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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화 음악가 하멜(Hamel) (10) - 계승해 버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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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정부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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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평민과 귀족의 구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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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왕조차도 분노한 민중에게 단죄당했으니, 세상에 온갖 차별과 박해는 사라지고 평등한 세상이 찾아오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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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개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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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이라는 벽은 사라졌을지도 모르나, 이는 결코 평등을 뜻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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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이젠 핏줄 대신 부유함으로 서로의 급을 나누었고, 심지어 신분제조차도 온전한 철폐와는 거리가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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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가 느리거나 지나치게 악명이 높은 귀족들은 혁명의 흐름에 휩쓸려 개미처럼 죽어 나갔지만, 시류에 합승한 자들은 슬그머니 자본가로 간판을 갈아치워 새로운 시대의 상류층이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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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 몬태규 가문은 여전히 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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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스터 몬태규는 귀공자였고, 저 길바닥의 천한 이들과는 근본부터 다른 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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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시를 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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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렌스터는 자신의 행동에 일말의 거리낌도,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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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되레 그는 지금 자신이 자비롭다는 생각마저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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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로 들개가 눈에 거슬릴 때는 몽둥이로 다스려 내쫓는 것이 정석인데, 지금 그는 그 입에 고기마저 물려준 채 말로 타이르려 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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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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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묵직함이 느껴지는 돈주머니를 바닥에 던진 뒤, 렌스터가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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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도 없는 악사 나부랭이가 가지기에는 터무니없는 거금이다. 그거라면 어딜 가도 제법 그럴듯하게 행세할 수 있겠지. 가능하면 멀리 가는 게 좋을 거다. 네 소문이 다시 내 귀에 들려온다면, 그땐 지금처럼 신사적으로 대하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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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은 바닥을 구르는 돈주머니를 슬쩍 바라본 후, 이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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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적이라니, 제가 아는 말뜻과 당신이 아는 말뜻은 제법 다른 모양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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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죽거리는 듯한 말투에, 렌스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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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신 몸답게, 그는 직접 폭력을 휘두르거나 언성을 높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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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하멜의 곁에 있던 거친 외모의 사내들이 대신 손과 발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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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의 타격음이 울려 퍼진 후, 어깨를 짓눌린 하멜이 강제로 바닥에 무릎 꿇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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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한심하다는 듯이 내려다보며, 렌스터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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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를 알아라, 멍청한 놈. 기껏해야 술집이나 길거리에서 박수 소리 좀 듣는다고 네놈이 뭐라도 되는 것 같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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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라면 물론 알고 있습니다. 그리 대단한 놈은 아니지요. 여자에게 들이댔다가 잘 안 풀리니 엉뚱한 곳에 화풀이나 하는 그쪽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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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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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곡을 찔린 듯이, 렌스터의 얼굴에 수치심과 분노가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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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게 좋게 말해주니 말귀를 못 알아듣는 모양이로군. 그래, 어디 바다에 가라앉은 뒤에도 그 입이 잘 돌아갈지 두고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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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비를 베풀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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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데 그 자비를 걷어찬 건 이 주제도 모르는 천것이라고, 렌스터는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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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빠득 이를 갈며 신호를 보내자, 근처에 있던 남자 중 하나가 손에 든 밧줄을 하멜의 목을 향해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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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순간, 갑작스러운 소음이 이를 멈추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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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이이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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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있던 창고의 문이 급하게 열리고, 그 너머에서 몇몇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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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스터는 짜증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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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고 했을 텐데!! 어떤 놈이…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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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스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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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자리에 나타나선 안 될 사람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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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태규 가문의 가주. 한때 백작 위를 지녔었고, 봉토는 잃었으되 수천 명을 넘는 직원이 있는 회사를 영지로 거머쥔 새 시대의 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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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딱하게 굳어버린 얼굴로 걸어들어오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렌스터가 당황하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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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어떻게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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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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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스터의 몸이 크게 휘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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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양새 자체는 손바닥으로 뺨을 때린 거였지만, 실제 위력은 거의 주먹으로 후려친 것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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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위들이 크게 동요하고, 렌스터 본인 역시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멍한 얼굴로 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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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몬태규 가주는 그런 아들에게는 시선 한번 주지 않고 하멜의 모습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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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덜너덜해진 하멜의 옷과 몸 곳곳에 있는 멍과 상처를 발견하고, 가주의 안색이 급격하게 나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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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고급스러운 정장 바지가 더러워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릎을 꿇은 뒤, 하멜의 손을 붙잡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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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게 되었소이다, 선생. 