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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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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화 음악가 하멜(Hamel) (9) - 그대를 손댄 대가를

본디 술집에서 펼쳐지는 공연이란 그렇게까지 주목을 받는 존재는 아니다.

달콤한 술, 화끈한 도박, 매력적인 이성 같은 자극을 앞둔 이들에게, 이름도 잘 모르는 음악가의 연주 따윈 그저 배경음악에 지나지 않으니까.

할 일이 없을 때 가끔 멍하니 바라보거나 박수를 치기는 해도, 본격적인 음악회나 오페라 같은 집중도는 차마 기대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안개 낀 술잔’에서 펼쳐지는 광경은 사뭇 달랐다.

저벅. 저벅.

한 남자가 계단을 통해 무대로 오르는 순간, 술집 전체에 떠돌던 소음이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한다.

신규 손님들은 갑작스레 조용해진 주변 눈치를 보며 의아해하고, 고참 손님들은 앞으로 펼쳐질 무대를 기대하며 무대 위로 신경을 모은다.

홀가분한 여행복과 깃털 모자.

모자 아래로 보이는 얼굴 곳곳에는 평소의 거친 생활을 증명하듯 자잘한 상처가 많지만, 정작 당사자의 표정은 어둠이라곤 없이 마치 장난을 치기 전의 아이처럼 맑고 순수하다.

악사는 저를 바라보는 이들을 향해 정중하게 인사를 건넨 후, 우선은 무대 구석에 설치된 피아노에 자리 잡는다.

굳은살이 잔뜩 박인 손가락이 건반을 두드리자, 다채롭고도 현란한 음률이 관객들의 귀를 사로잡는다.

사람들의 감정이 충분히 고조되고 나면, 악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피리를 꺼내 든다.

피아노에 비해 훨씬 맑고 가벼운 음색이, 화려한 기교로 인해 지쳐있던 관객들의 귀를 부드럽게 달래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피리 소리가 오직 휴식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비교적 단조롭지만, 그렇기에 하나의 선율에 집중할 수 있는 피리 연주는 피아노의 복잡함과 대비를 이루며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하니까.

마지막으로 꺼내 드는 것은 바이올린.

사람의 목소리와 가장 가깝다고 여겨지는 음색이, 수많은 감정을 부추기며 관객의 집중을 최고로 끌어올린다.

격정적인 연주는 무대 전체를 통제하며 피날레에 도달하고, 관객의 마음속에 선명한 추억을 남기며 그 끝을 맺었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정적.

고요히 연주의 여운에 빠진 사람들에게, 악사 하멜이 제 모자를 벗으며 다시금 인사를 건넨다.

그제야 격하게 터져 나오는 박수와 환호성.

“하멜! 하멜! 하멜!”

“정말 최고예요!!”

안개 낀 술잔은 나름 고급 지향 술집인 만큼 손님들도 이래저래 품위를 따지는 이들이 많은 편이지만, 그런 이들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남 눈치를 살피지 않고 들뜬 것처럼 목청을 높였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지금 자기들이 품은 감정을 토해낼 방법이 없었으니까.

그 모습을 바라보며, 히스티아는 조용히 홀로 술잔을 기울였다.

“…….”

하멜이 처음 연주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분위기가 이렇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출신조차 불분명한 길거리 악사라며 그를 무시했고, 하멜이 무대에서 연주를 하든 말든 일개 배경 정도로밖에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자신을 향한 무관심과 조소를 하멜은 오직 제 실력만으로 이겨냈고, 공연이 반복되면 될수록 그를 향한 지지는 늘어만 갔다.

이제는 술집에 온 김에 하멜의 연주를 듣는 게 아니라, 아예 하멜의 소문을 듣고서 바에 찾아오는 이들마저 생겨날 정도.

“마스터, 한 잔 더.”

“손님…. 이미 과음하셨습니다.”

“괜찮으니까, 주세요.”

바 안쪽에 있는 주인장은 히스티아를 말려야 할지 말지 고민하는 기색이었지만, 결국 순순히 다음 잔을 내놓았다.

히스티아는 그것을 주저 없이 들이켰다.

목구멍을 통과하는 화끈한 감각.

허나, 지금 그녀의 가슴 속에 있는 열기에 비하면 이조차 한없이 부족하게만 느껴졌다.

이제야 그가 제대로 된 평가를 받는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마음과 자신만의 악사가 멀리 떠나버릴 것만 같은 불안감.

그와 함께하는 미래를 꿈꾸는 마음과 자신의 과거를 그가 알았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는 두려움.

여기에 악몽으로 인해 뒤숭숭한 기분까지 뒤섞이니, 히스티아가 마시는 술은 점점 늘어만 갔다.

그렇게 몇 잔이나 들이켰을까.

더 이상 하멜의 연주가 들리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그녀는, 조금은 위태로운 걸음걸이로 바를 빠져나갔다.

평소라면 이대로 집을 향했겠지.

하지만 술기운에 잠식된 그녀는, 평소라면 하지 않을 행동을 저질렀다.

하멜의 뒤를 따라가기로 한 것이다.

‘오늘 이 시간이면… 아이들을 모아놓고 공연을 하러 갔겠지.

