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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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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화 음악가 하멜(Hamel) (5) - 약속 체결과 약속 위반
그림자를 통해 하멜과 히스티아의 만남을 지켜보던 루시드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저기, 지금 저거 뭔 소리야?”
“몇 번이고 비슷한 말을 했던 것 같네만, 질문이라는 ‘저거’라든가 ‘이거’ 같은 애매한 표현을 쓰는 건 그리 좋은 화법이 아니라네.”
“아니, 그러니까, 저 아버지 어쩌고 하는 소리는 뭐냐고.”
황태자가 사용하는 분신 주문의 본래 주인은 루시드라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알기에, 분신이란 말 그대로 또 다른 몸을 만들어내는 행위에 불과하다.
원격으로 조정한다는 차이는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본인의 팔다리를 다루는 것과 크게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주문을 이것저것 개조하더니, 이젠 아예 별개 인격을 창조하는 경지에 도달하기라도 한 거야?”
“창조라니, 과장이 심하군.”
황태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A라는 배우가 B라는 역할에 아주 깊게 몰두했다고 하세. 본래 자신이 A라는 건 알고 있지만, 그게 막연한 기억 정도로밖에 느껴지지 않을 만큼 B라는 배역에 심취했다고 가정해 보잔 말일세. 자네의 이야기는 이걸 A가 B를 창조했노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네.”
“그러면 저 아버지가 어쩌고 형제가 어쩌고 하는 이야기는 뭔데?”
“하멜이라는 음악가가 나라고 하는 본체와 다른 분신들, 그리고 자신의 관계를 그렇게 정의한 것뿐이지. 메타적인 표현을 즐겨하는 건 그냥 성격 문제고.”
“흐음.”
그 후에도 황태자는 TRPG의 캐릭터가 어쩌고 플레이어가 어쩌고 하며 설명을 계속했지만, 루시드라가 듣기에 그리 와닿는 설명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배역이랑 배우의 구분이 희미해질 정도의 몰입과 연기를, 여기에 본체가 멀쩡히 생각하고 활동하는 상황에서 한다는 게 가능하긴 한가?
모험가 베른 때 연기 더럽게 못한다고 신나게 깠던 루시드라가 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새로운 분신이 나오면 나올수록 황태자의 정신 구조가 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실로 의문이 아닐 수 없었다.
‘하기야 뭐, 이 인간이니까.
사람이면 말이 안 된다.
하지만 황태자면 된다.
원래 특수 카테고리를 상대로 ‘정석’을 말하는 것만큼 허무한 일도 없다며, 루시드라는 납득했다.
***
간단한, 하지만 거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간단하지 않았던 자기소개가 끝난 후.
하멜과 히스티아 두 사람은 느긋하게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다.
지나친 고통으로 혼절한 채 쓰러져 있는 불량배들도 문제였지만, 이리저리 얻어맞은 하멜의 몸 상태도 썩 좋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히스티아는 약간의 망설임 후, 하멜을 데리고 자신의 거처로 향했다.
조직의 거점은 도시 여기저기에 존재하지만, 개중 ‘헤카테’가 아니라 ‘히스티아’로서 이용할 수 있는 곳은 얼마 없었기에 택한 차선이었다.
다행히 하멜이 입은 상처 중 심각한 것은 없었다.
피부가 조금 찢어지고, 여기저기에 다소 멍이 생긴 정도.
다만 물질적으로는 제법 큰 손해가 있었는데, 하멜이 지니고 있던 피리가 망가진 것이었다.
“허, 거참. 야무지게도 짓밟아놨군요. 어떻게 고치지도 못하겠습니다, 이건.”
불량배가 바닥에 내팽개치고 짓밟은 흔적이 역력한 피리를 보며, 히스티아의 얼굴과 눈매가 험해졌다.
그녀가 하멜의 연주 소리에 지닌 관심과 호의는 거의 집착에 가까웠다.
그런 소중한 피리를 하찮은 시정잡배 놈들이 망가트렸다고 하니, 차마 분노를 억제하기 어려웠다.
“흐음.”
확실히 숨통을 끊어 놨어야 했다고 그녀가 후회하고 있자니, 그런 히스티아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던 하멜이 갑작스레 몸을 일으켰다.
창문을 통해 주변 지형을 내려다보던 그는, 이내 원하던 걸 찾아낸 듯이 눈을 빛냈다.
“히스티아 양. 혹시 잠시만 기다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 그리고 혹시 피리 말고 다른 악기도 좋아하시는지요?”
“네?”
하멜의 의도를 알지 못하고, 히스티아는 솔직히 대답했다.
“잘 모르겠네요. 솔직히 아는 게 없어서.”
“그렇군요. 뭐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습니다. 제가 첫인상을 결정할 수 있다는 뜻 아닙니까? 오히려 의욕이 생기는군요.”
일방적으로 떠벌떠벌 떠든 후, 하멜은 그대로 휙 하니 방을 나가버렸다.
남겨진 히스티아는 멍하니 굳어 있다가, 이내 생각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
더는 가까워질 수 없다고, 그저 멀리서 그의 연주를 듣는 것만으로 만족한다고, 그렇게 포기한 참이었다.
헌데 정작 그렇게 모든 걸 내려놓고 나니,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그와 가까워져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이 또한 운명의 인도라고 한다면, 아무리 그래도 장난이 심한 게 아닐까.
아무도 없는 방에서, 이 모든 게 환상은 아니었을까 고민하고 있을 무렵.
