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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된 던전은 양옆으로 길이 나뉘어 있었고, 벽으로 막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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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봐도 전형적인 미로형 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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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언급한 대로 역시나 ‘모의 던전 공략 실습’은 이름처럼 단순히 던전만 공략하는 수업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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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던전의 구조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반대편 어딘가에도 한 팀이 배치되었을 가능성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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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4개의 던전, 각 던전에 두 팀씩 스폰 시켰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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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공략하다 보면 만나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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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금 뭐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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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혁은 던전에 진입한 뒤에도 교관의 말을 되새기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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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니까 싸우라는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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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온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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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린, 요한 팀이랑 싸워서 이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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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은 땅에 손을 얹고 가만히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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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끝나기를 기다리며 그 옆에서 조용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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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지. 우리도 해인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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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혁이 중얼거리려는 순간, 김대현이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며 조용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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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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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혁의 중얼거림은 그에 의해서 저지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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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시온이 천천히 눈을 뜨며 땅바닥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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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에 묻은 흙을 툭툭 털어내고 그녀는 나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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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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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 어레인지 가능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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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내 질문에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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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대략적인 방향만. 기감을 방해하는 장치가 깔려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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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레인지는 던전의 구조를 감지해 최적의 공략 루트를 파악하는 궁수의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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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적으로 미로형 던전은 어레인지를 통해 구조만 파악하면 공략이 단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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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기술은 고도의 마나 운용 능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학생들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영역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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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편하게 가나 했지만, 역시 가온은 철저했다. 완벽히 막아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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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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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시온이 가리킨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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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잠시 멈춰서 윤상혁을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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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혁아, 가드 포지션 가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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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드라는 포지션은 팀 중앙에서 원거리 딜러와 지원가를 보호하는 역할이다. 상대의 공격이 핵심 자원에 닿지 않도록 막아내며, 동시에 상황에 따라 공격으로 전환할 수 있는 다재다능함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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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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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혁은 본인에게 손가락을 가리키며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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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만도 하다. 전위는 내가 맡고 있으니, 중앙에서 시온을 보호하는 가드 역할은 방패를 들고 있는 김대현이 맡는 것이 더 합리적으로 보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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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건 몬스터와의 전투에 한정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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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몬스터는 지능이 낮아, 상위 개체를 제외하면 진영의 중앙에 있는 원거리 딜러나 지원가를 직접적으로 노리는 경우가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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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눈먼 공격을 방패로 막아내는 데는 김대현이 적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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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대인전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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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언제나 진영의 중앙, 핵심 자원들을 노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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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는 단순히 방패로 막아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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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내가 상대가 중앙까지 도달하는 상황을 허용하지는 않겠지만, 효율의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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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대인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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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김대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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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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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은 기본적인 지식도 있고, 상황을 빠르게 파악할 능력 또한 보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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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 역시 살짝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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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은 틀리지 않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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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윤상혁에게 가드 포지션의 역할과 필요성을 간단히 설명했다. 그 또한 기본은 했기 때문에 금세 수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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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위는 나, 중앙에는 윤상혁과 시온, 후방에는 김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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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을 정리하며 우리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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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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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혁은 정해인의 지시에 따라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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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의 이론을 완벽히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일전부터 느낀 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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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쟤 말만 들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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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 말을 안 한다. 거의 자다가도 떡이 생기는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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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긴장이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가드 역할은 처음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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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아까 교관의 말은 곱씹을수록 꺼림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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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를 만나면 싸워서 이기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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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말만 안 했지 무조건 만난다는 뜻이랑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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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상대로는 괜찮지만 강아린이나 요한 같이 뛰어난 학생들 상대로도 잘 해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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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옆에서 같이 걷던 하시온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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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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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부터 그녀는 앞장서고 있던 정해인의 등에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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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해인이가, 웬만하면 다 해결할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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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혁은 그녀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그와 팀을 해봤다면 부정하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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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해인이 갑자기 멈춰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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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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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손을 들어 올려 우리를 멈춰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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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정해인의 시선이 한쪽 벽 틈을 향해 날카롭게 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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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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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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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은 재빠르게 중앙으로 이동해 방패를 높이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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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촤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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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방패에서 빛이 퍼지며 방어막이 펼쳐졌다. 