이다.
호위 대상의 몸에 작은 생채기가 났다는 이유만으로 호위 전원을 참수하는 귀족도 있는 판에, 이는 자비롭다는 말로도 부족한 판결이었다.
“영주님, 허나─”
“이미 결정했고, 반론 같은 건 안 받아. 그리고 그냥 가볍게 넘긴다고 착각하지 마. 암살에 협력한 당사자들에겐 어떤 자비도 없을 거니까.”
경비대장이 울컥한 기색으로 클라우디아에게 무릎을 꿇었고, 그의 뒤쪽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던 경비대원들 역시 마찬가지로 고개를 조아렸다.
“감사합니다, 영주님! 앞으로 이 목숨을 걸고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앞으로는 기대할게.”
클라우디아는 심드렁한 기색으로 그리 대답했지만, 이는 그저 겉모습일 뿐, 내심으로는 제법 놀라고 있었다.
‘…솔직히 죄다 박살을 내버릴 생각이었는데.’
요즘엔 나름 품위와 자비를 갖추려고 노력하는 그녀였지만, 그 본질이 쉽게 바뀌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이번에는 명분도 확실하지 않은가.
그런데도 그녀가 이와 같은 결론을 내린 이유는 세드릭의 조언 때문이었다.
이런 일은 확실히 처리하지 않으면 아랫사람들이 주군의 목숨값을 가볍게 여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클라우디아였기에, 엄벌이 아닌 자비로 충성을 끌어내는 세드릭의 방식은 무척이나 신선했다.
주군의 자비(?)에 감격한 경비대는 그야말로 눈에 핏발을 세워가며 배신자들과 암살자들을 철저하게 심문했지만, 안타깝게도 그 성과는 시원치 않았다.
딱히 배신자들과 암살자들의 정신력이 엄청난 나머지 입을 열지 않거나, 무슨 극독 같은 것으로 자살을 해 정보를 알 수 없게 된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의 입 자체는 제법 쉽게 열렸다.
문제는 그렇게 얻어낸 정보가 영 쓸모가 없었다는 것이다.
“의뢰 내용은 ‘죽이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겁을 줘라.’ 의뢰인은 이들이 소속된 곳과는 다른 범죄 조직. 그 범죄 조직에 가서 따지면 아마 또 다른 조직의 이름을 댈 것 같군요. 위탁의 위탁의 위탁이라고 할까요.”
어깨를 으쓱이는 세드릭의 말에, 클라우디아가 눈을 찌푸렸다.
“어쨌든 정보가 나오긴 나왔잖아. 이놈들에게 의뢰했다는 조직을 털고, 그 조직에게 의뢰한 다른 조직을 터는 식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언젠가 진범이 나오지 않을까?”
“이 정도로 번거로운 수단을 취하는 이들이라면, 중간 다리 몇 개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허구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역추적하는 과정에서 흐지부지되어 버리겠지요.”
“쳇.”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혀를 차는 클라우디아.
그런 그녀에게 세드릭이 말했다.
“게다가 아가씨께서는 이미 범인이 누구인지 대충 짐작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만, 아닙니까?”
“언니 오빠들이 저지른 거겠지. 내가 뭐 좀 잘 풀리려는 꼴만 보면 몸서리를 치는 작자들이니까.”
언니 오빠라고 부르면서도, 클라우디아의 목소리에서 가족의 정 같은 것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복잡한 애증 같은 것도 아니고, 그냥 순수 담백하게 싫어하는 기색만이 가득할 뿐.
이쯤 되면 계보 상으로만 가족일 뿐, 실제로는 남보다 못한 관계라고 보는 것이 옳았다.
클라우디아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예상을 아예 못 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너무 빠르네. 심지어 이거 한 번으로 끝날 것 같지도 않은데, 혈마수 일부를 회수해서 내 호위로 둬야 할까?”
세드릭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야 상대의 의도대로 놀아날 뿐입니다. 에체드령의 성장 동력을 깎아내는 셈이니까요.”
“…그래? 그것도 그렇긴 해. 그러면 대신, 네가 내 옆에 달라 붙어서 호위를 하면 되겠네. 아예 방을 내 옆방으로 옮기는 건 어때?”
본인의 암살 대책이라는 심각한 화제인데도 불구하고, 클라우디아의 목소리에는 조금 들뜬 기색이 있었다.
이거라면 세드릭을 자기 옆에 붙여둘 좋은 구실이 되리라 여긴 것이다.
“하인으로서 아가씨의 몸을 지키는 건 불만이 없습니다. 허나, 제가 방을 옮기면서까지 아가씨의 호위에 전념한다면, 경비대 쪽에서는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낄 겁니다. 입으로는 용서를 말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신뢰하지 않는다고 여기겠지요.”
모처럼 대범함을 보이며 얻어낸 신뢰와 존경을 제 손으로 버릴 필요는 없다며, 세드릭은 그녀의 제안을 거절했다.
“으음.”
클라우디아는 뺨을 부풀렸다.
까짓것 이미 실패한 놈들이 실망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입을 열 수는 없었다.