체감상으로는 대략 10분 정도가 흐른 뒤, 하멜이 돌아왔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점주하고 가격 교섭을 하는 데 제법 시간이 걸린 터라. 본래는 이것저것 사서 골고루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이거 하나를 고르니 지갑이 파산을 외쳐버렸군요.”
그리 말하며 하멜이 들어 올린 것은 그의 상징 같았던 피리가 아닌, 검은 광택의 바이올린이었다.
이리저리 긁히고 색이 바래 빈말로도 멀끔하다고는 하기 어려운 그것을 마치 보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소중히 끌어안은 하멜은, 그녀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그대로 연주를 시작했다.
─────!
히스티아는 무심코 숨을 삼켰다.
그의 연주를 들은 적은 몇 번이나 있었지만, 이렇게 가까이에서, 그것도 피리가 아닌 다른 악기가 자아내는 선율을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것은 거친 물결이었고, 바람에 흩날리는 들풀이었으며, 맹렬한 화염이었다.
한 명의 연주자가, 오직 한 명의 관객에게 선사하는 일인극.
울려 퍼지던 음이 멈추고, 하멜이 무대 위의 배우처럼 관객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좋습니다. 훨씬 좋은 얼굴이로군요.”
순간 말의 의도를 알지 못했던 히스티아였으나, 이내 자신의 안에 있던 질척하고 어두운 살의가 지워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의 표정을 본 하멜이, 급하게 연주회를 준비한 이유 역시.
자신을 바라보며 유쾌하다는 듯이 웃는 그와 마주하고 있는 것이 어쩐지 멋쩍어, 히스티아는 화제를 돌리듯이 질문했다.
“피리 외에, 다른 악기도 다룰 수 있었던 건가요?”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캐스터네츠, 뭐든 적당히 다룰 줄 알지요. 정작 가진 악기는 별로 없습니다만! 이 악기라는 게 원체 비싼 물건 아니겠습니까!”
새 악기를 사기 위해 돈을 모으려다가 그대로 황금 고블린 꼴이 될 뻔했다며, 하멜은 껄껄 웃었다.
얼핏 자학적으로도 들릴 수 있는 말이 우울하지 않은 것은, 그가 지닌 성품 때문일까.
원한다면 사 줄 수도 있다,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른 히스티아였지만, 어떻게든 억눌렀다.
돈을 통해 자신을 휘두르려 하는 것을 그가 불쾌해한다는 걸 이미 경험해 본 덕이었다.
“그나저나 답례를 해야 할 텐데, 가진 거라고는 이 비루한 몸뚱이와 비루하진 않은 음악 실력뿐이로군요. 혹시 바라시는 게 있으십니까?”
“지금 들은 연주로도 충분해요.”
“저는 제 음악을 헐값에 팔아넘길 생각이 없지만, 그렇다고 바가지를 씌울 생각도 없습니다. 들어줄 수 있을지 어떨지는 내용 나름이지만, 적어도 제시 정도는 해보시지요.”
그 와중에 ‘뭐든지 가능하진 않다’라며 선을 긋는 모습은 제법 뻔뻔했으나, 어째서인지 그것이 불쾌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하멜 쪽에서 미리 선을 보여준 덕분에, 히스티아 역시 조금은 부담을 덜어낸 채 입을 열 수 있었다.
“…그러면, 저의 말 상대가 되어 줄 수 있나요?”
“호오, 연주를 해달라는 게 아니라 그쪽입니까?”
물론 그것도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하멜 본인이 말하지 않았던가. 자신의 연주는 그리 값싸지 않다고.
그렇다면 연주를 듣는 것보다 하멜의 이야기를 듣는 쪽이 같은 가치로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으리라고, 히스티아는 판단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일주일에 하루 정도 시간을 내보지요.”
“귀한 시간을 빼앗는 거니 보수 정도는 지불할 수 있어요. …물론, 불쾌하다면 취소할게요.”
“뭐 불쾌한 것까진 아닙니다만, 그 경우 관계가 다소 지저분해질 것 같긴 하군요. 말벗이라고는 해도 친구는 친구. 돈이 엮여 들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대신 이렇게 하자며, 하멜은 손뼉을 마주쳤다.
“간단한 먹거리 정도를 부탁하지요. 원래 적절한 먹거리는 이야기의 윤활유가 되는 법이니까요. 겸사겸사 가난하고 가련한 악사 놈의 뱃가죽도 구원할 수 있고 말이죠. 어떻습니까?”
조금 당황스러운 제안이긴 했지만,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좋습니다. 5일 뒤에 분수대 앞. 지금 이 시간에 다시 보도록 하지요.”
“네.”
“그러면, 다음에 또.”
산들바람처럼, 혹은 아지랑이처럼.
무척이나 홀가분한 태도로, 하멜은 집을 떠나갔다.
아직 몸이 다 낫지 않았을 테니 좀 더 쉬라고 말릴 새도 없이 말이다.
그가 떠나간 문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히스티아는, 털썩하고 의자에 주저앉았다.
솔직히 말해서 상당히 피곤했다.
육체적으로 크게 뭔가 한 것은 없으니, 정신적으로 잔뜩 긴장하고 있었던 여파겠지.
그래도 성과는 있었으니, 이대로 기분 좋게 잠이나 잘까.
그리 생각하던 히스티아는, 문득 뭔가를 까먹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미간을 찌푸렸다.
“…아.”
그리고 떠올렸다.
오늘 밤, 조직의 일이 있었다는 것을.
-보스? 안에 계십니까? 보스? 혹시 무슨 일이라도…!
바깥에서 들려오는 평소보다 격한 노크와 우려에 찬 목소리를 듣고, 히스티아는 평소에 잘 흘리지 않는 식은땀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