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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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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린은 정해인의 ‘질문 세 개’ 조건을 받아들였다.
 
어차피 거절당했었는데, 이 정도라도 하는 게 어디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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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이 파티는 아무나 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학생이 올 만한 자리는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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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파티는 어떻게… 오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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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문득 떠오른 궁금증을 꺼냈다. 그러자 정해인은 짧게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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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질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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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아뇨 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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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린은 급하게 손을 저었다.
 
보통 유세린은 특유의 여유로운 템포로 대화를 이끄는 걸 선호한다.
 
그게 그녀의 방식이었고, 대부분은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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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정해인과 말할 때면, 묘하게 자꾸 리듬이 흐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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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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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하게 말리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냥, 슈르륵하며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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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많이 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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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린이 그렇게 중얼거리듯 말하자, 정해인은 고개를 갸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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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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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 학생은, 좀 더 날카로운 인상이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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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정해인은 짧게 웃었다.
 
그리고는 손에 쥔 캔을 흔들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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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때문인가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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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가 사람 인상까지 바꿔주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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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요. 맥주는 못 바꿔도, 취기는 바꿔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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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말을 하고는 웃으며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유세린은 그 말을 듣고도 웃지 않았다. 대신, 눈을 가늘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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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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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첫 번째 질문. 정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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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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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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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린은 잠시 숨을 골랐다.
 
그리고는 아주 조심스럽게, 그러나 한 단어 한 단어 또렷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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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로터스를 거절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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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리거나 시험하려는 기색은 없었다.
 
그녀는 지금, 진심으로 묻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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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린은 스카우트 부서로 오기 전, 로터스가 정해인에게 어떤 방식으로 접근했는지 기록을 통해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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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점에 그녀는 없었다.
 
하지만 그 흔적은 아주 역겹게 남아 있었다.
 
한없이 전형적이고, 아주 비열한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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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그걸 바꾸려 했다.
 
적어도 그런 방식은 없애겠다고 마음먹었고, 실제로 그렇게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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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오늘부로 다시 밀려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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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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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있었던 로터스의 접촉 방식이 별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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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인은 그렇게 입을 열었다.
 
유세린은 잠시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역시 그 부분이 문제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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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왠지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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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인이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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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렇게 말하면, 납득은 잘 안되실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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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짧게 숨을 고르더니, 고개를 들었다.
 
그 시선이, 망설임 없이 유세린을 똑바로 꿰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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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통에서 꽃이 필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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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인은 장난스레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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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린은 무의식적으로 눈썹을 찌푸렸다.
 
본능적으로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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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꽃’이라는 단어가 정해인을 지칭하는 듯한 느낌은 아니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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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인은 맥주 캔을 한 번 기울였다.
 
입에 대지도 않고, 그냥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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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죽지 않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꽃도 아니고, 뿌리가 단단하지도 않아요. 그러니까… 쓰레기통은 안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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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통이라는 직설적인 단어를 사용했으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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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은 뻔뻔하지도, 또 공격적이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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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담담한 확신처럼 들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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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자연스레 그렇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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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시원했다.
 
​
 
사실, 유세린 본인도 알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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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작게 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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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스가 쓰레기통이라고 칠게요. 그럼 쓰레기는 누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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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인은 캔의 윗부분을 손끝으로 툭툭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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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짧게 웃었다.
 
입꼬리만 움직일 뿐, 눈은 웃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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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아시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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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린은 짧게 숨을 들이켰다.
 
입을 열까 하다가,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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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거 질문 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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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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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투는 평온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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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린은 정해인을 바라보다,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두 번째 질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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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쓰레기를 비우면, 쓰레기통도 깨끗해질까요?”
 
​
 
어느 순간 유세린의 질문은 정해인과 관련된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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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평소에 스스로에게 묻고 있던 문제.
 
누군가가, 꼭 해줬으면 했던 대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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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인은 반쯤 비운 캔을 손에 들고, 그 질문을 한참 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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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통도 처음엔 자기가 쓰레기통이 될 줄은 몰랐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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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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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예쁜 꽃과 나무를 담는 화분이었겠죠. 그런데, 어쩌다 보니 비닐이 들어오고, 쓰레기가 들어오고…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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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인은 웃음을 머금은 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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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이 변한 게 아닐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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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캔을 내려놓고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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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워도 그건 잠깐이고, 다시, 쓰레기로 채워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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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린은 알고 있었다.
 
그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걸.
 
자신도 이미 수없이 되뇌어온 결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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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그런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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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물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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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렇게 확신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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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가 약간 떨렸다.
 
감정이 실리려는 걸 억지로 누르며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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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정해인은 살짝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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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합니다. 그런 의도는 아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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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얼굴에는 잠깐, 진심 섞인 미안함이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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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로터스를 쓰레기통으로 설계한 사람은, 어찌 보면 정해인이었다.
 
그는 그에 대한 부채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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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린의 눈가에 물기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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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싶어서 우는 게 아니었다. 울지 않으려 했는데, 안 되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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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방금의 대화 때문은 절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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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부터, 오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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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괴롭힌 감정들이 하나하나 쌓여 둑을 무너트리고, 그녀마저 무너트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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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인은 그걸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용히, 고개를 돌려 야경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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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를 몇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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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질문은 아직 남아 있었다.
 
