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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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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화 음악가 하멜(Hamel) (2) - 권유

본디, 여인에게는 취미라고 할만한 것이 딱히 없었다.

샤워를 좋아하긴 했지만 그건 일종의 의식에 가까웠고, 그 외의 취미들은 맛을 들여보려고 했었으나 빈번하게 실패했다.

그런 여인에게, 처음으로 취미라고 할만한 무언가가 생겼다.

~♪ ♫ ♪ ♫~

매일 아침. 창가에 앉은 채 청년의 연주에 귀를 기울인다.

청년이 연주하는 곡의 종류는 매번 달라졌다.

어떤 때는 웅장했고, 어떤 때는 경쾌했으며, 어떤 때는 아련했다.

그리고 그 모두가 부족하거나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없었다.

음악에는 그렇게 조예가 깊지 않은 여인조차 그 범상치 않음을 단숨에 눈치챌 수 있을 정도였다.

이는 여인만이 느낀 감상이 아니었는지, 도시의 행인들 중에는 짧은 시간이나마 발을 멈춰 청년의 연주를 듣고 가려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미스트헤븐의 거주민 대다수가 항상 무언가에 쫓기듯이 산다는 걸 생각하면, 무척이나 기이하고도 이례적인 일이었다.

청년의 연주를 듣고 깊게 감명한 듯한 사람들의 얼굴을 보며, 여인은 문득 청년의 연주를 좀 더 가까이에서 듣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반쯤 무의식적으로 가면을 집어 들려고 했던 여인은, 이내 고개를 저으며 본 모습 그대로 건물을 빠져나와 분수대 쪽으로 다가갔다.

여인은 분수대 주변에서 청년을 둘러싼 인파에 뒤섞이는 대신, 조금 뒤로 물러나 골목길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 ♫ ♪ ♫~

가까이에서 듣는 연주는 한층 더 선명했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생동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눈을 감은 채 조용히 감상에 전념하기를 얼마쯤.

오늘 분량의 연주가 끝났는지, 청년이 모자를 벗으며 관객들을 향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부디 즐거운 시간이 되셨기를 빕니다.”

짝짝짝!

사람들은 그런 청년에게 기꺼이 박수를 건넸고, 개중에는 동전 따위를 관람료로 지불하는 이들도 있었다.

본인도 돈을 내야겠다는 생각에 품을 뒤지던 여인은, 이내 지갑을 들고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바구니 쪽으로 향하던 걸음을 멈추었다.

난감함을 느끼던 여인의 눈이, 바구니의 내용물을 목격하고 휘둥그레진 것은 그때였다.

바구니가 비어 있었다.

동전 몇 푼이 들어있기는 했으나, 저걸로는 하루 생활비조차 빠듯하다는 사실을 여인은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청년의 공연에 박수를 치거나 환호를 보내는 이들은 많았으나, 개중 실질적인 보상을 건넨 이는 거의 없다는 증거였다.

여인은 청년의 실력에 비해 지나친 푸대접이라 생각했지만, 정작 청년은 구김살 하나 없는 얼굴로 바구니를 회수했다.

관객들에게 감사를 표한 뒤 떠나가는 청년의 뒷모습을, 여인은 복잡한 눈으로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여인은 걱정에 잠겼다.

‘…벌이가 시원치 않다면, 공연에도 지장이 생길 텐데.

궁핍한 생활 여건 속에서 무리를 반복하다가 몸을 망치는 이들 따위, 이 미스트헤븐에는 발에 챌 정도로 흔했다.

듣고 있는 것만으로 마음이 씻겨나가는 것 같은 청년의 연주를 위해서라면, 공연 때마다 지폐 수십 장을 지불한다고 해도 아깝지 않은 여인이었다.

실제로 그럴 능력도 충분했고.

문제는 돈을 건네주는 방식이었다.

‘분수대에서 내가 직접 주는 건 안 되겠지.

일단 보는 눈이 너무 많은 게 문제였다.

한 번 정도야 부자의 변덕 정도로 넘어간다 치더라도, 매 공연이 끝날 때마다 거금을 턱하니 내놓는다면 분명 소문이 퍼져나갈 터.

