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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화 하인 세드릭(Cedric) (9) - 치안은 견공에게
에체드령 영주 관저.
엄격함과 근엄함으로 가득해야 할 그 공간은, 지금 이 순간 무척이나 귀엽고 몽실몽실한 분위기로 가득 차 있었다.
-멍!
-뀨웅.
혈마수.
어지간히 강력한 전사들조차 감히 대항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레드벨 가문의 비전이 탄생시킨 특별한 마법 생명체.
본래라면 주변에 공포와 위엄을 흩뿌려야 할 그들이, 중형견 크기로 쪼그라든 채 수백 마리로 증식하여 저택 마당을 빼곡히 메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네 조언대로 하긴 했는데, 이게 정말로 도움이 되긴 해?”
미심쩍은 얼굴을 한 클라우디아를 향해, 세드릭은 밝게 미소 지으며 답했다.
“물론입니다, 아가씨! 이 마수들은 이 에체드를 개혁할 최고의 일꾼들이 되어줄 겁니다!”
“흐음.”
본디 클라우디아가 다룰 수 있는 혈마수들은, 3등급 개체로 다섯 마리.
헌데 세드릭은 혈마수들 하나하나의 강함은 무시한 채, 가능한 개체수를 늘려달라고 그녀에게 요청했다.
덕분에 혈마수들의 개체수는 크게 늘어났지만, 그 강함은 정말로 외관 그대로, 그러니까 그냥 평범한 중형견 레벨까지 내려가 버렸다.
“너, 얘들을 영지의 치안 강화용으로 쓴다고 하지 않았어? 지금 이 상태로는 소매치기 상대로도 상대가 꼬마가 아니면 못 이길걸? 하물며 마력을 조금이라도 쓸 줄 아는 녀석이라면, 무더기로 달려들어도 가뿐히 대처할 거야.”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영지의 치안을 떨어트리는 건 대개 잡범이고, 애초에 이 혈마수들이 해야 할 역할 중 전투의 비중은 매우 낮으니까요.”
세드릭이 봤을 때, 레드벨 가문의 비전이 지닌 진정한 가치는 재생력이나 전투력 따위가 아니었다.
혈마수 하나하나가 어느 정도 자유 의지를 지니고, 또 주인인 클라우디아의 명령을 이해할 만한 지성을 보유한다는 점.
겉모습처럼 개와 비슷한 능력을 지니며, 먹이를 먹으면 주인의 마력 공급이 없어도 자력으로 활동할 수 있다는 점.
사람과 말이 잘 통하는 중형견 수백 마리를 원하는 곳에 투입할 수 있다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지금부터 이 혈마수들은 도시 곳곳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활동할 겁니다. 그리고 뒷골목의 왈패든 소매치기든 누군가가 범죄를 저지르는 걸 발견하면, 그 범인에게 으르렁거리며 경고를 할 수 있겠지요.”
“범인이 그냥 개라고 생각해서 무시하거나, 역으로 공격하면?”
“상관없습니다. 그때는 일단 도망친 뒤에 다른 혈마수들을 불러 모아 단체로 덤벼들면 되고, 그것조차 어려울 것 같다면 아예 경비대에 직접 알려주면 되니까요. 경비대는 순찰 같은 일을 할 필요 없이, 혈마수들이 위험을 알려주면 그곳으로 출동하는 기동대 역할로 변모하겠지요.”
머릿수란 그 자체로 힘이다.
충분한 무장과 인원을 갖춘 경비대가, 아예 싸울 것을 각오하고 집단으로 덤벼들면 거기에 정면으로 맞설 수 있는 범죄자 따위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설령 범죄 현장을 혈마수에게 목격당하지 않거나, 혈마수가 도망치기 전에 죽여 입막음을 하려고 해도 소용없습니다. 현장에 남은 체취로 얼마든지 추격이 가능할 테니까요.”
작정하고 후각을 활용하는 개의 추적 능력은 인간에 비할 바가 아니다.
