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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죽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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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러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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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꽤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끝나고 나면 다리가 풀릴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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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몰아쉬며 주저앉자, 옆에서 따라 뛰던 유하나도 숨을 고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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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평소보다… 빠르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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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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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렇게 말하며 결국 잔디에 드러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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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쫓아가기만 했는데 죽을뻔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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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름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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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나와 함께 뛰는 시간은 늘 좋은 루틴이 됐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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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쉬고, 늘 그렇듯 자판기에서 뽑은 생수를 들고 운동장 한쪽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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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고르며 잠깐의 정적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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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기 해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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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나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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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슬쩍 나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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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번에 하는 체험, 어디로 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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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아직… 고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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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내 정리된 노트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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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은 한 단체에서 최대 두 단체까지 가능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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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이것도 지원하면, 또 거기서 역으로 기업에서 각 단체의 기준으로 선별해 골라가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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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경우는 사실, 어딜 가도 문제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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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만 하면 대부분 받아줄 가능성이 높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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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유하나가 조용히 말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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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청풍…대는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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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과 동시에, 그녀는 살짝 시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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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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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나는 원작에서 대부분 청풍대를 택한다, 주인공이 억지로 끌고 가는 게 아닌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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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가주로써 유망주 영입을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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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템퍼링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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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템퍼링은 전혀 아니지만, 괜히 놀리고 싶어서 질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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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스레 던진 말에 유하나의 반응이 바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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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아,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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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사래 치는 그 모습에, 웃음이 새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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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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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손을 내저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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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나는 민망한 듯 고개를 돌렸고, 귀끝이 살짝 붉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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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나쁘지 않지. 청풍대도 좋은 곳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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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대는 명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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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의 운영력도 탄탄하고, 국내 인프라 또한 잘 갖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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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딜 가도 알아주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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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내가 선택하기에는 여러모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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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 대는 철저히 국내 기반 길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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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활동을 국내에서 하는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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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편린이나 이런 것들을 얻기 위해서는 해외로 나가야 할 일이 생길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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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마다 아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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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내가 가야 할 방향은, 좀 더 넓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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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아마… 안 갈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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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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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나가 조심스레 되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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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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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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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욕심이 너무 많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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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유하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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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은 없었지만, 그녀의 눈빛이 잠시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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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절반쯤 남은 생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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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입구를 입에 대고는, 마시지도 않고 한참을 붙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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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결국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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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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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이어, 유하나는 살짝 웃으며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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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이따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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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한마디를 남기고 조용히 등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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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는, 어딘가 살짝 슬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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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후, 가온의 B 강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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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과 수업 사이의 시간이었지만, 학생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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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떠날 수 없었다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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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우리 길드에 오면, 계약 수당은 물론이고, 무구도 대여되고, 위험수당은 기본에, 멘토 영웅이 일대일로 커리큘럼도 짜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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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앞. 누가 봐도 외부에서 온 사람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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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감 넘치는 표정과 과도하게 활기찬 제스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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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정장을 번쩍이며 말을 이어가고 있는 인물은, 국내 30위권 길드 래피드의 소속 스카우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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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급 영웅 칼릭스 아시죠 칼릭스? 그 영웅도 볼 수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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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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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럴 만도 한 것이, 세계 1위 아카데미 가온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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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30위권 길드는… 솔직히 말해 경쟁력이 떨어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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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 몇몇이 슬쩍 주변을 눈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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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으로 관심을 가진 표정도 있고, 그냥 한 귀로 흘리는 표정도 있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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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그냥 나가고 싶어 하는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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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단독 콘서트가 진행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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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번 체험도 많은 신청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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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우터가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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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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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너무 많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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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길 누가 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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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의 투정과 몇몇 학생들은 우습게 보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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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의 윤채하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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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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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수업부터 자긴 했는데, 어쨌든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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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제각기 한숨을 쉬거나,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다음 강의 시간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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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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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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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문틈으로, 새로운 사람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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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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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는 흠칫 놀랄 만큼 낯익은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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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로터스의 부대표로 새롭게 선임된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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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유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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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에서도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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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스는 2위를 지키면서도 한동안 침체기란 평가가 많았으나, 그녀가 들어선 이후 체질을 개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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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대표가 썩었기에 결말은 정해져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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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조용히 있어서… 혹시 방해된 건 아닐까 걱정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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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길드 설명회는 소위 말하는, ‘애매한’ 길드들이 많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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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도는 낮고, 신뢰도는 부족하며, 무엇보다 학생 영입이 절실한, 그런 길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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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에서 보자면, 로터스는 설명회와는 가장 거리가 먼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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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전 래피드 소속 스카우터와는 여유부터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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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걸음, 시선, 숨소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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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앞에 서는 그 순간, 학생들의 자세가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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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스의 부대표, 유세린입니다. 