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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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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좋은 승리.

팀 유하나는 여덟이서 승리를 자축하는 회식을 열었다.

“이만한 창이 막 이렇게 떨어지는데~”

윤상혁이 오버스러운 몸짓으로 양손을 휘두르며 이야기하자, 학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물론 여기는 교내 식당, 학생에게 어울리는 식당이다.

-냠냠.

바로 옆에서 열심히 식사 중인 윤채하가 눈에 들어왔다.

“천천히 좀 먹어라.”

나는 툴툴거리며 윤채하의 접시 쪽으로 젓가락을 뻗었다.

부드러운 하얀 생선 살을 조심스럽게 발라내어 그녀의 접시에 가만히 올려주자, 윤채하가 순간적으로 동작을 멈추며 멍하니 나를 올려다봤다.

입술 끝에 묻은 소스를 천천히 닦아내는 그녀의 볼이 금세 붉은빛으로 달아올랐다.

어쩐지 기뻐 보이는 모습.

“… 고마워.”

윤채하가 아주 작게, 속삭이듯 말했다.

평소와 다른 부드러운 어조, 그녀는 곧 쑥스러운 듯 시선을 급히 돌렸다.

“갑자기?”

내가 피식 웃으며 묻자, 윤채하는 살짝 입술을 깨물더니 애써 무덤덤한 척 대답했다.

“그냥… 여러모로….”

그렇게 말을 흐린 채, 그녀는 급히 젓가락으로 생선 살을 깨작거리다가, 이내 천천히 입에 넣었다.

‘재밌네.

윤채하의 원래 이미지와는 아주 딴판인 반응이다.

아마 일전에 보여준 카테나치오에 대한 고마움이지 싶다.

그녀가 새로운 절기(絕技)를 익히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되기도 했고, 대부분의 영웅은 본인의 비기를 꽁꽁 숨기니까.

벌써 인터넷에서는 오늘 가온에서 펼쳐진 모의 교류전에 대한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야, 이것 봐. ‘신성의 탄생. ‘금발 마법사 미쳤다. 난리도 아니네 아주.”

게시판에는 이와 같은 말들이 끊임없이 그녀를 한껏 치켜세우고 있었다.

윤상혁이 스마트워치를 들고 게시판 반응을 읽어주자, 테이블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칭찬받는 것에는 또 익숙한지, 윤채하는 개의치 않고 입에 넣었다.

나는 별말 없이 다시 생선 살을 발라 윤채하의 접시에 올려주었다.

“…?”

그런데 갑자기, 왁자지껄했던 식탁이 조용해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팀원들 전부가 묘한 눈빛으로 우리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고민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저기… 아까부터 좀 궁금했던 건데.”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나와 윤채하를 번갈아 쳐다봤다.

“혹시, 둘이 사귀어?”

“어?”

“아니, 생선 가시를 계속 발라 주길래… 솔직히 일반적인 사이에서 할 만한 건 아니잖아?”

생각해 보니 그렇게 보일 수도 있긴 하겠다.

전혀 고려했던 부분이 아니었다.

남의 시선을 크게 신경 쓰는 성격이 아니기도 하고.

“안 사귀어. 해인이.”

내가 입을 떼기도 전에, 옆에 있던 유하나가 먼저 나서 고민준의 말을 잘랐다.

“그치?”

그리고 마치 확인이라도 하듯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 싱긋 웃으며 내게 물었다.

“어, 안 사귀지.”

윤채하가 나에게 흥미가 있다고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기술의 영역일 것이다.

내 대답이 마음에 든 듯 유하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어…? 저게 뭐야?”

김대현이 식당 벽에 걸린 TV를 보며 허한 소리를 냈다.

급속도로 주변 테이블의 학생들도 웅성대기 시작했다.

우리도 자연스레 시선을 화면으로 돌렸다.

[한국 영웅 단체, 사도 격파]

뉴스 자막이 굵직하게 떠 있었다.

다소 흥분한 목소리의 앵커가 실시간 상황을 전하고 있었다.

-진짜야?

-사도? 갑자기 무슨?

식당 안이 순식간에 술렁였다.

‘슬슬이구나.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보상안이 모두 정리된 지금, 영웅 협회가 엠바고를 해제한 것이다.

타이밍은 예상보다 빠르긴 했으나, 별문제는 없다.

