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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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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화 음악가 하멜(Hamel) (3) - 연주 한 곡의 가치
바에서 의외로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 있다.
그건 바로 매력적인 미녀가 술을 권했을 때 그걸 가차 없이 차버리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차버린다’에 약간의 거절이나 뜸 들이기는 포함되지 않는다. 그 정도는 밀당의 범주니까.
하지만 정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하다못해 추후 어디에서 만나자는 약속 하나 없이 그대로 등을 돌려 떠나버리는 건 이야기가 다르다.
너 따위에게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걸 대놓고 보여주는 행동이니까.
잔을 권유한 입장에서는 이토록 무안한 일이 또 없는 것이다.
정적이 찾아온 바에서 서로가 눈치만 보는 도중, ‘안개 낀 술잔’의 오너 라이튼은 속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야 이 새끼야! 이 미친 새끼야!! 그따위로 판을 깨버리면 어쩌라고!!
급격한 좆됨을 감지하고, 라이튼의 셔츠가 식은땀으로 축축해졌다.
상대는 무려 조직의 대간부와 선이 닿은 걸로 추정되는 여인이다.
그런 여인의 체면에 먹칠을 해버렸으니, 그 뒷감당을 어찌한단 말인가.
주제 모르는 길거리 악사 하나가 바다에 가라앉는 것쯤이야 그로서는 알 바가 아니지만, 자칫 그의 가게까지 거기에 휩쓸릴 수 있다는 게 문제였다.
“어, 어흠. 이것 참. 역시 무지한 악사 나부랭에게는 눈앞의 꽃을 알아볼 능력조차 없는 모양이로군요.”
모두가 서로 눈치만 살피는 도중, 한 청년이 앞으로 나서며 분위기를 환기했다.
옷감부터 고급 티가 팍팍 나는 의복에 금색 손목시계.
질 좋은 향유로 머리를 정돈하고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웃는 모습은, ‘나 잘 나가는 놈이요’라고 전력으로 어필이라도 하는 듯했다.
“진정 아름다운 꽃은 거친 들판이 아닌, 고귀한 화단에서 피어나는 법입니다. 부디 저에게 꽃을 모실 기회를 주시지 않겠습니까?”
여인을 향해 우아하게 손을 내미는 청년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어떤 여자든 일단 자신과 마주하고 나면 마음이 혹하지 않을 리 없다는 자부심이었다.
하지만, 그가 기대하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 그냥 대답 자체가 돌아오지 않았다.
피리 부는 사내가 떠난 뒤로 줄곧, 여인의 시선은 오직 그가 있던 자리만을 빤히 응시하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허, 허흠.”
대놓고 권유가 무시당한 모양새가 되자, 청년의 얼굴이 자못 볼만하게 일그러졌다.
애써 헛기침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해보려 한들, 붉어진 얼굴과 미세하게 떨리는 눈썹까지는 어쩔 수 없는 노릇.
“죄송합니다. 제가 마음이 급해서 자기소개조차 하지 않았군요. 저는 렌스턴 몬태규라고 합니다.”
몬태규라는 성씨에, 바에 있던 술꾼들 사이로 가벼운 놀라움이 퍼져나갔다.
혁명의 깃발을 들고 일어난 백성들이 왕도 귀족도 모조리 처형해 버렸다는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공화국에는 제법 많은 귀족들이 살아남아 있었다.
끝까지 왕정 수호를 외치며 백성들과 척을 졌던 이들은 시민들의 거대한 분노에 쓸려나가 버렸지만, 혁명 직후의 혼란기 동안 눈에 띄지 않고 숨어 있었거나, 시류에 재빨리 영합한 이들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몬태규 가문은 이 중 후자에 속하는 귀족이었다.
그들은 혁명 정부의 토지 개혁이 본격화되기 전 보유하고 있던 땅을 팔아 숙청을 회피했고, 그렇게 얻어낸 자금으로 사업에 뛰어들어 지금은 북부 내에서도 제법 알아주는 방직 공장의 주인이 된 상태였다.
렌스턴이 뒤로 밀려나면 본인들이 나설 생각이었던 다른 청년들이 내심 혀를 찼다.
고귀한 혈통에 막대한 부까지 지닌 그가 손을 내밀었으니, 아무리 도도한 여인이라고 한들 이를 무시하지는 못하리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여인의 호박빛 외눈이 처음으로 렌스턴을 향했다.
지극히 신비롭고, 우수에 젖은 듯한 눈동자를 마주하고, 렌스턴은 무심코 침을 꿀꺽 삼켰다.
화려한 여성 편력을 자랑하며 온갖 여자들을 만나온 그였지만, 여인이 품고 있는 매력은 그가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색다른 것이었다.
