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15 lines
11 KiB
Markdown
215 lines
11 KiB
Markdown
|
||
#149화 음악가 하멜(Hamel) (9) - 그대를 손댄 대가를
|
||
|
||
본디 술집에서 펼쳐지는 공연이란 그렇게까지 주목을 받는 존재는 아니다.
|
||
|
||
달콤한 술, 화끈한 도박, 매력적인 이성 같은 자극을 앞둔 이들에게, 이름도 잘 모르는 음악가의 연주 따윈 그저 배경음악에 지나지 않으니까.
|
||
|
||
할 일이 없을 때 가끔 멍하니 바라보거나 박수를 치기는 해도, 본격적인 음악회나 오페라 같은 집중도는 차마 기대할 수 없다.
|
||
|
||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안개 낀 술잔’에서 펼쳐지는 광경은 사뭇 달랐다.
|
||
|
||
저벅. 저벅.
|
||
|
||
한 남자가 계단을 통해 무대로 오르는 순간, 술집 전체에 떠돌던 소음이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한다.
|
||
|
||
신규 손님들은 갑작스레 조용해진 주변 눈치를 보며 의아해하고, 고참 손님들은 앞으로 펼쳐질 무대를 기대하며 무대 위로 신경을 모은다.
|
||
|
||
홀가분한 여행복과 깃털 모자.
|
||
|
||
모자 아래로 보이는 얼굴 곳곳에는 평소의 거친 생활을 증명하듯 자잘한 상처가 많지만, 정작 당사자의 표정은 어둠이라곤 없이 마치 장난을 치기 전의 아이처럼 맑고 순수하다.
|
||
|
||
악사는 저를 바라보는 이들을 향해 정중하게 인사를 건넨 후, 우선은 무대 구석에 설치된 피아노에 자리 잡는다.
|
||
|
||
굳은살이 잔뜩 박인 손가락이 건반을 두드리자, 다채롭고도 현란한 음률이 관객들의 귀를 사로잡는다.
|
||
|
||
사람들의 감정이 충분히 고조되고 나면, 악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피리를 꺼내 든다.
|
||
|
||
피아노에 비해 훨씬 맑고 가벼운 음색이, 화려한 기교로 인해 지쳐있던 관객들의 귀를 부드럽게 달래준다.
|
||
|
||
물론 그렇다고 해서 피리 소리가 오직 휴식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
||
|
||
비교적 단조롭지만, 그렇기에 하나의 선율에 집중할 수 있는 피리 연주는 피아노의 복잡함과 대비를 이루며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하니까.
|
||
|
||
마지막으로 꺼내 드는 것은 바이올린.
|
||
|
||
사람의 목소리와 가장 가깝다고 여겨지는 음색이, 수많은 감정을 부추기며 관객의 집중을 최고로 끌어올린다.
|
||
|
||
격정적인 연주는 무대 전체를 통제하며 피날레에 도달하고, 관객의 마음속에 선명한 추억을 남기며 그 끝을 맺었다.
|
||
|
||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정적.
|
||
|
||
고요히 연주의 여운에 빠진 사람들에게, 악사 하멜이 제 모자를 벗으며 다시금 인사를 건넨다.
|
||
|
||
그제야 격하게 터져 나오는 박수와 환호성.
|
||
|
||
“하멜! 하멜! 하멜!”
|
||
|
||
“정말 최고예요!!”
|
||
|
||
안개 낀 술잔은 나름 고급 지향 술집인 만큼 손님들도 이래저래 품위를 따지는 이들이 많은 편이지만, 그런 이들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남 눈치를 살피지 않고 들뜬 것처럼 목청을 높였다.
|
||
|
||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지금 자기들이 품은 감정을 토해낼 방법이 없었으니까.
|
||
|
||
그 모습을 바라보며, 히스티아는 조용히 홀로 술잔을 기울였다.
|
||
|
||
“…….”
|
||
|
||
하멜이 처음 연주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분위기가 이렇지는 않았다.
|
||
|
||
사람들은 출신조차 불분명한 길거리 악사라며 그를 무시했고, 하멜이 무대에서 연주를 하든 말든 일개 배경 정도로밖에 여기지 않았다.
|
||
|
||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
||
|
||
자신을 향한 무관심과 조소를 하멜은 오직 제 실력만으로 이겨냈고, 공연이 반복되면 될수록 그를 향한 지지는 늘어만 갔다.