쇠뇌들이 발사되기 시작했고, 날카로운 금속의 파편들이 방어막에 박히며 폭음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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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바바바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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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으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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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이 신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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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방어막 사이로 보이는 정해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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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롤들이 거대한 도끼를 휘두르며 정해인에게 달려들었지만, 그는 놀랍도록 차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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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에서 트롤의 도끼가 내려치는 순간, 정해인은 몸을 낮춰 회피하며 옆구리로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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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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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창이 사선으로 그어지자, 첫 번쨰 트롤의 목에서 붉은 선이 그려지며 피가 솟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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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트롤이 쓰러지기도 전에 정해인은 이미 다음 목표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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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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넋 놓고 감탄할 수밖에 없는 전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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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피와 공격은 분리되지 않으며 그 자체로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고, 그의 창끝은 치명적인 정점만을 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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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후방에서 급작스럽게 나타난 또 다른 트롤이 정해인의 빈틈을 노리며 반격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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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인은 몸을 틀어 공격을 회피하려 했지만 양쪽에서 날라오는 공격에, 몽둥이의 끝이 아슬아슬하게 그의 옆구리를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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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바로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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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이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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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X발 새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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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욕지기와 함께, 활시위가 팽팽히 당겨지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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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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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혁은 화들짝 놀라 하시온을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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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온의 손에 들린 활은 이미 가득 당겨져 있었고,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정해인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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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잠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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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혁이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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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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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은 번개처럼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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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은 정해인의 등을 향해 곧장 직선으로 날아갔고, 순간 숨이 멎을 듯한 긴장감이 윤상혁의 심장을 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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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해인의 행동은 재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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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뒤를 보지도 않은 채, 마치 본능적으로 알기라도 한 듯 고개를 살짝 옆으로 꺾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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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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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은 정해인의 귀 옆을 스치며 그 궤적 끝에서 트롤의 미간을 정확히 꿰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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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인이 뒤를 돌아보며 엄지를 살짝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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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엄지를 본 하시온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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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혁은 방금의 상황을 떠올리며 깊게 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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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롤은 고블린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개체다. 한 마리 한 마리가 거대한 체구와 압도적인 완력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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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학생 중에, 저렇게 트롤 여럿을 단독으로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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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름들을 하나씩 떠올리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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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방금 그 정신나간 사격과, 그보다 더 정신나간 회피는 생각을 그만두게 만들기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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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가능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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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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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관 이 미친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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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의 핵심이자 꽃은 함정이라지만, 이렇게 공격적으로 배치해 뒀을지는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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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다가 쇠뇌에 걸린 화살촉에 매끈거리는 그 액체, 분명 마비 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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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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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본대와의 거리를 조금 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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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던전의 난도가 높아 보이니, 돌발 상황을 통제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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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러한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우리는 곧바로 안전 구역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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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공간에 배치된 몇 개의 의자와 간이 테이블, 한쪽 벽에는 생수를 비롯한 간단한 보급품이 준비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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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편히 쉬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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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혁은 의자에 털썩 앉으며 숨을 고르더니, 내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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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해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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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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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랑 시온… 혹시 아는 사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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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에 나는 시온을 흘끗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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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구석에 앉아 활줄을 점검하고 있었다. 고개를 숙인 채, 평소처럼 태연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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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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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합이 너무 좋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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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개를 살짝 저으며 대충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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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오래 알아 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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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도 내 머릿속에 묘한 기분이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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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시온은 왜 시드로 선발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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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크도 19위로 충분히 선발될만한 등수였다. 그리고 단언하건대 시온은 절대 19위 정도의 실력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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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온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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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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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고개를 들며 내 눈을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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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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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닛 수업 때, 무슨 일 있었어? 네가 시드가 아닌 게 이상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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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은 내 질문에 한참을 고민하더니, 별것 아니라는 듯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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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앞에서 막 자기들끼리 정하길래, 별말 없이 따라갔는데··· 결국 완전 하위권으로 완주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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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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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좀 소극적이긴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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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의 성격을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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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과 부딪히길 꺼리는 그녀의 태도는 종종 본인의 실력을 정확히 평가받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곤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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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극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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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듣고 있던 윤상혁이 의아한 듯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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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무슨 일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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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은 부드럽게 웃으며 윤상혁을 향해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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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아니. 아무 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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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다시 내게 시선을 돌리며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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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내가 시드였으면 너랑 같은 팀 못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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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의 미소는 어딘가 장난스러우면서도 다정한 기색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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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게 더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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