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py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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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천지에서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자마자 하산을 결정한 듯했다.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기에 먼저 내려가고 있었는데, 어느새 뒤에서 바삐 따라붙었다.
“… 이래도 돼요?”
문제는, 팀원들이 우장훈이 아닌 내 뒤를 따라오고 있다는 점이었다.
우장훈은 저 뒤에서 조용히, 동떨어진 채 뒤따르고 있었다.
“그럼요~”
내 옆으로 어느새 지원가로 보이는 여성 영웅이 바짝 붙었다.
TV에서도 몇 번 본 적 있는 듯한 익숙한 얼굴이었다.
예쁘장한 미모에 활기찬 분위기까지.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저희 진짜 죽을 뻔했다니까요? 저기 뒤에 누구 때문에….”
그녀는 슬쩍 뒤를 돌아보며 우장훈을 노려봤다.
그 시선에는 대놓고 분노와 불만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혹시 어디 학생이에요? 역시 가온? 아니면 칼로스?”
“가온이요.”
내 대답에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나도 가온 출신인데! 말 놓아도 돼?”
그녀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세요.”
“고마워! 아니 그런데 어떻게 거기까지 올라갔어? 마물도 엄청 많고 심지어 이틀 전에는 이 정도로 멋있… 아니 이 정도의 기세는 절대 아니었는데….”
그녀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아무래도 존댓말이 그녀의 억제기였던 모양.
하산길은 예상보다 훨씬 수월했다.
마물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따금 모습을 드러낸다 해도, 전부 위협이 되지 않는 유약한 개체들이었다.
그렇게 거침없이 내려가다 보니, 어느덧 산의 초입.
그곳에는 이미 수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다.
방송국 기자들, 길드 관계자들, 영웅협회의 요원들.
그들은 백두산에서 발생한 이상 현상을 조사하기 위해 한꺼번에 몰려든 상태였다.
소란스러운 현장.
수십 개의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기자들이 다급하게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혹시 편린을 발견하셨습니까?
-이번 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질문 공세가 쏟아졌다.
그들의 시선은 모두 로터스 팀을 향해 있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나는 자연스럽게 군중 사이를 빠져나갈 수 있었다.
애초에 이러려고 같이 내려왔다.
어린 학생으로 보이는 사람이 혼자 내려왔다면 오히려 관심이 쏠렸을 것이다.
그러나 로터스 팀과 함께였다면, 관심은 당연히 그들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다.
‘땡큐.’
그 틈을 타, 나는 소리 없이 몸을 숨기고 터미널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던 중, 낯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김길규?’
그는 협회의 요원이자 이아노의 무덤 협상 당시, 나를 픽업하러 왔던 사람이었다.
그는 나를 보더니 잠시 멍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급하게 손을 뻗었다.
“정해인 님…!”
그러나 그 순간.
밀려드는 인파가 그의 몸을 밀어붙였다.
손을 뻗어 나를 잡으려 했지만, 허공을 가르는 데 그쳤다.
나와의 거리는 순식간에 벌어졌다.
나는 인파 속으로 빠르게 몸을 숨겼다.
역시 협회 사람이라 그런지 감이 좋다.
멀어지는 그를 향해 손을 한 번 흔들어 보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입 모양으로 조용히 말했다.
‘갈게요.’
지금 당장 붙잡힐 생각은 없었다.
토요일에 백두산에 도착해, 월요일에 튀어나왔다.
시간축이 아주 제대로 뒤틀린 듯했다.
당연히 오늘 학교도 결석.
아주 성실한 학생의 삶을 살고 있다.
그러니 내가 지금 향하는 곳은 학교가 아니었다.
‘사람 많네.’
여기는 여의도. 현실에서도 그렇고, 이 세계에서도 이곳은 사람이 넘쳐난다.
거리를 메우는 고층 빌딩, 그리고 매달려있는 각종 길드의 간판.
다만 다른 게 있다면, 그 중앙.
한눈에 봐도 차원이 다른 규모의 거대한 부지의 펜트하우스가 우뚝 서 있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앞에 있다.
거대한 대문 앞에서 초인종을 누르려 손을 뻗었다.
-철컥!
그러나 그럴 필요도 없이,
거대한 철문이 낮게 진동하며 자동으로 열렸다.
아마 내부의 감지 시스템이 먼저 확인한 모양이었다.
입구를 지나치자 넓게 펼쳐진 정원이 눈에 들어왔다.
잘 정돈된 산책로와 분수대,
한쪽에는 작은 연못과 정자까지.
건물 너머, 도심 한가운데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조용하고 고요한 공간이었다.
영감의 취향이 반영된 공간.
본건물은 아직 더 가야 한다.
정원을 지나야만 도착할 수 있는 구조.
조용히 발걸음을 옮기려던 순간, 마당 한쪽에서
선베드 위에 편안히 누워 있는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윽.’
나는 가급적 그녀가 깨지 않게 조용히 건물로 향했….
“해인이…?”
그러나, 그녀의 감각은 역시 예민했다.
나는 미묘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녀는 선글라스를 살짝 들어 올리며, 나를 바라보다, 이내.
“해인아!!”
그녀는 반가움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리고는 선베드에서 벌떡 일어나, 그대로 달려왔다.
-꽈악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피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녀는 거침없이 내 팔을 움켜잡은 채 마구 껴안았다.
“이게 얼마 만이야, 입학하고~ 오늘은 학교 안 갔어?”
익숙한 향수 냄새가 코를 스쳤다.
그녀의 이름은 성아라.
뱅퀴셔의 대원이었다.
나는 그녀의 품에서 간신히 벗어나며 용건을 꺼냈다.
“지금 안에 누구 있어요?”
