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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아….”
은빛 머리칼이 피로 엉겨 붙었다. 질질 끌리는 머리카락과 함께, 붉은 흔적이 땅 위에 끈적하게 남았다.
메어리는 필사적으로 바닥을 기어갔다.
그녀는 도망치고 있었다.
턱이 얼굴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갔다.
입은 벌어진 채, 흐릿한 앓는 소리만이 간신히 새어 나온다.
반복할 수 있는 것은, 고통스러운 단말마뿐.
메어리는 공포에 질렸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그분의 은혜로 강한 힘을 가졌고, 살아오며 이렇게까지 코너에 몰려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자신이 절대 사망할 수 없는 공간 속에서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정신이 무너져갔다.
죽지 않는다는 사실조차 망각할 정도로, 원초적인 공포가 그녀를 짓누르고 있었다.
어째서.
어째서 인간 하나가, 자신을 이렇게까지 몰아붙일 수 있는가.
물론 지금의 자신은 힘이 약해진 상태였다.
그럼 만약 본신(本身)의 전력을 모두 끌어낸다고 하더라도, 과연 그녀를 이길 수 있을까?
그 부분은 메어리 스스로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천여울은 그녀가 가장 강력했던 시절, 전장의 성녀(聖女)라 불리던 때의 모습을 불러왔다.
사도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강했던 과거.
그러나 현시점의 사도는 본신의 힘을 온전히 발휘할 수도 없는 상태.
그런 그녀가 천여울을 상대로 제대로 된 전투를 펼칠 수 있을 리 없었다.
메어리는 떨리는 손을 바닥에 짚었다.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자신을 차갑게 내려다보는 인간이 서 있었다.
천여울. 그녀 역시 몸 곳곳에 상처를 입었으나, 메어리가 입은 피해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했다.
“후….”
천여울이 천천히 손등으로 입가의 피를 닦았다.
그 피가 옅은 붉은 흔적을 남기며 그녀의 턱을 따라 흘러내렸다.
천여울 또한 알고 있었다. 이 공간에서, 사도는 죽지 않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정도의 피해를 입히게 된다면 그들 또한 회복을 위해 오랜 시간 동안 정양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곧 악신의 부활 또한 그만큼 늦춰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시간을 벌었다.
그거면 충분했다.
그녀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천여울은 천천히 몸을 숙여, 메어리의 피투성이가 된 머리칼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또 보자~”
메어리 입장에서는 절대 달갑지 않은 소리였다.
천여울의 손에서 빛이 번쩍였다.
-콰드득!
메어리의 머리가 신전의 바닥에 무심히 내동댕이쳐졌다.
그 몸이 순식간의 어둠의 파편으로 산산이 흩어졌다.
“으윽….”
그 순간 천여울 또한 가슴을 움켜쥐었다.
비록 회귀 전의 경지를 불러올 수는 있었지만, 지금의 신체는 아직 여물지 않은 학생의 몸.
과거의 자신이 지닌 힘을 온전히 담기엔 너무나 부족한 그릇이었다.
-째짹!
백령이 천여울의 어깨 위에서 작게 지저귀었다. 걱정하듯 그녀의 뺨을 부리로 가볍게 톡톡 두드렸다.
“응… 괜찮아… 조금 쉬면 괜찮아 질 거야….”
천여울의 입술 끝에 작게 미소가 피어났다.
이 정도 고통은, 그가 짊어진 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으므로.
천여울은 천천히 숨을 고르며 눈을 감았다.
동일한 시각.
시공간을 초월한, 절대자의 공간.
고요한 바람에 의해 사라졌던 유하나는, 눈을 떴다.
“만나고 싶었소.”
깊고 낮게 깔린 목소리. 넓은 공간에 흐릿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눈앞에 분명 존재하지만, 마치 없는 것처럼 흐릿하다.
사도(使徒), 하야토.
그는 유하나를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내디뎠다.
흔들림 없는 시선이 그녀를 꿰뚫어 보고 있었다.
“단번에 알 수 있었소. 당신도. 나처럼 무(武)를 추구하는 자이자. 가문이 기대를 거는 천재.”
하야토의 손끝이 가볍게 흔들렸다.
그와 동시에, 공간이 부드럽게 뒤틀렸다. 그 아공간에서 예리한 검이 솟아 나왔다.
“나 또한 그대와 같은 길을 걸었었지. 그리고 그 길의 끝을 목격한 자가, 지금 당신 앞에 서 있소.”
그의 목소리에는 이상할 만큼의 확신이 서려 있었다.
“비록 그대는 오늘 이곳에서 생을 마감하겠으나, 그 전에, 내게 당신이 이륙한 경지를 보여줬으면 좋겠소.”
마치 정중한 예우를 차리며 말했지만, 담긴 뜻은 섬뜩했다.
“날 너무 원망하지는 마시오, 어차피, 그 끝은 허무하오.”
그 말끝에는 어쩐지 허탈함이 묻어 있었다.
그러나 유하나는 그저 서 있을 뿐이었다.
대답조차 하지 않은 채, 그녀는 검집에 꽂혀있는 동백검을 쥐기 시작했다.
