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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좋은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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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유하나는 여덟이서 승리를 자축하는 회식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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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한 창이 막 이렇게 떨어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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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혁이 오버스러운 몸짓으로 양손을 휘두르며 이야기하자, 학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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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여기는 교내 식당, 학생에게 어울리는 식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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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냠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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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옆에서 열심히 식사 중인 윤채하가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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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좀 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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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툴툴거리며 윤채하의 접시 쪽으로 젓가락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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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하얀 생선 살을 조심스럽게 발라내어 그녀의 접시에 가만히 올려주자, 윤채하가 순간적으로 동작을 멈추며 멍하니 나를 올려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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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 끝에 묻은 소스를 천천히 닦아내는 그녀의 볼이 금세 붉은빛으로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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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기뻐 보이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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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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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가 아주 작게, 속삭이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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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다른 부드러운 어조, 그녀는 곧 쑥스러운 듯 시선을 급히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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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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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피식 웃으며 묻자, 윤채하는 살짝 입술을 깨물더니 애써 무덤덤한 척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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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여러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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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말을 흐린 채, 그녀는 급히 젓가락으로 생선 살을 깨작거리다가, 이내 천천히 입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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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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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의 원래 이미지와는 아주 딴판인 반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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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일전에 보여준 카테나치오에 대한 고마움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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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새로운 절기(絕技)를 익히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되기도 했고, 대부분의 영웅은 본인의 비기를 꽁꽁 숨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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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인터넷에서는 오늘 가온에서 펼쳐진 모의 교류전에 대한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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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것 봐. ‘신성의 탄생.’ ‘금발 마법사 미쳤다.’ 난리도 아니네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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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판에는 이와 같은 말들이 끊임없이 그녀를 한껏 치켜세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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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혁이 스마트워치를 들고 게시판 반응을 읽어주자, 테이블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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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받는 것에는 또 익숙한지, 윤채하는 개의치 않고 입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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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별말 없이 다시 생선 살을 발라 윤채하의 접시에 올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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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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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갑자기, 왁자지껄했던 식탁이 조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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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들어보니 팀원들 전부가 묘한 눈빛으로 우리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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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머뭇거리던 고민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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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아까부터 좀 궁금했던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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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나와 윤채하를 번갈아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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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둘이 사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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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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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생선 가시를 계속 발라 주길래… 솔직히 일반적인 사이에서 할 만한 건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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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니 그렇게 보일 수도 있긴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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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고려했던 부분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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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시선을 크게 신경 쓰는 성격이 아니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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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사귀어. 해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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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입을 떼기도 전에, 옆에 있던 유하나가 먼저 나서 고민준의 말을 잘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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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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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치 확인이라도 하듯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 싱긋 웃으며 내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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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안 사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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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가 나에게 흥미가 있다고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기술의 영역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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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대답이 마음에 든 듯 유하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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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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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저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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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이 식당 벽에 걸린 TV를 보며 허한 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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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속도로 주변 테이블의 학생들도 웅성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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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자연스레 시선을 화면으로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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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웅 단체, 사도 격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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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자막이 굵직하게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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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흥분한 목소리의 앵커가 실시간 상황을 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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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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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갑자기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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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안이 순식간에 술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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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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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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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상안이 모두 정리된 지금, 영웅 협회가 엠바고를 해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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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밍은 예상보다 빠르긴 했으나, 별문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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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속 캐스터가 상기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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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도 토벌 작전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네 개 단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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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맞춰 자료화면이 교체되며 하나씩 자막이 띄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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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퀴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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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카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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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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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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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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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단만 봐도 감탄이 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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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 대한민국의 프론트 라인을 담당하는 유명 단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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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탄성을 터뜨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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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어진 자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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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훈 개별 영웅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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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화면의 톤이 한층 강조되고, 보다 굵은 자막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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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어지는 명단 중 가장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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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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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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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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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영웅 협회는 벌써부터 스타 만들기의 빌드 업을 시작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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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귀? 