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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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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반의 담당 교관, 도한성은 상담실 안에서 학생들과의 면담을 이어가고 있었다.

B반은 실력 편차가 큰 반이다.

입학 성적 하위권부터 상위권까지 폭넓게 섞여 있는 터라, 도한성 입장에서도 골치가 아플 수밖에 없다.

그는 스카우트의 청탁을 거절하지는 않았으나, 적어도 학생들의 앞길이 잘되기를 바라는 교수는 맞았다.

그래서, 하룻밤을 꼬박 새워가며 학생 한 명 한 명의 진로와 추천 방향을 정리했다.

소모되는 건 체력보다, 정신력이었다.

“다음 학생 오라고 좀 해주세요.”

말을 마치자, 조용히 문이 열렸다.

그 문을 밀고 한 학생이 들어섰다.

천여울.

최근 들어 가장 뜨거운 이름의 학생이었다.

최연소 정식 성녀로 승격하며, 엄청난 잠재력을 보이는 차세대 최고의 유망주 중 하나.

단순히 ‘유망주’라는 단어로는 이제 담아내기 어려울 정도였다.

도한성은 잠시, 책상 위에 놓인 그녀의 기록을 훑어봤다.

“음….”

그래서 이런 경우에는 오히려 교관이 할 말이 없다.

“필기 점수가 많이 올랐군요. 이 부분은 앞으로도 꾸준히 보완해 나가면 좋겠습니다.”

입학시험에서 0점에 수렴하던 필기시험 점수가 많이 올라왔다.

“성법은 감각도 중요하지만, 기초 이론이 뒷받침돼야 실전에서도 흔들리지 않아요. 그 외엔… 뭐랄까. 너무 잘하고 있습니다. 이대로만 계속 하시면 될 겁니다.”

“…감사합니다.”

천여울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생각해둔 진로는 역시, 교단이겠죠?”

들어온 오퍼도 교단뿐이다. 그런 그녀가 다른 곳을 희망한다는 것 자체가 빅 뉴스고.

설령 그렇다면, 교관은 최대한 교단 쪽으로 마음을 돌리게끔 유도할 의무가 있었다.

천여울은 잠시 눈을 깜빡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현재로선, 교단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무표정한 얼굴.

가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늘 자애로운 모습을 보였던 전대 성녀와는 사뭇 다른 느낌.

물론, 이건 성격 차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본다.

“네, 저도 이야기할 게 거의 없네요. 너무 잘하셔서. 앞으로도 힘내시길 바랍니다.”

서류를 정리한 도한성이 고개를 들어 말을 맺었다.

천여울은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인 후,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다음 학생.

문을 열고 들어온 건, 이번에는 강아린이었다.

연속으로 거물급 유망주다.

도한성은 무심코 그녀의 얼굴을 훑었다.

눈 밑의 다크서클과 약간 부은 눈.

“…….”

잠을 좀 못 잔 것 같은데.

어차피 강아린이야말로 정말 해줄 것이 없다.

품행, 성격, 성적 그리고 진로까지. 모든 게 완벽한 학생이었으니까.

“강아린 학생도… 제가 딱히 드릴 말씀이 없네요. 힘든 점은 없으신가요?”

“힘든… 점… 네. 없습니다.”

강아린은 무표정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그대로 좀비처럼 걸어 나갔다.

“뭐지….”

그리고 이어진 상담은, 유하나.

이번 교류전 단체전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은 인물 중 하나다.

그 여파로 지금 그녀에게는 수많은 단체와 길드가 오퍼를 보내는 중이었다.

도한성은 상담용 스마트 패드를 돌려 보여주었다.

“지금까지 유하나 학생에게 도착한 오퍼 목록입니다.”

로터스, 청풍대, 블룸스가든. 국내 톱 티어 길드는 물론, 해외 명문 길드들까지.

그중에서도 청풍대는 유하나의 본가에서 운영하는 단체.

그러나 도한성이 알기로는, 가주인 유무진은 딸을 강제로 붙잡을 인물이 아니었다.

유하나가 원한다면, 자유롭게 길을 택하게 할 사람으로 보였다.

“혹시… 생각해둔 진로나, 특별히 가고 싶은 단체 있으신가요?”

워낙 성적이 좋은 학생들을 연속으로 만나서 그런지, 마음이 편하다.

그렇지 못한 학생들이 눈만 높았다면 쓴소리가 동반될 수밖에 없지만, 이 학생은 그런 쪽은 아니니까.