범죄자들이 활개 칠 수 있는 주된 이유는 그들이 경비대 전체보다 강해서가 아니라 모습을 숨기거나 도망칠 수 있어서인데, 혈마수들은 그런 범인들을 끝까지 찾아내는 것이다.
“그래도, 자기 모습이나 체취를 아예 지워버리는 능력자도 없진 않을 텐데?”
“그건 그렇지요. 하지만 보통 치안 유지 조직을 정말로 힘들게 하는 건, 그런 소수의 능력자가 저지르는 강력 범죄가 아니라, 수많은 잡범들이 저지르는 사건 사고입니다. 사고 100건 중 99건을 억제하거나 곧바로 처리할 수 있는 상황이 갖춰지면, 나머지 1건은 얼마든지 조직의 역량을 투자해서 대처할 수 있게 되겠지요.”
한 번의 엽기살인보다도, 수백 수천의 잡스러운 범죄 쪽이 도시의 치안에는 더 큰 영향을 준다.
그리고 사람 목숨이 우습게 사라지는 이 판타지 시대에서, 범죄 발생률이 극단적으로 낮은 영지라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강력한 메리트가 된다.
“이는 단순히 사람들이 거주하는 도시나 마을에만 적용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에체드령으로 통하는 주요 길목들에 혈마수들을 일정 간격으로 배치하여 순찰을 돌게 한다면, 그 길목에서 사람을 덮치는 도적이나 마물을 상대로도 앞서 말한 것처럼 전력 집중을 통한 퇴치가 가능해지죠. 여행객이나 상인들에게 ‘에체드령으로 향하는 길은 안전하다’라는 인식을 새겨줄 수 있는 겁니다.”
애초에 잠재력 자체는 나쁘지 않았던 에체드령이다.
한번 안전한 도시라는 인식이 박히고,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면 그 뒤에는 계속해서 선순환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건 레드벨 가문이라면 누구나 쓸 수 있는 방법이잖아. 다른 사람들도 같은 걸 하면, 내 가치는 다시 떨어지는 거 아니야?”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혈마수들을 다루는 능력을 계속해서 키우셔야겠지요. 결국 이 시스템은 얼마나 많은 혈마수들을 동시에 다룰 수 있는지가 핵심이니까요.”
뭣보다, 라며 세드릭은 덧붙였다.
“제 생각에는 아마 아가씨의 남매분들은 이를 활용하려 하지 않을 겁니다.”
“왜?”
“그야, 효율을 제쳐놓고 보면 자기가 피 흘려 만들어 낸 분신과도 같은 존재인 혈마수들이, 영지 여기저기를 문자 그대로 개처럼 굴러다니며 경비 노릇이나 하는 셈이니까요.”
세드릭의 말에, 클라우디아는 아하, 하고 납득했다.
자기야 어차피 이미 내려놓을 만큼 내려놓았으니 개의치 않지만, 그 콧대 높은 것들이 이를 쉽사리 따라 하는 모습은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가 피식하며 웃었다.
“그러면 그 녀석들, 조만간에 팔짝 뛰면서 난리 치겠네. 가문의 수치니, 고귀한 비전을 더럽혔니 어쩌니 하면서.”
다만 단 한 명.
후작의 반응만큼은 쉽사리 예측이 가지 않는 그녀였다.
그 음험하면서도 냉담한 정치꾼은, 과연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레드벨 후작의 거처는 비르카 왕국 내에서도 손꼽히게 웅장하고 화려한 것으로 유명하다.
말을 타고 경주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드넓은 안뜰.
낚시는커녕 아예 배를 띄우고 유람을 즐길 수 있는 호수.
왕가를 향한 최소한의 예의라는 듯이 왕궁보다는 한층 낮은, 하지만 면적 자체는 왕궁보다도 넓은 저택 본채까지.
본채 주변에 세워진 손님용 별채에는 세자릿수를 넘는 인원들이 숙박하며, 손님들은 후작과 나눌 단 30분도 되지 않는 대화를 위해 한 달을 넘는 시간을 오매불망 기다린다.
