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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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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화 음악가 하멜(Hamel) (10) - 계승해 버린 것

혁명 정부는 말한다.

더 이상 평민과 귀족의 구분은 없다.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왕조차도 분노한 민중에게 단죄당했으니, 세상에 온갖 차별과 박해는 사라지고 평등한 세상이 찾아오리라고.

전부 개소리였다.

신분이라는 벽은 사라졌을지도 모르나, 이는 결코 평등을 뜻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젠 핏줄 대신 부유함으로 서로의 급을 나누었고, 심지어 신분제조차도 온전한 철폐와는 거리가 멀었다.

눈치가 느리거나 지나치게 악명이 높은 귀족들은 혁명의 흐름에 휩쓸려 개미처럼 죽어 나갔지만, 시류에 합승한 자들은 슬그머니 자본가로 간판을 갈아치워 새로운 시대의 상류층이 되었으니까.

고로 몬태규 가문은 여전히 귀족이었다.

렌스터 몬태규는 귀공자였고, 저 길바닥의 천한 이들과는 근본부터 다른 자였다.

“이 도시를 떠나라.”

그렇기에, 렌스터는 자신의 행동에 일말의 거리낌도,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았다.

아니, 되레 그는 지금 자신이 자비롭다는 생각마저 하고 있었다.

자고로 들개가 눈에 거슬릴 때는 몽둥이로 다스려 내쫓는 것이 정석인데, 지금 그는 그 입에 고기마저 물려준 채 말로 타이르려 하고 있지 않은가.

턱!

제법 묵직함이 느껴지는 돈주머니를 바닥에 던진 뒤, 렌스터가 선언했다.

“근본도 없는 악사 나부랭이가 가지기에는 터무니없는 거금이다. 그거라면 어딜 가도 제법 그럴듯하게 행세할 수 있겠지. 가능하면 멀리 가는 게 좋을 거다. 네 소문이 다시 내 귀에 들려온다면, 그땐 지금처럼 신사적으로 대하지 않을 테니까.”

하멜은 바닥을 구르는 돈주머니를 슬쩍 바라본 후, 이내 입을 열었다.

“신사적이라니, 제가 아는 말뜻과 당신이 아는 말뜻은 제법 다른 모양이군요.”

이죽거리는 듯한 말투에, 렌스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귀하신 몸답게, 그는 직접 폭력을 휘두르거나 언성을 높이지는 않았다.

대신 하멜의 곁에 있던 거친 외모의 사내들이 대신 손과 발을 움직였다.

몇 번의 타격음이 울려 퍼진 후, 어깨를 짓눌린 하멜이 강제로 바닥에 무릎 꿇려졌다.

그를 한심하다는 듯이 내려다보며, 렌스터가 말했다.

“주제를 알아라, 멍청한 놈. 기껏해야 술집이나 길거리에서 박수 소리 좀 듣는다고 네놈이 뭐라도 되는 것 같더냐?”

“주제라면 물론 알고 있습니다. 그리 대단한 놈은 아니지요. 여자에게 들이댔다가 잘 안 풀리니 엉뚱한 곳에 화풀이나 하는 그쪽처럼 말입니다.”

“…네놈.”

정곡을 찔린 듯이, 렌스터의 얼굴에 수치심과 분노가 어렸다.

“좋게 좋게 말해주니 말귀를 못 알아듣는 모양이로군. 그래, 어디 바다에 가라앉은 뒤에도 그 입이 잘 돌아갈지 두고 보자.”

그는 자비를 베풀려 했다.

헌데 그 자비를 걷어찬 건 이 주제도 모르는 천것이라고, 렌스터는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했다.

그가 빠득 이를 갈며 신호를 보내자, 근처에 있던 남자 중 하나가 손에 든 밧줄을 하멜의 목을 향해 가져갔다.

하지만 그 순간, 갑작스러운 소음이 이를 멈추게 했다.

끼이이이익!

그들이 있던 창고의 문이 급하게 열리고, 그 너머에서 몇몇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렌스터는 짜증을 냈다.

“내가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고 했을 텐데!! 어떤 놈이… 아버지?”

렌스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금 이 자리에 나타나선 안 될 사람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몬태규 가문의 가주. 한때 백작 위를 지녔었고, 봉토는 잃었으되 수천 명을 넘는 직원이 있는 회사를 영지로 거머쥔 새 시대의 영주.

딱딱하게 굳어버린 얼굴로 걸어들어오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렌스터가 당황하며 물었다.

“아버지. 어떻게 여기에…?”

퍼억!

렌스터의 몸이 크게 휘청였다.