어지간한 불한당 정도야 위협으로조차 느끼지 않는 여인이지만, 그런 식으로 주목을 모으는 것 자체가 그리 내키는 일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가면을 쓰고 접근하는 것도 웃기는 짓이고.

부하들을 이용해 간접적으로 건네줄까, 하고 고민하던 여인은 문득 조직이 관리하는 가게 중 제법 그럴듯한 바(Bar)가 몇 개 있었다는 걸 떠올렸다.

여인은 곧장 집으로 돌아간 뒤, 서랍에서 동그란 금속 덩어리 같은 것을 꺼내 들었다.

언뜻 회중시계와 비슷해 보이는 그것은, 실제로는 통신 기능이 첨부된 마도구였다.

물론 통신이라고 한들 자유롭게 원거리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게 아니라 서로 간에 간단한 신호음을 보내는 게 전부였지만, 이조차도 도시의 서민은 물론이고 중산층조차 쉽게 구할 수 없을 만큼 희소하고 비싼 물건이었다.

삐이-

언뜻 피리 소리와 닮은, 하지만 훨씬 더 온기가 없는 소리가 오가기를 몇 번쯤.

겨우 5분이나 지났을 무렵, 여인이 머무는 집 정문을 누군가가 조심스레 노크했다.

기다리고 있었던 여인이 문을 열자,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딱딱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부르셨습니까, 보스.”

“그래, 레오. 맡길 일이 있어.”

퇴역 군인 출신이라는 과거사답게, 레오라 불린 남자의 몸에서는 피와 철의 냄새가 물씬 풍겼다.

여인의 명령만 있으면 당장 뒷골목에서 혈겁을 일으키라고 해도 기꺼이 따를 것만 같은 분위기.

하지만 막상 여인의 입에서 나온 용건을 들은 그는, 희미하게 곤혹스러운 기색을 드러냈다.

“악사를 고용하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대우는 최상급으로. 아, 절대로 무리하게 강압하지는 마. 정중하게 모셔.”

“…….”

레오는 잠시 침묵했다.

보스의 명령에 반발해서가 아닌, 그 명령을 본인이 제대로 이해한 게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정중하게, 라는 건. 그… 정중하게 입니까?”

사정을 모르는 이들은 저게 무슨 얼빠진 질문이냐며 웃을지도 몰랐지만, 그동안 조직의 손에 ‘정중하게’ 모셔진 이들이 하나같이 어떤 꼴이 되었는지를 고려한다면 타당한 질문이었다.

여인 역시 그걸 깨달았는지, 재차 단언했다.

“평소에 쓰던 뜻이 아니라, 바깥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뜻 쪽이야. 괜히 중간에 이상하게 해석하고 폭주하는 녀석이 없도록 잘 처리해.”

여인은 조직의 보스였고, 레오는 그런 여인의 본모습을 알고 있는 소수의 최측근이었다.

일개 바(Bar)의 책임자라고 해봐야 조직 내에서의 위치는 중견 이하.

본래라면 여인은커녕 레오와 얼굴을 맞댈 일도 없는 아랫사람인 만큼, 명령이 전달되는 과정에서 내용이 이상하게 곡해될 가능성도 없진 않았다.

그런 불상사가 벌어지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여인은 세심하게 강조한 것이다.

마치 귀물이라도 다루는 것 같은 그 태도에, 레오는 여인이 이번 일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것인지 깨달았다.

“알겠습니다. 곧바로 처리하겠습니다.”

레오는 마치 중대한 사명이라도 받은 것 같은 모습으로 떠나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성과가 나타났다.

“바의 전속 악사로 고용하는 건 실패했지만, 대신 일주일에 세 번, 저녁 시간에 바에서 연주하는 조건으로 계약했습니다. 다만… 보수 쪽에서는 다소 의견이 엇갈렸습니다.”

“최고 수준으로 부르라고 했잖아. 그걸로도 부족하다는 거야?”