그렇게까지 철부지 같은 모습을 보이면 세드릭이 자기한테 실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너는 호위에는 신경 안 쓴다고?”
“신경이야 쓸 겁니다. 그리고 저택 내부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솔직히 옆에 있든 떨어져 있든 차이는 없습니다. 아가씨가 부르면 곁으로 곧장 달려갈 테니까요.”
“그, 그래?”
방금까지 불만이었던 것이 거짓같이, 다시 클라우디아의 얼굴이 밝아졌다.
‘아가씨가 부르면 곧장 달려간다’라는 그의 말이 제법 감미롭게 들렸다.
[장미와 회중시계]에 나왔던 대사와 조금 비슷한 것 같기도 했고.
분명 그다음 전개가 비 오는 날 별장에 갇힌 두 사람이 서로 끌어안고…
“아가씨? 클라우디아 아가씨?”
“…어? 응? 왜?”
“아뇨, 갑자기 멍하니 말이 없으시길래. 아무래도 제가 배려가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밤 중에 그런 일을 겪고 곧바로 후처리에 돌입하셨으니, 피로를 느끼셔도 이상할 게 없거늘.”
“아니, 괜찮아. 진짜 괜찮아.”
괜스레 헛기침을 반복하며 민망함을 날려버린 클라우디아는, 이내 화제를 전환했다.
“아무튼 호위는 그렇게 한다 치고, 그 외에 뭔가 다른 걸 할 건 없을까? 나도 그냥 확 암살자나 고용해서 보내 버려?”
“남매분들 중 정확히 어떤 분이 범인인지는 모르는 거잖습니까? 그리고 아직 세력 기반이 약한 상태에서 무리수를 뒀다간, 오히려 그걸 역이용당할 위험성도 높습니다.”
“칫, 그러면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가만히 있는 건 아니지요. 혈마수의 숫자도 늘려야 하고, 영지도 잘 다스려야 하니까요.”
“너무 평범하잖아.”
“평범하니까 좋은 겁니다.”
세드릭이 씨익 웃었다.
“그걸 반복하고 있으면, 점점 속이 타는 건 상대가 될 테니까요.”
에체드령으로 나선 범죄 조직들의 소식이 끊켰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차남 에르빈과 삼녀 미라는 여유로웠다.
어차피 현장에서 움직인 범인들은 맨 위에 있는 그들의 진짜 고용주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설령 그들이 생포당했다고 해도, 클라우디아가 알아낼 수 있는 증거 따윈 없단 뜻이다.
성공하면 좋지만, 실패해도 리스크는 없는 일방적인 공격.
고로, 회담을 나눈 두 남매의 대화는 일견 살갑기까지 했다.
“클라우디아의 반응은 어떻지?”
“조용해요. 딱히 혈마수를 회수하는 움직임도 없고, 복수하겠다면서 날뛰지도 않고.”
“흠, 이상하군. 그 성질머리에 선제공격을 당하고도 얌전히 있을 리가 없는데?”
“괜히 오기를 부리는 거 아니겠어요? 조금만 더 기다려 보세요. 이미 새로운 놈들을 준비 중이니까.”
“이번에는 나도 따로 보내지. 밤낮으로 피를 마르게 하면 아무리 그 계집이 독종이라도 결국 꺾일 테니.”
그들은 음흉한 미소를 보내며 새로운 암살자를 보냈고.
이내 당연하다는 듯이 실패했다.
“허, 이걸 막아? 호위가 그럭저럭 유능한 모양이로군.”
“참나. 그 돈을 받아먹고도 겨우 위협하나 제대로 못 한다니. 이래서 쓰레기들하고는 상종하기 싫어요.”
“다음에는 3급 이상으로만 선별해서 보내야겠어. 일반병이 아무리 잘 훈련되어 있어 봐야 한계가 있는 법이니 말이야.”
“스크롤도 추가로 지원하는 게 좋겠네요.”
장비를 갖추고, 인재를 선별해서 시도한 세 번째 암살.
결과는 역시 실패.
“…제법 강력한 기사라도 데리고 있는 건가?”
“최소 4급 이상의 실력자가 붙어 있다는 건가요? 대체 그 성격 더러운 년의 뭘 보고?”
“그래도 일단은 레드벨 아니더냐. 허명에 속은 얼간이라도 하나 있는 모양이지. 어쩔 수 없으니 수단을 바꿔야겠다.”
“자칫 진짜 죽어버릴 수도 있어서 자제했지만, 이젠 안 되겠어요. 독살, 저격, 매수. 쓸 수 있는 건 뭐든 써야겠죠.”
그들은 이제 제법 진지한 태도로 암살에 임했고.
늘 그렇듯이 이번에도 실패했다.
“…….”
“…….”
수단을 바꿔도, 인재를 선별해도, 도구와 자금을 지원해 줘도, 그들 중 성공했다는 소식을 전하는 이는 단 하나도 없었다.
아니, 성공 소식은커녕, 애초에 실패했다는 보고조차도 돌아오질 않았다.
세작을 통해 클라우디아의 정보를 확인하면, 올라오는 보고는 늘 똑같았다.