모양새 자체는 손바닥으로 뺨을 때린 거였지만, 실제 위력은 거의 주먹으로 후려친 것에 가까웠다.

호위들이 크게 동요하고, 렌스터 본인 역시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멍한 얼굴로 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허나, 몬태규 가주는 그런 아들에게는 시선 한번 주지 않고 하멜의 모습을 살폈다.

너덜너덜해진 하멜의 옷과 몸 곳곳에 있는 멍과 상처를 발견하고, 가주의 안색이 급격하게 나빠졌다.

그는 고급스러운 정장 바지가 더러워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릎을 꿇은 뒤, 하멜의 손을 붙잡고 말했다.

“미안하게 되었소이다, 선생. 아들의 어리석은 행패에 무어라 사죄드려야 할지 차마 면목이 없군요.”

“어음.”

하멜은 조금 곤혹스러운 듯이 눈을 굴린 후, 이내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뭐, 자식 교육은 많은 부모님들의 골칫거리지요. 이해해야지 어쩌겠습니까.”

“정말, 정말로 미안하오. 최고의 의사와 최상급 포션을 준비하고, 의복을 비롯해 망가진 소지품은 전부 배상하겠소이다. 부디 받아주시오. 물론, 보상금과는 별도요.”

“아버지!!”

렌스터가 고함을 내질렀다.

그는 이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항상 근엄하고 귀족다운 품위를 잃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던 아버지였다.

이 도시의 시장을 상대로도 상호 존대할지언정 일방적으로 굽히지는 않던 그가, 일개 길거리 악사 따위에게 굽신거리며 고개를 조아리는 이 상황은 대체 뭐란 말인가.

“뭘 하시는 겁니까, 어떻게 이런 천것 따위에게…”

“─닥쳐라! 이 어리석은 놈!!”

공장 전체를 쩌렁쩌렁 울릴만한 노성과 함께 몸을 일으킨 가주가, 렌스터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질문하고 싶은 건 오히려 내 쪽이다!! 대체,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대체 뭘 건드린 거냔 말이다!! 지금 네놈 때문에 우리 집안이 어떤 상황인지 알기나 해!?”

“그, 그게 대체 무슨…?”

“모르면 잠자코 닥치고 있어!! 지금 네놈 투정 따위를 받아줄 때가 아니란 말이다!!”

가주의 시선이 불안정하게 흔들리더니, 흘끗하고 뒤를 향했다.

그제야 렌스터는 처음 아버지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던 이들의 모습을 살필 수 있었다.

맞춤이라도 한 듯이 흑색의 정장으로 복장을 통일한 남자들.

그중에서도 가장 체격이 크고 온몸에서 피와 철의 냄새를 풍기는듯한 사내는, 말 한마디 내뱉지 않은 채 조용히 현장을 관찰하고 있었다.

특히 렌스터의 부하가 손에 쥔 밧줄에 유달리 짙은 시선을 향하던 그는, 가주에게로 슬그머니 눈을 돌렸다.

그게 무슨 신호라도 되는 양, 가주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하멜에게 재차 사죄를 반복한 뒤, 본인이 타고 왔던 고급스러운 마차에 태워 자신의 주치의에게로 보냈다.

그리고 정작 가주 본인은 아들과 함께 검은 양복의 사내들이 이끄는 대로 또 다른 마차에 몸을 맡겼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렌스터는 더 이상 아버지를 향해 질문을 내뱉지 않았다.

마차 문이 닫히는 것과 동시에, 밖에서 들려오는 호위들의 비명이 그에게서 무언가를 말할 기력을 앗아갔기 때문이다.

이윽고 몬태규 저택에 도착한 렌스터는, 저택 전체에서 풍기는 심상찮은 분위기에 침을 삼켰다.

저택은 정적에 감싸여 있었다.

사람이 없어서 생기는 정적이 아니었다.

분명 수많은 인기척이 느껴지는데도, 그들 전부가 입을 다물고 침묵하고 있을 때 느껴지는, 기괴하고도 소름 끼치는 정적이 그곳에 있었다.

저택 로비 안에 들어선 렌스터는 무심코 비명을 내지를 뻔했다.

가문의 하인들은 모두 한곳에 모여 벌벌 떨고 있었고, 검은 정장의 남자들이 그들을 감시 중이었다.

그리고 그들과 다소 떨어진 곳.

밧줄에 묶인 채 일렬로 나란히 무릎을 꿇고 있는 가족들을 본 렌스터의 입에서 비명이 새어 나왔다.

여자들의 얼굴은 하나 같이 초췌했고, 남자들의 경우 저항을 시도하다 두들겨 맞기라도 했는지 언뜻 봐도 몸이 성치 않았다.

