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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화 음악가 하멜(Hamel) (13) - 배신의 칼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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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공급의 근원지를 찾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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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보스. 미스트헤븐 북서쪽에 작은 마을이 하나 있잖습니까? 놈들이 그곳 주민들을 돈으로 구워삶아 자기네 전진기지로 만들었더군요. 겉으로는 평범하게 공예품 같은 거나 만들며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뒤에서는 마약을 유통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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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카테가 가면 아래에서 얼굴을 찡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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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불쾌한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조직의 대간부 드롤은 굽실거리는 태도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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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평범한 마을이라면 몰라도, 다른 조직의 손이 닿은 이상 무력 충돌이 벌어질 겁니다. 저 혼자 감당하기에는 큰 일이라, 부디 보스의 실력을 보여주셨으면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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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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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카테가 대답을 내놓기도 전, 마지막 대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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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내의 몇몇 이들에게선 사이비 교주라며 까이는 안토니오가 특유의 무해한 것만 같은 얼굴에 우려를 띄운 채 앞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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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쪽에서 보스를 만나 뵙고 싶어 합니다. 혁명 정부 측에서 새로운 시장을 파견하려는 조짐을 보인다는데, 반드시 보스와 직접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며 고집을 피우더군요. 언제든 없앨 수 있는 전진기지보다는 이쪽이 더 시급한 사안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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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든 없앨 수 있다니? 저건 우리 도시를 노리는 창끝이야! 이미 준비는 다 끝난 거나 마찬가지니, 저 유통로를 통해 병력만 보내면 그대로 우릴 찌를 수 있는 거라고! 지금 당장 없애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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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미스트헤븐 시장은 선대 시절부터 우리 조직과 인연이 깊은 인물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시장이 우리와 좋은 관계가 되리라는 보장은 없지요. 그 대책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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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마음에 안 드는 놈이 오면 묻어버리면 될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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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한 소리는 하지 마십시오. 지금의 정부는 예전의 그 어리바리한 놈들이 아니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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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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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목소리를 키워나가던 드롤과 안토니오가, 헤카테의 한마디에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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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롤. 네 부하들로 마을을 정리할 수는 없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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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들의 전력이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피해를 최소화하고 상대를 생포해서 정보를 수집하려면, 정예들을 투입해서 단숨에 제압하는 게 효과적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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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시장에게 약속을 미루자고 하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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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좋은 방법은 아닐 것 같습니다. 당장 내일 정부에서 시장 교체를 선언할지도 모르는 판이니, 가능한 서둘러야 대책을 세우기도 좋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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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그러면 이렇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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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카테의 시선이 레오에게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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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 네가 드롤을 도와서 마을을 정리하렴. 어설프게 가면 피해가 커질 수 있으니까, 네가 믿는 애들로 선별해서 단숨에 끝내고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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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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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시장과 약속 자리를 준비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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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습니다, 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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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카테의 지시에, 대간부들을 비롯한 조직원들이 곧바로 행동을 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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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보면 아무런 문제 없이, 모든 게 그녀의 손아귀 위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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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는 그 선택마저 누군가에게 유도되었다는 걸 깨닫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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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위화감은,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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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렇게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미스트헤븐의 지배자시여. 오늘 이렇게 자리를 마련한 것은 다름이 아니오라 차기 시장 선별에 대해 현지 여론을 움직여주십사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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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이 꺼낸 이야기에 큰 모순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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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노골적으로 시선을 피하려 들거나, 식은땀을 흘리는 등 수상한 반응을 보인 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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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의 통치를 수긍하고 뒷돈을 받아먹는 대가로 협력자가 된 미스트헤븐의 명목상 통치자는, 늘 그렇듯이 정중하고도 장황한 어조로 자신이 얼마나 곤란한지, 어떤 노력을 했는지, 또 어떤 도움을 필요로하는지를 헤카테에게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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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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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렇듯이’라는 부분이 헤카테의 신경을 건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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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의 말에 따르면, 시장은 현재 매우 다급한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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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후임자에게 밀려 시장 자리에서 쫓겨날지도 모르고, 만약 후임자가 조직을 적대하는 과정에서 전임 시장의 비리를 파헤친다면 그 역시 끝장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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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조직을 암중에서 지배하는 보스에게 다급히 도움을 요청하고, 이후의 일을 상담하기 위해 만남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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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런 자리에서 평소와 똑같은 태도인 것이 자연스러운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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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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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것만으로는 명백한 증거라고는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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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쪽으로 몸을 담은 인물이, 상대와의 교섭에서 제 속내를 숨기는 것쯤이야 그리 드문 일도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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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두 번째 위화감부터는 이야기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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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의 구성이 꽤 바뀌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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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가 없는 건 아니지만, 어떤 사람이 무슨 직업을 가졌는지 구분할 때 그 사람의 몸을 관찰하는 건 꽤 유용한 수단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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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 작업을 주로 하는 이들은 비교적 가녀린 신체와 하얀 피부를 지니게 되고, 육체 작업을 주로 하는 이들은 비교적 근육질인 몸에 그을린 피부를 지니게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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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면에서, 현재 그녀가 있는 건물에 있는 이들은 하나 같이 육체파 쪽에 가까운 신체 조건을 지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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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 작업의 수장인 시장의 곁에, 정작 먹물 냄새 나는 문관이나 차를 내올 메이드 등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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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카테는 시장이 내온 