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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천지에서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자마자 하산을 결정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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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기에 먼저 내려가고 있었는데, 어느새 뒤에서 바삐 따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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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래도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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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팀원들이 우장훈이 아닌 내 뒤를 따라오고 있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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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장훈은 저 뒤에서 조용히, 동떨어진 채 뒤따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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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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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옆으로 어느새 지원가로 보이는 여성 영웅이 바짝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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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에서도 몇 번 본 적 있는 듯한 익숙한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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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장한 미모에 활기찬 분위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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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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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진짜 죽을 뻔했다니까요? 저기 뒤에 누구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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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슬쩍 뒤를 돌아보며 우장훈을 노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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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선에는 대놓고 분노와 불만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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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혹시 어디 학생이에요? 역시 가온? 아니면 칼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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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온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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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대답에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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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가온 출신인데! 말 놓아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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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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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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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아니 그런데 어떻게 거기까지 올라갔어? 마물도 엄청 많고 심지어 이틀 전에는 이 정도로 멋있… 아니 이 정도의 기세는 절대 아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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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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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존댓말이 그녀의 억제기였던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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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길은 예상보다 훨씬 수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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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물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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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모습을 드러낸다 해도, 전부 위협이 되지 않는 유약한 개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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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거침없이 내려가다 보니, 어느덧 산의 초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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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는 이미 수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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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국 기자들, 길드 관계자들, 영웅협회의 요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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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백두산에서 발생한 이상 현상을 조사하기 위해 한꺼번에 몰려든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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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스러운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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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개의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기자들이 다급하게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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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편린을 발견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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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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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공세가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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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시선은 모두 로터스 팀을 향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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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덕분에, 나는 자연스럽게 군중 사이를 빠져나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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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이러려고 같이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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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학생으로 보이는 사람이 혼자 내려왔다면 오히려 관심이 쏠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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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로터스 팀과 함께였다면, 관심은 당연히 그들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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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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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틈을 타, 나는 소리 없이 몸을 숨기고 터미널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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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낯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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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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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협회의 요원이자 이아노의 무덤 협상 당시, 나를 픽업하러 왔던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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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나를 보더니 잠시 멍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급하게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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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인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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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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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려드는 인파가 그의 몸을 밀어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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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뻗어 나를 잡으려 했지만, 허공을 가르는 데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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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의 거리는 순식간에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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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파 속으로 빠르게 몸을 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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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협회 사람이라 그런지 감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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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어지는 그를 향해 손을 한 번 흔들어 보이며,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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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입 모양으로 조용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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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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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붙잡힐 생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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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에 백두산에 도착해, 월요일에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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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축이 아주 제대로 뒤틀린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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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오늘 학교도 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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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성실한 학생의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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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내가 지금 향하는 곳은 학교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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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많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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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여의도. 현실에서도 그렇고, 이 세계에서도 이곳은 사람이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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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메우는 고층 빌딩, 그리고 매달려있는 각종 길드의 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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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다른 게 있다면, 그 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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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봐도 차원이 다른 규모의 거대한 부지의 펜트하우스가 우뚝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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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지금 그 앞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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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대문 앞에서 초인종을 누르려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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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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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럴 필요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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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철문이 낮게 진동하며 자동으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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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내부의 감지 시스템이 먼저 확인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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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를 지나치자 넓게 펼쳐진 정원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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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정돈된 산책로와 분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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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는 작은 연못과 정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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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너머, 도심 한가운데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조용하고 고요한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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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의 취향이 반영된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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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건물은 아직 더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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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을 지나야만 도착할 수 있는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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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발걸음을 옮기려던 순간, 마당 한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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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베드 위에 편안히 누워 있는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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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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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급적 그녀가 깨지 않게 조용히 건물로 향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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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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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녀의 감각은 역시 예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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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묘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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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선글라스를 살짝 들어 올리며, 나를 바라보다, 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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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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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반가움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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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선베드에서 벌떡 일어나, 그대로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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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꽈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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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피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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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거침없이 내 팔을 움켜잡은 채 마구 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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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얼마 만이야, 입학하고~ 오늘은 학교 안 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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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향수 냄새가 코를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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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이름은 성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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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퀴셔의 대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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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의 품에서 간신히 벗어나며 용건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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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안에 누구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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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아라는 내 어깨를 두들기며 활짝 웃더니, 손가락을 입에 살짝 얹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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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개광철이랑… 나밖에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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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필요한 사람은 영감과 박광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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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광철씨는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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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님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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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협회에서 차 끌고와서 모셔갔어. 오늘 백두산 때문인 것 같은데? 