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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榮光) 그룹의 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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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물론, 전 세계를 통틀어도 1위인 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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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주(盟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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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본부의 최상층, 길드 마스터의 집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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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의 주인이어야 할 길드 마스터는, 자신의 자리에 앉아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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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방 한쪽에 서서, 자신의 거대한 책상에 앉아 있는 한 소녀 그의 조카인 강아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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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온 아카데미 1학년 수석, 그리고 영광 그룹의 유일한 후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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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드 마스터인 강윤혁은, 그런 강아린의 모습을 보고 감격에 겨울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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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오빠가 죽었어도, 강아린은 꺾이지 않고 결국 이렇게 다시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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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그녀에게서는 이미 영광 그룹의 차기 총수이자 맹주의 차기 길드장 다운 위엄과 냉철함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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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녀가 기뻐할 만한 이야기를 하나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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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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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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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곤에서, 편린에 대한 연구를 잠정적으로 중단했다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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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늘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던 강아린의 눈이 순간적으로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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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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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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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통제가 불가능한 변수를 발견해서, 모든 데이터를 재검토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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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벙글하며, 강아린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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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제 본인에게도 차례가 온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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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외적으로는 펜타곤의 편린 문제, 대내적으로는 가업 인계 등, 그녀는 너무나도 바쁜 삶을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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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금 미리 전부 해둬야, 나중에 차질이 없는 것들이었기에 그녀는 게을리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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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강아린에게 펜타곤의 연구 중단 소식은, 둘도 없는 희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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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 잡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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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게 속삭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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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비서가 인터폰을 통해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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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드장님, 부길드장님, 프론트라인이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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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론트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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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린이 최근 바쁠 수밖에 없었던 대외적 행동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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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방금 전의 기쁜 표정을 순식간에 지우고, 다리를 꼬며 냉철한 후계자의 얼굴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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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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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집무실의 묵직한 문이 열리며, 한 무리의 인원들이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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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사복이었지만, 그들의 눈빛과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색은, 그들이 결코 일반인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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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들의 가장 선두에 선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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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흑 같은 날카로운 단발, 그러나 그와 반대로 고요하고 부드러운 눈매를 가진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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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로터스 길드 1팀장, 유세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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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기말고사에서 유세린과 직접 합을 겨루었던 강아린은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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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는 부드러워 보이는 그녀의 저 눈매가, 전투에 들어서는 순간 얼마나 맹수같이 변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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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린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유세린과 시선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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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스에서 나온 건, 탁월한 선택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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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사실을 말하듯이 나직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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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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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린은 흐트러짐 없는 미소로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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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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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의자에서 일어나, 유세린에게로 천천히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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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맹주로 온 것은… 그것보다 더, 탁월한 선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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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유세린의 바로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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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린의 붉은 눈동자가 유세린의 검은 눈동자를 꿰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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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홀로그램 패널을 켜 맹주의 조직도를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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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다시피 저희 맹주에는 두 개의 핵심 팀이 있습니다. 선봉 글로리와. 2팀 맹호. 둘 다 맹주의 창립부터 함께한, 실력과 자부심이 대단한 팀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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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유세린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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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실력을 생각하면… 뭐, 넘볼 수야 있겠지만 기존 팀원들의 반발과 조직의 위계 상, 지금 당장 그들을 앞지르기하는 것은 애매한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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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린의 설명은 합리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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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아무리 타 길드의 핵심 전력이라 한들, 갑자기 굴러 들어온 돌이 기존의 박힌 돌들을 밀어내는 모양새는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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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린과 프론트라인도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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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프론트라인에게 ‘3’ 이라는 번호를 붙이는 건, 또 예의가 아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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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린은 조용히 강아린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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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린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패널 위로 새로운 조직도를 생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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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새로운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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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도의 최상단 1팀 글로리의 바로 옆에 새로운 팀의 이름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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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1, 2팀 체계와는 완전히 분리된 별동대. 0팀이라고 해야 할까요. 팀, 제로… 다시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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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린의 눈이 순간적으로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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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파격적인 제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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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드 내의 정치나 행정에 얽매이지 않는 직속 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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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드의 중추에 두겠다는 소리나 다름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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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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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린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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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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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린의 차가웠던 입가에, 아주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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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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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새로운 주군에게 예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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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부탁드려요. 부길드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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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린의 얼굴에도, 마침내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그녀는 유세린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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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합니다, 유세린 팀장님. 그리고 프론트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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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왕의 손이, 그렇게 마주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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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같은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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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스의 길드 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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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콰자자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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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스의 길드장. 이도겸의 짐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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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내던진 재떨이가 비싼 홀로그램 패널을 작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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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개 같은 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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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앞 깨진 홀로그램에서는 뉴스 기사가 하나 떠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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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 前 로터스 길드 1팀 프론트라인, 금일부로 맹주 길드 이적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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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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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얌전히, 쥐 죽은 듯이 있었다면, 죽이지는 않았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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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린의 야망이자 목적은 결국 로터스의 정상에 서는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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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겸은 그녀가 결코 이 길드를 떠나지는 않으리라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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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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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린은 계약 종료를 명분으로, FA 신분을 주장하며 길드에서 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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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제 팀원, 프론트라인 전부를 데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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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겸의 분노에 찬 포효가 빌딩 전체를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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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드의 상징과도 같았던 유세린과 프론트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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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가장 강력한 경쟁 길드인 맹주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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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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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집무실 문이 다급하게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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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드장님…! 