후작이 손님맞이에 사용하는 시간은 그의 일정 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고, 한가로이 산책을 즐기는 후작의 모습을 목격한 이들도 적지 않지만, 그렇다고 감히 그에 대해 불만을 드러내는 손님은 없다.
국왕조차 명령이 아닌 협상과 부탁을 해야 하는 왕국 최고의 권세가를 앞두고 ‘나를 기다리게 하면서 너는 왜 쉬는 거냐’라고 지껄일 정도의 멍청이라면, 애초에 이 저택에 손님으로서 발을 들일 수도 없을 테니까.
이는 레드벨의 가신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마디로 ‘가신’이라고 묶어 말해도 그 내부에는 수많은 직급과 계급이 존재했고, 그중 후작과 직접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허락되는 건 한 줌에 불과한 최고위 가신들뿐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대기업의 회장이 일개 말단 사원이나 중간 관리자에게 직접 보고를 받지는 않으니까.
다만 대기업 회장이 변덕이나 개인적 흥미로 사원 하나를 호출해서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듯이, 후작 역시 그러했다.
“그러니까… 지금 내 딸이 내게 선전포고를 했다. 대충 그런 뜻인가?”
후작의 말에, 그의 앞에서 고개를 조아리고 있던 영주 대리가 다급히 대답했다.
“저, 정확히는 에체드를 본인 힘으로 바꿔볼 테니 그것을 지켜봐 달라, 아가씨의 용도를 정하는 건 그다음에 결정해 달라, 그리 이야기하셨습니다.”
“그게 선전포고지. 결국 내 뜻을 뒤집어 보겠다는 것 아닌가.”
평탄한 후작의 목소리를 들으며, 영주 대리는 마른침을 삼켰다.
클라우디아는 괜히 말을 왜곡해서 전하지 말라고 협박했지만, 엄밀히 말해서 그는 말을 왜곡하지도 빼먹지도 않았다.
내용을 그대로 전했는데도 후작이 이런 식으로 해석한 게 그의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고로, 영주 대리는 재빨리 후작의 말에 동조했다.
“아무래도 아가씨께서 세상 물정에 어두운 나머지 폭주하고 계신 듯합니다.”
“흠, 폭주라. 자네 생각은 그런가?”
“예, 후작님. 아무래도 그, 감정적인 면모가 강하신 분이잖습니까.”
“하긴, 그 아이가 다소 그런 면이 있긴 하지.”
후작이 동조하는 기색을 드러내자, 나무토막처럼 뻣뻣하던 영주 대리의 몸에서도 조금이나마 긴장이 풀렸다.
그런 영주 대리에게, 후작은 친근한 어투로 물었다.
“그러면, 내가 어찌해야겠나?”
“현재 아가씨는 혈마수의 힘을 이용해 강압적으로 영주 직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실무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이가 무작정 힘만으로 통치를 시도했다간 반드시 불협화음이 일어날 테니, 시급히 뛰어난 기사들을 파견하여 그분을 제압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흐음, 그게 전부인가? 달리 필요한 조치는 더 없고?”
“일이 너무 커지지 않도록 조용히 처리하는 것이 좋다고 사려 되옵니다.”
“그렇군.”
레드벨 후작은 고개를 끄덕인 후, 영주 대리를 향해 말했다.
“알겠네. 이만 가보도록.”
“예.”
영주 대리는 다시 한번 굽실거리는 동작으로 인사를 건넨 뒤, 종종걸음으로 떠나갔다.
그가 완전히 떠난 후.
레드벨 후작이 입을 열었다.
“이보게.”
그의 곁에서 감정 없는 인형처럼 무뚝뚝한 얼굴로 대기하던 호위 기사가, 한 발짝 앞으로 나서 고개를 숙였다.
“예. 주군.”
“아무래도 내가 가신들에게 너무 유하게 대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 영주 대리라는 놈이 제 땅을 빼앗겨 놓고도 어떻게 책임지겠다, 어떻게 벌해달라는 말은 아무것도 없으니 말이야.”
“적절하게 처리하겠습니다.”
“그래, 좋은 본보기로 삼아주게. 그래야 다른 이들도 배우겠지.”
