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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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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더욱 흘러, 교류전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오늘은, 그 전날.

지금 듣고 있는 수업은 ‘권능학개론’.

가온의 1학년이라면 반드시 들어야 하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필수 강의였다.

담당 교수는 현직에서 물러난, 1위 길드 맹주의 전속 트레이너 출신.

실전 경험도 풍부하지만, 그는 늘 전투보다는 성장 방향성을 중시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칠판에 단어 세 개를 또박또박 적었다.

의지, 경험, 선택.

그리고는 분필을 내려놓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러니, 영웅의 성장과 권능의 확장은 단순히 시간이나 반복된 실전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적은 단어들을 하나하나 천천히 원으로 감쌌다.

“그 모든 결과는, 결국 스스로 어떤 길을 선택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택한 길.

단련과 의지의 방향에 따라, 확장 권능은 전혀 다른 형태로 여러분에게 응답하게 될 겁니다.”

잠깐의 침묵이 강의실을 덮었다.

누군가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고, 누군가는 펜을 멈춘 채 그 말을 곱씹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주요 인물들의 성장을 이끌어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아주 좋은 이야기다.

또, 조화의 편린을 2차로 개방해야 하는 나로서는 새겨들어야 하기도 했고.

아는 내용이어도 이렇게 들으면 또 다른 법이니까.

명강의다 아주.

‘기분이 묘하네.

내가 만들고 계획한 설정을 누군가가, 그것도 권위 있는 자가 전문적으로 설명해주는 장면.

상당히 흥미로운 일이다.

“이상으로 수업을 마칩니다.”

교수의 마지막 한 마디와 함께, 정적이 깨졌다.

그 순간, 학생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권능, 권능 하다 보니.

‘지금은 어떠려나.

나는 문득, 주변 인물들의 시스템이 궁금해졌다.

지금까지는 그저 아는 만큼 알고 있었고, 예상치로 적당히 추측했을 뿐이었다.

윤채하는 예외.

최근에 직접 확인한 적이 있으니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것도 꽤 이례적인 일이었다.

나도 급해서 눈깔이 돌았기에 대뜸 요청했던 거지, 평소의 나라면 절대 그렇게 대놓고 요구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선뜻 동의한 것도 고마운 일이다.

자신의 시스템을 누군가에게 공개한다는 건, 그만큼의 의미를 가진다.

누군가의 손에 들어간다면, 그 자체로 약점이 될 수도 있으며 여러모로 위험하다.

실제로 TV 방송에서도 다뤄졌었다.

상위권에 속한 영웅 부부들조차 서로의 시스템은 가급적 공유하지 않는다고.

믿고 사랑하는 사이라 해도, 시스템은 예외라는 이야기였다.

굳이 표현하자면 영웅으로서의 알몸을 보여주는 느낌이라 이해하면 편하겠다.

그만큼 민감하고, 그만큼 조심스러운 문제다.

그래서 그날 이후, 나는 윤채하에게 따로 시간을 내 조용히 사과했다.

그녀는 그 말을 듣더니,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었다.

-괜찮아….

윤채하가 쿨한 성격이라 다행이었다.

나는 생각을 정리하며, 왼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암….”

하품을 길게 내뱉으며 몸을 쭉 펴는 천여울.

방금 막 깬 듯한 모습.

어깨를 으쓱이며 기지개를 켜더니, 눈이 마주치자 살짝 웃는다.

“굿모닝.”

“굿모닝은.”

나는 즉시 그녀의 이마에 응징의 딱밤을 날렸다.

-딱!

“읏!”

천여울은 눈을 질끈 감으며 이마를 쓸어올렸다.

“이것도 안 들으면 대체 뭘 들으려고.”

저 앞의 강아린과 유하나를 봐라. 수업 내내 교수의 말 한마디를 놓치지를 않으려 하더라.

모범생은 평소 수업에서부터 태도가 드러나는 법이다.

그녀는 배시시 웃으며 이마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나는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윤채하.

그녀는 여전히 책상에 엎드려,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

분명 둘 모두에게 이 교관의 수업만큼은 들으라고 했었다.

“….”

눈을 감은 채, 숨결도 일정하다.

수업이 끝났다는 걸 모르는 건지, 아니면 그냥 자고 싶은 건지.

“꼴통이네.”

옆에서 천여울이 차갑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말하는 본인도 거기서 거기다.

“어휴.”

그래, 얘는 뭐….

일차적으로 확장할 거는 다 했으니까 그렇다 치자.

그래도, 괘씸한 건 괘씸한 거니까.

나는 앞에 놓인 아이스커피를 집어 들었다.

컵 표면에 맺힌 물방울이 손끝을 차갑게 적신다.

그리고 천천히.

-스윽.

그 차가운 손으로 윤채하의 목덜미를 살짝 붙잡았다.