본래 히스티아는 분수대와 안개 낀 술잔, 그리고 그녀의 집 이외의 장소에서는 하멜의 근처에 머물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몇 날 며칠이고 계속해서 그를 따라다니고 싶었지만, 조직의 일도 있을뿐더러 하멜이 부담스러워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오늘 정도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귀를 기울이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그리 생각하며 히스티아는 걸었고, 이내 예상과는 다른 광경을 보고 당혹을 느꼈다.

주택가 공터.

본래 하멜이 아이들을 상대로 공연을 하고 있어야 할 그곳에는, 주연인 악사 없이 오직 관객 역할의 아이들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그것도 굉장히 안절부절못하는 기색으로, 자기들끼리 아웅다웅하면서.

“빨리 도우러 가야 해!”

“바보! 우리끼리 가봐야 무슨 의미야!”

“겨, 경찰에 신고하면 되지 않을까?”

“돈도 없는데 무슨 수로? 어른들이나 저기 귀족 거리에 있는 애들이라면 몰라도, 우리 말은 들어주지도 않을걸?”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 악사 형이 우리 때문에 끌려간 건데!”

“잠깐, 끌려갔다니 그게 무슨 소리니?”

결코 듣고 넘길 수 없는 소리에, 히스티아는 아이들 앞으로 나서며 다그치듯 물었다.

“어, 어어.”

아이들은 히스티아의 살벌한 분위기와 한쪽 눈을 가린 안대를 보며, 얼어붙은 듯이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다.

히스티아는 순간 분노가 치밀었지만, 이내 심호흡을 거듭했다.

몸에 마력을 순환시켜 술기운을 단숨에 날려버리고 나니, 뜨거워졌던 머리에 이성이 돌아왔다.

“언니는 그 사람의 팬이란다. 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줄 수 있겠니?”

부드럽고도 나긋한 목소리에, 아이들은 그제야 긴장을 풀고는 서로 눈치를 살폈다.

그중 가장 연상으로 보이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앞으로 나서 말했다.

“악사 형이 평소처럼 우리들 앞에서 공연을 하려고 했는데, 우락부락한 사람들이 와서 형을 데려가려고 했어요. 악사 형의 공연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으니, 초대하고 싶다고.”

“악사 오빠는 거절하려고 했는데, 그 사람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저희를 가만두지 않는다고 했어요. 그래서, 오빠도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흑.”

재차 입으로 말하고 있으려니 이 상황이 한층 더 실감 나게 되었는지, 아이들의 눈가에 물기가 맺히기 시작했다.

히스티아 역시 초조함을 삼키며 재차 물었다.

“상대가 이름이나 세력 같은 걸 밝히지는 않았니?”

“아뇨, 그런 건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어요. 애초에 코트 같은 걸로 모습을 감추고 있어서, 생긴 것도 잘 알 수가 없었어요.”

히스티아의 눈이 차가워졌다.

‘단순한 우연이 아니야. 애초에 처음부터 정체를 숨길 생각이었어. 목적이 뭐지? 왜 하멜을?

요새 부쩍 떠오르기 시작한 하멜의 몸값을 이용하려는 이들일까? 안개 낀 술잔이 하멜의 존재로 인해 흥행하는 걸 본 경쟁 업체들?

하멜을 개인적으로 초청하려다가 거부당한 이들이 많다고 하는데, 그에 불만을 느낀 바보가 행동에 나선 것일까?

가능성은 얼마든지 떠올랐다.

아니, 너무 많이 떠올라서 문제였다.

히스티아는 틀림없는 강자이지만, 그녀가 지닌 강함과 정보 수집 능력은 별개의 문제다.

애초에 하멜이 어디에 있는지 짐작이라도 해야 쳐들어가든 말든 할 것 아닌가.

이럴 줄 알았으면 따로 호위라도 붙여놔야 했다고, 히스티아는 후회했다.

하멜이 구속받는 것을 싫어했기에, 그녀 자신도 하멜이 ‘조직’과 필요 이상으로 엮이는 걸 경계했기에 내버려둔 것이었는데, 이제 와서는 그게 너무나 후회되었다.

그녀는 직감했다.

이건 ‘히스티아’로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걸.

“…….”

이 수단을 정말 써도 되는지 어떤지, 히스티아는 크게 고민했다.

허나, 하멜의 신변에 위험이 생긴 이상 그녀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그녀는 아이들을 뒤로한 채, 가장 가까운 개인 은신처로 발길을 옮겼다.

은신처에 준비해 둔 예비용 가면과 망토를 뒤집어쓴 그녀는, 그대로 레오를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보스.”

“애들 풀어서 사람을 찾아. 이름은 하멜. 최근 안개 낀 술잔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길거리 악사. 그자가 어디에 있는지 당장 알아내. 빨리!”

“알겠습니다.”

레오는 보스의 갑작스러운 명령에도 의문을 표하거나 그녀를 말리는 대신, 충직하게 그 명령을 수행했다.

그리고, 곧 결과가 나왔다.

“몬태규 가문입니다. 그들이 보유한 여러 물류 창고 중 한 곳에, 조금 전 일정 간격을 두고 마차 두 대가 도착했다고 하는 군요.”

마녀 헤카테의 눈이, 살벌하게 타올랐다.

다시는 얼굴을 맞대는 일 없으면 좋겠다고, 그녀는 이미 마지막 경고를 했었다.

그런데도, 그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고 한다면.

“백작가로 가겠어.”

“추후 계획을 알려주신다면, 그에 맞춰 행동하겠습니다.”

레오의 질문에, 헤카테는 싸늘하게 대답했다.

“인질 교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