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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뱅퀴셔 숙소의 방 한쪽 구석에서 짐을 싸고 있었다. 슬슬 가온 기숙사로 돌아갈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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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 앞에 기대선 채, 나를 지켜보던 영감이 못마땅하다는 듯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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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쯧. 아쉽군. 방학이 짧지만 않았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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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듣고, 나는 가온의 학사일정을 짠 이름 모를 교직원에게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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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만 더했다간 불의의 사고가 일어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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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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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많은 도움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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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속으로만 그렇게 생각하고 감사 인사는 확실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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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고마운 것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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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방식은 지옥같이 힘들었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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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방향성을 함께 연구했고… 어느 정도 갈피는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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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진심 어린 감사에, 영감은 순간적으로 당황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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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큼, 하고 헛기침을 한번 하더니, 그대로 방에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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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의 등 뒤로, 문을 닫고 나가는 그 짧은 순간, 나는 분명히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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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입가에 걸린, 숨기려 했지만 미처 숨기지 못한 만족스러운 미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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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다 챙기고, 나는 뱅퀴셔 숙소의 거실 소파에 파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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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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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하게 홀로그램 뉴스를 넘기던 내 손가락이 멈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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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2위 길드 로터스, 핵심 전력 ‘프론트 라인’ 전원 탈퇴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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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길드장 유세린, 그녀의 다음 행선지는? FA 시장 들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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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승자는 둘? 윤채하와 정해인의 사이에 대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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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지막 헤드라인은 가볍게 무시하며, 첫 번째 기사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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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언제적 소식인데 아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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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내용은 간단했다. 부길드장인 유세린을 위시한 로터스의 핵심 정예 팀이 로터스에서 독립 및 탈퇴를 공식적으로 선언했다는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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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다시 말해, 탈출했다는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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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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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좋은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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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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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그때 파티장에서 유세린을 건든 것은… 좋은 판단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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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똑똑하고, 또 야심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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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어가는 배에서 과감하게 내릴 줄 아는 전략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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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얘기한 것만으로도 본질에 도달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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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그녀를 따르는 팀 프론트 라인까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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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지금 당장 로터스가 망할 리는 없다. 허우대도, 대우도 여전히 대한민국 최고 수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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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훗날 분명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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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스 탈출은 지능 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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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로터스라는 족쇄에서 풀려난 유세린과 그녀의 팀은… 매우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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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좋은 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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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홀로그램 뉴스를 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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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정확히는 끄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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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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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최 하단, 새로운 헤드라인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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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천여울, 불가람의 후계자 정해인과 비밀 순례… 바티칸에서 포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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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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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대체 어떻게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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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도 새도 모르게 교단의 극비 포탈까지 사용하며 다녀왔는데 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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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재빠르게 기사의 출처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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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엘 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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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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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아르카디아 언론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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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의 공식적인 입장을 대변하는, 교단 직속 언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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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건 외부 유출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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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직접 흘렸다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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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여울에게 즉시 따지기 위해, 워치의 SNS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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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그녀의 프로필 옆에 붙어있는 작은 빨간색 점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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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게시글을 올렸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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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홀린 듯이, 그 게시글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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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가득, 한 장의 사진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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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는 바티칸의 유적을 배경으로, 천여울이 환하게 셀카를 찍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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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아주 반짝반짝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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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는 천진난만한 글이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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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간! (불꽃 이모티콘) (불꽃 이모티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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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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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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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가 올라가는 완벽한 타이밍에 게시글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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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정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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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헛웃음을 짓고 조용히 워치를 껐다. 따질 마음이 싹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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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져서 뭐 하겠는가. 이미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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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여울은 전 세계적인 셀럽. 그녀의 게시글에는 이미 붉은색 하트 숫자가 무섭게 오르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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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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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누군가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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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_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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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온라인인 것을 확인했는지 의기양양한 하트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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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잠시 워치를 바라보다가, 답장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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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를 내기도 애매하고, 칭찬을 하는 건 말이 안 됐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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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lief_]: 이마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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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은 거의 즉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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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_y]: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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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_y]: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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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가득, 한 장의 사진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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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사진인가 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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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카메라를, 즉 나를 올려다보며 한쪽 손으로 앞머리를 넘겨, 매끄러운 이마를 완전히 드러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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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동자에는 기대감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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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_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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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과거라면 바로 껐어야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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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사진을 넋 놓고 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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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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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로 답 없이 워치를 종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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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에 마구니가 자꾸만 차오르는 것을 보니, 훈련할 때가 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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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차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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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훈련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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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의 말이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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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지옥과도 같은 훈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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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한 달 반 정도 되는 시간의 방학이,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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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알차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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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자부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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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내 스스로의 발전에 몰두하느라 다른 아이들을 챙기지 못한 것은 마음에 살짝 걸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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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 역시 어느 정도는 통제하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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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 또한 각자의 방식대로 나아가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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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린은 후계 수업 때문에 바쁘다는 소식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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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야심을 생각하면, 이 시간을 허투루 보냈을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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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는 유하나에게서 폐관 수련이 끝났다는 연락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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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는… 성공. 