기사와 동시에 주가가 폭락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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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서가 거의 울상이 된 얼굴로 뛰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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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손에 들린 태블릿에는 수직으로 곤두박질치는 로터스 그룹의 주가 그래프가 선명하게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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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프론트라인이 나간 뒤 연일 폭락한 주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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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 밑에 지하실 있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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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이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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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 당장 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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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겸은 이성을 잃고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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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이 시드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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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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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주로 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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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펜트하우스의 푹신한 침대에 누워, 벽면 전체를 차지하는 거대한 홀로그램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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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트하우스에는 TV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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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치로 고개 숙여 보지 않아도 되니 이렇게 편할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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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속에는 긴급한 뉴스를 알리는 요란한 자막과 함께 앵커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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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스의 1팀 프론트라인이 라이벌 길드인 맹주로의 전격 이적을 발표했습니다! 이에 따라 로터스 그룹의 주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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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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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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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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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로터스는 사실상 호흡기를 떼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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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드의 상징이자 가장 강한 칼이었던 프론트 라인의 이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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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전력 손실로 치부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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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로터스의 길드 마스터인 이도겸은 보통 미친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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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지금부터 예의 주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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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여나… 모든 것을 잃었다는 생각에 배수의 진을 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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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이랑 손을 잡고 길드 자체를 홀랑 넘겨버릴 가능성마저도… 부정할 수가 없다는 게 정말 무서운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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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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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워치에 메세지가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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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여울이겠거니 싶어 워치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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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메세지의 대상은 내가 아는 사람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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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IN]: 해인 씨! 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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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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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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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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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lief_]: 연락처는 어떻게 아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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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IN]: 부길드장님한테 뜯어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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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린이 줬을 것 같지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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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lief_]: 아닐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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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IN]: 사실 해킹해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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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하자마자 한 짓이 해킹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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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하는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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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IN]: 아무튼, 지금 나올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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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lief_]: 어디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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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전화가 걸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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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휴, 메세지로 하니까 눈 아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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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목소리는 미세한 취기가 깃들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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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아관, 알죠? 여기로 와요! 지금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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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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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온의 전경이 전부 내려다보이는, 본관 옥상의 작은 전망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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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온의 학생들에게는 야경 명소이자 유명한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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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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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전화가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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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온 내부는 외부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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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유세린은 제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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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암행의 달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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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짧게 혀를 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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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공기를 가르며 약속 장소인 무아관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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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원한 밤바람과 함께 탁 트인 가온의 야경이 나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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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의 벤치에, 한 여자가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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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흑 같은 단발, 몸에 달라붙는 깔끔한 와이셔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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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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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손에는 맥주가 한 캔 들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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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그녀 옆에 이미 서너 캔 정도가 찌그러져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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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알맞게 그녀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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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가가자, 그녀는 나를 발견하고는 헤실거리며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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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어요? 히히. 앉아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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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통화할 때보다 더 혀가 꼬인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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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새 취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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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의 옆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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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린에게서 알코올 냄새와 그녀 특유의 향기가 섞여 풍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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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다. 그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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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린은 야경을 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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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녀와 함께 도시의 불빛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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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분이 흘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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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내게 몸을 기울이며, 하소연하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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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요? 내가… 평생을 로터스에만 몸담고 있었어요. 내 청춘, 내 시간, 전부 로터스를 위해서만 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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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훌쩍이며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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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데 막상 나와서… 맹주로 오니까, 기분이 진짜… 요상? 하다고 해야 하나…. 내가 지키려고 했던 게 대체 뭐였을까… 그런 생각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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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후회는 안 해요. 그놈 밑에 더 있었으면, 내가 먼저 죽여버렸을지도 모르니까. 근데, 그래도… 그래도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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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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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린은 잠시 어깨를 들썩이다가, 이내 고개를 들어 젖은 눈으로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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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 씨가 책임, 질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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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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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히히 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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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뭔가 마음이 풀린 듯, 어색하게 웃으며 팔을 쭉 펼쳐 기지개를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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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로 괜찮은 척하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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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말할 사람이 필요했어요…. 해인 씨는 제게 길을 알려줬을 뿐이고, 선택해서 걸어 나온 건 나니까. 책임지라는 말 같은 건 안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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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스스로를 다잡으려는 듯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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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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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든지 부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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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살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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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을 벗어난 유세린에게 해줄 말과, 말을 들어줄 시간 정도는 충분히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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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에, 그녀는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다시 한번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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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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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좀 전의 웃음과는 다른, 진짜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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