묵귀가 누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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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 그 있잖아 작년에 마물 웨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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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 사이에 작은 소란이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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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쟁한 영웅들 사이, 이름이 가장 위에 올라가 있다는 것 자체로 관심이 쏠릴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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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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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혁과 김대현이 동시에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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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뭔가에 홀린 듯한 속도로 고개가 내 쪽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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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학교에서 내 정체를 아는 몇 안 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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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나는 스테이크를 썰다 말고, 조용히 나이프를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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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는 손가락을 입가로 가져가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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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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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 지퍼로 잠그는 시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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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곤,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표정을 바꾸고 썰어놓은 스테이크 한 점을 내 입에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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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에 협회 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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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나는 작은 목소리로 조용히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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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오요이 아치(토요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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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입안 가득 스테이크를 씹으며, 웅얼거리듯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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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나는 그런 나를 바라보다, 입가를 손으로 가린 채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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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벌의 시점은 3주 전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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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의 차분한 목소리가 화면 위로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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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순간, 건너편의 윤채하가 조용히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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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 아르카디아…영광 병원… 묵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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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눈동자가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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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퍼즐을 맞추듯,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빠르게 조립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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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의 눈동자의 확신이 깃드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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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고개가, 내 쪽으로 팍- 하고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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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롭고 예리한 눈빛. 나는 잠시 스테이크를 씹는 턱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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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일전에, 내가 기절해 있던 병실을 찾아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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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성녀와도 마주쳤고 영광이 운영하는 병원 최상층까지도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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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추론 능력이 모든 조각을 완성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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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정답을 확인하는 단계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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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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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가 대뜸 내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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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모두 생각하는 것은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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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씹던 고기를 대충 넘기고, 싱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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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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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고 확실한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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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눈동자가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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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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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토요일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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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 앞은 인산인해로 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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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은 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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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도대체, 묵귀가 누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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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훈이 크다는 것도, 엄청나게 유망하다는 것도 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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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게 대체 누구냐는 것. 그게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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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는 ‘묵귀’라는 영웅명 외에는 그 어떤 정보도 공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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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차피 언젠가는 협회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 분명했기에, 사람들은 이곳에서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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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렇게까지 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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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식자재 트럭으로 위장한 영감의 차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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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키지 않았으면 하는 게 네 뜻 아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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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는 말이긴 했다. 아는 사람이 몇 있는 것과, 세간에 공개되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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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번에도 건물 뒤편 주차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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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은 나와 영감이 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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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미러를 통해 뒷좌석에 앉아있는 윤채하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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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협회 방문이 처음인 듯, 약간 들뜬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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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쉬고 있어. 금방 다녀올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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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이제 내 정체를 알아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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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상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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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악신의 보옥을 구경시켜주기 위해서는 내 정체를 알려야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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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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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는 짧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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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은 차를 주차장에 세운 뒤, 우리를 내려주고 정문 쪽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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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대외적으로는 정식 절차를 밟아 입장할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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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서 내리자, 협회 직원 하나가 급하게 뛰쳐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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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님, 오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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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우리를 보더니 반갑게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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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김길규 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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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내 담당 직원이 된 것 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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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혹시 이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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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곧 옆에 있는 윤채하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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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친구예요. 1층에서 기다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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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친구분께서는 저 엘리베이터 이용해 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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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가 있어. 금방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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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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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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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카페지 아마 발발거리며 돌아다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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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금 조용히 프라이빗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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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의 접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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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생애에 한두 번 들어갈까 말까 한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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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이번에도 그 안으로 말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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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의 책상에는 박서희가 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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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날 진짜로 놀라게 한 건 그녀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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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등 뒤. 유리로 된 전시장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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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하나 각을 맞춘 그 전시장은 마법 장치로 인해 안쪽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만큼은 숨겨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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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준비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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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협회는 이번에 정말 아낄 생각이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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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정해인 영웅님. 아니, 묵귀님이라 불러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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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희는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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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를 단단히 했는지, 자신감이 넘치는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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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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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볍게 맞인사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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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정식 공훈 기록이 며칠 전에 공개되었습니다. 물론 해인 님의 요청으로 묵귀에 대한 모든 신상 정보는 비밀로 처리했습니다. 단연 독보적이에요. 아마 뉴스 한 면은 통째로 장식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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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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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희는 말하며 테이블 위로 단정한 서류 봉투 하나를 꺼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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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 협상의 쟁점인 추가 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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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용히 손을 뻗어 봉투를 들었다. 