“죄송해요, 오늘은 컨디션이 좋지 않네요.”
나긋하면서도 처연함을 품은 목소리였다.
그녀의 목소리가 너무나 매혹적이었기에, 렌스턴은 그 내용이 거절임에도 불구하고 곧장 당혹이나 분노의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여인이 그대로 발걸음을 돌려 악사가 떠나간 길을 그대로 떠나간 뒤에야, 렌스턴은 뒤늦은 감정을 느꼈다.
“…저딴 악사가 대체 뭐라고.”
기껏 해봐야 길거리 악사 따위에게 질투를 느끼기에는, 그의 신분이나 지위는 너무나 고귀했다.
고로 그가 중얼거린 말 역시 질투보다는 안타까움의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적어도, 아직은 그러했다.
***
그날 밤.
“레오, 네가 보기에는 내가 별로 매력이 없어 보이니?”
느닷없이 보스가 건넨 질문에, 조직의 세 대간부 중 한 명이자 무력을 담당하는 행동대장 레오는 아주 난감한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연애에 꽤 자유분방한 공화국의 분위기를 생각했을 때 여성이 남성에게 저런 질문을 하는 건 일종의 유혹으로 봐야겠지만, 이 경우에 그 가능성은 없다고 해도 좋았다.
일단 레오는 유부남이었으며, 보스와 그의 나이 차는 거의 부모 자식뻘이었고, 뭣보다 지금 그와 보스는 ‘일’을 끝낸 직후였다.
한마디로 바닥이며 보스의 옷이며 곳곳에 희생자들의 피가 범벅이 되어 있었다는 뜻이다.
제아무리 자의식 과잉으로 가득 찬 인간이라고 한들 이 상황에서 연애적인 의미로 가슴이 뛰진 않으리라.
혹시 숙청이 다가왔나 싶어 공포로 가슴이 뛸 수는 있겠지만.
잠시 고민하던 레오는, 이내 군인 시절 상급자에게 난감한 질문을 들었을 때와 비슷한 대응을 취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보스 정도의 미인은 보기 드물 겁니다.”
다만 자기가 고향에서 얼마나 인기가 많았는지 날이면 날마다 떠들고 다니던 근육 오징어 선임에게 맞장구를 쳤을 때랑 달리, 지금 레오가 느끼는 양심의 가책은 거의 없었다.
그야 그때와 달리 이번에는 딱히 근거 없는 아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인의 외모는 무척이나 빼어난 편에 속했다.
얼굴을 가린 안대와 특유의 퇴폐적이고 위험한 분위기가 없었다면, 주변 남자들이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을 정도.
“…그래? 그렇구나.”
여인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 골몰히 생각에 잠겼다.
옆에서 슬그머니 눈치를 보던 레오는, 이내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안개 낀 술잔’ 쪽에서 블레이크 놈에게 하소연 같은 걸 한 모양입니다. 그날 있었던 일은 악사의 독단 행동일 뿐이고, 자기네 쪽에서는 그 어떤 지시도 개입도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혹시 무언가 있었습니까?”
“아니, 딱히 아무 문제도 없었어. 그쪽에도 괜히 겁먹어서 이상한 짓 하지 말고, 그냥 지금 하던 대로 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다짐을 받아두는 것 같은 여인의 대답에, 레오의 추측은 확신으로 변했다.
‘그 길거리 악사 놈이 엮인 일은 맞나 보군.
혹여 일이 잘못될까 봐 지레 겁을 먹은 ‘안개 낀 술잔’의 오너는 그의 뒤를 봐주는 조직원에게 당시 사건을 미주알고주알 털어놓았고, 그 내용은 곧장 레오에게도 올라왔다.
보고를 들었을 때 레오가 느낀 감정은 일종의 감탄에 가까웠다.
‘당연히 보스의 정체를 몰랐으니까 저지른 일이겠지만, 세상에 그 헤카테를 바람맞힌 인간이 있다고 하면 주변에선 대체 어떻게 반응할까.
물론 레오의 개인적 호기심과 별개로, 이는 절대로 밖에 새어 나가선 안 되는 정보이기도 했다.
자칫 마녀 헤카테의, 그리고 조직 그 자체의 위신에 상처가 될 수도 있는 일이니까.
만약 보스의 심기가 불편한 것 같으면 슬쩍 양해를 구한 후 그대로 묻어버릴 생각이었지만, 지금 보스는 그렇게까지 기분이 나빠 보이지 않았다.
손에 들고 있던 열쇠가 눈앞의 자물쇠와는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새로운 열쇠를 준비하는 모습처럼 보인다고 해야 할까.