“반대입니다. 이렇게 많은 돈은 받을 수 없다며, 같은 고용 악사들과 똑같은 액수를 요구하더군요. 억지로 돈을 쥐여주려고 하면 계약조차 거절할 것 같은 분위기였던 터라, 어쩔 수 없이 요구하는 대로 해줬습니다.”

“…그래?”

“지금이라도 재계약을 시도해 볼까요?”

“됐어. 본인이 싫다는데 강제할 수는 없지.”

지나치게 많은 액수에 경계심을 느낀 것일 수도 있었고, 아니면 예술가 특유의 자존심이나 고집일 가능성도 있었다.

자신의 ‘선물’이 거부당한 것에 조금 아쉬움을 느끼면서도, 청년의 연주를 좀 더 그럴듯한 곳에서 들을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에 여인은 그 아쉬움을 달랬다.

“첫 연주는 언제야?”

“내일 저녁입니다.”

“그래. …기대되네.”


미스트헤븐의 바(Bar) 사이에서는 일종의 불문율이 하나 존재한다.

그건 어느 정도의 ‘격’을 갖춘 가게가 아닌 이상, 가게 이름에 안개라는 단어를 쓸 수 없다는 불문율이다.

여기서 말하는 격의 기준은 여러 가지다.

가게의 매출, 구비하고 있는 주류의 품질과 가짓수, 화려하고 다채로운 시설, 뒷배가 누구냐까지.

이 보이지 않는 천장을 통과하기는 매우 까다롭고, 그만큼 해당 가게의 주인들은 그 콧대와 자부심이 드높다.

‘안개 낀 술잔’의 오너 겸 바텐더, 라이튼 포저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널리고 널린 다른 술집 주인들과 달리 자신을 사회 상류층이라 여겼고, 그가 벌어들이는 부와 유형무형의 인맥은 그런 자신감에 근거를 부여 해줬다.

검문을 핑계로 중소 상인들을 괴롭히고 보상을 뜯어내는 경찰들은 라이튼 앞에서는 순한 양처럼 굴었고, 어디 공장주니 지주니 하는 인간들도 라이튼의 입에서 혹여 쓸만한 정보 하나라도 나올까 기대하며 웃는 얼굴과 좋은 말을 향했다.

혁명 이후 공화국 내 귀족들이 나날이 그 힘을 잃어가고 있는 시대, 라이튼은 자신을 사실상의 영주 정도로 인식했다.

안개 낀 술잔은 그의 영토였고, 직원들은 그의 가신이었다.

고로, 길거리의 근본 없는 악사 한 놈을 대뜸 고용하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는 강렬한 거부감을 표했다.

“말도 안 됩니다. 실력 테스트 한번 없이 경력 없는 신입을 전속 악사로 채용하라니요? 심지어 그 정도 보상은 지금 저희 가게의 최고 악사조차 받지 못합니다. 기존 직원들이 어마어마하게 반발할 테고, 자칫 가게의 품격 저하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라이튼은 구태여 ‘그만큼 매출도 떨어질 거고, 당연히 조직에서 거두는 수익도 감소한다’라는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이 정도 말했으면 충분히 알아들으리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허나, 상대는 요지부동이었다.

“알고 있네. 전부 알고 있으니까 그냥 강행해.”

“블레이크 형님, 대체 왜 이러시는 건지 이유라도 알려주십시오. 제가 뭔가 형님께 잘못한 거라도 있습니까?”

일말의 억울함마저 느껴지는 목소리로, 라이튼은 간곡히 호소했다.

블레이크. 조직 내에서 술집 관리를 도맡은 간부로, 설령 시장의 허가가 있어도 그의 허가가 없으면 미스트헤븐 내에서 술장사 따윈 불가능하다고 평가받는 거물이었다.

라이튼과는 술자리에서나마 호형호제하며 제법 우호적인 관계를 쌓아온 인물이기도 했다.

그의 말에, 블레이크는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자네한테 서운할 일이 뭐가 있겠나. 이건 그런 게 아니야.”

“그러면 대체 뭡니까?”

“뭐긴 뭐겠나. 나도 명령받은 거지.”

“예?”

라이튼은 순간 멍청한 얼굴로 입을 벌렸다.