성아라는 내 어깨를 두들기며 활짝 웃더니, 손가락을 입에 살짝 얹고 말했다.
“음… 개광철이랑… 나밖에 없어.”
가장 필요한 사람은 영감과 박광철이었다.
‘개광철씨는 있고.’
“영감님은요?”
“잠깐 협회에서 차 끌고와서 모셔갔어. 오늘 백두산 때문인 것 같은데? 금방 올 거야 아마.”
이건 기다리는 편이 좋아 보였다.
“고마워요, 저 들어갈게요.”
“같이 가~”
나는 성아라와 함께 펜트하우스의 입구를 열었다.
안은 꽤 시끄러웠다.
“아… 씹… 야 성아라, 너 또 내 드론 건드렸냐?”
현관 맞은편에서 화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박광철.
거실에서 드론을 손에 들고나오던 그는, 마침 현관을 지나던 내 모습을 포착했다.
순간, 그의 움직임이 딱 멈췄다.
눈이 크게 떠졌다.
그리고 한참 동안 나를 바라봤다.
평소 같았으면, 벌써 웃으며 반갑게 장난을 쳤을 텐데.
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상할 정도로, 너무도 조용히.
“너… 누구냐?”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말에 나는 미간을 좁혔다.
"약 안 먹었니?"
옆에서 성아라가 황당하다는 듯 박광철을 쳐다봤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나를 응시한 채,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표정을 찡그렸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결국 조용히 입을 열었다.
“… 해인이는 맞는데.”
그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야, 임마. 너 뭐한 거야.”
아무래도 그는 내 몸에 일어난 변화를 알아챈 듯했다.
그래서 나는 솔직히 말했다.
이들이라면 믿을 수 있었으니까.
“저 편린을 흡수한 것 같아요.”
내 말에 그들의 눈이 크게 떠졌다.
“뭐…?”
공기가 싸늘하게 굳었다.
박광철이 제작한 기계를 통해 신체검사를 마쳤다.
결론은, 신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그 외의 것을 확인하기 위해, 나는 지하 전투 훈련장 가운데에 서 있었다.
눈앞의 거대한 훈련 더미.
내가 직접 기준점으로 삼아둔 더미였다.
-해인아, 진짜 한다?
기본적으로 ‘암(暗)’ 속성의 마나를 코어에 품고 있어,
일반적인 공격으로는 제대로 된 데미지를 입히기 어렵다.
훗날, 성시우가 편린을 흡수하고 이 속성의 더미를 격파한다면, 그것을 편린을 온전히 흡수했다는 증거로 삼을 생각이었다.
나는 그 기준을 내 몸으로 직접 검증하기로 했다.
-난이도 7, 애시드 리퍼 가동합니다.
훈련장 너머, 강화유리 뒤에서 성아라와 박광철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에는 걱정과 긴장이 서려 있었다.
훈련 더미의 난이도는 7.
5 위계의 현역 영웅 2명 정도는 붙어야 상대가 가능한 수준이다.
가온 졸업자의 평균적인 위계가 4 내외인 것을 고려하면, 상당히 강한 상대라 볼 수 있다.
일부러 평소보다 난이도를 높게 잡았다.
내가 성시우보다 강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편린이 내 몸에 완전히 흡수된 것이 맞는지를 확인하고 싶었다.
-3,2,1
-시작.
기괴한 실루엣이 움찔하며 움직였다.
그리고—
-키에에엑!
더미는 괴성을 지르며 내게로 달려들었다.
즉시 확장되는 시야.
『일체지각(一體知覺)』으로 진화한 직관이.
더욱 정밀하게 전장을 읽어냈다.
피한다.
전신이 저절로 반응했다.
놈의 공격은 상당히 빨랐다, 평소라면 직격했을 공격이었다.
-스윽!
나는 즉시 놈에게 접근해, 창을 휘둘렀다.
그러나 더미는 몸을 비틀어 내 공격을 흘렸다.
순간적으로, 미처 피하지 못한 창의 끝자락이 놈의 몸을 스쳤다.
-치이익
‘!’
더미의 암(暗)속성 코어가 미세하게 타들어 갔다.
이건, 편린의 마를 멸하는 기운이 내 몸에 완벽하게 스며들었다는 뜻이었다.
‘확인은 끝났어.’
그리고, 즉시 발을 박차며 공중으로 떠올랐다.
전력 투창.
가장 자신 있는 기술이었다.
그렇게 창을 던지기 위해 자세를 잡는 순간—
“…?”
갑작스럽게,
머릿속에서 정체불명의 충동이 일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공중에서 자세를 비틀었다.
-야, 뭐해!
박광철의 외침이 들렸다.
그러나 나는 이미, 마나를 쥐어짜며 쇄도하고 있었다.
‘이건….’
내가 절대로 펼칠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카테나치오.
내 몸이, 지금, 원작 속 최고 난이도의 창술을.
구현하려 하고 있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할 수 있어.’
이상하게도, 확신이 들었다.
나는 온몸의 마나를 분출했다.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나를 본뜬 분신들을 직조했다.
아직 미숙했다.
공중에서 만들어낸 분신은 단 세 개.
그러나 이 정도면 충분하다.
지시도, 명령도 필요 없었다.
내가 무엇을 하려는지, 어디를 노려야 하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만들어진 분신들과 함께 놈에게 전력으로 쇄도했다.
한 개의 창.
그리고 세 개의 마력 창이,
-파바바박!
동시에 놈을 꿰뚫었다.
-쿵!
더미가 쓰러졌다.
“하아…하아….”
나는 숨을 고르며 천천히 손을 들어, 내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심장은, 아직도 미친 듯이 뛰고 있다.
‘테스트는….’
성공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