금방 올 거야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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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기다리는 편이 좋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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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요, 저 들어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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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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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성아라와 함께 펜트하우스의 입구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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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 꽤 시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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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씹… 야 성아라, 너 또 내 드론 건드렸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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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 맞은편에서 화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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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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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에서 드론을 손에 들고나오던 그는, 마침 현관을 지나던 내 모습을 포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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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그의 움직임이 딱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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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크게 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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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참 동안 나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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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같았으면, 벌써 웃으며 반갑게 장난을 쳤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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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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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할 정도로, 너무도 조용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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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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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말에 나는 미간을 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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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안 먹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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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성아라가 황당하다는 듯 박광철을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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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는 여전히 나를 응시한 채,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표정을 찡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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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고민하던 그는, 결국 조용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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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인이는 맞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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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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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임마. 너 뭐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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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그는 내 몸에 일어난 변화를 알아챈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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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솔직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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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라면 믿을 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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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편린을 흡수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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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에 그들의 눈이 크게 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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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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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가 싸늘하게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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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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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철이 제작한 기계를 통해 신체검사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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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은, 신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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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외의 것을 확인하기 위해, 나는 지하 전투 훈련장 가운데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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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의 거대한 훈련 더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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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직접 기준점으로 삼아둔 더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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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아, 진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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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암(暗)’ 속성의 마나를 코어에 품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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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공격으로는 제대로 된 데미지를 입히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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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성시우가 편린을 흡수하고 이 속성의 더미를 격파한다면, 그것을 편린을 온전히 흡수했다는 증거로 삼을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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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기준을 내 몸으로 직접 검증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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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이도 7, 애시드 리퍼 가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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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장 너머, 강화유리 뒤에서 성아라와 박광철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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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눈빛에는 걱정과 긴장이 서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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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 더미의 난이도는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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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위계의 현역 영웅 2명 정도는 붙어야 상대가 가능한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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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온 졸업자의 평균적인 위계가 4 내외인 것을 고려하면, 상당히 강한 상대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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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평소보다 난이도를 높게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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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성시우보다 강한 것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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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편린이 내 몸에 완전히 흡수된 것이 맞는지를 확인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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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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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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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괴한 실루엣이 움찔하며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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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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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에에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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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미는 괴성을 지르며 내게로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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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시 확장되는 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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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지각(一體知覺)』으로 진화한 직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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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정밀하게 전장을 읽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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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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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이 저절로 반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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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의 공격은 상당히 빨랐다, 평소라면 직격했을 공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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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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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즉시 놈에게 접근해, 창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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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더미는 몸을 비틀어 내 공격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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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적으로, 미처 피하지 못한 창의 끝자락이 놈의 몸을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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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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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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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미의 암(暗)속성 코어가 미세하게 타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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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편린의 마를 멸하는 기운이 내 몸에 완벽하게 스며들었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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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은 끝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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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즉시 발을 박차며 공중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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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 투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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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자신 있는 기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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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창을 던지기 위해 자세를 잡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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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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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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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에서 정체불명의 충동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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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반사적으로 공중에서 자세를 비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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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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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철의 외침이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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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이미, 마나를 쥐어짜며 쇄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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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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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절대로 펼칠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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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나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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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이, 지금, 원작 속 최고 난이도의 창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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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현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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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이 두근거렸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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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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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도,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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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온몸의 마나를 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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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나를 본뜬 분신들을 직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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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미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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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에서 만들어낸 분신은 단 세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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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정도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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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시도, 명령도 필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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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엇을 하려는지, 어디를 노려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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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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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만들어진 분신들과 함께 놈에게 전력으로 쇄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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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개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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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세 개의 마력 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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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바바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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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놈을 꿰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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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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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미가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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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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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숨을 고르며 천천히 손을 들어, 내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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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은, 아직도 미친 듯이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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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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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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