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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를 다소 격하게 팼기 때문에, 환호보다는 야유가 나올 거라 생각했다.
 
유명하기도 하고, 인기도 많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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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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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관중들은 환호했다.
 
랭킹조차 없는 놈이 2위를 패버렸기 때문일까. 그들이 기대한 그림과는 달랐겠지만, 그 자체로 흥미로운 경기긴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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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발로 퇴장하는 것도 아니고, 들것에 실려 나가는 요한을 보니, 날카롭게 곤두서 있던 감정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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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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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간을 좁히며 손을 살짝 폈다.
 
방금까지 쥐어짜듯 움켜쥐고 있던 감각이 희미해졌다.
 
뭔가 다르다.
 
마치 내 감정이긴 한데, 이질적인 무언가가 끼어든 느낌. 누군가 귓가에 속삭이듯 부추기는 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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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내려가려 고개를 돌렸다.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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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쳐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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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에서 발생할 공격으로부터 관중을 보호하기 위해, 원래라면 경기장 주위로 강력한 보호막이 처져 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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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보호막 중 한구석이, 깨져 있었다.
 
목덜미를 타고 살기가 흘러들어왔다. 나는 주저 없이 뛰며 세 발짝 뒤로 물러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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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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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순간.
 
내가 방금까지 서 있던 자리에 거대한 무언가가 내리꽂혔다.
 
대지가 울렸다. 파편이 사방으로 튀며, 충격파가 퍼져나갔다.
 
한 발짝만 늦었어도, 그대로 찍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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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형체.
 
그것은 한 남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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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메이스를 바닥에 깊이 박아놓고, 그 끝을 단단히 움켜쥔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전투용으로 개량된, 교단 직속 성기사단의 고유 장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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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은 아무 말 없이 메이스를 다시 들어 올렸다. 메이스의 중럄은, 결코 가볍지 않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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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이 누군지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용사의 곁에서, 그를 호위하고 또 함께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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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세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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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이 가온에서 크루세이더라고 데리고 다니는 소꿉장난이 아닌, 최전선에서 마인을 척결하는 '진짜' 크루세이더였다.
 
용사를 위해, 용사에 의해 존재하는 집단이며, 충성심 하나 만큼은 막을 수 없다.
 
그들이 따르는 것은 오직 신과 용사. 법도, 도덕도, 세간의 시선도 중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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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제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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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려오는 방식이 특이하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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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이 묵묵히 나를 응시했다.
 
잠시 실려 나가는 요한 쪽을 바라보더니, 그쪽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다시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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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이 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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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목소리는 낮고 묵직했다. 그와 동시에, 거대한 형체가 사라졌다.
 
순간, 아까와 똑같은 살기가 온몸을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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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춤으로 급히 팔을 향했으나, 창은 없었다. 그러니,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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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낮춰 전신을 웅크리며 가드 자세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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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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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스가 내리꽂히는 순간, 충격이 퍼져나갔다. 그런데, 이상했다.
 
나는 아직 멀쩡했다. 메이스가, 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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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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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앞에는 남성의 형체가 서 있었다. 아무런 무구도 두르지 않은 남성.
 
그는 한 손을 들어 올려, 날아든 메이스를 맨손으로 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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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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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중들의 함성이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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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사의 표정이 흔들렸다.
 
그는 즉시 무기를 회수하며 몇 걸음 물러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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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메이스를 막아낸 사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팔을 툭툭 털어냈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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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련은 대련으로 보라고. 안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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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장난스럽고 여유로운 목소리.
 
눈앞의 성기사는, 이름을 읊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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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철…?”
 
​
 
박광철은 가볍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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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끼어들면 꼴이 좀 우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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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에 성기사가 눈살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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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세이더의 갑옷과 체격을 합치면, 크기 차이는 대략 두 배 이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광철의 기세가 경기장을 서서히 잡아먹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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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퀴셔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 이 이상 개입하면, 교단에 대한 선전포고로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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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긴 왜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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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철은 피식 웃으며 물러섰다. 그리고 내 어깨에 가볍게 손을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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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 우리가 데려갈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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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에 성기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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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퀴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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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철은 다시 한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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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포고….”
 
​
 
그는 가볍게 내 어깨를 밀어 옆으로 제쳐놓더니, 성기사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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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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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고 나른한 목소리. 그러나 그 속에 담긴 의미는 묵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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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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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릴 만큼, 경기장이 조용해졌다. 그 순간, 성기사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박광철은 웃으며,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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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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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다시 나를 향해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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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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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박광철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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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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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표정에는 장난기가 어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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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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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퀴셔가 전면에서 교단을 상대해 나를 데려갔다.
 