와인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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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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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아,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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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그녀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순간 당황한 기색이었지만, 그녀를 붙잡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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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카테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복도로 나왔고, 이내 커튼이 쳐진 창가로 다가가 바깥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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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짙은 안개에 휩싸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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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헤카테의 예리한 감각은, 그 안개에 몸을 숨긴 채 건물 주변으로 몰려드는 이들을 정확히 감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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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원들이 이곳으로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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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게도, 헤카테는 그런 명령을 내린 적도, 보고를 받은 적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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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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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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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는 지금 어디에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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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카테의 질문에, 그녀의 곁을 지키던 호위들의 반응은 둘로 나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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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질문에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이들과 딱딱하게 얼굴을 굳힌 이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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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는 레오가 남겨두고 간 이들이었고, 후자는 안토니오가 새롭게 붙여둔 호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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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님께서는 현재 1층에서 대기 중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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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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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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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가 붙여둔 호위는 곧장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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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설임, 불안, 곤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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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감정을 눈빛에 품은 그는, 이내 이런 말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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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 지금은 시장과의 대화에 집중하시는 것이 좋지 않으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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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위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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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카테가 뽑아 든 나이프가, 가차 없이 그의 목을 겨누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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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 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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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사람들이 일제히 당황하는 가운데, 헤카테는 담담하게 질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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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을 권한 게 누구인지, 배후를 말하렴. 그러면 너 하나 정도는 봐줄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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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위의 눈동자가 크게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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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호위 중 일부는 곧장 경악했고, 나머지는 한 박자 늦게 헤카테의 말뜻을 깨닫고 경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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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반응 차이를 통해 그녀가 피아를 구분하는 사이, 호위가 그녀의 질문에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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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아니라, 칼날에서 도망치려는 행동을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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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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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카테의 나이프가 피 분수를 자아낸 직후, 호위 중 누군가가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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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시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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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헤카테의 호위였던 이들이, 사방팔방에서 그녀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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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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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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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칼날은 헤카테를 해하지 못했지만, 헤카테의 칼날은 그들을 가차 없이 유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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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을 파악한 레오 측 호위들도, 헤카테와 함께 적들과 맞서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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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한 명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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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 피하셔야 합니다. 안토니오 님, 아니 안토니오 그 작자가 배신한 거라면 이 건물 자체가 함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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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길, 하필 레오 형님이 다른 곳에 계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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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카테는 성큼성큼 응접실 쪽으로 나아가 문을 걷어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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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쪽을 확인한 그녀를 내심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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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까지만 해도 시장이 있었던 그곳이 텅 비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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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어딘가에 뒷문 같은 걸 따로 만들어뒀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녀에겐 그걸 느긋이 수색할 여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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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를 죽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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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을 다시 위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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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먹지 마라! 이미 독을 먹었으니, 평소처럼 움직이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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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다 들킨 거 정보의 은폐보다도 사기 진작을 노리는 쪽이 낫다고 판단했는지, 제멋대로 여러 가지를 떠들며 몰려드는 조직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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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카테의 시선이 아까 마시지 않고 내버려두었던 와인잔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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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기대와 다르게 독은 마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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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승산이 있냐고 묻는다면,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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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카테는 나이프의 손잡이를 꽉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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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트헤븐을 감싼 하얀 안개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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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과 비명이 어지러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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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라! 어떻게든 그년을 찾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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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그리 멀리 못 갔을 거다! 