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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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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위의 천장은 높게 뻗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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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거대한 공동의 끝자락에는 미약한 빛줄기가 새어 들어와 암흑 속 공간을 간신히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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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본능적으로 그 빛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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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미약한 빛줄기가 새어 들어오는 출구의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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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 계단 위에는 누군가가 앉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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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등을 구부린 채 고개를 숙인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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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에는 창을 들고 무언가를 툭툭 두드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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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를 눈에 담기 시작한 순간까지 그의 존재를 느낄 수 없었다는 사실에 소름이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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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말 없이, 움직임도 없지만, 그에게서 나오는 귀기 어린 기운은 서늘하고 날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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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면 진다…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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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막힐 듯한 압박감.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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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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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 그의 실루엣은 나와 비슷한 체격이었다. 그러나 존재감만큼은 나를 완벽히 압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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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자리에서 멈추어 섰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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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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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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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반갑긴 한데, 아직 여기 오기에는 좀 이른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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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체의 얼굴은 여전히 알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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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약 때문인가. 그래도… 정말 잘 먹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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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움직임이 거슬림 하나 없이 매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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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허리춤에 찬 창을, 아주 강하게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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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알 수 없다.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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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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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있던 형체가 일순간에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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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능적으로 창을 뽑아 정면을 막았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싸늘한 감각이 목을 스친다. 목덜미에 닿은 창의 날이 차갑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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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미 눈앞에 도착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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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앞에 있었지만, 여전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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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노이즈가 낀 듯한 모습에, 나는 그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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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깨우려면, 이 방법 뿐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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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 칼날이 파고드는 감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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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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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야가 암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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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기억 못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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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게 눈이 떠졌다. 어딘지 모를 깊은 꿈에서 막 깨어난 듯한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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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는 오히려 상쾌했다. 온종일 푹신한 침대에서 잔 것 같은 개운함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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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럽고 포근한 침대의 감촉이 등 아래로 전해졌고, 정신 또한 서서히 깨어나면서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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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천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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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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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어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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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를 둘러보자, 넓고 깨끗한 입원실이 눈에 들어왔다. 창문 너머로는 고층 빌딩의 정경이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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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을 내려다보니 병원복을 입고 있는 내 모습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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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제야 떠오르는 정신을 잃기 전 마지막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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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지… 옳지… 쭉 들이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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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미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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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급하게 눈을 감고 심호흡하며 마나를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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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퍼져나가는 맥박의 고동을 느끼며 마나의 흐름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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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 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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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 박동의 소리가 고조될수록 마나의 통로를 가늠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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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배… 4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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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에서 빠르게 계산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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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5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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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 효율, 그리고 그 절대적인 양까지. 모든 것이 이전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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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끌어올리는 마나를 멈추고 머리를 짚으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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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짓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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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약은 단순히 마신다고 해서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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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마시는 것만으로도 효과를 볼 수는 있다. 어쨌든 수백 년의 자연지기가 농축된 천혜의 영약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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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오랜 시간 동안 응축된 자연지기들은 거칠고 제어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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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취한 자는 그 기세를 감당하지 못해 기절하거나, 심할 경우 생명에 위협을 끼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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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호법(護法)을 서줄 사람이 필요했다. 마나를 섬세하게 다뤄 몸 구석구석으로 영약의 기운을 퍼뜨리고, 과잉된 부분은 적절히 다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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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몸에서 날뛰는 마나들은 마치 완벽하게 길들여진 듯, 효율적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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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야무질 정도로 잘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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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한 톨의 영약도 허투루 흘리지 않겠다는 듯 아주 꼼꼼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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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여울은 그 과정마저 완벽하게 수행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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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응… 일어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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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럽고 살짝 나른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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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아래로 눈길을 내리자 환자용 침대가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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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는 시온이 몸을 구부리며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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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움직이는 소리에 깨어난 듯, 그녀는 눈을 비비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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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때문에 깼구나.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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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아니야. 어차피 일어나려던 참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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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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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입을 손으로 가리며 길게 하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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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왜 그러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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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중에 잘못될까 봐 옆에서 지켜보라더라. 그래서 그냥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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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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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짧은 대답에 시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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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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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묵직한 소리와 함께 병실 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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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살짝 숙이며 병실로 들어오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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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m에 육박하는 압도적인 키와 단정히 빗어 넘긴 백발, 그리고 턱에서 뺨까지 이어진 깊은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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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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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잠시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다시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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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려졌다길래 와봤는데 멀쩡한 걸 보니 괜히 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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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직한 목소리가 병실 안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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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할아버지 또 그러시네. 어제 저녁에도 오셔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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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은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그의 눈길은 다시 나에게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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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눈빛이 내게 고정된 채 눈이 푸른색으로 일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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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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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체 어디서 뭘 주워 먹은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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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안에는 묵직한 의문과 경계가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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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개를 돌리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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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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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은 내 쪽으로 천천히 다가오며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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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서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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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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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 박동은 안정적이군. 마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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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눈이 살짝 좁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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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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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이 조용히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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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검사를 받아보긴 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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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수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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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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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침대 옆에 붙어있던 인터폰을 들어 짧게 대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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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내 전화를 끊은 영감은 손목을 굴리며 문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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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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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령 같은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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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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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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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결과를 듣고 나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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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에 아무런 이상 없습니다… 오히려 너무 건강해서 탈이네요,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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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고의 의료시설로 꼽히는 영광 병원의 의사가 직접 한 말이다. 틀리지는 않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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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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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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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과 시온은 의사의 설명을 듣고는 무심하게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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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은 등교했어야 했고, 영감은 워낙에 바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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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또한 퇴원 절차를 밟고 병원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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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누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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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제 대금은 이미 전부 처리되어 있었다. 누가 그랬는지 알려달라고 했는데, 알려주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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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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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영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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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병원 문을 나선 순간, 문 앞에 검은색 고급 세단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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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열리더니, 날렵한 정장을 입은 남자가 차에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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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하게 다려진 깃, 완벽한 각도의 넥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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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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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봐도 협회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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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 없이 퇴원하셔서 다행입니다, ‘묵귀’님. 저는 협회 소속 영웅 김길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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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시간 괜찮으시다면, 이아노의 무덤 건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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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제가 등교해야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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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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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온과는 협의가 끝난 상태입니다. 머리를 식히며 오늘까지만 정양하시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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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에서는 미리 손을 써놓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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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어차피 따라갈 생각이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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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한번 튕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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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그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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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단의 내부는 넓었다. 좌석은 푹신했고, 고급스럽게 꾸며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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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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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출발하자, 나는 어깨를 기대며 가방을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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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는 가방 안에 그대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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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후보님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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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도로를 달리길 몇 분, 운전을 하고 있던 그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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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노의 무덤을 발견하신 것도 정해인님이며, 모든 권리는 정해인 님에게 있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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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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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 말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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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저녁부터 일본 영웅 협회에서 온 인사들이 정해인 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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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거기까지 소문이 퍼졌던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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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있어서 이아노는 상징적인 인물이기에 한걸음에 달려온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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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약, 그리고 이아노의 십자가까지. 혹시 어떻게 사용하실 예정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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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는 아차 싶었는지, 급히 말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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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물론, 저희는 영웅의 던전 권리를 완벽히 존중합니다. 하지만 아는 것이 있어야 일본 측에 대한 대응과 협의가 더 수월할 테니, 혹여 협조해 주실 부분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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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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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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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그렇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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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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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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