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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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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들의 설명회가 끝난 지 며칠 후.

오늘은 가온 체험 활동의 공고가 나오는 날이었다.

수업 중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수업에 집중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때.

학생들의 워치가 동시에 진동했다.

  • 띠링.

  • 띠링.

“떴다.”

누군가가 조용히 중얼거리는 순간, 수업 중이던 강의실 안에서 수십 명의 학생들이 일제히 손목을 들었다.

물론 교수도 딱히 제지하지 않았다.

아예 처음부터 그럴 거라는 걸 알고 있었던 듯, 묵묵히 책상에 기대고 서서 학생들의 반응을 지켜볼 뿐이다.

각자의 워치 화면에는 곧 시작될 체험 프로그램의 참가 길드 명단이 정렬되어 떠 있었다.

나는 조용히 명단을 살폈다.

명단은 단정하게 정렬되어 있다.

[맹주]

[로터스]

[블룸스]

[아르카디아]

[청풍대]

그리고 그 외 수많은 단체들.

역시, 가장 먼저 시선을 끈 건 맨 위에 적힌 이름.

영광의 산하 길드이자, 랭킹 1위 길드, 맹주였다.

조용한 강의실 안, 학생들의 반응이 하나둘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할까요.”

교수가 인자하게 웃으며 책을 덮었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주변은 금세 시끌벅적해졌다.

“야, 너 어디 넣을 거야?”

“나 일단 로터스.”

“로터스 개 빡세다던데….”

“그래서 난 그냥 이번 체험은 쉬려고 맹주에서 뽑아줄 것 같지도 않고… 몸 사릴래.”

체험은 어디까지나 신청이다.

물론, 대다수의 학생이 참가하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전원이 참가하는 건 아니었다.

대부분 주말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일정이다.

굳이 체험에 참여하지 않아도 특별한 불이익은 없었다.

가온이란 곳은,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걸 중시하는 곳이니까.

웅성거리는 학생들 사이로, 나는 다시 워치에 시선을 돌렸다.

단정하게 나열된 이름들.

그때 옆에서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슥, 슥, 슥.

워치를 빠르게 스크롤 하는 손끝.

“없어….”

“뭐가?”

윤채하였다.

워치 화면을 마구 내리며, 살짝 굳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뱅퀴셔… 없어….”

“그래?”

그렇게 됐나.

내심 궁금하긴 했다.

지금 이 세계선은, 뱅퀴셔가 살아 있는 최초의 세계선이다.

따라서 뱅퀴셔가 체험에 학생을 모집하는 공고를 낼지 안 낼지는 알 수가 없다.

과연 추가적인 인원이 필요한가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는데….

영감은 굳이 뽑을 필요를 못 느낀 모양이다.

시온도 있고, 굳이 따지면 나도 있었으니까.

결국, 공고에는 없었다.

“아아아아….”

윤채하는 아쉬운 듯 고개를 뒤로 젖혔다. 살짝 투정까지 묻어 있다.

[마탑]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의 의외로, 가온의 체험 공고에는 마탑이 있었다.

원래 마탑은 가온에 가급적 공고를 넣지 않는다.

마법사 계열이 적기도 하고, 대부분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인재를 발굴하기 때문이다.

[모집인원: 2명]

그런데, 이렇게 공고가 들어왔고, 모집인원도 딱, 2명이라는 것은….

의도가 명확해 보였다.

‘윤채하, 주서준.

그래서 나는 물었다.

“마탑이라도 신청할 거야?”

“아니…….”

“그럼 뭐하게?”

“몰라 그냥 쉴래 이번에는….”

흥미를 쏟던 대상이 사라지자, 윤채하는 순식간에 노곤한 고양이처럼 변했다.

책상에 푹 기대어 엎드렸다. 눈동자엔 이미 졸음이 가득했다.

나는 조용히, 등 뒤에 걸린 그녀의 가디건을 돌돌 말아 머리맡에 대줬다.

작은 쿠션을 찾은 듯, 그녀는 고개를 비비적거리며 만족한 표정을 짓는다.

“히히… 고마워….”

그리고는 정말로 잠들어버렸다.

캐릭터 참 명확하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천여울이 턱을 괸 채, 윤채하를 조용히 노려보고 있었다.

성녀라고 보기에는 좀 차가운 눈빛이다.

“어디 고양이장수는 없나….”

조용히 중얼거린다.

“여울아.”

“응?”

“너는 교단?”

“음….”

천여울은 턱을 괸 손을 천천히 내려놓고, 한 손가락을 들어 입술에 살짝 갖다 댔다.

“아마 그럴 것 같은데….”

[아르카디아]

[성별 조건: 여성]

이번 아르카디아는 성기사 보다는 여성 사제를 모집하는 모양이다.

이처럼 체험 공고의 조건을 보면, 각 단체가 현재 어떤 인재를 원하는지 대략 알 수 있다.