아들의 어리석은 행패에 무어라 사죄드려야 할지 차마 면목이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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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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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은 조금 곤혹스러운 듯이 눈을 굴린 후, 이내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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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자식 교육은 많은 부모님들의 골칫거리지요. 이해해야지 어쩌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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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정말로 미안하오. 최고의 의사와 최상급 포션을 준비하고, 의복을 비롯해 망가진 소지품은 전부 배상하겠소이다. 부디 받아주시오. 물론, 보상금과는 별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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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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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스터가 고함을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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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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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근엄하고 귀족다운 품위를 잃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던 아버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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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시의 시장을 상대로도 상호 존대할지언정 일방적으로 굽히지는 않던 그가, 일개 길거리 악사 따위에게 굽신거리며 고개를 조아리는 이 상황은 대체 뭐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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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하시는 겁니까, 어떻게 이런 천것 따위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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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쳐라! 이 어리석은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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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전체를 쩌렁쩌렁 울릴만한 노성과 함께 몸을 일으킨 가주가, 렌스터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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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고 싶은 건 오히려 내 쪽이다!! 대체,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대체 뭘 건드린 거냔 말이다!! 지금 네놈 때문에 우리 집안이 어떤 상황인지 알기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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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게 대체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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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면 잠자코 닥치고 있어!! 지금 네놈 투정 따위를 받아줄 때가 아니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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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주의 시선이 불안정하게 흔들리더니, 흘끗하고 뒤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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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렌스터는 처음 아버지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던 이들의 모습을 살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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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이라도 한 듯이 흑색의 정장으로 복장을 통일한 남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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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도 가장 체격이 크고 온몸에서 피와 철의 냄새를 풍기는듯한 사내는, 말 한마디 내뱉지 않은 채 조용히 현장을 관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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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렌스터의 부하가 손에 쥔 밧줄에 유달리 짙은 시선을 향하던 그는, 가주에게로 슬그머니 눈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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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무슨 신호라도 되는 양, 가주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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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하멜에게 재차 사죄를 반복한 뒤, 본인이 타고 왔던 고급스러운 마차에 태워 자신의 주치의에게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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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정작 가주 본인은 아들과 함께 검은 양복의 사내들이 이끄는 대로 또 다른 마차에 몸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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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렌스터는 더 이상 아버지를 향해 질문을 내뱉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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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차 문이 닫히는 것과 동시에, 밖에서 들려오는 호위들의 비명이 그에게서 무언가를 말할 기력을 앗아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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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몬태규 저택에 도착한 렌스터는, 저택 전체에서 풍기는 심상찮은 분위기에 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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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택은 정적에 감싸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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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없어서 생기는 정적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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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수많은 인기척이 느껴지는데도, 그들 전부가 입을 다물고 침묵하고 있을 때 느껴지는, 기괴하고도 소름 끼치는 정적이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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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택 로비 안에 들어선 렌스터는 무심코 비명을 내지를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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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하인들은 모두 한곳에 모여 벌벌 떨고 있었고, 검은 정장의 남자들이 그들을 감시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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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들과 다소 떨어진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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밧줄에 묶인 채 일렬로 나란히 무릎을 꿇고 있는 가족들을 본 렌스터의 입에서 비명이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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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얼굴은 하나 같이 초췌했고, 남자들의 경우 저항을 시도하다 두들겨 맞기라도 했는지 언뜻 봐도 몸이 성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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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머니! 얘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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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스터는 반쯤 무의식적으로 가족들을 불렀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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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들의 눈빛에 담긴 원망은 백 마디 말보다도 렌스터의 입을 다물게 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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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스터는 억울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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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도 그렇고, 다른 가족들도 그렇고, 대체 왜 그런 눈으로 자기를 본단 말인가. 