“어, 어머니! 얘들아!”

렌스터는 반쯤 무의식적으로 가족들을 불렀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눈빛에 담긴 원망은 백 마디 말보다도 렌스터의 입을 다물게 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렌스터는 억울함을 느꼈다.

아버지도 그렇고, 다른 가족들도 그렇고, 대체 왜 그런 눈으로 자기를 본단 말인가. 대체 뭘 잘못했다고?

혼란에 빠진 그를 방치한 채, 그의 아버지는 어느 인물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아들놈을 데려왔습니다.”

가면과 망토로 몸을 감춘 여인이, 흘끗하고 렌스터를 응시했다.

그 안광과 눈을 마주친 순간, 렌스터는 호흡하는 것조차 잊어버린 채 딱딱하게 몸을 굳혔다.

포식자를 눈앞에 둔 피식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여인이 입을 열었다.

“몬태규 가주. 아니, 백작이라고 불러줘야 하려나?”

“마, 말씀을 낮춰주십시오. 헤카테 님. 지금 저는 그저 한 가문의 가장일 뿐입니다.”

헤카테.

그 이름을 들은 순간 렌스터는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느꼈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가 왜 이리도 저자세로 나오는지, 아까부터 무엇을 그리 두려워했는지도 이해했다.

상대는 미스트헤븐의 지배자였다.

그것도 시장처럼 법이니 민심이니 하는 요소를 신경 써야 할 필요조차 없는, 그저 불쾌하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지워버릴 수 있는 악의 여왕이었다.

“다행이네. 아슬아슬하게 시간에 맞아서.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약속이고 뭐고 없었을 텐데. 그렇지?”

“예, 예, 그렇습니다.”

“인질극이니 뭐니 하는 귀찮은 일 없도록 교섭을 잘 끝냈으니까. 이걸로 용서해 준다고 하고 싶긴 한데… 그전에 확인할 건 확인해야지.”

헤카테의 시선이 그들 부자를 여기까지 호송해 온 남자를 향했다.

“레오. 보고해. 무엇하나 빠짐없이 전부.”

“예, 보스.”

레오는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사무적인 태도로, 제가 보고 들은 내용들을 이야기해 나갔다.

하멜의 온몸에 두들겨 맞은 상처가 있었다는 부분에서 헤카테의 손끝이 움찔거렸고, 밧줄로 목을 졸라 죽이려 했다는 부분에서는 아예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이윽고, 마녀의 판결이 내려졌다.

“밧줄을 준비하렴.”

마녀의 명령에, 부하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안색이 창백해진 것은 몬태규 가주였다.

“헤, 헤카테님. 하, 한 번만! 부디 한 번만 더 생각해 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돈이든 이권이든, 절대로 아쉽지 않을 정도로 바치겠습니다! 원하신다면 중앙과의 연줄도…!”

“필요 없어.”

지독할 정도로 차가운 거절이었다.

“이건 이권을 위한 게 아니란다. 그런 걸로 더럽혀도 좋은 일이 아니야. 혹시 내가 했던 말을 또 해야 하니?”

“…아닙니다.”

“그래, 잘 알아들어서 다행이네.”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렌스터는 본능적인 불안감을 느꼈다.

뭔가, 그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너무나 중요한 것이 결정되어 버리는 듯한 감각.

“아버지…?”

아들의 부름에, 아버지가 잠시 시선을 돌렸다.

한 가문의 가주이자 거대한 공장의 사장이, 재차 시선을 외면했다.

렌스터는 재차 무어라 입을 열려고 했지만, 이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커헉!”

그의 등 뒤로 접근한 조직원 중 한 명이, 말없이 렌스터의 목에 밧줄을 걸었기 때문이다.

위로, 위로, 렌스터의 몸이 조금씩 위로 올라갔다.

렌스터는 목에 걸린 밧줄을 풀기 위에 발버둥을 쳤지만, 이는 그의 고통을 더 길게 만들 뿐이었다.

상들리에처럼 허공에 전시된 그를 보며, 여기저기서 탄식인지 비명인지 모를 소리가 새어 나왔다.

의식이 끊어지기 직전, 렌스터는 아래에서 저를 올려다보는 헤카테와 눈을 마주쳤다.

자신의 것을 건드린 자, ‘적’에 대한 끝없는 잔혹함과 살기로 가득 찬 금안.

‘…마, 녀…….

그것이, 그의 마지막 상념이었다.


「학대받은 아이는 부모를 증오한다. 하지만 사람은 자신이 배운 것에 영향을 받아 행동할 수밖에 없다.」

─공화국의 어느 심리학자가 남긴 저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