|
||
|
||
이제는 술집에 온 김에 하멜의 연주를 듣는 게 아니라, 아예 하멜의 소문을 듣고서 바에 찾아오는 이들마저 생겨날 정도.
|
||
|
||
“마스터, 한 잔 더.”
|
||
|
||
“손님…. 이미 과음하셨습니다.”
|
||
|
||
“괜찮으니까, 주세요.”
|
||
|
||
바 안쪽에 있는 주인장은 히스티아를 말려야 할지 말지 고민하는 기색이었지만, 결국 순순히 다음 잔을 내놓았다.
|
||
|
||
히스티아는 그것을 주저 없이 들이켰다.
|
||
|
||
목구멍을 통과하는 화끈한 감각.
|
||
|
||
허나, 지금 그녀의 가슴 속에 있는 열기에 비하면 이조차 한없이 부족하게만 느껴졌다.
|
||
|
||
이제야 그가 제대로 된 평가를 받는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마음과 자신만의 악사가 멀리 떠나버릴 것만 같은 불안감.
|
||
|
||
그와 함께하는 미래를 꿈꾸는 마음과 자신의 과거를 그가 알았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는 두려움.
|
||
|
||
여기에 악몽으로 인해 뒤숭숭한 기분까지 뒤섞이니, 히스티아가 마시는 술은 점점 늘어만 갔다.
|
||
|
||
그렇게 몇 잔이나 들이켰을까.
|
||
|
||
더 이상 하멜의 연주가 들리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그녀는, 조금은 위태로운 걸음걸이로 바를 빠져나갔다.
|
||
|
||
평소라면 이대로 집을 향했겠지.
|
||
|
||
하지만 술기운에 잠식된 그녀는, 평소라면 하지 않을 행동을 저질렀다.
|
||
|
||
하멜의 뒤를 따라가기로 한 것이다.
|
||
|
||
‘오늘 이 시간이면… 아이들을 모아놓고 공연을 하러 갔겠지.’
|
||
|
||
본래 히스티아는 분수대와 안개 낀 술잔, 그리고 그녀의 집 이외의 장소에서는 하멜의 근처에 머물지 않았다.
|
||
|
||
마음 같아서는 몇 날 며칠이고 계속해서 그를 따라다니고 싶었지만, 조직의 일도 있을뿐더러 하멜이 부담스러워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
||
|
||
그렇지만 오늘 정도는.
|
||
|
||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귀를 기울이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
||
|
||
그리 생각하며 히스티아는 걸었고, 이내 예상과는 다른 광경을 보고 당혹을 느꼈다.
|
||
|
||
주택가 공터.
|
||
|
||
본래 하멜이 아이들을 상대로 공연을 하고 있어야 할 그곳에는, 주연인 악사 없이 오직 관객 역할의 아이들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
||
|
||
그것도 굉장히 안절부절못하는 기색으로, 자기들끼리 아웅다웅하면서.
|
||
|
||
“빨리 도우러 가야 해!”
|
||
|
||
“바보! 우리끼리 가봐야 무슨 의미야!”
|
||
|
||
“겨, 경찰에 신고하면 되지 않을까?”
|
||
|
||
“돈도 없는데 무슨 수로? 어른들이나 저기 귀족 거리에 있는 애들이라면 몰라도, 우리 말은 들어주지도 않을걸?”
|
||
|
||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 악사 형이 우리 때문에 끌려간 건데!”
|
||
|
||
“잠깐, 끌려갔다니 그게 무슨 소리니?”
|
||
|
||
결코 듣고 넘길 수 없는 소리에, 히스티아는 아이들 앞으로 나서며 다그치듯 물었다.
|
||
|
||
“어, 어어.”
|
||
|
||
아이들은 히스티아의 살벌한 분위기와 한쪽 눈을 가린 안대를 보며, 얼어붙은 듯이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다.
|
||
|
||
히스티아는 순간 분노가 치밀었지만, 이내 심호흡을 거듭했다.
|
||
|
||
몸에 마력을 순환시켜 술기운을 단숨에 날려버리고 나니, 뜨거워졌던 머리에 이성이 돌아왔다.
|
||
|
||
“언니는 그 사람의 팬이란다. 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줄 수 있겠니?”
|
||
|
||
부드럽고도 나긋한 목소리에, 아이들은 그제야 긴장을 풀고는 서로 눈치를 살폈다.
|
||
|
||
그중 가장 연상으로 보이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앞으로 나서 말했다.