부디 그녀가 지니고 있는 열쇠로 자물쇠를 열 수 있기를, 레오는 충심으로 기원했다.
***
여인이 자신의 외모에 대해 주변에 질문한 건, 당연히 부하들을 곤란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그녀는 그저 객관적인 평가를 요구하고 싶었을 뿐이다.
‘레오 한 사람의 반응이라면 아부라고 넘길 수도 있겠지만, 바의 다른 남자들도 달려드는 걸로 봐선 내가 그냥 착각에 빠져 산 건 아닌 것 같은데.
본래 외모가 빼어난 사람은, 다른 누구보다도 본인이 그 사실을 잘 안다.
평생 안 꾸미고 살던 사람이 꾸미면서 인상이 달라진 경우면 모를까, 본래 모습 그대로 하고 다니면서 미남 미녀 소리 듣는 사람이 자기가 잘생기고 예쁜 줄 몰랐다고 한다면 그거야말로 기만인 셈.
그렇기에 여인은 나름 자신 있게 피리 부는 사나이에게 잔을 권했고, 그대로 가차 없이 까였다.
어찌 보면 큰 망신이라고 할 상황이지만, 여인은 그에게 큰 악감정을 품거나 하진 않았다.
오히려 남들과는 다른 반응을 보이는 그에게 더욱 흥미가 커졌다는 게 정확하겠지.
고로, 여인은 이번에는 아예 피리 부는 사나이가 무대에 오르기 전에 선수를 쳤다.
무대 뒤쪽.
손님들이 아니라 직원만이 오갈 수 있는 통로에서, 여인은 그에게 말을 걸었다.
“두 번째네요. 혹시 저를 잊어버린 건 아니죠?”
“…실례지만 누구십니까?”
“…….”
“농담입니다. 그리 충격받은 얼굴을 하시니 제가 다 마음이 아프군요.”
어안이 벙벙한 여인을 향해, 사내는 커다랗고 맑은 두 눈을 향했다.
마치 꿈을 꾸는 아이 같은 눈이라고, 여인은 무의식중에 생각했다.
“농담이 짓궂으시네요. 정말 놀랐어요.”
“하하하, 작은 보복이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놀란 건 저도 마찬가지거든요.”
“당신이 놀랐다니, 어째서죠?”
“그야 보람찬 저녁 무대를 준비하고 있는데 갑자기 눈앞에 예상도 못 했던 미녀가 나타난 셈이니까요. 사람이라면 놀랄만한 상황 아니겠습니까?”
나름 화기애애하게 흘러가는 분위기.
다행히 이번에는 수월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겠다고 여긴 여인은 청년에게 말했다.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아요. 저번에는 선약이 있어서 안 된다고 했지만, 이번에는 괜찮겠죠?”
“저는 이제 곧 무대에 올라가야 하는 몸입니다만?”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아요. 연주 한 번 정도 빼먹어도 오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테니까요. 물론 보상도 그대로 나올 테고요. 아니, 그것과는 별개로 내가 보상을 줄게요.”
본인의 말이 허풍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이, 여인은 품속 지갑에서 금화를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혁명 정부의 개혁 아래 종이를 위주로 한 신 화폐가 발행되며 기존의 화폐 지위를 잃어버린 금화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치가 떨어지는 건 아니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잘 받아주지도 않는 종이 화폐보다 구 왕국 시절의 화폐를 선호하는 이들은 여전히 산재해 있고, 꼭 그게 아니라 해도 금은 금이라는 것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아마 여인이 내민 금화 뭉치 중 단 하나만으로도 가난한 길거리 악사에게는 황송한 가격일 터.
자신의 외모가 그를 혹하게 할 수 없다면, 돈으로 그의 관심을 끌어보리라.
그것이 여인이 내린 결론이었다.
정확히는 그동안 살아오며 배운 세상의 법칙이었다.
“뭔가 굉장한 걸 바라는 게 아니에요. 그냥 이야기를 나눠요.”
뭇 사내의 심금을 울릴 만한 여인의 간절한 요청에, 악사가 대답했다.
“거절하겠습니다. 저의 연주를 팔기에, 그건 너무 싸구려로군요.”
방금까지의 친절하고 친근하던 태도와는 사뭇 다른, 선을 긋는 것 같은 냉정함.
당황한 여인을 뒤로한 채, 악사는 태연히 무대로 나아갔다.
유쾌한 피리 소리가 울려 퍼지고, 손님들의 감탄과 환호성이 뒤따른다.
모두가 즐거워하는 상황 중, 어두운 그늘에 홀로 남겨진 여인은 조용히 몸을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