“좋소.”
하야토 또한 기쁜 얼굴을 하며, 검을 겨누었으나.
정작 유하나는 눈을 감고, 생각에 빠졌다.
과거의 일이었다.
그녀는 유 가(家)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유 가(家)의 검술을 익혔다.
태어났으니 유 씨였고, 태어났으니 검을 쥐었다.
검을 휘두르며 자랐고, 검을 휘두르며 살아왔다.
무를 향한 갈망은 있었으나, 그녀의 내면은 언제나 비어 있었다.
이유도 모른 채 익혔고, 목적도 모른 채 닦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에 의해.
그녀는 서서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변하기 시작했다.
텅 빈 도화지 같았던 유하나는, 그의 손길에 의해 하나하나 물들어갔다.
검을 휘두르는 법.
보폭을 조절하는 법.
검을 뻗는 순간, 어깨가 부드럽게 풀려야 하는 지점이 어디인지.
발을 디딜 때, 어디에 무게를 실어야 하는지.
살짝 무릎을 굽히면, 얼마나 더 빠르게 치고 나갈 수 있는지.
멈출 때, 발을 어떻게 비틀어야 순간적인 반격이 가능한지.
하다못해, 숨은 어떻게 들이쉬어야 하는지까지.
큰 것부터 작은 것까지 전부. 하나부터 열까지.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새하얀 그녀의 도화지는 서서히 채워져 갔다.
그의 숨결이 닿는 대로, 그의 손길이 흐르는 대로, 그녀는 철저히 물들어 갔다.
이제, 유하나는 더 이상 백지(白紙)가 아니었다.
오직 그만의 색으로 칠해진, 오롯이 그에게만 허락된 존재.
그런 그녀는 지금, 미소 짓고 있다.
뜨겁게 토해내는 숨결이 그녀의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다.
돌아왔음이 느껴진다.
완벽히 그의 색으로 물들었던, 그때의 그녀가.
오랜만에, 느껴지는 그와 하나가 됐다는 고양감. 그리고 일체감.
유하나는 검집에서 동백검을 꺼냈다.
그녀의 손끝이 부드럽게 떨렸다.
하야토는, 어디선가 흩날리는 꽃향기에 고개를 돌렸다.
이곳은 시공간을 초월한 무의 세계. 꽃 따위 있을 리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도달한 고유의 경지.
『무상난화(無上亂花)』
한없이 난무하는 꽃의 향연.
아찔할 만큼 화려하고, 위태로울 만큼 치명적이다.
어느 샌가 그녀의 주위를, 붉은 동백꽃 꽃잎이 환상처럼 휘감고 있었다.
유하나의 동작 하나하나는 부드러우면서도, 살얼음 위를 걷는 듯한 긴장감이 서려 있다.
“무슨…!”
그가 경악했다. 일말의 전조도 없이, 단숨에 기세가 바뀌었다.
유하나는 달뜬 미소를 지었다.
“~♫”
유하나가 휘파람을 가볍게 불자, 어딘가에서 작은 다람쥐 한 마리가 그녀의 어깨 위로 폴짝 뛰어올랐다.
작은 앞발로 그녀의 뺨을 만지작거리며, 가볍게 몸을 비볐다.
“안녕?”
그녀가 조용히 속삭였다.
사도 하야토는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그는 평생을 무(武)에 바쳤다.
그를 위해 위대하신 그분께 가문도, 지위도, 그의 모든 것을 바쳤다.
그런데도—
이토록 아름답고 완벽한 검술을 펼칠 수 있는 인간을 본 적이 없다.
결국 그가 손을 천천히 움직였다.
주위의 공간이 일그러지며, 투명한 검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끝을 알 수 없는 무수한 검의 향연. 그의 의지를 대변하며 무겁게 진동하는 칼날.
그러나, 유하나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그녀의 동백검이 허공에 부드럽게 선을 긋는다. 휘날리는 붉은 꽃잎들이 한없이 가벼운 춤을 추었다.
그녀가 펼치는 마지막 검무.
『무극홍련(無極紅蓮)』
—만개하는 붉은 꽃.
무한의 공허 속에서 태어난 홍련의 꽃잎이 하야토의 모든 공간을 잠식했다.
그 순간.
공간이 붉게 일렁였다.
-촤아악!
하야토의 온몸이 꽃잎 속에서 조각났다.
그는 본능적으로 두 손을 뻗어 자신의 목을 움켜쥐었다.
그러나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오는 것은.
마치 꽃잎처럼,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붉은 피.
눈을 감으면 온 세상이 붉었다. 피가 아니라, 마치 하나의 꽃밭처럼.
“어찌… 이런….”
그가 비틀거리며 무릎을 꿇었다.
그는 입술을 열었다.
묻고 싶었다.
‘어떤 집념을 가졌기에, 그런 무를 펼칠 수 있는 것이오?’
그러나. 입을 떼기도 전에. 그의 의식이 끊겼다.
그의 마지막 시야에는.
붉게 흩날리는 꽃잎과 그것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 여인의 모습뿐이었다.
그리고, 바람에 흩날리는 동백의 향기만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