화면 속 캐스터가 상기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번 사도 토벌 작전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네 개 단체는….”

그에 맞춰 자료화면이 교체되며 하나씩 자막이 띄워진다.

[뱅퀴셔]

[아르카디아]

[청풍대]

[맹주]

“와… 역시.”

명단만 봐도 감탄이 절로 나왔다.

각각 대한민국의 프론트 라인을 담당하는 유명 단체들.

학생들이 탄성을 터뜨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리고 이어진 자막.

[공훈 개별 영웅 명단]

자료화면의 톤이 한층 강조되고, 보다 굵은 자막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어지는 명단 중 가장 위에.

[묵귀]

내가 있었다.

‘미친.

아무래도 영웅 협회는 벌써부터 스타 만들기의 빌드 업을 시작한 모양이었다.

-묵…귀? 묵귀가 누구야?

-아, 아! 그 있잖아 작년에 마물 웨이브!!

학생들 사이에 작은 소란이 번진다.

쟁쟁한 영웅들 사이, 이름이 가장 위에 올라가 있다는 것 자체로 관심이 쏠릴 수 밖에 없었다.

“묵… 귀···?”

윤상혁과 김대현이 동시에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천천히, 뭔가에 홀린 듯한 속도로 고개가 내 쪽으로 돌아온다.

이 학교에서 내 정체를 아는 몇 안 되는 사람들.

유하나는 스테이크를 썰다 말고, 조용히 나이프를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손가락을 입가로 가져가더니···.

-스윽.

입을 지퍼로 잠그는 시늉.

그리곤,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표정을 바꾸고 썰어놓은 스테이크 한 점을 내 입에 집어넣었다.

“이번 주에 협회 갈 거야?”

유하나는 작은 목소리로 조용히 속삭였다.

“어, 오요이 아치(토요일 아침).”

나는 입안 가득 스테이크를 씹으며, 웅얼거리듯 답했다.

유하나는 그런 나를 바라보다, 입가를 손으로 가린 채 피식 웃었다.

-토벌의 시점은 3주 전이며….

앵커의 차분한 목소리가 화면 위로 흘러나왔다.

그런데 그 순간, 건너편의 윤채하가 조용히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3주… 아르카디아…영광 병원… 묵귀…?”

그녀의 눈동자가 깊어진다.

마치 퍼즐을 맞추듯,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빠르게 조립되고 있었다.

윤채하의 눈동자의 확신이 깃드는 순간.

그녀의 고개가, 내 쪽으로 팍- 하고 돌아갔다.

날카롭고 예리한 눈빛. 나는 잠시 스테이크를 씹는 턱을 멈췄다.

그녀는 일전에, 내가 기절해 있던 병실을 찾아왔었다.

그리고 성녀와도 마주쳤고 영광이 운영하는 병원 최상층까지도 올라왔다.

그녀의 추론 능력이 모든 조각을 완성시켰다.

이제는 정답을 확인하는 단계만 남았다.

“…맞아?”

윤채하가 대뜸 내게 물었다.

둘 모두 생각하는 것은 똑같았다.

나는 씹던 고기를 대충 넘기고, 싱긋 웃었다.

“어.”

짧고 확실한 대답.

그녀의 눈동자가 떨렸다.


시간이 흘러, 토요일 오전.

협회 앞은 인산인해로 북적였다.

결론은 간단했다.

‘그래서 도대체, 묵귀가 누구야?

공훈이 크다는 것도, 엄청나게 유망하다는 것도 다 좋다.

하지만 그게 대체 누구냐는 것. 그게 문제였다.

협회는 ‘묵귀’라는 영웅명 외에는 그 어떤 정보도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차피 언젠가는 협회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 분명했기에, 사람들은 이곳에서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근데, 이렇게까지 해야 해요?”

나는 지금, 식자재 트럭으로 위장한 영감의 차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들키지 않았으면 하는 게 네 뜻 아니었나.”

맞는 말이긴 했다. 아는 사람이 몇 있는 것과, 세간에 공개되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었으니까.

우리는 이번에도 건물 뒤편 주차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일행은 나와 영감이 끝이 아니다.

백미러를 통해 뒷좌석에 앉아있는 윤채하를 바라봤다.

그녀는 협회 방문이 처음인 듯, 약간 들뜬 표정이었다.