반가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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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통 튀는듯한 그녀의 등장에, 강의실의 이목이 단숨에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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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장난을 치지 않았고, 아무도 스마트워치를 들여다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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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단상 앞으로 걸어가며, 자연스럽게 이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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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길진 않을 거예요…. 다만, 최대한 솔직하게 말씀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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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시선이 강의실 전체를 가볍게 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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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만으로도 일부 학생들은 자세를 고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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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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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숨을 고른 그녀가 갑자기 정색하며, 담담히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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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오된 영웅을 위한 길드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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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정적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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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은 거칠지 않았지만, 묘하게 도발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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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녀의 시선이, 맨 앞줄. 턱을 괸 채 심드렁하게 앉아 있는 강아린에게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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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린은 지루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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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유세린은 거기에, 시선을 조금 더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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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와 함께, 최고가 되고 싶으신 분만, 오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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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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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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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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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느껴졌다. 그녀의 시선이 내게로 향하더니, 한순간 또렷이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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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지각(一切知覺)이 통찰안(洞察眼)에 저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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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유세린의 눈빛이 일순 멈칫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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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본인의 권능이 통하지 않을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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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를 살짝 머금은 채, 나를 향해 고개를 아주 천천히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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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녀는 옆에 서 있는 단정한 차림의 여성 스카우트를 손짓으로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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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는 이쪽 스카우터 분께 해주세요. 그럼, 전 먼저 실례하겠습니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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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마친 그녀는 뒤돌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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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누구 하나 소리를 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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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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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적이 흐르고, 그 다음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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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자리에서 일제히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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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먼저 가겠다는 듯이 스카우터 앞에 몰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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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스, 원래 저런 느낌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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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귀여운데, 또 멋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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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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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그 시선은 영광의 자제인 강아린을 향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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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는 않았지만 내포된 의미는 모든 학생이 느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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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주를 제치고, 함께 최고가 될 학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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뭇 학생들의, 가슴을 울릴 만 한 발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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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로터스의 스카우터까지 자리를 비우고, 나는 식당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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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여울은 같이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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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단관리라는데, 먹는 족족 어딘가로 간다던가 뭐라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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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이해하고 싶지 않아서 더 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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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간 건 윤채하였다. 밥은 뭐, 늘 그렇듯이 학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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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안을 헹구고 식당 문을 밀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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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여름이 다가오는지, 따뜻한 햇볕을 피하며 그늘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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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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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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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손끝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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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입으로 똑똑. 거리는 소리를 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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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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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좋은 장미향이 풍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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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라기엔 자연스럽고, 생화라기엔 조금 더 선명한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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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인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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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단상에 섰던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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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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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손에 작은 서류 하나를 든 채, 살짝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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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저한테 답변 안 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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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장난스럽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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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의 윤채하가 기겁하는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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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그렇게 하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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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린의 말에 담긴 의미는 간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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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고사 입찰전 당시 로터스는 나를 15억이라는 거금으로 입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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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뱅퀴셔에게 밀려 1위는 놓쳤지만, 그 정도 금액이면 충분한 의지를 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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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런 길드들의 입찰에 답변을 해줄 수 있었지만… 어떤 단체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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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직접 보고 입찰 한거여서요, 정해인 학생이 부임 후 제 첫 픽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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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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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메두사를 서걱ㅡ 하고 써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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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심드렁하게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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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녀는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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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스로 안 올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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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린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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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내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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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린이라는 인물 자체에는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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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로터스에서 나온다면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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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스 길드 자체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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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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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그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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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거절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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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기대했던 반응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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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마음 바꿀 시간은 아직 많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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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안 들이시는 게 좋을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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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내 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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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린은 익숙한 웃음을 흘리며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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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가 멀어지는 방향을 조용히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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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아쉬운 등장인물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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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만 잘 받쳐주는 동료가 있었다면, 멀리 날아오를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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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과 모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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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미래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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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접하는 그 어떤 루트에서도, 그녀는 죽음을 피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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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스는 반드시, 성시우와 대립하는 단체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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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미 많이 바뀌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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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한마디 정도는 해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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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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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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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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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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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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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린은 눈을 가늘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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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 그리고는, 고개를 갸웃하며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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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씨 엉뚱한 면이 있으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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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쪽도 만만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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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렇게 한마디하고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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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엮일 생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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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는 그녀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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