“으엑!”

그녀가 자리에서 튀어 오르듯 일어났다.

깜짝 놀라 나를 바라보는 그녀를 향해, 나는 천연덕스럽게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일어났어?”

“… 씨잉.”

윤채하는 아직 잠이 덜 깬 듯 살짝 찡그린 얼굴로 목덜미를 문질렀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얼굴에는 당황스러움과 약간의 짜증이 섞여 있다.

그때였다.

“가자, 해인아.”

멀리서 들려온 경쾌한 목소리.

유하나가 싱긋 웃으며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내일이 교류전이기 때문에, 오늘 교류전 단체 미션을 공개한다.

나와 윤채하는 일어나 팀장인 유하나를 따라 강당으로 향했다.

강당으로 향하는 길은 평소보다 훨씬 붐빈다.

가온의 파란색 문양과는 다른, 선명한 적색과 금빛이 어우러진 다른 색의 제복들.

그들은 어제 미리 도착한 칼로스의 학생들이었다.

당장 내일이면 격돌할 상대들이지만, 아직은 어색한 탐색전일뿐.

“사람 엄청 많네?”

“번잡해.”

유하나가 작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돌리고, 윤채하는 투덜거렸다.

그 사이, 강당의 입구가 보였다.

안으로 들어서자 천장에 달린 프로젝터가 웅장한 조명과 함께 작동했다.

우리는 자리에 앉아 안내를 기다렸다. 늘 비어있던 반대편 강당에는 칼로스의 학생들이 잔뜩 앉아있었다.

마이크를 잡은 교수는 간략한 인사와 함께 주의사항 몇 가지를 전달한 뒤,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모두의 시선이 단상 뒤편의 대형 스크린으로 집중되었다.

"지금부터 내일 진행될 교류전 단체전의 미션을 공개하겠습니다."

스크린 화면이 바뀌며, 큼지막한 타이틀이 나타났다.

[ 교류전 단체 미션 : 고대 유적 수호자 ]

푸른 안개가 스며든 붕괴된 유적이 배경처럼 화면에 띄워진다.

그리고 그 아래로, 이번 미션의 핵심적인 내용들이 간결하게 요약되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내용은 단순하다. 각 팀은 거점 하나씩을 배정받는다.

총 10번의 웨이브가 차례대로 등장하며, 모든 팀은 동시에 같은 적을 상대하게 된다.

웨이브를 가장 먼저, 완벽하게 전멸시키는 팀이 등수별로 승점을 획득한다.

1년 전, 내가 막아냈던 마물 사태를 모델로 만든 구조다.

10회의 웨이브 동안 얼마나 안정적으로 버티면서도, 얼마나 빨리 마무리 짓느냐가 핵심이었다.

옆자리에서 시선이 자꾸 느껴져 고개를 돌리자, 윤상혁이 느끼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너만 믿는다.”

“어우 징그러워.”

나는 헛웃음을 터뜨리며 받아쳤다.

사실 크게 어렵지는 않은 과제다.

어차피 메인은 개인전이었으니까.

교수가 마이크를 한 번 두드리더니, 다시 스크린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이어서, 교류전 개인전의 대진표를 공개하겠습니다."

스크린이 다시 어두워지더니 브래킷 형태의 토너먼트 대진표가 나타났다.

이름들이 하나둘 정리되어 뜨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윤채하.

그녀의 이름이 보인다.

‘무난하네.

1회전은 무난하다. 막말로 지기가 더 어려울 상대.

2회전, 3회전까지도 추적해봤으나, 위협적인 이름은 없다.

그러나, 그 반대편.

주서준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큰 이변만 없다면, 윤채하와 주서준이 결승에서 맞붙게 될 것이다.

나는 옆자리에 앉은 윤채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누가 전해달라던데.”

“뭘?”

“옛날이랑 많이 달라졌다고. 그거, 알고 있으라고.”

“그래?”

윤채하는 멍한 표정으로 허공을 보다,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라.”

잔잔한 목소리지만, 그 안에는 자신감이 담겨있었다.

그렇게 개인전 대진표 확인까지 마친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팀 유하나, 총 8명은 강당 앞에 하나둘 모였다.

“어쨌든, 내일 진짜 잘해보자.”

평소에 차분하던 김대현이 의외로 들뜬 얼굴로 말했다.

그 말에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던 순간.

-띠링! 띠링띠링띠링!!

갑작스럽게 유하나의 워치에서 미친 듯한 알림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뭐지…?”

그녀가 미간을 찌푸리며 워치 화면을 들여다보는 찰나.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입술이 떨렸다.

“잠깐만, 나 먼저 갈게! 해인아! 내일 봐!”

말이 끝나자마자, 유하나는 그대로 달려 나갔다.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뭐지?

나는 속으로 고민했다.