고급스럽게 음각된 협회의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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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투를 열자, 내부에는 한 장의 문서가 정갈하게 접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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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개의 보구 중, 하나를 고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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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서를 내려다보다가, 다시 자연스레 그녀의 뒤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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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는 장치로 가려진 유리 전시장이 줄지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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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희는 미소를 지으며 손짓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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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첫 번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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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말에 따라, 협회 직원이 첫 번째 전시장의 장치를 조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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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유리의 틈이 열리며 내부가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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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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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마시던 물을 그대로 뱉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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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안에 놓인 것은 다름 아닌, 찬란하게 빛나는 백금색의 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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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번에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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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엘티움 (Erielt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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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 개, 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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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카디아가 섬기는 신, 에리엘이 직접 남긴 신성의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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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에서도 수차례 반환을 요청했으나 단 한 번도 회신조차 받지 못했던, 바로 그 티아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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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왜 나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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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물컵을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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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티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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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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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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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티아라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돌려 두 번째 전시장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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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 두 번째고 나발이고 의미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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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티아라다. 당연히 사용 대상은 천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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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전시장의 장치가 풀리자 보이는 것은 유려하고 웅장한 갑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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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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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작게 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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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웃음을 박서희는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였는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전시장의 장치까지 연속으로 해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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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날카로운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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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고대 전사의 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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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고대의 마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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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훌륭한 보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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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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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는 내가 티아라를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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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유물은 협회와 아르카디아 교단 내부를 제외하곤 그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은 물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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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시장 가치나 실전성보다는 상징성,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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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조차 이 유물의 실질적인 기능이나 성능에 대해서는 파악하지 못한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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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화려하지만 쓸모는 적다’고 여기는 수준일 것이다. 나중에 적당히 신전에 팔아넘길, 그런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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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1번에 배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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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보여줘 실망을 유도하고, 곧바로 2~5번의 실용적인 보구들을 연달아 제시해 내가 그쪽을 선택하게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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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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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선택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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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상징성 외에는 가치가 없으니 줘도 괜찮다는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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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할 생각은 당연히 없겠지만 협회에서 측정한 시장 가치만 따진다면 아마 뒤에 것들 보다는 부족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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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다른 보구들도 엄청난 성능들이다. 돈 주고도 사기 어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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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건 내 기준에선 중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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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희는 부드러운 미소로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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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으로 하시겠습니까? 선택의 시간은 여유롭게 드리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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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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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을 끊으며 손가락을 곧장 첫 번째 장식장을 향해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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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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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걸로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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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박서희의 눈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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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크 아웃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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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가 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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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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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투명하지만 외부에서 안이 보이지 않는 고급 유리 케이스에 티아라를 담아 접견실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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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희는 내가 티아라를 선택할지는 몰랐는지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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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딜. 베리 굿 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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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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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후보는 있었으나 설마 협회 쪽에서 이런 걸 제시할지는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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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성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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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너희들 생각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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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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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견실을 나서자 복도 끝에서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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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카디아의 단원들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활약을 펼쳤던 팔라딘이 아니라, 크루세이더까지 함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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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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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옆엔 주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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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도 협상을 위해 협회에 방문한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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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인상을 구기고 있던 천여울이 나를 보자마자 표정을 풀고 환하게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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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은 잘 했어? 뭐 받았어? 쟤네가 뭐 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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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진하게 묻는 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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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서는 요한과 주교가 눈빛을 주고받으며 나를 노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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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잘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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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밍이 완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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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유리 케이스의 뚜껑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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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이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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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스가 열리자, 은은한 빛이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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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이 장면을 바라보던 주교의 눈동자가 강하게 요동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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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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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입에서 짧은 비명이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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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를 눈치챘는지 급하게 이쪽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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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가 오기 전에, 태연히 손을 뻗어 유리상자에서 티아라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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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직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천여울의 머리 위에 그것을 살며시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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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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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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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일렁이며, 티아라가 성스러운 기운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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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여울의 머리카락이 찬란한 오오라에 감싸이고, 주변의 공기가 순식간에 정화되듯 맑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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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어…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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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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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있던 성직자들이 저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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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쪽은 기쁨과 경외가 교차한 표정으로 눈을 떼지 못했고, 용사 쪽은 점점 침울해진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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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는 입술을 꽉 깨물며 한 발도 다가오지 못한 채 멈춰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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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시선 앞에서, 나는 조용히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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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어울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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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여울의 볼이 발그스름하게 물들더니, 조심스럽게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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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아라가 빛을 머금더니 이내 서서히 형태를 잃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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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백의 오오라가 천천히, 증기처럼 흩어져, 마치 숨결처럼 그녀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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