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2-novel-agent/content/references/novelpia/327879/150.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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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 없이 며칠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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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유세린의 탐지에도 광활한 대륙을 서칭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니까.
 
가온 아카데미 역시 이제 막 본격적인 2학기 수업에 들어선 참이라 별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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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내가 설계했던 원작에서도 현시점은 그랬다.
 
1학기 때 큰 사건들을 겪은 주인공과 동료들이 다음 메인 시나리오로 나아가기 전, 잠시 숨을 고르며 내실을 다지는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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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이슈 없이 그렇게 평화롭게 지나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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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시기에는 주인공의 성장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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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능: 조화의 편린(片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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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파사현정(破邪顯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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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사한 것을 부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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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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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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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도 그 흐름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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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시우를 대신할 역할로 윤채하를 선택했다면, 그 진짜 주인공의 역할을 해야 하는 건, 나 자신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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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두 번째 확장 권능은, 내가 추구하는 방향성에 따라 그 형태가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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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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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추구하는 방향성은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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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내 지난 방학 간의 고민이었다.
 
나는 지금 펜트하우스의 가장 깊숙한 곳, 최상위권 학생들만 출입할 수 있는 지하 개인 연습실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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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내린 결론은 두 가지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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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첫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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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카타스트로피를 강하게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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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웅… 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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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람의 손길로 다시 태어난 이 칠흑 같은 창은, 내 마력에 반응하며 낮은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나는 눈을 감고 마나를 집중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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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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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참(鬼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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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을 향해 창을 강하게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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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휘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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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 끝에서부터 발산하는 칠흑 같은 창강(槍罡)이 공간 자체를 찢어버리며 벽을 향해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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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콰과과과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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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강이 벽에 닿는 순간, 훈련장 전체가 울리는 굉음과 함께 거대한 상처가 남았다.
 
저번 기말고사 때 유세린에게 휘두른 창강과는, 위력부터가 차원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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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연습용 창이였고.
 
지금은 카타스트로피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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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나의 첫 번째 방향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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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전선에서, 적들의 공격을 받아내고 쳐내는 것에 그치는 10년 전의 낡은 계획에서 더 발전한.
 
눈앞의 모든 적들을 전부 다 때려잡는다는 지극히 오만한 방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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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한 방향성이라는 말에 걸맞게 내 무력을 미친 듯이 끌어 올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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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원래의 방향성이 성시우와 주요 인물들의 방패였다면.
 
이제는 방패를 들 이유는 없어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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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점이라면 방향성의 저점이 아주 높다는 것이다.
 
복잡한 계산이나 다른 이들과의 조율 따위는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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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진 모든 자원, 모든 아티팩트, 그리고 앞으로 얻게 될 모든 성장의 기회를 오직 나 자신에게만 쏟아부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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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아이들에게 하는 투자를 줄이고. 작정하고 전부 다 처먹으며 성장을 도모하면 강해지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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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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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의 단점은 명확하다.
 
저점은 높지만, 동시에 고점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결국 정해인 원툴이 될 가능성이 있으니까.​
 
불가람이 말했던 연대의 가치를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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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내면의 무언가가 자꾸 소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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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오만한 길의 끝은 분명 좋지 못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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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방법은 일신의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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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두 번째 방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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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눈을 다시 한번 감고, 카타스트로피에 담았던 흉흉한 파괴의 기운을 거두어들였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마나를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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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흉흉한 마나가 아닌, 조화를 위한 마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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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위로 다섯 개의 마력 덩어리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 마력 덩어리들은 서서히 인간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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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들을 내가 아닌, 나의 실제 동료들이라 생각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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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고, 집중했다.
 
조금의 흐트러짐도 있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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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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뻗은 손의 떨림이 멎을 때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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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들을 중심으로 편린의 마나를 해방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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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마나가 안개처럼 훈련장 전역으로 흩뿌려졌다.
 
마치, 일종의 영역(領域)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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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간 전체를 내 의지 아래 두는 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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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영역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눈을 감아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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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들의 위치도, 그들의 다음 행동도.
 
마치 손바닥 안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모든 것이 명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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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 영역은 그들의 이질적인 힘들을 하나로 묶어주고, 그 능력을 증폭시키는 최고의 촉매제가 되어줄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그들이 발산하는 힘은 다시 내게로 흘러들어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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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나의 두 번째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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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전선이 아닌, 전장의 중앙에서 지휘하고 조율하는 지휘관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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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방학 내내 영감과 고심 끝에 만들어낸 하나의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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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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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점이 무궁무진하다.
 