눈 앞의 유하나가 고민한다.

예스러운 분위기, 척 봐도 귀족 집 자제의 느낌이 풍긴다.

유하나는, 잠시 망설이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는… 현모양처입니다.”

“푸릅ㅡ 네?”

유하나의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에 도한성은 마시던 커피를 전부 내뿜을 뻔했다.

대체 무슨 대답이지?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리고 동시에, 며칠 전 동료 교관들 사이에서 오갔던 사담이 스쳐 지나갔다.

‘아니, 김 교관님, 대체 이런 학생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왜요? 무슨 일 있어요?

‘내가 담당하는 학생인데… 이 학생은 성적도 좋고 뒷배도 좋고 활도 잘 쏘는데, 진로가… 어이가 없어서.

‘뭐라는데요?

‘꿈이 현모양처래요.

‘푸하하! 진짜요?

‘자식은 최대한 많이 낳고 싶다는데, 내가 머리가 어질해가지고….

도한성은 그 사담에 직접 참여하진 않았지만, 워낙 강렬한 내용이라 지나가다 들은 기억이 남이 있었다.

근데 설마 자기 반에도 그런 학생이 있을 줄은 몰랐다.

그는 다시 물으려 했으나, 유하나의 표정을 봐버렸다.

볼은 살짝 붉어졌지만, 표정은 진지했고 시선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니까, 재미없는 농담 따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음…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당황스럽긴 했지만, 학생의 진심이라면 존중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마무리하려던 찰나.

도한성의 입에서 그만 질문이 튀어나왔다.

“저기… 혹시, 그렇다면… 이미 마음속으로 정해둔 상대라도… 있는…?”

“네. 있어요.”

“아… 예….”

도한성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연거푸 쓸어내리며 마른세수를 했다.

단체, 뭐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녀는 이미 자신의 삶의 방향을 정해둔 상태였다.

그는 조용히 서류를 덮고 담담히 말했다.

“상담 마칩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해주세요.”

유하나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남기고 나갔다.

도한성은 가볍게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한숨을 쉬었다.

약간의 현기증이 몰려온다.

다음 학생은… 윤채하.

‘아이고.

이번엔 마법사다.

마법사들이 그렇듯이, 범상치가 않다.

피곤해질 것 같다는 예감이 스쳤지만, 그래도 받아야 할 면담은 받아야 한다.

문이 열리고, 윤채하가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네. 윤채하 학생.”

마탑이 최근 그녀에게 유망주 최고 대우 수준의 오퍼를 공개적으로 넣어 버렸다.

사실상 ‘우리꺼야. 라고 선언하는 수준.

따라서 다른 단체들은 접근조차 못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윤채하 본인도 마탑과의 교류가 잦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저… 교관님.”

“네.”

“그… 혹시, 제가 뱅퀴셔에 입단할 수 있을까요?”

“뱅퀴셔요.”

“네.”

예상 밖의 질문. 도한성은 잠시 멈칫했다.

그러고는, 천천히 생각을 정리했다.

결과는.

‘가능하다.

뱅퀴셔는 폐쇄적이고 영입 조건도 깐깐한 걸로 유명하지만, 윤채하라면 자격은 충분하다.

게다가, 곧 예정되어 있는 현장 체험도 고려한다면 접점은 만들 수 있다.

“여기, 관련 자료입니다. 곧 있을 교내 일정 중 하나로 편성된 체험입니다.”

윤채하는 차분히 자료를 받아들였다.

그녀는 자료를 넘기며, 짧게 몇 가지를 물었고 도한성도 그에 맞춰 조용히 조언을 건넸다.

그녀는 의외로 그런 조언을 곧잘 받아들이는 타입이었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며 나가는 윤채하.

예상과는 반대로, 너무 정상적인 면담이었다.

연속적으로 있었던 이질적인 상담과는 다른 느낌.

도한성은 정신이 돌아온 것을 느끼며, 조교에게 다음 학생을 요청했다.

마지막 학생이었다.

이름은….

‘정해인.

도한성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마지막 답게, 가장 재밌는 학생이었다.


천여울과 윤채하를 포함해, 대부분의 학생들은 상담을 마친 상태다.

“무슨 얘기 했어?”

나는 옆에 앉은 천여울과 윤채하에게 가볍게 물었다.