|
||
|
||
“악사 형이 평소처럼 우리들 앞에서 공연을 하려고 했는데, 우락부락한 사람들이 와서 형을 데려가려고 했어요. 악사 형의 공연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으니, 초대하고 싶다고.”
|
||
|
||
“악사 오빠는 거절하려고 했는데, 그 사람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저희를 가만두지 않는다고 했어요. 그래서, 오빠도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흑.”
|
||
|
||
재차 입으로 말하고 있으려니 이 상황이 한층 더 실감 나게 되었는지, 아이들의 눈가에 물기가 맺히기 시작했다.
|
||
|
||
히스티아 역시 초조함을 삼키며 재차 물었다.
|
||
|
||
“상대가 이름이나 세력 같은 걸 밝히지는 않았니?”
|
||
|
||
“아뇨, 그런 건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어요. 애초에 코트 같은 걸로 모습을 감추고 있어서, 생긴 것도 잘 알 수가 없었어요.”
|
||
|
||
히스티아의 눈이 차가워졌다.
|
||
|
||
‘단순한 우연이 아니야. 애초에 처음부터 정체를 숨길 생각이었어. 목적이 뭐지? 왜 하멜을?’
|
||
|
||
요새 부쩍 떠오르기 시작한 하멜의 몸값을 이용하려는 이들일까? 안개 낀 술잔이 하멜의 존재로 인해 흥행하는 걸 본 경쟁 업체들?
|
||
|
||
하멜을 개인적으로 초청하려다가 거부당한 이들이 많다고 하는데, 그에 불만을 느낀 바보가 행동에 나선 것일까?
|
||
|
||
가능성은 얼마든지 떠올랐다.
|
||
|
||
아니, 너무 많이 떠올라서 문제였다.
|
||
|
||
히스티아는 틀림없는 강자이지만, 그녀가 지닌 강함과 정보 수집 능력은 별개의 문제다.
|
||
|
||
애초에 하멜이 어디에 있는지 짐작이라도 해야 쳐들어가든 말든 할 것 아닌가.
|
||
|
||
이럴 줄 알았으면 따로 호위라도 붙여놔야 했다고, 히스티아는 후회했다.
|
||
|
||
하멜이 구속받는 것을 싫어했기에, 그녀 자신도 하멜이 ‘조직’과 필요 이상으로 엮이는 걸 경계했기에 내버려둔 것이었는데, 이제 와서는 그게 너무나 후회되었다.
|
||
|
||
그녀는 직감했다.
|
||
|
||
이건 ‘히스티아’로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걸.
|
||
|
||
“…….”
|
||
|
||
이 수단을 정말 써도 되는지 어떤지, 히스티아는 크게 고민했다.
|
||
|
||
허나, 하멜의 신변에 위험이 생긴 이상 그녀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
||
|
||
그녀는 아이들을 뒤로한 채, 가장 가까운 개인 은신처로 발길을 옮겼다.
|
||
|
||
은신처에 준비해 둔 예비용 가면과 망토를 뒤집어쓴 그녀는, 그대로 레오를 호출했다.
|
||
|
||
“부르셨습니까, 보스.”
|
||
|
||
“애들 풀어서 사람을 찾아. 이름은 하멜. 최근 안개 낀 술잔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길거리 악사. 그자가 어디에 있는지 당장 알아내. 빨리!”
|
||
|
||
“알겠습니다.”
|
||
|
||
레오는 보스의 갑작스러운 명령에도 의문을 표하거나 그녀를 말리는 대신, 충직하게 그 명령을 수행했다.
|
||
|
||
그리고, 곧 결과가 나왔다.
|
||
|
||
“몬태규 가문입니다. 그들이 보유한 여러 물류 창고 중 한 곳에, 조금 전 일정 간격을 두고 마차 두 대가 도착했다고 하는 군요.”
|
||
|
||
마녀 헤카테의 눈이, 살벌하게 타올랐다.
|
||
|
||
다시는 얼굴을 맞대는 일 없으면 좋겠다고, 그녀는 이미 마지막 경고를 했었다.
|
||
|
||
그런데도, 그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고 한다면.
|
||
|
||
“백작가로 가겠어.”
|
||
|
||
“추후 계획을 알려주신다면, 그에 맞춰 행동하겠습니다.”
|
||
|
||
레오의 질문에, 헤카테는 싸늘하게 대답했다.
|
||
|
||
“인질 교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