유무진에게 차기 검후로 인정을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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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여울 또한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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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에서 돌아온 이후, 그녀는 편린을 단련하는데 몰두하고 있다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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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하루가 멀다 하고 보내는 의미심장한 메세지들은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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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리고 우리 천재 마법사, 윤채하 양도 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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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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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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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워치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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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감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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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최근 연락한 DM 들의 기록을 미친 듯이 스크롤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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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여울 - 1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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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온 - 1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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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린 - 2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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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나 - 2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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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철 - 1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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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크롤을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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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이 점점 식어가는 것을 느끼며 계속해서 아래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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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침내, 가장 아래쪽에서 익숙한 이름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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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 - 4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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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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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메세지 창을 본 순간, 까먹은 듯한 느낌이 뭐였는지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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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주. 자그마치 4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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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불가람의 공방으로 떠나기 바로 전날, 그녀의 훈련을 도와줬던 그 날이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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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 이후, 서로 연락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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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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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너무 바빴고, 영감에게 쥐어터졌고, 자고 일어나면 하는 것이라고는 훈련의 반복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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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뉴스 기사로 윤채하라는 이름을 계속 접했기 때문에, 계속 연락하고 있다고 착각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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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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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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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내 모토는, 자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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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감각을 일깨워 준 후, 등장인물에게 스스로 탐구하게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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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것도 정도라는 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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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멘토로 여기는 아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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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가까이, 연락 한번 없이 완벽하게 방치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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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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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심스럽게, 워치를 터치해 그녀의 현재 상태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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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상태는 빨간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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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용무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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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치를 들었다가, 내려놓았다가, 몇 번을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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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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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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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빴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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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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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선택지도 정답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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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대로 있을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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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결국 마른침을 삼키며, 짧게 한 마디를 입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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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lief_]: 채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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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대로 워치를 끄려 했다. 답장이 오지 않을 수도 있고, 온다고 해도 시간이 걸릴 거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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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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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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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워치를 끄기 위해 손가락을 움직이기도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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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감상 1초 만에 메세지가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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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내가 메시지를 보내는 바로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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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멈칫한 채, 액정을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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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er]: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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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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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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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감각은 웬만해서는 틀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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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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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이 경종을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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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머리를 팽팽 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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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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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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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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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게임 이후, 그녀들의 행보는 명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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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은 나를 이성으로서, 남자로서 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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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윤채하도… 어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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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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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라면 자의식 과잉이라 스스로를 비난했겠지만, 지금은 이 직감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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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확인하기 위해 무리수를 던졌다. 인제 와서 후회해도 소용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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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lief_]: 보고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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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틀린 말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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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바로, 읽음 표시가 뜨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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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이이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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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치가 진동하며, 전화가 걸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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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에 뜬 이름은, [윤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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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즉시 통화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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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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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화기 너머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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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훌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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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아주 희미하게, 그녀가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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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작은 소리에 나는 빠르게 고해성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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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미안. 너무 바빴어. 훈련도 그렇고, 바티칸도 갑자기 다녀와야 했고, 정신이 없어서 연락을 못 했어. 미안해, 채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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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사포처럼, 빠르게 사과를 늘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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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흡, 훌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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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화기 너머로, 그녀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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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잠시 후, 아주 작게,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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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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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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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나도, 보고 싶었는데… 연락도 없고… 근데 바쁜 것 같아서 연락도 못 하고… 근데 기사에는 여행 갔다고 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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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흐윽… 내가 뭐 잘못 한 줄 알고… 흐윽, 계속 혼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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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녀의 입에서 참아왔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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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이라는 긴 시간 동안, 감정을 억누르고 참아왔던 천재 소녀의 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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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내 과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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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내가 울렸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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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연락을 안 하니까, 윤채하 본인은 내게 실수를 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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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소녀의 귀여운 굴 파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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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고 시퍼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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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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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나지막이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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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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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번 만큼은 명백한 죄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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