서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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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원들은 눈에 흉흉한 살의를 품은 채 거리를 활보했고, 시민들은 그런 조직원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몸을 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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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거기! 망토랑 가면을 뒤집어쓴 여자 본 적 있냐? 대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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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모릅니다! 아무것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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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발 수상한데. 야! 엎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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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탕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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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중 일부는 수색을 빌미로 가게나 집에 난입하거나 시민들을 상대로 폭력을 휘두르는 이들도 있었지만, 시민 중 누구도 그들에게 감히 반항하거나 항의의 목소리를 높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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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안을 지켜야 할 경찰들조차 주둔소에 틀어박힌 채 혼란을 나 몰라라 하는 판에, 평범한 사람들에게 맞서 싸우는 걸 요구하는 건 너무나 잔혹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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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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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티아는 골목길에 숨은 채 거친 호흡을 가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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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몸 곳곳에는 베인 상처가 가득했고, 특히 옆구리에서는 계속해서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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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을 지키던 충직한 호위들은 모두 고인이 되었고, 그녀 본인 또한 백을 넘는 적을 베었지만, 그 대가로 마력과 체력은 바닥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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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하고 그녀는 소리 없이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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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오늘은 안개가 짙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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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서 돌아다니기에 유리하고, 그렇게 시간을 끌다 보면 레오와 드롤이 돌아올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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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안토니오가 시장과 손을 잡고 그녀를 배제하려고 했다고 한들, 남은 두 간부가 귀환하기만 한다면 상황은 얼마든지 역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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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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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관적인 쪽으로 도피하려고 하는 히스티아를 향해, 마녀 헤카테가 질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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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렇게 생각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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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레오가 너의 곁에서 떨어지게 된 이유가 뭐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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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롤과 안토니오 두 사람이 네 앞에서 서로 언쟁을 벌인 건 진심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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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와 시장이 바보도 아니고, 남은 간부가 귀환했을 때의 일을 대비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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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드롤까지도 한 패거리라면 어떻게 할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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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통수를 맞은 레오와 그 부하들이 자칫 제거당한다면? 아니, 설령 살아남는다고 해도 분명 큰 피해를 입을 텐데, 그들이 과연 너를 도울 여유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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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의 지원이 없다고 한다면, 그런데도 네가 과연 살아 남을 수 있을까? 정말로 그렇게 믿는 건 아니겠지?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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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고 싶지 않은 비관적인 이야기에, 히스티아는 도망치고 싶은 기분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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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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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그 비관적인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그녀 자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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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히스티아는 헛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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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악당의 끝은 이런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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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죄인이라는 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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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서도 다른 삶의 방식을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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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그 최후가 변변치 못한 것도 당연한 일이라고, 그녀는 자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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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결말도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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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쌓은 업보를 받는다고 생각하고, 더 이상 발버둥 치지 말고 받아들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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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생각하며, 히스티아는 나이프로 제 목을 겨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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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날 끝이 하얀 피부에 닿으며 붉은 핏방울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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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힘을 주면, 그걸로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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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자신의 추함에 괴로워하는 일도, 죄를 쌓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삶에 고민하는 일도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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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림없이 그녀가 바라왔던 결말. 기다려왔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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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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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찌를 수가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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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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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하다는 걸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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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자신의 마지막을 더 비참하게 만들 선택이라는 것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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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만, 그래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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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했는데, 열심히 연습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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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과 연주를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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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나란히 서서,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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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움에서 태어나 더러움을 흩뿌리기만 했던 삶에서, 누군가의 더러움을 씻어내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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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이 괜찮다고 인정해 주었는데, 앞으로 조금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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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포기하기에는─ 너무나,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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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악물며, 히스티아는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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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다시 한번 삶의 의욕을 불태운 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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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카테! 당장 나와라! 지금 당장 분수대 쪽으로 나오지 않는다면, 네가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악사가 처참한 꼴을 보게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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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을 고하는 소리가, 가차 없이 그녀를 꿰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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