갑자기 유하나가 저럴만한 일이….

“뭐야…?”

우리 중 누군가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자, 다른 누군가가 워치를 확인하다가 급히 외쳤다.

“다들, 이거 봐봐!”

우르르 몰려든 시선들이 한꺼번에 작은 워치 화면으로 쏠렸다.

그곳에는, 갓 업데이트된 뉴스 알림이 떠 있었다.

[속보][ ‘청운검제(靑雲劍帝) 유무진, 폐관 수련 종료… 5년 만에 전선 복귀 선언.]

순간, 주변이 잠깐 조용해졌다.

아, 이거였구나.

유하나의 아버지이자.

유 가(家)의 가주.

유무진의 복귀였다.

그제야 유하나가 왜 그렇게 놀라 뛰쳐나갔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자그마치 5년 만의 귀환.

그리고 그녀에게 단 하나뿐인, 가족이었다.


사람이 드나들 수 없었던 유가의 가주 동.

오늘은 오랜만에, 많은 사람이 밝은 표정으로 그 문을 드나들었다.

유 가(家)의 가주, 유무진.

그의 폐관 수련이 길고 긴 세월 끝에 마침표를 찍은 날이다.

“유 가가 다시 날아오를 일만 남았어….”

“청풍대가 다시… 최고가 되겠구나.”

문전성시.

기뻐하는 사람들과, 청풍대의 제자들 사이로.

유하나는 조용히, 그러나 당당하게 그 걸음을 옮겼다.

“아가씨 축하드립니다!”

연이어 들려오는 인사에 유하나는 미소로 답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흔들던 그녀는 조용히 물었다.

“가주님은, 어디 계세요?”

한 사용인이 손으로 가장 큰 기와집을 가리켰다.

유하나는 다시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그 문을 향해 걸어갔다.

-철컥.

거대한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방 안에는 청명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등을 돌린 채 정좌하고 앉은 남성. 등 너머로도 느껴지는 위엄.

“왔구나.”

유무진의 낮고 깊은 음성에, 유하나는 숨을 들이켰다.

가슴속 어딘가에서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그것을 꾹 눌러 담았다.

“5년 만이구나, 내 딸아.”

아니.

그녀에게는 겨우 5년이 아니었다.

유하나는 천천히 무릎을 꿇고, 깊이 부복했다.

떨리는 목소리를 간신히 붙잡은 채, 그녀는 입을 열었다.

“유 가의 소녀, 가주님을 뵙습니다. 너무… 오랜만입니다. 가주님.”

“… 많이 컸구나. 내 딸.”

유무진은 천천히 돌아앉으며, 복잡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기특함. 씁쓸함. 죄스러움.

그 모든 감정이 얼굴 위에 조용히 떠오른다.

그의 손에는 지난 폐관 수련 간 유하나의 학교생활이 담긴 사진들과 몇 장의 신문 기사가 들려 있었다.

이미 너무 유명하게 알려진 사실.

그는 딸바보였다.

그런 딸을 홀로 남겨두고, 스스로 문을 걸어 잠그듯 폐관에 들어간 것은 피를 삼키는 고통의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의 시선이 천천히, 유하나를 훑는다.

그녀가 풍기는 기운은, 단순히 유가의 검술만이 아니었다.

이질적인 기운, 그러나 유가의 검술과 조화로이 섞이는 독자적인 기운이, 그녀에게 깃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곁에 파지한, 붉은 검집의 검.

한눈에 봐도 기운이 범상치 않다.

그녀는 이미, 유가의 그늘을 벗어나 스스로의 길을 걷고 있었다.

유무진은 눈을 가늘게 떴다.

궁금했다.

어떻게 이토록 단단히 성장했는지.

어떤 이들과 함께하며 이 길을 걸었는지.

그러나, 유무진.

그가 지금, 아버지로서 가장 궁금했던 건 그것이 아니었다.

“…딸아.”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사진을 떨리는 손으로 들어 올렸다.

“그런데, 대체 이 녀석은 누구냐?”

덜덜 떨리는 손끝이, 유하나와 함께 찍힌 잘생긴 남성을 가리켰다.

사진 속 모습을 보면, 딸의 학교생활 절반, 아니, 대부분을 함께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남자는 딸의 삶 속에 너무나 자연스레 녹아 있었다.

유하나는 아버지의 손끝을 따라 고개를 살짝 들었다.

사진을 바라본 그녀의 입가에, 어느새 부드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하지만 미소도 잠시, 그녀는 다시금 깊게 고개를 숙였다.

숨 막히는 침묵 속에서, 그녀가 이름을 불렀다.

“정해인.”

달뜬 숨결.

그리고 그 끝에 이어지는, 확신에 찬 목소리.

“제가, 평생을 지아비로 섬기며 모실 사내입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유무진의 숨이 멎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