그리고 이내 그 안색이 급격히 나빠졌다.

블레이크는 조직의 간부다.

그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건 세 명의 대간부. 혹은 그보다 더 ‘위’밖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여기까지 말해준 것도 자네가 괜히 불만 품고 사고치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네. 더는 궁금해하지도, 어디 가서 떠들려고도 하지 마. 여차할 땐 나도 못 감싸줘.”

낮게 깔린 블레이크의 경고에, 라이튼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것뿐이었다.

그로부터는 다소 살이 떨리는 시간이었다.

혹시 아래 놈들이 사고라도 칠까 봐 라이튼 본인이 직접 발로 뛰어가며 예의 길거리 악사를 직접 찾아 헤매야 했고, 거의 모셔 오다시피 하며 정중하게 계약서를 내밀어야 했다.

돈을 퍼주겠다고 하는데도 마다하는 상대의 행동에 잠시 눈앞이 아찔해지기도 했지만, 다행히 걱정했던 불호령은 없었다.

그저 손님 한 명이 찾아갈 테니, 주변에 티 내지 않고 잘 모시라는 명령이 추가되었을 뿐.

이미 충분히 깨끗한 술잔을 재차 닦는 시늉을 하며, 라이튼은 예의 손님을 힐끗 곁눈질했다.

‘대체 누구지?

보라색 장발의 어딘가 나른하고 성숙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미녀.

한쪽 눈을 가리고 있는 안대가 제법 기이하기는 했으나, 그것조차도 보기 흉하다기보다는 오히려 퇴폐적인 매력을 더해주고 있었다.

‘대간부의 애인? 아니면 가족인가?

궁금함을 느낀 건 라이튼뿐만 아니라 다른 손님들도 마찬가지인지, 그들은 여인에게 끊임없는 시선을 향하며 어떻게든 말을 걸어볼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허나 정작 여인은 그런 이들에게는 일말의 관심조차 주지 않고, 오직 무대 위에서 연주를 준비하는 악사만을 열렬하게 응시했다.

손님들 역시 그걸 눈치채고는, 안타까움과 고까움이 뒤섞인 표정으로 무대에 눈을 돌렸다.

네깟 놈이 연주를 잘하면 뭐 얼마나 잘하겠냐는 듯한 관객들의 반응을 앞두고, 청년이 입을 피리에 가져다 댔다.

~♪ ♫ ♪ ♫~

고작 피리 하나로 내는 거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다채롭고 화려한 음률.

나름대로 음악에 대해서 좀 안다고 자부하는 이들이, 희미한 놀라움과 함께 나지막한 감탄사를 토해냈다.

주변에는 관심 없이 저들끼리 술잔을 기울이거나 떠들던 이들도 하나둘씩 말을 멈춘 채 음악에 귀를 기울였고, 이윽고 바 전체가 오로지 피리 소리만으로 가득 찼다.

대략 30분에 조금 못 미치는 공연이 끝난 후, 무대 위의 청년이 모자를 벗으며 인사를 건네자, 바 곳곳에서 휘파람과 환성, 박수가 뒤섞였다.

몇몇 손님들이 무대에서 내려온 청년에게 다가가 무어라 말을 걸려고 했지만, 이들은 이내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보랏빛 머리를 부드럽게 흩날리며, 가장 먼저 청년에게 다가간 여인이 입을 열었기 때문이다.

“멋진 연주였어요. 조금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한 잔 괜찮나요?”

늘씬하고 매력적인 여인의 권유에, 주변에 있던 남자들이 한순간 질시의 시선을 향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청년이 대답했다.

“권유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이들과 선약이 있어서 안타깝게도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군요. 그러면, 이만.”

부드러우면서도 설득의 여지조차 주지 않는 깔끔한 거절과 함께, 청년은 그대로 홀가분하게 가게를 뒤로했다.

모두가 아연실색하는 도중, 홀로 남은 여인은 눈을 끔뻑거렸다.

“…어?”

탄식인지, 깨달음인지 모를 여인의 외마디가 흘러나오기까지는, 그럭저럭 시간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