하지만 유세린은 입을 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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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재촉하지 않고, 유세린이 진정할 때까지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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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들고 있던 맥주캔은 이미 바닥났다.
 
빈 캔을 손끝으로 가볍게 굴리던 정해인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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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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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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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파티의 와인보다는 이런 맥주가 더 좋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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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듣는 순간, 유세린은 고개를 들었다.
 
말이, 이상하게 가슴에 툭 박혔다.
 
​
 
그녀 또한 그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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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같은 건, 보여 주기였다.
 
실제로 입에 잘 맞는 건, 그냥 익숙한 맥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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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린은 턱을 괴고 앉아 있는 정해인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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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을 괴고 앉은 채, 밤하늘을 바라보는 남자.
 
객관적으로 미남이며, 부드러움과 날카로움이 공존하는 독특한 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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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눈동자의 방향, 몸의 방향, 그리고 톡톡 두들기는 발바닥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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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그녀 쪽으로 의식이 쏠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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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신경 쓰고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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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보면 유세린의 폐부를 찌르는 말들을 하면서.
 
동시에 그녀의 마음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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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너무 무너져 있어서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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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감각이 다시 작동하는 순간이었다.
 
​
 
“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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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가에서 짧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
 
정해인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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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요?”
 
​
 
“그냥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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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린은 턱을 괜히 한 번 쓸며 말했다.
 
​
 
“해인 학생. 여학생들한테 인기 많죠?”
 
​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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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인은 대답하면서, 살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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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마지막 질문의 차례였다.
 
유세린은 깊숙이 품고 있던 질문을 마음속으로 꺼냈다.
 
​
 
‘저는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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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어보고 싶었다.
 
정해인이라면, 어떻게든 답해줄 것 같았으니까.
 
못이기는 척, 완벽한 답을 해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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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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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밀어 오르는 질문을 꾹 눌렀다.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조용히 내려갔다.
 
​
 
그녀는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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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인 학생. 아니, 해인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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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이라는 칭호도 여기까지다.
 
그녀는 이제 스카우터도 아니고, 그냥 일개 부길드장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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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둘 다 성인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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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대 사람으로.
 
안될 건 또 뭐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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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린 부대표랑은 무슨 관계에요?”
 
​
 
- 데굴데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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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인의 손끝에서 놓인 빈 맥주캔이 바닥을 굴렀다.
 
캔은 천천히 돌며 유세린 쪽으로 굴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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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가 예상한 질문은 이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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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떻게 하면 좋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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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물어보면, 거기에 대해 가벼운 조언을 해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런 질문을 할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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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의 맥주캔이 데굴데굴 굴러 그녀의 앞까지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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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린은 굴러온 맥주캔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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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당황하게 한, 첫 번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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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무슨 관계요?”
 
​
 
정해인이 되묻자, 유세린이 천천히 어깨를 으쓱였다.
 
​
 
“그게 제 질문인데요~~?”
 
​
 
유세린은 이미 완전히 그녀의 페이스로 돌아왔다.
 
​
 
그때.
 
​
 
- 끼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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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했던 옥상 문이 열렸다.
 
또각, 또각. 익숙한 하이힐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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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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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린이었다.
 
문 틈 사이로 걸어들어온 그녀는 이내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그리고,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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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쉬고 오라 했지. 파트너 방치하라는 건 아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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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짧게 숨을 고르며, 정해인에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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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 다 끝났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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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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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인이 태연하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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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강아린의 시선이 정해인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향했다.
 
정확히는, 유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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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까지 막았는데, 결국 마주치게 됐다.
 
예상은 했지만, 막상 보자 속이 부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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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유세린은 전혀 기가 죽지 않았다.
 
오히려 생글생글 웃으며 다리를 쭉 펴고, 한층 여유롭게 몸을 기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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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표님~ 오랜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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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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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린은 짧게 답하고는, 시선을 피했다.
 
원래부터 피곤해하는 타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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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정해인의 팔에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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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꽈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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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자연스럽게 팔짱을 끼며 몸을 바짝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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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파트너’가 부대표님의 소중한 시간을 방해하진 않았을까, 걱정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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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리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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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린은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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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좋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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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이가, 워낙 아무한테나 잘해주는 편이라… 너무 특별히 생각하실 필요는 없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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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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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린은 다시 한번 눈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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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린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정해인의 팔을 조금 더 강하게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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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그렇게 옥상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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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해진 옥상.
 
다시 바람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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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린은 하이힐을 벗었고 발끝을 세운 채,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무너질 것 같던 감정도, 이제야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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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린은 밤하늘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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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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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빈 맥주 캔을 발로 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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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굴데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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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은 정해인이 굴렸던 것과 비슷한 방향으로 굴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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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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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캔은 데굴데굴 구르다가… 그 옆에 정확히 멈추어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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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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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린은 소리 내어 웃었다.
 
​
 
짧지만 톡톡 튀는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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