“카페에서 쉬고 있어. 금방 다녀올 테니까.”

그녀는 이제 내 정체를 알아바렸다.

사실 상관없었다.

어차피 악신의 보옥을 구경시켜주기 위해서는 내 정체를 알려야 했으니까.

“응.”

윤채하는 짧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영감은 차를 주차장에 세운 뒤, 우리를 내려주고 정문 쪽으로 향했다.

그는 대외적으로는 정식 절차를 밟아 입장할 필요가 있었다.

차에서 내리자, 협회 직원 하나가 급하게 뛰쳐나왔다.

“해인님, 오셨군요!”

그는 우리를 보더니 반갑게 맞이했다.

이번에도 김길규 씨였다.

거의 내 담당 직원이 된 것 같은 느낌.

“그런데 혹시 이분은….”

하지만 곧 옆에 있는 윤채하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아, 친구예요. 1층에서 기다릴 겁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친구분께서는 저 엘리베이터 이용해 주시면 됩니다.”

“먼저 가 있어. 금방 갈게.”

“응.”

윤채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말이 카페지 아마 발발거리며 돌아다닐 것이다.

나는 다시금 조용히 프라이빗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협회의 접견실.

영웅 생애에 한두 번 들어갈까 말까 한 공간.

그리고 나는, 이번에도 그 안으로 말을 들였다.

눈앞의 책상에는 박서희가 앉아있었다.

하지만, 날 진짜로 놀라게 한 건 그녀가 아니었다.

그녀의 등 뒤. 유리로 된 전시장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하나하나 각을 맞춘 그 전시장은 마법 장치로 인해 안쪽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만큼은 숨겨지지 않았다.

‘제대로 준비했는데?

아무래도, 협회는 이번에 정말 아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안녕하세요, 정해인 영웅님. 아니, 묵귀님이라 불러야 할까요?”

박서희는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를 단단히 했는지, 자신감이 넘치는 미소였다.

“네, 안녕하세요.”

나는 가볍게 맞인사를 건넸다.

“먼저, 정식 공훈 기록이 며칠 전에 공개되었습니다. 물론 해인 님의 요청으로 묵귀에 대한 모든 신상 정보는 비밀로 처리했습니다. 단연 독보적이에요. 아마 뉴스 한 면은 통째로 장식하겠죠.”

“….”

박서희는 말하며 테이블 위로 단정한 서류 봉투 하나를 꺼내놓았다.

“그리고, 오늘 협상의 쟁점인 추가 보상입니다.”

나는 조용히 손을 뻗어 봉투를 들었다. 고급스럽게 음각된 협회의 로고.

봉투를 열자, 내부에는 한 장의 문서가 정갈하게 접혀 있었다.

“다섯개의 보구 중, 하나를 고르실 수 있습니다.”

나는 문서를 내려다보다가, 다시 자연스레 그녀의 뒤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장치로 가려진 유리 전시장이 줄지어 있다.

박서희는 미소를 지으며 손짓했다.

“우선, 첫 번째입니다.”

그녀의 말에 따라, 협회 직원이 첫 번째 전시장의 장치를 조작했다.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유리의 틈이 열리며 내부가 드러난다.

그 순간.

난 마시던 물을 그대로 뱉을 뻔했다.

유리 안에 놓인 것은 다름 아닌, 찬란하게 빛나는 백금색의 티아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에리엘티움 (Erieltium)

‘뭔 개, 씹.

아르카디아가 섬기는 신, 에리엘이 직접 남긴 신성의 유물.

교단에서도 수차례 반환을 요청했으나 단 한 번도 회신조차 받지 못했던, 바로 그 티아라였다.

‘이걸 왜 나한테?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물컵을 내려놓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티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두 번째입니다.”

박서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을 이었다.

나는 티아라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돌려 두 번째 전시장을 바라봤다.

솔직히 말해 두 번째고 나발이고 의미가 없었다.

무조건 티아라다. 당연히 사용 대상은 천여울.

두 번째 전시장의 장치가 풀리자 보이는 것은 유려하고 웅장한 갑주였다.

‘아, 포기.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작게 웃음을 흘렸다.

그 웃음을 박서희는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였는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전시장의 장치까지 연속으로 해제했다.

하나는 날카로운 창.