영주 대리.
아니, ‘전’ 영주 대리의 운명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그는 이제 아침 해를 보는 일은 없게 되리라.
“흐음.”
레드벨 후작은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잠시 고민에 잠겼다.
클라우디아의 당돌한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그래, 에체드령에 관한 소식은 방금 그 머저리가 가져온 게 전부인가?”
후작의 질문에, 근처에 있던 다른 가신이 앞으로 나서 입을 열었다.
“영애께서는 현재 본래 영주 대리 밑에 있던 관료 중 3할 정도를 쳐내고, 그 자리를 새로운 인재들로 채우셨습니다.”
후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자리라는 건 그냥 앉기만 한다고 자기 것이 되는 게 아니지. 실제로 힘을 쓰려면 실무자들을 자기 사람으로 채워야 해. 그런데, 의문이로군. 그 아이한테 자기 사람이라고 할만한 게 있었나?”
“저택에서 아가씨를 모시던 하인들을 끌어왔다고 합니다.”
“허.”
후작의 입에서 작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래, 이해는 가는군. 외가의 지원도 개인적인 기반도 없는 그 아이가 그나마 쓸 수 있는 인재라고는 그 정도뿐이겠지. 헌데, 그래서야 영지 꼴이 말이 아닐 텐데?”
귀족의 일상을 보좌하는 하인과 귀족의 업무를 보좌하는 가신은 다르다.
가문에 따라서는 두 영역이 중첩되는 일도 없진 않지만, 후작이 알기로 클라우디아의 하인 중 행정 업무까지 가능한 건 집사장 베스티앙 정도밖에는 없었다.
“그것이… 행정적인 문제는 발생하지 않고 있는 듯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에체드령에서 시행한 새로운 제도 때문에 오히려 점점 사람들이 그쪽으로 모이는 기색마저 있습니다.”
“새로운 제도?”
“이쪽입니다.”
가신은 후작에게 보고서를 바쳤고, 후작은 그 내용을 확인했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정신이 나갔군.”
얼음장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가신의 표정이 미세하게 떨렸다.
후작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상할 건 없었다.
당장 그 자신도 현지 조사원이 올린 보고가 잘못된 게 아닌가 몇 번이나 검토를 반복했으니까.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아니, 이건 내버려 두게.”
“…괜찮겠습니까?”
후작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자네, 화초를 키워본 적 있나?”
“없습니다.”
“난 있네.”
후작은 근처에 있는 화단에서 꽃 한 송이를 꺾어냈다.
“딱히 먹을 수도 없고, 특별한 약효가 있는 것도 아니지. 사실 보는 것 외에는 별 쓸모도 없어. 헌데 그런 화초 하나에 금화 수십, 수백 개를 아낌없이 지불하는 이들이 있네. 나는 그런 이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그래도 화초를 키웠네. 누군가는 그걸 비싸게 산다는 걸 알았으니까. 지금은 유행이 지났지만, 한때는 그걸로 제법 재미를 봤었지.”
“…….”
“지금 개입하면 화초는 화초로 끝나겠지. 나한테는 큰 가치가 없지만, 누군가는 큰돈을 주고 사는 물건이. 그런데, 잘만하면 나한테도 가치가 있고, 남한테도 가치가 있는 무언가가 될 수도 있네. 그러면 일단 놔두는 게 이익 아니겠나?”
가신이 입을 열었다.
“허나, 자칫하면 처음 생각했던 가치조차 챙기지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상관없네. 그땐 그만큼 더 쥐어 짜내면 그만이니까.”
후작의 목소리는 무덤덤했지만, 거기에 담긴 의미는 더할 나위 없이 섬뜩했다.
그때, 어디선가 날아온 벌이 후작이 손에 쥔 꽃 한 송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호위 기사들이 움직이는 것보다도 먼저, 후작의 소매에서 튀어나온 짐승의 주둥이가 벌을 집어삼키고, 이내 신기루처럼 다시 모습을 감추었다.
후작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하기야, 지금처럼 벌레가 꼬이는 것까지 막아줄 생각은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