그래서 고학년일수록 이런 지표를 꼼꼼히 따지며 참고한다.

나는 천천히 다시 워치 화면을 내렸다.

내가 어디로 갈지.

그것에 대한 사실 고민은 끝났다고 볼 수 있다.

만약 뱅퀴셔가 체험 공고를 냈다면, 분명 고민의 여지가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뱅퀴셔는 끝내 체험 공고를 내지 않았다.

이러면, 내가 갈 곳은 하나뿐이다.

[맹주]

백두산에서 한 약속을 지킬 때가 된 것 같기도 하다.

게다가.

[체험 목표: 팀 리더가 지녀야 할 능력 배양]

[우대 사항: 실전 경험 보유, 극상위권]

체험 목표가, 지금의 나와 딱 들어맞는다.

난 결국, 리더가 되어야만 했다.

매력적인 선택지다.

우대 사항마저 실전 경험 보유와 극상위권.

이건 단순히 랭킹만을 보지는 않겠다는 뜻과 같다.

과장하자면, 마치 나를 위해 쓰인 공고 같다.

그때.

  • 똑 똑.

누군가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강아린이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서 있었다.

“정해인씨.”

강아린이다.

많은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먼저 말을 건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강아린이 내 쪽으로 다가오자, 강의실 안의 모든 시선이 은근히 쏠려온다.

그만큼, 그녀가 가진 영향력이 크다는 뜻이다.

백두산에서 그런 일을 함께하고도, 왜 내게 학교에서 직접 말을 걸지 않았는지 알 것 같았다.

강아린은 살짝 웃으며, 내 귀 가까이 속삭였다.

“우리 계약한 사항이 하나 있는 걸로 아는데.”

간드러진 목소리.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워치 화면은 여전히 켜진 상태. 그러나 내 손가락은 선택 버튼 위에서 멈춰 있었다.

그녀가 어깨 너머로 내 팔을 부드럽게 감싸더니, 손가락을 포개듯 잡았다.

그리고는, 그대로, 천천히 눌렀다.

[맹주]

[신청 완료.]

어차피 누를 생각이었긴 하지만, 이 방식이 좀 더 재밌긴 하다.

강아린은 다시 속삭였다.

“말했지?”

입꼬리가 살짝 올라오며, 그때 그 눈웃음을 짓는다.

“너는 내꺼라고.”

말을 마친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발끝까지 경쾌한 걸음으로 돌아갔다.

나는 멍하니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백두산 이후로 오랜만이다. 역시 강아린의 템포는 내가 따라갈 수가 없다.

늘 휘말리는 느낌.

“… 쯧.”

“…….”

옆자리의 천여울이 혀를 찼다.

조금 전까지 자고 있던 윤채하도 어느새 몸을 일으킨 채, 못마땅한 눈빛으로 강아린의 뒷모습을 노려본다.

“방금… 뭐야?”

“강아린이 왜….”

순식간에 강의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 짝.

교수가 손뼉을 치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확인은 다 하셨겠죠? 빠르게 수업 마무리해 봅시다!”

교수의 말에 학생들은 뒤늦게 태연한 척 고개를 끄덕인다.

워치 화면을 끄고, 책을 넘기며 다시 수업에 집중하는 척.

'교수님 나이스.'

나는 속으로 생각하며, 다시 수업에 집중했다.


늦은 밤.

그러나 로터스의 건물은 여전히 환했다.

높은 층 유리창 너머로 빛나는 서울의 야경, 그리고 그 위로 반사되는 집무실의 따뜻한 조명.

소박하지만 정갈하게 정돈된 공간 안. 유세린은 가만히 시계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 가온의 서버 시간과 동일하게 흐르는 시계.

초침이 서서히 움직이며, 마침내 12에 도달했다.

“흐응….”

이걸로, 체험 공고의 마감 시간은 끝났다.

“어떠려나~”

유세린은 콧노래를 부르며, 기지개를 쭉 켰다.

손끝까지 쭉, 펼치고 나서 그녀가 중얼거렸다.

  • 똑 똑.

“네~ 들어오세요~”

자정이 넘었지만, 로터스 본사에는 여전히 불이 꺼지지 않은 사무실이 많다.

그 문을 두드린 건, 유세린의 비서였다.

비서는 품 안에서 방금 막 인쇄한 따끈따끈한 서류를 꺼냈다.

“방금 마감된 체험 신청자 명단입니다.”

유세린이 기다리는 그것이었다.

  • 착!

유세린은 받아들자마자 종이를 넘겼다.

빠르게, 또 빠르게.

사람 이름, 나이, 랭킹, 지원 동기.

눈은 가볍게 움직이지만, 속도는 꽤 빠르다.

“신청 인원이 역대 최고로 많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부길드장님의 스피치가 학생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긴 것이 아닐까하는 분석이 있습니다.”

그를 증명하듯 종이의 두께는 꽤나 두꺼웠다.