여울이야 교단 소속이기도 하고, 딱히 다른 데로 갈 이유가 없는 상황이지만 채하는 달랐다.

“난 그냥 필기 성적 오른 거. 그거 잘했다고 칭찬받았어. 진로는 정해져 있으니까 계속 열심히 하래~”

“괜찮네.”

천여울의 약점은 필기, 그리고 그걸 지적한 걸 보니 교수도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윤채하 쪽을 바라봤다.

“채하 너는?”

아까 폭탄 발언으로 뜬금없이 뱅퀴셔를 가고 싶다 했는데, 상담 내용도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윤채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아까랑 똑같아.”

“그래?”

막 더 대화를 이어가려던 찰나, 조교가 앞문으로 들어왔다.

“정해인 학생~ 다음 차례입니다~”

“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상담실로 향했다.

상담실 문 앞.

  • 똑 똑.

나는 가볍게 노크했다.

“들어오세요.”

B반의 담당 교관. 도한성이었다.

말없이 눈인사만 주고받고, 자리에 앉았다.

그는 서류를 한 장 넘기고, 조용히 말했다.

“정해인 학생은… 현재 랭크는 없습니다만….”

그리고 서류를 돌려, 내게 보여줬다.

“사실상, 이미 예측이 가능한 수준입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냈다.

“어디를 가고 싶으십니까?”

그는 옆에 있는 패드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패드 화면을 내 쪽으로 돌렸다.

눈 앞에 펼쳐진 건, 입찰 현황.

입찰전이라는 명칭 아래, 내 이름을 둘러싼 숫자들과 길드 로고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리고, 공식 오퍼들은 덤.

“중간고사부터 교류전까지. 너무 우수한 결과들을 내셨습니다.”

도한성은 덤덤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이런 학생이 1학년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소속이 없다면…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겠죠.”

묵귀라는 정체가 아직 드러나지도 않았는데도 이 정도.

“그러니, 선택하시면 됩니다.”

도한성의 말투는 차분했지만, 그 말에 담긴 의미는 아주 명확했다.

“이제 막 입학한 1학년 학생이지만… 놀랍게도, 고르는 입장이군요.”

나는 패드 화면을 바라보며 잠시 고민했다.

문제는… 나는 아직, 어디를 갈 것인지 딱히 결정하지 못했다.

뱅퀴셔의 영감은 늘 말했다.

‘네가 어디를 가는지는 전혀 상관없다.

말뿐인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늘 하던 말이었다.

물론, 그는 내가 뱅퀴셔로 오길 바라는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겠지만….

내가 다른 길을 택한다고 해도 그가 내게 실망할 일은 없다.

두 번째는 ‘영광’.

그곳 역시, 강아린과 형식적인 약속을 한 적은 있었다.

그러나 아마 그녀 역시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 외에도 영웅협회, 청풍대, 해외 대형 길드들.

목록은 많았다.

이름만 봐도 어지러울 만큼.

하지만 나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사실 10년 전에도 비슷한 식으로 고민을 미뤄왔던 기억이 있다.

어디가 가장 좋을지는, 결국 그 순간에 가봐야 알게 되는 일이니까.

그런 내 고민이 얼굴에 다 드러났는지, 도한성이 짧게 웃음을 흘렸다.

“고민이 많아 보이시는군요. 당연히 지금 결정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는 책상 옆에 놓인 다른 서류를 집어 들어, 내 앞에 조용히 내밀었다.

“그렇다면, 직접 한번 체험해 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체험이요.”

도한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곧 있을 교내 공식 일정입니다. 견학, 간단한 실무 참여, 실제 임무 관전 등 여러 방식으로 진행될 겁니다.”

나는 천천히 서류를 펼쳤다.

그 안엔 익숙한 이름들이 줄지어 있었다.

영광, 아르카디아, 로터스, 협회, 청풍대, 뱅퀴셔.

그리고 그 외에도 수많은 길드와 단체들의 이름들.

나는 말없이 서류를 바라봤다.

현장 체험.

학생들에게 유명 단체들을 직접 경험하게 해주는 가온의 교내 프로그램 중에서도 꽤 신경 써 만든 시스템이다.

기말고사 직전에 배치된 이 체험은, 학생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도구로 쓰이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타이밍도 마침, 잘됐다.

나는 서류를 덮으며 짧게 말했다.

“좋네요.”

직접 겪어보는 것.

결정이 어려울 땐, 가장 확실한 판단 근거가 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