동료들의 색을 죽이지 않고 내 지휘 아래 전부, 개성을 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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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만약 편린이 이 방향성으로 확장됐을 때의 기대치는 개발자인 나로서도 전혀 예측할 수가 없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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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단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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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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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닥에 그대로 털썩, 누워버렸다.
 
그리고 동시에 공간 전체를 지배하던 안개 같던 마나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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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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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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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의 마력이 전부 빨려나간 듯한 지독한 탈력감.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훈련장의 차가운 바닥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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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린의 마나와 내 본연의 마나를 조율함과 동시에 그 힘을 영역으로 만들어 전역에 흩뿌리고, 동료들의 힘을 증폭시키고, 그들의 다음 행동을 예측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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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말이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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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말도 안 되는 수준의 마나 컨트롤이다.
 
내 수준으로는, 아니 어쩌면 이 세상 어떤 자도 실현하지 못할 경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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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이 방법의 저점은··· 현실성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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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에야 방해 하나 없는 훈련장이고, 내 의지대로만 움직이는 분신들을 상대로 하기에 가능한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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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전장에서는 다르다.
 
사방에서 날아드는 공격과, 동료들의 예측 불가능한 움직임, 그리고 시시각각 변하는 전장의 상황 속에서 이 예민한 영역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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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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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이끌며 적들을 찢어 버리는, 장군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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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동료들의 힘을 조율하고, 전장 전체를 지배하는 불가능에 도전하는 지휘관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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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훈련장 벽에 남은, 지금은 서서히 복구되고 있는 거대한 상처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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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신의 힘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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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로운 길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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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 선택이, 나의 갈림길이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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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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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평소처럼, 몸이 부서져라 훈련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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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오늘은, 펜트하우스의 쾌적한 단독 훈련장은 아니었다.
 
원래 훈련도 자주자주 위치를 바꿔줘야 분위기 전환이 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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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오늘 내가 찾은 곳은, 모든 학생들이 함께 사용하는 가온의 거대한 연무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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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훈련 파트너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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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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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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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나도 땀에 흠뻑 젖어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녀와 1학기 때는 매일 아침 함께 달렸지만, 2학기부터는 그러지 못했다.
 
내가 바쁘다는 핑계로, 어영부영 그렇게 된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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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사겸사, 오늘 훈련은 오랜만에 함께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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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나와 나는 훈련을 하고 나와 가온의 복도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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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 건, 차가운 물을 적신 수건의 시원함이, 뜨겁게 달아오른 몸을 기분 좋게 식혀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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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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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 중간중간에 걸린, 거대한 전광판이 갑자기 밝게 빛났다.
 
보통은 학사 일정이나 길드 홍보 영상이 나오던, 전철이나 지하철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스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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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길드 광고겠거니, 하고 나는 지나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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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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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여기가 가온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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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기에 나는 전광판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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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도서관에서 촬영했던 나의 모습이 아주 그럴싸한 느낌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내 옆에는, 나를 동경의 눈빛으로 올려다보는 윤채하의 모습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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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진을 진짜 쓰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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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재미로 찍는 컨셉샷일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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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광고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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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이 클로즈업되며 윤채하의 얼굴이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그리고 그녀가 인터뷰에서 했던, 그러나 내가 듣지 못했던 말이 스피커를 통해 복도 전체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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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애요…? 글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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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속 윤채하는, 수줍게 뺨을 붉히며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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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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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저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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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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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가온을 제외한 다른 아카데미들은, 남녀 간의 연애를 엄격히 금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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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애초에 공학이 아니거나.
 
그러나 가온은 다르다. 학생들은 사랑을 하면서도 성장한다는, 초대 설립자의 의지 때문이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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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그런 가온의 차별화된 강점을 보여주기 위한 인터뷰 중 하나로 보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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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나는 다르게 생각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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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응… 그렇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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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전광판 속, 나를 보며 해맑게 웃는 윤채하와 굳어버린 현실의 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유하나의 하늘색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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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천천히 내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아주 해맑은 미소와 함께 질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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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연애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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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나는 내 침묵을 확인하고는 한 걸음 더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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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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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손가락이, 내 팔뚝을 스르르 훑어내리며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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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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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묻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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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착각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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