그러나 어느새 종이는 마지막 장에 도달해있었다.

유세린은 전부 확인한 후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없네요?”

“네? 혹시 어떤….”

비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음….”

유세린의 목표는 애초에 하나였다.

그녀는 담백하게 말했다.

“그 옆에 있는 것도 주시겠어요?”

“아, 네.”

비서는 서류철 하나를 더 내밀었다. 맹주의 신청자 명단이었다.

어차피 가온의 데이터베이스 정도는, 로터스 정도 되는 단체였다면 정보원들 통해 얻을 수 있었다.

유세린은 그걸 받아, 천천히 넘겼다.

[정해인]

그리고 거기에 떡하니 써 있는 이름.

그녀가 찾던 학생이었다.

“아하….”

그녀의 입꼬리가 아주 살짝, 아래로 기울었다.

“살짝… 속상하네요.”

그러나 그뿐이었다.

표정엔 실망보다 오히려 재미가 섞인 묘한 웃음이 번졌다.

아무래도 단번에 마음을 돌리기는 어려웠던 모양이다.

어차피 장거리 레이스다.

그녀는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퇴근을 준비할 시간이다.

“우리 이제 집에 갈까…요…?”

유세린이 비서에게 말하던 중.

그녀의 손에 남아있는 하나의 서류철을 또 발견했다.

로터스 명단 하나. 맹주의 명단 하나.

더 이상 그녀에게 올 만한 서류는 없을 터였다.

“그건 뭔가요?”

“아… 이건 그냥 참고용 자료입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제가 조금 과민하게 반응한 듯하여서…”

“괜찮아요. 어떤 내용이에요?”

비서는 조심스레 서류를 내밀었다.

자신의 판단이 괜한 오지랖일까 걱정하는 눈치였다.

그녀의 비서는 유세린이 직접. 손수 뽑아서 앉힌 인재였다.

다시 말해, 철저히 자신의 라인이며 사내에 믿을 수 있는 몇 없는 인물 중 하나다.

전달하는 정보 하나라도 놓쳐서는 안 됐다.

“4월 기준으로, 전략기획실이랑 대외협력팀, 그리고 법무팀 간 인사이동이 조금 빠르게 돌고 있습니다. 표면상으론 인사 정비나 순환 배치지만… 묘하게 맞물리는 느낌이 있어서요.”

유세린은 그 말을 들으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과하게 반응하는 걸 수도 있어서… 혹시 시간 되시면 한 번만 봐주시면…”

“아니에요, 두고 가요. 제가 잘 볼게요. 오늘 고생했어요~ 내일은 주말이니까 푹 쉬고… 아 오늘인가.”

“넵. 그럼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비서가 고개를 숙이며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 그리고 다시 정적.

유세린은 자리에 앉아, 서류를 펼쳤다.

생글거리던 표정이 점점 가라앉는다.

표지는 평범했다.

[인사이동 변동 / 대내외 협력 부서별 흐름 요약 - 4월분]

서류의 구성은 말끔했다.

보고서처럼 읽히는 정리된 흐름, 각 이동의 명분도 전부 타당했다.

평소의 그녀라면 분명 아무렇지 않게 넘길 정도였다.

그런데 뭘까.

이 이상한 느낌은.

뭔가 걸린다.

논리와 감정 사이, 애매하게 찝찝한 뭔가가 느껴진다.

감각이 경고한다.

‘사람 조심하세요.

며칠 전, 엉뚱한 학생이 말했던 엉뚱한 말이 불쑥 떠올랐다.

그 말이 머릿속에 가시처럼 걸린다.

왜 그 말이 자꾸 생각나는 걸까.

왜지?

그녀는 그녀의 감각을 믿는 편이다.

유세린은 다시금 서류에 시선을 내렸다.

한 장, 또 한 장. 조용히 넘겨본다.

각각은 별 탈 없다. 하나하나 보면 납득할 수 있는 명분과 사유.

그런데, 전부를 이어보면….

묘하게 만들어진다. 하나의 흐름이.

조직 내 세력들이 마치 의도라도 한 듯, 특정 방향을 조용히 둘러싸고 있다.

흩어진 배치이기도 하지만… 실상은 하나의 중심을 포위하는 미묘한 배치이기도 하다.

만약 그들이 뒤를 돌린다면, 그 순간. 그 모든 칼끝은 중심을 향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유세린이 있었다.

“…….”

이 모든 인사이동과 재배치 건의 최종 승인자는 이도겸.

로터스의 길드장이었다.

합법적이고, 정당하며, 문제없는 절차처럼 포장되어 있다.

의식하지 않으면 절대 보이지 않는다.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다.

유세린은 종이를 내려다봤다.

그리고는 조용히, 천천히 종이를 접었다. 아니, 쥐어짜듯 구겼다.

“만나봐야겠네요.”

이유는 모르겠다.

정해인.

그 학생을 다시 한번 만나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