대체 뭘 잘못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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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에 빠진 그를 방치한 채, 그의 아버지는 어느 인물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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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놈을 데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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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과 망토로 몸을 감춘 여인이, 흘끗하고 렌스터를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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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안광과 눈을 마주친 순간, 렌스터는 호흡하는 것조차 잊어버린 채 딱딱하게 몸을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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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자를 눈앞에 둔 피식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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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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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태규 가주. 아니, 백작이라고 불러줘야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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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말씀을 낮춰주십시오. 헤카테 님. 지금 저는 그저 한 가문의 가장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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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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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름을 들은 순간 렌스터는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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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의 아버지가 왜 이리도 저자세로 나오는지, 아까부터 무엇을 그리 두려워했는지도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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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는 미스트헤븐의 지배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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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시장처럼 법이니 민심이니 하는 요소를 신경 써야 할 필요조차 없는, 그저 불쾌하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지워버릴 수 있는 악의 여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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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네. 아슬아슬하게 시간에 맞아서.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약속이고 뭐고 없었을 텐데.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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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예,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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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질극이니 뭐니 하는 귀찮은 일 없도록 교섭을 잘 끝냈으니까. 이걸로 용서해 준다고 하고 싶긴 한데… 그전에 확인할 건 확인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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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카테의 시선이 그들 부자를 여기까지 호송해 온 남자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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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 보고해. 무엇하나 빠짐없이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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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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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는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사무적인 태도로, 제가 보고 들은 내용들을 이야기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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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의 온몸에 두들겨 맞은 상처가 있었다는 부분에서 헤카테의 손끝이 움찔거렸고, 밧줄로 목을 졸라 죽이려 했다는 부분에서는 아예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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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마녀의 판결이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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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밧줄을 준비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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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명령에, 부하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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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색이 창백해진 것은 몬태규 가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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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 헤카테님. 하, 한 번만! 부디 한 번만 더 생각해 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돈이든 이권이든, 절대로 아쉽지 않을 정도로 바치겠습니다! 원하신다면 중앙과의 연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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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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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할 정도로 차가운 거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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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이권을 위한 게 아니란다. 그런 걸로 더럽혀도 좋은 일이 아니야. 혹시 내가 했던 말을 또 해야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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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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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잘 알아들어서 다행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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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렌스터는 본능적인 불안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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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그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너무나 중요한 것이 결정되어 버리는 듯한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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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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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부름에, 아버지가 잠시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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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문의 가주이자 거대한 공장의 사장이, 재차 시선을 외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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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스터는 재차 무어라 입을 열려고 했지만, 이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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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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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등 뒤로 접근한 조직원 중 한 명이, 말없이 렌스터의 목에 밧줄을 걸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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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 위로, 렌스터의 몸이 조금씩 위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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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스터는 목에 걸린 밧줄을 풀기 위에 발버둥을 쳤지만, 이는 그의 고통을 더 길게 만들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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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들리에처럼 허공에 전시된 그를 보며, 여기저기서 탄식인지 비명인지 모를 소리가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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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이 끊어지기 직전, 렌스터는 아래에서 저를 올려다보는 헤카테와 눈을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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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것을 건드린 자, ‘적’에 대한 끝없는 잔혹함과 살기로 가득 찬 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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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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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그의 마지막 상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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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받은 아이는 부모를 증오한다. 하지만 사람은 자신이 배운 것에 영향을 받아 행동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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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국의 어느 심리학자가 남긴 저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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