에체드령을 돌아다니는 혈마수의 수는 줄어들지 않고 있고, 클라우디아는 암살 위험이 큰 대외 행사를 꺼리긴커녕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중이며, 그 명성과 영향력은 날이 갈수록 솟아오르고 있다. 영민 중에는 아예 암살 시도 같은 게 있었는지조차 모르는 이들이 수두룩하노라고.
그렇다.
그들이 보낸 암살자들은 클라우디아를 겁주고 위협하기는커녕, 아예 존재 자체가 허구 취급 받을 정도로 철저하게 무시당하고 있었다.
굳이 상대할 가치조차 없다는 것처럼.
“더 이상 다른 놈들에게 의지해선 안 될 것 같다.”
에르빈이 굳은 얼굴로 내뱉은 말에, 미라가 몸을 움찔 떨었다.
에르빈도, 미라도.
직속으로 더러운 일을 맡는 ‘진짜 검’은 따로 있었다.
여태까지처럼 그저 돈을 주고 고용한 외부 인사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실력자들이.
허나, 그런 것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여태 쓰지 않은 것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
“하, 하지만, 우리 쪽에서 직접 손을 쓰는 건 리스크가 너무 크지 않나요? 자칫 생포당하기라도 했다간….”
누구인지 모를 의뢰인의 의뢰를 받아 범죄 조직들이 멋대로 나서는 것과, 레드벨 가문의 전력이 직접 나서는 건 그 의미도 무게도 전혀 다르다.
만일 실패하기라도 했다간 그땐 진짜로 뒷감당이 어려운 것이다.
허나, 여동생의 만류에도 차남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에체드령과 인접한 다른 영지에서, 저 빌어먹을 잡견들을 자기네 영지로도 파견해달라며 클라우디아에게 손을 뻗고 있다. 이대로 뒀다간 그 계집을 중심으로 거대한 세력이 생겨날 판이야.”
“자, 잠깐만요. 혈마수는 하나하나의 강함을 낮추면 확실히 수를 늘리긴 쉽지만, 그래도 한계가 있잖아요? 에체드령 하나 정도라면 몰라도 다른 영지까지 커버할 숫자를 만들 수 있을 리가 없어요. 내버려 둬도 실패할 거라고요!”
“어차피 에체드령의 치안은 이미 상당 부분 안정된 상태다. 내부의 혈마수들을 다른 영지로 옮긴다 치면, 보여주기식으로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야. 적어도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성과는 만들 수 있겠지.”
두 남매는 클라우디아가 다루는 혈마수들의 숫자가 정말로 늘어나리라는 가정은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애써 그 가능성을 외면했다.
당장 본인들도 혈마수를 다루고 있었지만, 클라우디아처럼 저렇게까지 대량의 혈마수를 다루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 도둑년 같은 모녀에게 뭐 하나라도 뒤처지는 요소가 있다는 건, 이들의 자존심상 절대로 인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젠 ‘죽어도 어쩔 수 없다’ 같은 무른 태도는 버려야 한다. ‘반드시 죽인다’라는 각오로 움직여야 해. 가주님께서 저 계집에게 흥미를 보이기 전에.”
영 껄끄러운 기색을 드러내던 미라였지만, 에르빈의 거듭되는 다짐에 결국 포기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들 딴에는 나름 들키지 않겠다며 신중을 기한 두 사람이었으나,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도 그들의 움직임은 레드벨의 진정한 통치자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그리고, 후작이 그에 대해 평가하기를.
“글렀군. 이미 실패가 정해진 거나 다름없어.”
“…그렇습니까?”
후작의 심복은 의아한 기색을 드러냈다.
클라우디아가 본격적으로 세력 만들기에 들어간 건 사실이나, 두 남매는 그런 클라우디아보다 훨씬 전부터 비슷한 일을 해왔다.
지금까지야 리스크를 두려워해 소극적으로 싸운 나머지 번번이 골탕을 먹었지만, 작정하고 힘을 쓰기 시작한다면 그 힘은 클라우디아를 크게 압도할 터.
헌데도 후작은 심드렁한 얼굴로 클라우디아의 승리를 단언했다.
“철저한 준비로 상대의 전력을 파악하고 그 이상을 투입하는 것도 아니고, 짐승 같은 직감으로 허를 찌르는 것도 아니지. 상대를 우습게 보면서 슬금슬금 전력을 투입하다가, 그래도 먹히지 않으니까 부랴부랴 나선 꼴이야. 멍청하기 짝이 없군. 모조리 잡아 먹힐 거다.”
모처럼 비싼 돈을 들여 길러낸 아이들의 무능을 확인하는 건 그리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다.
허나, 한편으로는 흥미롭기도 했다.
“어디까지 예측한 건지 모르겠군. 처음부터 끝까지 손바닥 위에서 가지고 논 거라면, 상상 이상의 괴물이라는 건데….”
후작은 호기심을 느꼈다.
그리고 그는 호기심을 참을 필요가 없는 권력자였다.
“오랜만에 가족끼리 오붓한 시간을 가지는 것도 나쁘진 않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