하나는 고대 전사의 투구.

하나는 고대의 마법서.

모두 훌륭한 보구들이다.

‘재밌네.

협회는 내가 티아라를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다.

이 유물은 협회와 아르카디아 교단 내부를 제외하곤 그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은 물건이다.

그만큼 시장 가치나 실전성보다는 상징성,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

협회조차 이 유물의 실질적인 기능이나 성능에 대해서는 파악하지 못한 상태.

그저 ‘화려하지만 쓸모는 적다’고 여기는 수준일 것이다. 나중에 적당히 신전에 팔아넘길, 그런 수준.

그러니 1번에 배치한 것이다.

처음부터 보여줘 실망을 유도하고, 곧바로 2~5번의 실용적인 보구들을 연달아 제시해 내가 그쪽을 선택하게끔 한다.

그런데.

‘만약 선택해도?

어차피 상징성 외에는 가치가 없으니 줘도 괜찮다는 판단.

판매할 생각은 당연히 없겠지만 협회에서 측정한 시장 가치만 따진다면 아마 뒤에 것들 보다는 부족할 것이다.

물론 다른 보구들도 엄청난 성능들이다. 돈 주고도 사기 어려운.

그러나 그건 내 기준에선 중요하지 않았다.

박서희는 부드러운 미소로 말을 이었다.

“어떤 것으로 하시겠습니까? 선택의 시간은 여유롭게 드리겠….”

“저거요.”

나는 말을 끊으며 손가락을 곧장 첫 번째 장식장을 향해 뻗었다.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저걸로 주세요.”

순간, 박서희의 눈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테이크 아웃 되죠?”

한시가 급했다.


나는 투명하지만 외부에서 안이 보이지 않는 고급 유리 케이스에 티아라를 담아 접견실을 빠져나왔다.

박서희는 내가 티아라를 선택할지는 몰랐는지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굿 딜. 베리 굿 딜.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여러 후보는 있었으나 설마 협회 쪽에서 이런 걸 제시할지는 몰랐다.

‘실전성이 없다?

그건 너희들 생각이고.

“어?”

접견실을 나서자 복도 끝에서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아르카디아의 단원들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활약을 펼쳤던 팔라딘이 아니라, 크루세이더까지 함께였다.

요한.

그리고, 그 옆엔 주교까지.

그들도 협상을 위해 협회에 방문한듯했다.

살짝 인상을 구기고 있던 천여울이 나를 보자마자 표정을 풀고 환하게 달려왔다.

“협상은 잘 했어? 뭐 받았어? 쟤네가 뭐 준대?”

순진하게 묻는 여울.

뒤에서는 요한과 주교가 눈빛을 주고받으며 나를 노려보고 있다.

“마침 잘 왔어.”

타이밍이 완벽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유리 케이스의 뚜껑을 열었다.

-치이이익.

케이스가 열리자, 은은한 빛이 퍼졌다.

멀리서 이 장면을 바라보던 주교의 눈동자가 강하게 요동쳤다.

“무슨…!”

그의 입에서 짧은 비명이 새어 나왔다.

정체를 눈치챘는지 급하게 이쪽으로 다가온다.

나는 그가 오기 전에, 태연히 손을 뻗어 유리상자에서 티아라를 꺼냈다.

그리고, 아직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천여울의 머리 위에 그것을 살며시 얹었다.

그 순간.

-후우웅….

빛이 일렁이며, 티아라가 성스러운 기운을 일으켰다.

천여울의 머리카락이 찬란한 오오라에 감싸이고, 주변의 공기가 순식간에 정화되듯 맑아졌다.

“허어… 무슨….”

“…….”

주변에 있던 성직자들이 저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성녀 쪽은 기쁨과 경외가 교차한 표정으로 눈을 떼지 못했고, 용사 쪽은 점점 침울해진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다.

주교는 입술을 꽉 깨물며 한 발도 다가오지 못한 채 멈춰섰다.

그들의 시선 앞에서, 나는 조용히 피식 웃었다.

“잘 어울리네.”

천여울의 볼이 발그스름하게 물들더니, 조심스럽게 눈을 감았다.

티아라가 빛을 머금더니 이내 서서히 형태를 잃기 시작했다.

순백의 오오라가 천천히, 증기처럼 흩어져, 마치 숨결처럼 그녀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