이는 교단과 척을 지는 것은 물론이고, 나에 대한 보호를 공식적으로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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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퇴장할 때도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와 질문 공세에 발이 묶일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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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비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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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박광철이 앞에서 다 쳐내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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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래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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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국밥을 한 숟갈 뜨면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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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르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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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를 두 손으로 감싼 채, 박광철은 뜨거운 국물을 후루룩 들이켰다.
 
뚝배기를 내려놓은 박광철은 수저를 손에 꽂은 채 내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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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그냥 보기만 하려 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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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더니 뭔가 생각났다는 듯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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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 인기가 너무 많던데?”
 
“그래서 영감한테 전하니까, 당장 데려오라 하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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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그의 독단적인 행동은 아니었다.
 
영감이 시켰다면야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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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철은 여유롭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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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해인아, 너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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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잠시 멈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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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주에, 아르카디아에… 또 뭐, 유씨 집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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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충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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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뭐 할거하고 다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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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철은 쿡쿡 웃으며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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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내일 상대는 누구야? 오늘은 경기 하나밖에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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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은 1회차의 경기만 치른다, 그리고 내일 2회 3회. 사람이 가장 많이 몰리는 내일 그들의 습격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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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내일 누구랑 붙는지 명단도 안 봤다. 어차피 기권할 예정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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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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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확인해보기 위해 워치를 켰다. 박살이 났었기에 식당에 들어오기 전, 급하게 하나 장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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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보다 더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따로 있었다.
 
1회차 대련이 막 끝났다. 단체들의 학생 입찰이 시작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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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찰 현황]
 
​
 
[크림슨 길드] → [박수형] 10,000,000 KRW 입찰.
 
[Dominant 길드] → [윌슨] 14,000 USD 입찰.
 
​
 
세계 각국의 다양한 길드들의 입찰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러던 중.
 
​
 
[아르카디아 교단] → [요한] 500,000,000 KRW 입찰.
 
​
 
“이야, 5억?”
 
​
 
박광철이 워치 화면을 보며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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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살려주네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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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교단 차원의 배려였다.
 
요한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조치이자, 그를 끝까지 지원하겠다는 의지라고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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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나에 대한 입찰은 들어오지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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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일 상대할 명단을 천천히 훑어봤다. 익숙하지 않은 이름들이었다. 따라서 대충 둘러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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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철은 식사를 끝낸 듯, 의자에 몸을 기댔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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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시다.”
 
​
 
이제, 준비해야 할 것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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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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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르페가 도착했다. 나는 기숙사 문 앞에 놓여있는 택배를 들고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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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 씨 무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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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를 뜯자 안에서 거대한 돌덩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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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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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로 만들어진 낫은 예상보다 거대했다. 투박하고 거친 표면, 바위처럼 묵직한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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낫이라기보다는, 마치 부러진 기둥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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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기운도, 신성도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돌덩이를 내려놓고 밖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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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해가 지고, 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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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밤바람이 흘러들어오며, 희미한 풀 냄새를 퍼뜨렸다.
 
나는 돌낫을 어깨에 걸쳐 메고 밖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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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장 숲으로 향했다. 아직 늦은 시간이 아니었기에 사람이 많았다. 따라서, 으슥한 공간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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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숲은 낮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적막했다. 바람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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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천히 나무 사이를 걸으며,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둠이 깔린 밤하늘에는 수많은 별이 박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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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해야 할 일은 단순했다.
 
이 돌덩어리 낫을, 페르세우스 별자리와 감응시키는 것.
 
그것이 곧, 하르페의 본래 모습을 되찾는 조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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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하기 전, 인터넷에서 페르세우스자리를 찾느라 꽤 고생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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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4월.
 
원래라면 이맘때 페르세우스자리는 보이지 않아야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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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곳은 현실이 아니라, '게임 속 세계'다.
 
설정이 그렇다면, 그것이 법칙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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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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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돌낫을 고쳐 쥐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페르세우스자리.
 
그곳을 정확히 조준하며, 낫을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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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별자리에 맞춰진 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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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빛이 떨어졌다. 별자리에서 내려오는 한 줄기 푸른빛.
 
그것이 돌낫에 닿는 순간, 손끝에서부터 전율이 퍼졌다.
 
돌로 이루어진 낫의 표면이 순식간에 변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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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표면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마치 속에 숨겨져 있던 무언가가 깨어나는 듯했다.
 
금이 간 틈새에서, 서서히 금속의 윤기가 드러났다.
 
돌이 아니라, 은빛을 띤 신비한 금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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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겁고 둔탁했던 돌덩이는 이제 곡선의 날을 품은 검이자, 신의 무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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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손에 감긴 하르페를 조용히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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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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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착 감긴다. 놀랄 만큼 자연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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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를 넘어 현실로 내려온 이 유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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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을 찢는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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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두사를, 단죄할 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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